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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게임의 악역은 밤마다 여주인공의 꿈을 꾼다-71화 (71/120)

71화.

-펑!

-펑!

-펑!

어느덧 3년이 흘러 레온하르트는 열다섯, 마티아스는 열여덟이 되었다.

마티아스의 실전 실력은 매 임무마다 일취월장했다.

이젠 레온하르트가 없어도 마티아스 혼자서 웬만한 마물 무리 정도는 해치울 수 있을 정도였다.

정신을 한 시간 정도 집중한 끝에 단독으로 우두머리 마물을 폭파시켜 버린 날, 레온하르트는 나지막하게 감탄했다.

“대단한데.”

“마음에도 없는 칭찬은.”

“너무 티 났나?”

“……알면서 묻지?”

레온하르트는 마티아스의 되물음에 씩 웃으며 화답했다. 마티아스의 장단에 맞춰 주었지만 그의 감탄은 진심이었다.

해가 지날수록 다른 마법사들 역시 마티아스와 크게 다른 성정을 지닌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 굳이 마법사들에 한할 것은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랬다.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마물을 두려워했으며 할 수만 있다면 꽁무니를 내빼고 싶어 했다.

도망치지 않고 마물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조차 그 두려움을 안고 싸웠다.

레온하르트는 첫 마물부터 아무런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반으로 썰어 버렸기에 그 단순한 사실을 알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린 것이다.

마티아스는 겁쟁이도, 비겁자도 아닌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온하르트와 함께 마물에 맞서 싸워 주는.

그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를 만큼 레온하르트는 바보가 아니었다.

“……?”

“대공자와 루테를 뵙습니다.”

레온하르트가 차가운 물을 벌컥 들이마시려는 순간, 황실의 전령이 나타났다.

“무슨 일이지?”

레온하르트의 목소리엔 날이 서 있었다. 임무 직후 또 임무라니.

가끔 황실은 자신을 영원히 지치지 않는 말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듯싶었다.

“총사령관님께서 직접 말씀하실 겁니다.”

“……임무로군.”

“저는 모릅니다.”

전령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으나, 황도까지 이동하는 동안 레온하르트의 화는 머리끝까지 치솟고 있었다.

벌써 일 년째 가족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다.

자신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는 나타샤는 이젠 편지조차 보내지 않았다.

‘실망한 거겠지.’

그나마 이번 임무 이후, 짤막한 휴가를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또 임무라니.

“화가 많이 난 모양이군.”

“…….”

마티아스가 레온하르트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적당히 하라는 신호였다.

“아닙니다.”

침묵이 흘렀다.

총사령관은 한참 동안 레온하르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이러지?’

레온하르트는 이맛살을 대놓고 찌푸렸다. 어차피 또 무지막지하게 힘든 임무일 터.

뜸을 들인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 빨리 말해 주는 게 나았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임무…… 말입니까?”

레온하르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그래.”

총사령관의 묵직한 목소리가 사령관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이번 임무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자네들은 더는 내게서 명령을 받지 않는다.”

“예?”

“그렇게 된다면 레온하르트, 네 위엔 오직 황태자 전하와 황제 폐하만이 있게 된다.”

“……!”

레온하르트의 눈이 커졌다.

여태까지 그가 그리도 바라 왔던 지위가 아닌가.

“그리고 전 제국의 기사단이 네 명령을 따라 움직이겠지. 미리 축하한다, 레온하르트.”

“정, 정말입니까…….”

“그래. 곧 공문이 내려갈 예정이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만약 마티아스가 한 발짝 걸어 나와 자세한 설명을 요청하지 않았다면, 레온하르트는 추태를 보였으리라.

“그럼, 임무를 말씀해 주십시오.”

“아.”

총사령관은 그제야 그의 존재를 알아차렸다는 듯 눈을 깜박이며 마티아스를 훑어보았다.

“흑마법사다.”

“……!”

마티아스의 눈은 경악에 질려 휘둥그레졌지만, 레온하르트의 눈은 흥분으로 반짝 빛났다.

“드디어…….”

“그래.”

레온하르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검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흑마법사를 이 제국에서 몰아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여태까지 겪은 고된 훈련은 단순히 마물을 살육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전 제국을 고통과 파멸로 몰아넣는 흑마법사들을 처치하기 위해서였다.

“……어디입니까.”

“북부다.”

“……!”

“이번 임무가 끝나면 원하는 만큼 쉬어도 좋다.”

레온하르트는 눈으로 뒤덮인 평야 위에서 싱긋 미소 지었다.

이젠 북부에서보다 북부 밖에서 지낸 시간이 더욱 길었지만, 그래도 고향은 고향이었다.

옆을 흘낏 보니 마티아스가 눈에 띌 정도로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너무 긴장한 거 아닌가?”

“긴장이 안 될 리가 있나…….”

마티아스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걱정하진 마라. 나는 마검사니까.”

“나도 내 할 몫은 해야지.”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차라리 말을 마라.”

마티아스는 마력석이 든 주머니를 꽉 쥐었다.

레온하르트는 마티아스의 손이 지나치게 부들부들 떨린다고 생각했지만 지적하지 않았다.

본디는 마물 한 마리 죽이지 못했던 마티아스다.

당연히 한때는 인간이었던 흑마법사를 죽이는 건 더욱더 긴장될 터.

레온하르트는 말없이 말을 계속해서 몰았다.

흑마법사의 근거지로 가려면 제법 먼 거리를 달려야 했다.

흑마법사의 근거지를 찾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물 무리와는 사뭇 다른, 섬뜩할 정도로 사악한 기운이 일정한 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깐.”

레온하르트는 말을 세웠다.

“왜 그래? 마물이야?”

마티아스가 얼굴을 찌푸리며 물어 왔다.

“아니. 그냥…… 뭔가 이상해.”

레온하르트는 망설이며 대답했다.

사악한 기운과는 별개로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항상 그나, 마티아스가 다치기 직전 들던 기분이…….

“뭔가, 안 좋은 감이 들어.”

마티아스의 반응은 레온하르트의 모든 예상을 뛰어넘었다.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린 것이다.

“레온하르트가 긴장할 줄은 몰랐는데.”

“긴장이 아니라, 그냥…… 불길해. 뭔가가.”

“레온하르트, 너보다 강한 사람은 없어. 나도 이제 네 발목을 잡는 단계는 지났고. 자신감을 가져.”

“……그런가.”

레온하르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마티아스의 말이 맞을 것이다.

그동안 이 순간만을 위해 훈련해 오지 않았던가.

이제 황실 소속 마법사 중 그를 제압할 수 있는 마법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얼마 전 발현한 신참 흑마법사 하나 처치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마티아스는 밝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번 임무, 난 좋은 예감이야.”

레온하르트는 미소 지었다.

“누구 직감이 더 맞는지 내기해도 좋겠는걸. 난 네 예감이 맞는다는 쪽에 걸게.”

“어? 나돈데.”

그들의 시답잖은 농담은 사악할 기운의 근원지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마티아스가 조금 놀란 듯한 어투로 말했다.

“그런데 이 힘, 제법 강하지 않아? 뭔가…… 흑마법만은 아닌 것 같아.”

레온하르트는 얼굴을 찡그렸다.

“농담하지 마라.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역겨운 기운만 느껴지는데.”

“그래? 난 같은 마법사로서 뭔가…… 경외감마저 느껴지는데.”

레온하르트는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마티아스의 말을 끊었다.

“……마티아스.”

“알았어, 알았어. 그냥 한번 해 본 소리야.”

마침내 그들의 눈에 흑마법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둘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지금 와서 레온하르트가 생각하자니 약해 빠진 흑마법사의 모습에 불과했다.

하지만 근원지에 자리 잡은 흑마법사를 난생처음 본 둘에겐 악의 근원처럼 느껴졌다.

레온하르트는 라쉬르를 빼 들었다.

푸른 불꽃이 칼날을 타고 환하게 타올랐다.

마티아스가 아주 미약하게 고갯짓했다. 자신과 떨어지라는 신호였다.

레온하르트는 곧바로 흑마법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레온하르트는 자신이 어떻게 흑마법사를 베었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공격을 라쉬르로 막아 내며 목덜미를 노린 자신의 움직임만이 어렴풋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어느 순간, 라쉬르는 흑마법사를 갈랐고 검은 피가 솟구쳤다.

레온하르트는 땅으로 떨어지려는 라쉬르를 간신히 붙들어 검집에 집어넣었다.

“생, 허억, 생각보다 허억, 별, 별거 아니네.”

레온하르트는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는 마티아스를 향해 돌아섰다.

“마티아스?”

레온하르트는 혼란스러워하며 마티아스를 불렀다.

분명 항상 자신의 안위를 살피던 마피아스가, 지금은 죽은 흑마법사의 잔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티아스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강해.”

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그제야 레온하르트는 흑마법사와 싸울 때, 단 한 번도 마티아스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예전 마물들만 만나면 얼어붙어 아무것도 못 하던 마티아스처럼.

하지만 지금의 마티아스는 살생 자체를 하지 못하던 예전의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면, 그가 흑마법사를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다.

공격하고 싶지 않아서.

“마티아스!”

그는 마티아스를 향해 달려갔다.

그 순간, 거대한 힘이 레온하르트를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명백한 흑마법이었다.

***

“그 뒤, 나는 모든 마법사들을 멀리했다. 아니, 모욕했지. 하나같이 쓸데없으며 위험한 인종들이니 내 근처에도 오지 말라고.”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리카르도 전하께선 계속 내가 마법사와 함께하기 원하셨으니까.”

레온하르트는 씁쓸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까지 자신들을 모욕하는데 가까이 올 마법사가 있나. 가끔 다가오는 한두 명은 겁을 주어 쫓아 버렸다.”

레온하르트는 자신이 어떻게 마티아스를 죽였는지 말하지 않았다.

어떻게 마티아스의 아직 붉은 기운이 남은 피를 뒤집어쓴 채 베르누이성으로 돌아갔는지도 말하지 않았다.

그 기억들은 아직도 가슴 한편에 열여덟 살짜리 소년과 함께 묻혀 있어서, 입 밖으로 꺼낸다면 무덤을 파헤치는 기분이 들 터였다.

“그래서였군요. 아가티르수스에서, 절대 마법을 쓰지 말라고 한 건…….”

“마티아스가 너무나 순식간에 넘어가 버렸으니까.”

레온하르트의 어조는 가벼운 듯했지만 비통한 기색을 숨길 수는 없었다.

“흑마법사들은 자석처럼 철을 끌어당기지. 마법사라면 누구나 그 힘을 거부할 수 없어.”

“…….”

“어쨌든, 그러니 내가 마법사들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처럼 마법사들 역시 나를 싫어하지.”

“칼 루테는 다르잖아요.”

레온하르트는 코웃음을 쳤다.

“그는 아버지의 사람이다. 훗날엔 내 사람이 될 터고.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할 리가 없지. 하지만 황실 소속 마법사들은 달라.”

“……그래도, 시도는 해 보겠어요.”

“그래.”

레온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마법사들을 모욕하며 멀리하는지도 어느덧 구 년 가까이 되었다.

어쩌면 옛 감정 따윈 개의치 않아 하는 마법사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열려 있는 줄도 몰랐던 창문으로 비둘기 한 마리가 들어왔다.

둘은 새하얀 비둘기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비둘기는 셀린느의 손 위에 앉더니 순식간에 하얀 종이 한 장으로 바뀌었다.

“마물도 얘기하면 나타난다더니.”

레온하르트는 조금 기가 막힌다는 투였다.

“이게 뭔가요?”

“초대장.”

레온하르트는 아직도 갈피를 못 잡고 어리둥절해하는 셀린느의 손에서 종이를 가져갔다.

“……?”

레온하르트는 곧바로 종이를 찢어 버렸다.

당황하는 셀린느의 눈앞에, 금빛 글씨가 떠올랐다.

[괜찮으시다면, 플뤼아에서 뵙고 싶습니다. 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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