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로즈는 톱니바퀴를 멈추기 위해 모든 힘을 쏟은 셀린느가 리브론성을 걸어서 가로지르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연기를 흡입하지 않은 말들과 마차, 마부를 수소문해 셀린느를 태웠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
“그럼, 걸어서 가려고요?”
“그건 무리긴 해요.”
“거 봐요.”
로즈는 피식 웃으며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좀 쉬고 있어요. 정말로 그 미로에 대공자가 갇혀 있다면, 찾는 것도 한세월일 테니까.”
“그 미로에 대해 알려 줘요.”
“음…….”
로즈는 얼굴을 찌푸렸다.
“제가 알기론, 최근 수백 년간 그 안에 들어갔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다는 것 정도?”
“…….”
“그것 말곤 모르겠네요. 아, 유령이 가득하다는 소리도 들은 것 같아요.”
셀린느는 마른침을 삼켰다.
로즈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들이 향하는 기사단 숙소가 바로 스테이지라는 심증은 더욱 강해졌다.
“위치는 어디쯤이죠?”
“구석이에요, 구석.”
로즈가 슬며시 웃었다.
“대대로 말 안 듣는 기사단들한테 겁을 줄 때나 사용하던 건물이었죠.”
‘……설마.’
“현 카르파티아가 그 건물을 받았다는데,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카르파티아가 되자마자…….”
로즈는 낮게 혀를 찼다.
‘…….’
셀린느는 굳어지는 얼굴을 막을 수 없었다.
‘파라디소 기사단이 그런 건물을 받았구나.’
그녀는 기사단에 대해선 잘 몰랐다.
하지만 여태까지 파라디소 기사단을 봐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들은 분명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러면서까지 마물을 베려고…… 레온하르트와 비슷하구나.’
셀린느는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파라디소 기사단이나 레온하르트 같은 사람들을 탓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본인들이 이룬 일에 대한 보상은커녕 피해만 입게 된다는 사실을 이렇게 확인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요. 일단 지금 쓰고 있는 기사단이 있다는 건, 소문만큼 나쁜 건물은 아닐 테…… 악!”
로즈는 작게 비명을 질렀다.
마차가 크게 휘청였다.
“무슨 일이지?”
그녀는 크게 목소리를 높여 마부에게 물었다.
“지, 지진 같습니다! 내리십시오!”
“뭐……?”
하지만 그들이 내리기도 전에, 놀란 말은 전속력으로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멈, 멈춰야 하지 않을까요?”
“……내게 맡겨요.”
로즈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더니, 깊게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우지끈!
굉음과 함께 마차 전체가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하지만 땅으로 다시 떨어지지는 않았다.
셀린느는 상황을 파악할 수 없어 그저 자리에 얼어붙은 것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마차는 반쯤 뒤집힌 상태였지만 그들은 어떠한 충격도 받지 않았다.
로즈가 태연히 문을 열었다.
“나가죠.”
“네……?”
“괜찮아요.”
그녀는 싱긋 웃으며 셀린느의 손을 잡아끌었다.
“마침 근처에 도착했네요. 아주 떨어진 곳으로 가 버릴까 봐 걱정했는데.”
셀린느는 머뭇거리며 옆으로 엎어진 문을 빠져나갔다.
혼비산백한 듯한 마부가 땅에 무릎을 반쯤 꿇은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루테! 마, 마차가…….”
로즈는 전혀 미안하지 않는 표정으로 사과했다.
“미안해요. 임무 때문이라서, 어쩔 수 없었네요. 황실로 마차의 두 배 값을 청구해요. 말을 못 찾으면 말도 포함하고요.”
셀린느는 그들이 제법 큰 흙더미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에게서 강제로 떨어져 나간 듯한 마차는 부드러운 흙더미에 반쯤 박혀 있었다.
셀린느 역시 마법사였기에 로즈로부터 구구절절한 설명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흙더미를 내려오며 로즈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요.”
“셀린느는 내 목숨도 구해 주었는데, 이 정도를 못 해 주겠어요?”
셀린느는 얼굴을 붉혔다.
“너무 그러지는 마세요. 내 목숨 잃기 싫어서 그런 거였으니까.”
“너무 겸손한 거, 아니에요?”
“……?”
“의도야 어쨌든, 절 포함한 수십 명의 마법사들을 살린 건 사실이잖아요. 그런 대단한 일을 했으면 좀 뽐내 봐요. 우리 체면이 안 서니까.”
셀린느는 대답 대신 웃고 말았다.
그때, 땅이 다시금 울렸다.
‘하필 이럴 때, 지진이…….’
셀린느는 입술을 깨물다 급작스러운 깨달음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우연일 리가 없어.’
당연히 이 지진도 스테이지의 일부일 것이다.
셀린느는 다음 스테이지가 ‘지하’ 미로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혹시 땅이 갈라져서 미로가 드러나는 걸까?’
하지만 로즈는 셀린느에게 멈춰 서서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셀린느, 힘들겠지만 움직여요. 이대로 있다간 여기까지 온 보람도 없으니까.”
셀린느는 로즈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설령 땅이 갈라진다 한들 미로는 기사단 건물의 인근에서 나타날 것이다.
잠시 후.
그들은 기사단 건물의 입구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멀쩡한데?’
셀린느는 귀신 들린 건물치고는 의외로 잘 정비된 모습에 놀라 건물을 자세히 살폈다.
그녀가 리브론성을 여태껏 다니며 본 다른 건물들에 못지않게 잘 관리된 티가 나는 건물이었다.
여전히 땅이 흔들렸지만 그들은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행히 건물이 파괴될 정도의 진동은 아니었기에 조금 불편한 정도였다.
‘……말?’
셀린느는 눈을 깜박였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보인 복도에, 말이 한 마리 서성이고 있었다.
“누가 왔나 보네요.”
로즈도 조금 놀란 눈치였다.
“이 건물에…… 누구지?”
그들은 곧바로 말을 타고 온 사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셀린느 루테?”
“……바트 단장님?”
셀린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과 흙먼지를 뒤집어쓴 파라디소 기사단의 단장을 보며 멍하니 물었다.
“여기서 뭐 하세요?”
“……그러는 루테야말로……. 아, 전 이 건물만 흔들린다길래 안을 살피러 들어왔습니다.”
“바깥 땅들도, 다 흔들리던데요?”
“그럴 리가요!”
단장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제가 여기 온 것도 전령이 이 건물만 이상하게 흔들린다고 전해 주길래 달려온 겁니다. 와 보니 실제로 그랬고요. 바깥 땅이 흔들린다니, 착각하신 게 아닙니까?”
“……이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말이 놀라 날뛸 정도로 땅이 흔들렸어요. 당연히 지진이라고 생각했죠.”
셀린느가 바트에게 설명하는 동안, 로즈는 입술을 깨물며 한참을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진동이 점점 커지는 것 같네요. 이대로 내버려 두었다간…….”
로즈는 말꼬리를 흐렸지만 바트도, 셀린느도 모두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이 진동 역시, 멈추어야 하는 무언가군요.”
셀린느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건 그녀가 게임에서 겪지 못한 일들 중 하나였다.
바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전에, 대공자께서…… 이곳이 유령으로 바글거린다는 얘기를 하신 적 있습니다. 그분도 손을 쓰지 못할 정도로요.”
“레온하르트가요?”
셀린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녀는 잠시 귀를 의심했다.
레온하르트가 유령에 조금 애를 먹긴 했지만, 손을 쓰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하는 상대인 것 같지는 않았다.
“예. 사실 저희가 여기에서 나갈 수 있었던 것도 공자님 덕분이었거든요. 공자님께서 대공가의 저택에 저희가 묵게 해 주셔서…….”
“……그런가요.”
셀린느는 처음엔 놀랐지만, 이내 자신이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레온하르트다운 해결책이었다. 최소한의 사람만이 다치게 하면서, 자신의 것을 내주는.
그때, 바트가 듣지 못한 질문의 답을 재촉했다.
“그래서, 루테들께선 이곳엔 왜……?”
“…….”
로즈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셀린느는 바트에게 어디까지 얘기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권을 로즈가 자신에게 완전히 넘겨주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레온하르트가, 이 밑 미로에 있을지도 몰라요.”
“예……?”
바트는 기겁하며 땅에서 반쯤 튀어 올랐다.
“농, 농담하십니까.”
“아뇨.”
셀린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 진동도……!”
“그럴지도 모르죠.”
바트는 입을 떡하니 벌린 채 셀린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공자님께선, 정말…….”
“무모하죠. 저도 알아요.”
“아뇨.”
바트는 고개를 저었다.
“대단하신 분이라고 말하려 했습니다.”
곧 바트는 지하 미로와 관련이 있는 듯한 문들의 존재를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마지막 문에서 레온하르트가 놀랐다고요?”
“예.”
바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공자님께서 이 건물의 유령들을 뿌리 뽑기 위해 들어가셨다면…… 그 문밖에 없습니다.”
셀린느는 얼굴을 찡그렸다.
당연히 레온하르트가 이 지하 미로에 있을 가능성과, 유령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하지만 셀린느는 [셀린느의 악몽]의 대미를 장식하는 미로 스테이지의 도입부를 기억했다.
‘유령들이 달려들었다가 사라졌지.’
주인공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단순한 도입 영상이었다.
제법 임팩트가 커 그 부분에서 놀라 소리를 지르는 플레이어들이 속출했지만.
“그 문으로 갈게요.”
잠시 후.
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활발하게 사용되었을 듯한 부엌에 도착했다.
“여기에 그 문이 있다고요?”
“예.”
바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 먹는 음식 만드는 곳에 그런 흉악한 게 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겁니다.”
“……!”
셀린느와 로즈는 모두 놀라 숨을 들이켰다.
부엌 바닥에, 거대한 문이 자리했다.
“저걸 그대로 놔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네요.”
“아마 열려고 해도 제대로 열리지가 않아서 그냥 놔뒀나 봅니다.”
바트는 보란 듯이 문고리를 힘차게 잡아당겼다.
문은 끄떡 하지 않았다.
“……별로 겁을 안 내시네요.”
“여기 온 첫날, 이 문에 호기심을 느끼고 잡아당긴 멍청이가 바로 제 사촌 동생입니다.”
“…….”
셀린느는 한참 동안 바닥에 붙은 문을 살폈다.
덩치 큰 사람이 누워도 가리지 못할 듯한 거대한 문은, 굳이 손을 대지 않아도 무거워 보였다.
셀린느는 문고리를 잡았다.
“마법을…… 지금 쓰시려는 겁니까?”
“셀린느?”
그녀는 바트와 로즈의 간접적인 만류를 무시하고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어떠한 마법도 없이.
-끼이익
문이 위쪽을 향해 열렸다.
“어, 어떻게 한 겁니까?”
“그냥 열리네요.”
셀린느는 크게 심호흡하고, 바트와 로즈를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마워요. 둘 다.”
“셀린느, 그게 무슨…….”
셀린느는 로즈의 말을 무시했다.
“레온하르트는 이제 저 혼자 찾아도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단장님도 로즈도 이만 돌아가 주세요. 레온하르트를 데리고 나오면 연락할 테니까.”
셀린느는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진엔딩 루트라 변동이 있을 가능성을 고려하더라도, 눈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셀린느의 악몽]의 최종 스테이지일 확률이 높았다.
그 난이도가 여태까지 셀린느와 레온하르트가 겪었던 스테이지들을 훨씬 뛰어넘으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럴 수 없어요.”
“저 역시 당신 혼자 못 보내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셀린느 루테.”
셀린느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역시, 이 방법밖에 없나.’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에 최대한의 권위를 실으려 노력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밑으로 내려가면, 여러분은 모두 죽어요.”
셀린느는 눈에 최대한 힘을 주며 로즈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건, 예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