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포게임의 악역은 밤마다 여주인공의 꿈을 꾼다-91화 (91/120)

91화.

‘어떻게든 레온하르트를 찾아야 해.’

셀린느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기다리고, 준비하라는 퀘스트가 끝나지 않았다.

남은 스테이지들 역시 늪이나 연기처럼 시간이 흘러야 나타나는 스테이지일 가능성이 컸다.

‘그럼 그동안 레온하르트는…….’

셀린느는 눈을 질끈 감았다.

레온하르트가 자의로 그녀가 모르는 다른 장소로 갔을 가능성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저주가 풀릴 때까지, 레온하르트는 전심전력을 다해 그녀를 지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레온하르트는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 아니야.’

레온하르트가 그녀를 찾지 않을 이유는 단 하나였다.

찾는 게 불가능하니까.

지금, 레온하르트는 오지 않을 자신을 기다리며 스테이지의 공격을 버텨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레온하르트를 찾아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니, 그다음은 쉬웠다.

‘일단은…… 이 성부터 살펴보아야겠어.’

셀린느는 하필 리브론성이 독물 지대로 변한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늪 스테이지 또한, 실제 위치는 리브론성 안에 존재하는 마법사들의 아지트에서 발생하지 않았던가.

늪과 독물 지대 모두 성내에 존재했다.

그렇다면, 다음 스테이지이자 진엔딩의 마지막 스테이지였던 미로 역시…….

‘성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이 커.’

설령 레온하르트가 다른 곳에 있다 하더라도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성내를 수색하는 것뿐이었다.

셀린느는 눈을 떴다.

마법사들의 웅성거림은 잦아들었다.

주위를 슬쩍 살펴보니 그들은 모두 톱니바퀴의 구조를 살피고 있는 듯했다.

현재, 그녀 주위에 남아 있는 마법사는 로즈뿐이었다.

로즈가 그녀에게 따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네요. 쓰러지기라도 하는 건 아닌가 걱정했어요.”

셀린느는 로즈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자신은 리브론성에 대해 잘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그녀의 곁에는 레온하르트나 대니가 있었으니까.

리브론성이 관광지도 아닌데 지도나 안내판이 잘 갖춰져 있을 리도 만무했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안내인이었고, 적격자로 보이는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셀린느는 기회를 놓치는 타입이 아니었다.

“로즈, 황성에 대해 잘 알아요?”

“뭐…… 이렇게 보여도 황실 소속 마법사니까 잘 알아야겠죠?”

로즈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셀린느는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아주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셀린느는 로즈가 예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예전의 레온하르트처럼 사기꾼이나 광인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로즈의 도움을 얻는 방법은 절반의 진실이나마 털어놓는 것뿐이었다.

“전 레온하르트가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아요. 꿈에서 봤거든요.”

“잠깐, 셀린느 그 말은…….”

“네.”

셀린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 예지력이 있는 것 같아요. 약하지만.”

로즈는 숨을 들이켰다. 일반적으로 예지력과 마력은 공존할 수 없다고 알려졌다.

딱히 명확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단, 그런 사례가 보고된 적이 없어서에 더 가까웠다.

“셀린느,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요?”

셀린느의 대답은 로즈가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네. 빨리 찾지 않는다면, 꿈에서 본 것처럼 레온하르트가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요.”

“…….”

로즈는 잠시 할 말을 잃고 셀린느를 빤히 쳐다보았다.

셀린느의 눈은 로즈가 으레 보아 온 예언자들의 눈과 똑같았다.

자신의 예지가 옳다는 그 무서울 정도의 확신.

“대공자한테는, 얘기했어요?”

“아뇨.”

셀린느는 찡그렸다.

“레온하르트가 그걸 믿을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제 예지는…… 선택이 다가올 때까진 정확히는 모르는 거라서.”

로즈는 셀린느의 알쏭달쏭한 말을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미래는 일직선으로 난 도로가 아니라, 얽히고설킨 거미줄과 비슷하다는 건 예언자들의 말버릇이었으니까.

“보통 예언이 다 그렇긴 하죠. 그래서, 예지에서 뭘 봤는데요?”

“레온하르트는 미로에 있어요. 그 미로가 어딘지는 모르겠는데……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요.”

“그럼 지하겠군요.”

셀린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지상의 구조물이 미로로 변화했다면, 어디서든 빛은 들어왔으리라.

로즈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서, 그 미로가 리브론성에 있어요?”

“잘 모르겠어요.”

셀린느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 성에 있을 가능성이 높긴 해요.”

“그래서 여기부터 찾아보려는 거군요.”

로즈는 잠시간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

“어쨌든 그 미로가 지상에 있기는 힘들겠어요. 그럼 눈에 띄니까. 인적이 드물었죠?”

“아닐 수도 있어요.”

셀린느는 독물 지대 스테이지는 게임과 완전히 다른 배경이었다는 걸 떠올렸다.

“그냥, 원래는 미로가 아니었는데 갑자기 미로로 바뀔 수도 있고……”

“연기, 알고 있었어요?”

갑자기, 여태까지 차분히 정보를 정리해 가던 로즈의 태도가 급변했다.

셀린느는 그녀의 질문에서 싸늘함과 흥분을 동시에 느꼈다.

그제야 셀린느는 자신이 예지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로즈에게, 더 나아가 이곳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들릴지 깨달았다.

“……연기는…….”

“됐어요.”

로즈는 한숨을 내쉬었다.

“질책하려는 건 아니니까…… 결과적으론 죽은 사람도 없고. 셀린느 말마따나 막상 일이 일어나기 전까진 함부로 얘기할 수 없기도 할 테고.”

“…….”

“하지만, 사람들에게 예지력이 있다고 얘기하고 다니지는 말아요. 원망하는 사람이 생길 테니까.”

셀린느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자신이 예지력에 관한 얘기를 한 건 레온하르트 이후 로즈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걱정하는 로즈에게 굳이 그 사실을 알려 줘서 무안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대공자가 갇혀 있다는 미로를 찾으면 된다는 거죠? 아마도 지하 미로.”

“네.”

셀린느는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아까도 얘기했듯이 거기가 본래는 미로가 아니었을 수도 있어요. 지하는 맞는 것 같지만요.”

“…….”

로즈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 이유는 늦게 찾으면 대공자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서일 테고.”

“정확해요.”

로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대공자가.”

“죽더라고요. 제 예지에선…….”

셀린느는 진실보단 거짓에 가까운 말을 할 때마다 미약한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스테이지의 급작스러운 변화는 셀린느를 극도의 불안에 몰아넣었고, 셀린느는 레온하르트를 한시라도 빨리 찾기 위해선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다.

“……휴.”

로즈는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요, 그런데 범위가 정말 넓어서…… 만약 우리가 지하 미로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곳을 살펴본다면, 한 달이 걸려도 모자랄 거에요.”

답답함이 허파까지 치밀어 올랐다.

셀린느는 로즈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분노에 가까운 실망감을 주체할 수 없었다.

로즈는 지금 그녀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레온하르트의 수색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만 늘어놓고 있었다.

“……로즈, 도와줄 수 없으면 그렇게 말해요. 혼자서라도 찾아볼 테니까.”

“그런 게 아니에요.”

로즈가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셀린느, 다르게 생각해 보죠. 대공자는 이 성에서 자랐어요. 당연히 지금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하 공간들은 꿰고 있겠죠. 그게 기밀이든 아니든.”

“……!”

“우리가 찾아봐야 할 건…… 설령 존재를 알고 있고, 접근하고 싶다고 해서 쉽사리 들어갈 수가 없는 지하 공간이에요.”

로즈의 눈에 기묘한 열기가 타올랐다.

“제가 알기론 딱 한 군데예요. 마침 그곳도 미로군요. 입구를 모두 막아 버린 지하 미로…… 지금은 위에 기사단 숙소가 지어졌을 텐데. 어때요, 가 보겠어요?”

두말할 것도 없는 소리였다.

***

정체불명의 초록색 연기가 걷혔을 때, 파라디소 기사단은 기진맥진하여 땅바닥에 반쯤 굴러다니고 있었다.

무려 카르파티아 소속 단원들이 그런 추태를 보인다는데 눈살을 찌푸릴 사람들도 있을 법했지만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들은 리브론성에 거주하던 사람 대부분을 구했다.

물론, 전속 마법사를 데리고 도망칠 수 있었던 지체 높은 황족과 귀족은 제외해야 하겠지만.

유일하게 자세를 잡고 앉아 있는 사람은 기사단장, 바트뿐이었다.

“바, 바트 단장님 되십니까.”

바트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가쁘게 숨을 내쉬며 자신에게 단장 여부를 묻는 사람은 분명 황실 전령의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렇다만. 무슨 일이지?”

“숙, 숙소에서…….”

“숙소?”

바트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들이 지금 묵고 있는 숙소는 대공자가 호의로 베풀어 준 대공가의 별장이었다.

하지만, 대공가의 별장에서 생긴 문제를 왜 황실 전령이 전달한다는 말인가?

바트는 금세 그 답을 깨달을 수 있었다.

‘……본디 숙소군.’

대공자가 직접 황실에 허락을 받았다곤 하나 파라디소 기사단의 공식 숙소는 리브론성에 있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 숙소는 레온하르트 베르누이가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을 정도라고 친히 공언하지 않았던가.

“공자님께서 그 숙소는 사람이 살 수가 없다고 하여 짐을 빼었다. 폐하께서도 아시는 사실로 안다만.”

“예, 예. 저도 그건 압니다. 그런데…….”

전령은 땀을 뻘뻘 흘렸다.

“지금, 거기가 유난히 이상합니다.”

“무슨 소리지?”

“그, 정말로 귀신 들린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바트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가 철석처럼 믿고 있는 대공자에 따르면 그곳은 유령들로 바글바글한 곳이었다.

멋모르고 발을 들였다가 깜짝 놀라 꽁지가 빠지게 도망친 사람이 새로 생겼다 해도 놀랄 거리는 아니었다.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그게…… 이거 참.”

급기야 전령은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지금 안 가 보시면…… 무너진 다음에야 가 보시게 될 것 같습니다.”

“……!”

바트의 얼굴이 삽시간이 일그러졌다.

“무슨 말이지?”

“그곳만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뒤흔들리고 있습니다.”

“진작 그렇게 말했어야지!”

바트는 기가 막혀 소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예? 처음부터, 전…….”

“귀신 들린 것 같다고만 하면 어떻게 하나. 거긴 원래 귀신 들린 건물이었어!”

바트는 빠르게 단원들을 훑었다.

하나같이 바닥에 축 늘어져 방금 그의 언성조차 제대로 듣지 못한 듯 어리둥절하게 눈만 깜박대고 있었다.

‘……데려갈 놈들 하나 없군.’

하지만 단원들을 탓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모두 성내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있는 힘이란 힘은 다 쓴 결과였으니까.

그는 누워 있는 단원들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잘 들어라. 우리의 원래 숙소에 기이한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나는 잠시 확인을 위해 다녀오겠다. 모두들 저택으로 돌아가, 푹 쉬고 있도록.”

“혼자 가십니까?”

“그래. 잠시만 둘러보고 나올 테니 너희들은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

만약 단원들 중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자는 바로 바트를 따라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대공가의 별장으로 돌아가는 것부터가 막막했기 때문에 힘없이 고개만 까닥거렸다.

바트는 전령을 따라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