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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게임의 악역은 밤마다 여주인공의 꿈을 꾼다-98화 (98/120)

98화.

“레온…….”

셀린느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목이 메어 레온하르트의 이름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녀는 조심스레 자신의 팔에서 레온하르트의 손을 떼어 냈다.

레온하르트는 끝까지 그녀에게서 떨어지기가 싫은 듯 미약하게나마 저항했지만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레온하르트의 입에 힐링 포션을 흘려 넣어야 했다.

셀린느는 떨리는 손으로 힐링 포션이 담긴 주머니를 열었다.

라쉬르는 주머니조차 베지 않은 채 물러났지만 강한 충격이 가해졌을 터.

서너 개 남아 있을 힐링 포션이 무사하다는 보장이 없었다.

‘있어……!’

대부분이 라쉬르에 의해 깨졌지만 단 하나, 온전히 남아 있는 유리병이 있었다.

셀린느는 부들부들 떨며 약병을 집어 들고 레온하르트에게로 다가갔다.

“……!”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레온하르트는 눈을 감은 채 힘없이 몸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어디에도 생명의 단서라곤 없었다.

“레온하르트!”

이름을 큰 소리로 불러보았지만 아무런 반응도 되돌아오지 않았다.

셀린느는 입술을 깨물며 자신을 달랬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셀린느는 어느덧 식은땀으로 미끄러워진 약병을 조심스레 열었다.

약병을 꽉 메운 붉은 액체가 찰랑거렸다.

‘이것만 먹으면 돼. 이것만 먹으면…….’

셀린느는 레온하르트의 머리를 살짝 들어 올리고, 입을 벌려 힐링 포션을 흘려 넣었다.

다행히 가까이 몸을 붙이니 미약한 숨결이 느껴졌다.

‘아직 늦지 않았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갈비뼈를 뛰쳐나갈 기세로 파닥거리던 심장이 간신히 진정되었다.

셀린느는 한 방울이라도 엉뚱한 곳으로 새어 나갈까 봐 조심하며 한 모금씩 약을 흘려 넣었다.

조금씩 움직이는 레온하르트의 목울대를 보니 허사는 아닌 듯했다.

어느새 약병은 완전히 비었다.

셀린느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기다렸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도 레온하르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가슴에 휑하니 뚫렸던 상처는 완전히 아물었음에도 불구하고.

“레온하르트!”

셀린느는 레온하르트의 이름을 부르며 가볍게 몸을 흔들었지만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왜, 왜…….’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넘쳤다.

시야가 흐릿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셀린느가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곤 단 두 가지였다.

차갑게만 느껴지는 레온하르트의 손과 자신의 뺨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제발, 레온하르트, 제발…….’

셀린느는 속으로 계속해서 애원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직 그것밖에 없었기에.

‘레온하르트가 살아나기만 한다면, 난 뭐가 되어도 좋아…….’

애원만으로는 부족하게 느껴질 법한 상황이었지만 셀린느는 신에게 기도하지 않았다.

이 세계의 신은, 결말만을 향해 냉혹하게 달려가는 스테이지였으니까.

얼마나 지났을까.

“……!”

셀린느의 눈이 크게 떠졌다.

레온하르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고개는 푹 숙여 얼굴은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약효가 무사히 발휘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이 중요했다.

셀린느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레온하르트……괜찮아요?”

“…….”

레온하르트는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순간, 전신에 소름이 쭈뼛 끼쳤다.

셀린느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

레온하르트의 두 눈엔 감기기 직전 보였던 감정의 여운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싸늘한 적의만이 느껴졌다.

“레온하르트!”

셀린느는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레온하르트는 상처가 완벽히 나은 몸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라쉬르를 빼 들었다.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한 느낌이 들었다.

셀린느는 알았다.

레온하르트는 지금, 자신을 진정으로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왜……?’

하지만 그 이유를 찬찬히 생각할 여유 따윈 없었다.

셀린느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여전히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로즈와 반대 방향으로 뒷걸음쳤다.

레온하르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향해 성큼 걸어왔다.

‘아까는, 많이 주저했었구나.’

목이 꽉 메어 왔다.

지금의 레온하르트는 그녀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완전히 흑마법사로만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레온하르트…….’

셀린느는 이를 꽉 악물었다.

감상에 젖을 시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어떻게든 레온하르트를 세뇌에서 풀어낼 방법을 생각해야만 했다.

‘레온하르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어. 그게 제일 큰 문제야.’

하지만 셀린느가 명확한 방법을 떠올리기도 전에 라쉬르가 그녀를 강타했다.

셀린느의 몸이 공중에 반쯤 붕 떠오르면서 반으로 갈라졌고, 피가 사방에 흩뿌려졌다.

그녀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죽었다.

***

셀린느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에 들어온 건 라쉬르에 타오르는 새파란 불길이었다.

“아아악……!”

이번엔 죽기 전, 비명을 지를 시간이 있었다.

***

셀린느는 자신이 몇 번을 죽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모든 죽음은 뒤따라올 죽음의 연장선처럼 느껴질 정도로 레온하르트가 그녀를 끊임없이 죽였기 때문이었다.

고통의 물살은 의문에 찬 레온하르트의 한마디와 함께 끝났다.

“……넌, 뭐지?”

셀린느는 숨을 헐떡거렸다.

환상통 때문에 흐르는 눈물로 시야가 부옇게 변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답해라, 흑마법사.”

레온하르트가 발로 그녀의 다리를 지그시 눌렀다.

‘아…….’

눈물이 다시금 흘렀다.

이번엔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셀린느는 까슬한 목을 간신히 가다듬으며 소리를 만들었다.

“라쉬르로 아무리 베어 봤자, 전 다시 살아날 거예요.”

“그건 안다. 내 눈으로 봤으니.”

라쉬르가 그녀의 머리 바로 위에서 시퍼렇게 빛났다.

셀린느는 그 불길 사이에서 잘 보이지 않는 레온하르트의 얼굴을 살폈다.

여전히 무감각하고, 흑마법사에 대한 살의만이 번득이는 눈빛이 그녀를 강타했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레온하르트가 원하는 건, 나를 영원히 죽일 수 있는 방법뿐이야.’

셀린느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레온하르트는 처음엔 그녀를 응시하는가 싶더니 이내 흥미를 잃고 이마를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네 동료가 하나 더 있었지. 그자는 어디에 있나?”

“…….”

“……멍청한 소리를 했군.”

레온하르트는 피식 웃더니 잠시 정신을 집중했다.

‘로즈를 찾으려는 거야!’

셀린느는 얼어붙었다가, 재빨리 몸을 일으켜 세웠다.

“죽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

레온하르트의 경고는 그녀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셀린느는 품에서 아직 레온하르트의 피가 묻어 있는 링조르를 꺼내 들며 레온하르트에게로 달려들었다.

“이건……!”

레온하르트의 눈이 커졌다.

셀린느는 자동적으로 따라붙는 라쉬르에 부딪쳐 뒤로 반쯤 튕겨졌지만, 다시금 레온하르트를 공격했다.

“허으억…….”

신음이 절로 나왔다.

지금의 셀린느는 레온하르트에게 죽기 전의 몸 상태가 아니었다.

긴 하루로 인해 고갈되기 일보 직전의 마력과 거듭된 죽음이 불러일으킨 환상통.

두 가지 악재는 셀린느가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겹게 만들었다.

하지만 셀린느는 레온하르트를 악착같이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로즈가 죽을 것이니.

셀린느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 자신은 몇 번이고 더 죽어도 괜찮았다.

어차피, 되살아나니까.

하지만 로즈는 달랐다.

레온하르트에 스러진 로즈의 목숨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레온하르트는…….

‘평생을 무고한 황실 마법사를 죽였다는 악몽에 시달리겠지.’

이건 흑마법사에 조종당한 불쌍한 기사단장, 파블 경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당시 파블 경의 언행은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듣고 보았다.

하지만 로즈는…….

셀린느는 자신이 레온하르트를 구하기 위해 죽은 로즈의 명예를 더럽힐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럴 순 없어.’

셀린느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라쉬르를 다시금 받아쳤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레온하르트의 힘이 이제는 그녀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기에 받아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셀린느는 뒤로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레온하르트가 그녀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더 방해할 건가?”

“……영원히.”

“조각조각 잘라서 파묻어도, 되살아나는지 궁금하군.”

눈앞이 아찔해졌다.

차가운 눈빛과 냉혹한 목소리는 셀린느가 알던 레온하르트와는 너무나 떨어져 있었다.

‘이게, 흑마법사가 느끼는 레온하르트구나.’

셀린느는 자신에게로 천천히 떨어지는 라쉬르를 직시했다.

이미 전신의 마력은 고갈되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그때, 손목에서 미약한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

셀린느는 전율했다.

아직, 그녀에겐 마지막 카드가 남아 있었다.

셀린느는 나지막하게 카드의 이름을 내뱉었다.

“루.”

“……?”

레온하르트는 아주 잠깐 멈칫했고, 셀린느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루에게서 모든 마력을 급속도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셀린느는 속으로 조용히 사과했다.

단순히 마력석을 먹어 축적된 마력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는 모든 마력을 빼앗긴 루는 예전처럼 기나긴 겨울잠을 자기 시작하리라.

‘이 모든 게 끝나면…… 남부로 가자.’

셀린느는 남부의 광산에서, 가장 질 좋은 마력석들만 먹여 루를 깨운 다음 풀어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도 이 스테이지가 끝나고 나서야 가능한 일.

셀린느는 끌어모은 마법으로 자신의 주변에 강력한 회오리바람이 치게 만들었다.

‘이 정도면 시간을 끌 순 있을 거야.’

레온하르트를 제압하려면 평범한 수준의 공격으로는 한참 부족했다.

‘딱 한 방.’

모든 마력을 끌어모은, 단 한 번의 기회.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셀린느는 숨을 헐떡였다.

아직도 환상통은 그녀의 전신을 벌레처럼 기어 다녔고 셀린느 본연의 마력과 체력은 바닥난 지 오래였다

“재미있는 짓을 하는군.”

단 수십 초도 지나지 않아 셀린느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라쉬르가, 분명 평범한 사람은 뼈도 못 추릴 수준의 회오리바람을 밀가루 반죽이라도 되는 것처럼 손쉽게 갈라냈다.

레온하르트는 종이를 찢듯 회오리바람을 산산조각내어 버렸다.

셀린느의 멍한 시선과 레온하르트의 냉철한 시선이 마주쳤다.

‘더, 더……!’

셀린느는 이를 악물며 루에게서 더욱더 많은 마력을 짜내려고 애썼다.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조금만, 조금만 더 있으면……!

-쾅!

폭발음이 울리는 동시에 둘 모두 폭발에 휘말려 뒤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

셀린느는 눈을 깜박였다.

그녀는 아직 마력을 쓰지도 않았다.

몸속에서 충만하게 꿈틀거리는 마력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먼지가 가라앉자 더욱 놀라운 사실이 셀린느를 반겼다.

거대한 황금빛 용이 통로 안을 한가득 메우고 있었다.

“루……?”

셀린느의 입에서 얼빠진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루는 셀린느를 흘깃 바라보더니, 마력석을 배불리 먹었을 때 그러하듯 콧김을 내뿜었다.

“루!”

셀린느는 비틀거리며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루는 셀린느가 자신에게 도달하기 전에 바닥을 몇 차례 힘차게 굴러 통로를 진동시켰다.

셀린느는 그 진동을 견디지 못하고 무릎을 꿇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

셀린느의 눈이 커졌다.

황금빛 용이 휘황찬란한 날개를 펼쳐 천장으로 훌쩍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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