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레온하르트 베르누이가 처음부터 혈혈단신으로 마물에 맞선 건 아니었다.
좀 더 정확히는 제국의 그 누구도 레온하르트를 혼자 마물에 맞서게 할 생각이 없었다.
자연적으로 발현된 마검사는 그야말로 기적인 존재.
어린 레온하르트는 아동학대나 다름없는 훈련을 받으며 자랐지만 동시에 철저히 보호되었다.
레온하르트는 당시, 몰래 엿들었던 어른들의 대화를 아직도 똑똑히 기억했다.
“폐하, 공자껜 앞으로의 임무를 보좌할 마법사가 필요합니다.”
“그게 가능하긴 한가? 흑마법에 접촉한 마법사들은 빠르게 타락하거나 미쳐 버리잖나. 차라리 수준급의 기사가 낫다고 보네.”
“갓 발현한 어린 마법사라면 다를지도 모릅니다.”
“흠…….”
최종 목적은 흑마법사를 베는 병기였던 레온하르트에게는 아직 마법에 대해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초짜 마법사가 필요했다.
마티아스 테즈빗.
그 소년의 이름이었다.
“공, 공자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 마, 마티아스 테즈빗이라고 합니다.”
당시 열두 살이었던 레온하르트보다 세 살 많은 마티아스 테즈빗은 첫 만남부터 벌벌 떨었다.
또래를 거의 만나 보지 못했던 레온하르트였기에 그에게 마티아스는 그저 나이는 자신보다 훨씬 먹었으면서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간으로 보일 뿐이었다.
마티아스 테즈빗은 당시 갓 발현한 마법사 중 가장 뛰어난 잠재력을 지녔지만 겁이 많아 자신이 지닌 힘조차 두려워했다.
그러한 성격이야말로 흑마법에 물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뽑혔다는 건, 그때의 레온하르트는 모르는 사실이었다.
“히이익……!”
레온하르트는 히끅거리며 자신 쪽으로 달려오는 마티아스를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마티아스가 도저히 못 처치하겠다고 겁을 먹고 꽁무니를 내뺀 마물은 겨우 두 마리.
심지어 일반적인 마물보다도 훨씬 덩치가 작은, 그들의 연습을 위해 생포한 마물들이었다.
“레, 레온하르트! 도, 도, 도와줘.”
“싫은데.”
자신을 무슨 신이라도 된 것처럼 깍듯이 대하는 게 싫어 말 좀 놓으라고 한 지 벌써 몇 개월.
우습게도, 마티아스는 레온하르트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엔 빠르게 적응했으나 아직도 마물 하나 혼자서 처치하지 못했다.
레온하르트는 바닥에 다리를 쭉 펴고 앉은 채 마티아르를 흘겨보았다.
마물은 그들을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이걸 처치하지 않으면 다칠 건데.”
“…….”
마티아스의 눈이 공포로 격렬하게 흔들렸다.
“레, 레온하르트…….”
레온하르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저히 참다못해 실제로 마물이 마티아스를 공격해 상처 입힐 때까지 내버려 둔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마티아스는 똑같았다.
마티아스의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펼쳐 보이는 각종 공격 마법들은 노련한 왕실 마법사의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였으니까.
마티아스는 단지, 겁이 많을 뿐이었다.
그렇게나 잘 쓰는 화염 마법을 마물 앞에선 시도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대체 뭐가 문제지?”
레온하르트는 가볍게 마물 두 마리를 베어 내며 마티아스에게 물었다.
“……모르겠어.”
“무서워서? 무서우면 더 공격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냥, 못 하겠더라고. 미안해.”
마티아스는 얼굴을 땅으로 떨어트렸다.
“…….”
레온하르트는 말없이 라쉬르를 검집에 집어넣었다. 친절하게 대답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마티아스와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마티아스는 기본적으로 레온하르트를 경외했고, 레온하르트 역시 항상 자신을 압박하며 을러대는 어른들보단 마티아스와 함께 있는 게 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임무에 한해서는 얘기가 달랐다.
“제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아요? 마티아스만 데리고 마물 무리를 처리하라고요? 그것도 우두머리 마물이 이미 변태한 무리를?”
레온하르트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총사령관을 향해 따발총처럼 말을 다다다 뱉어 냈다.
여태까지 자신은 노련한 기사단들과 함께 마물들을 처치했다.
당연히 살상력은 자신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자들이었지만, 그래도 제 몫은 하는 자들이었다.
“테즈빗 군은 젊은 마법사 중 가장 뛰어나지 않나. 자네도 실력은 부정할 수 없을 텐데.”
“아니, 실력은 그렇다 쳐도 마물 한 마리 못 죽이지 않습니까!”
레온하르트는 답답해서 소리쳤다.
마티아스가 개미 새끼 한 마리 못 죽일 정도로 심약한 건 상관없었다.
하지만 마물을 죽이지 못하는 자와, 단둘이서 마물 무리를 격퇴시키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차라리 혼자 가겠습니다. 짐 덩어리를 데리고 갈 순 없어요.”
“안 돼.”
레온하르트는 이를 꽉 깨물었다.
상대는 제국의 총사령관.
아직 작위 하나 수여받지 못한 자신이 대들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의 등 뒤엔 무려 황제가 버티고 서 있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당연히 마티아스는 그 소식을 반기지 않았다. 레온하르트는 한숨을 폭폭 내쉬었다.
어쨌든 자신은 이 짐 덩어리를 데리고 임무에 나서야 한다.
“……그렇게 죽을상 짓지 마. 나야말로 너 같은 짐 덩이를 데리고 우두머리 마물을 상대할 생각을 하니 죽을 것 같으니까.”
“내가 뭔가 도움이 될 방법이…….”
“조무래기 마물 한 마리 못 죽이면서 무슨 도움을 주겠다고?”
레온하르트는 마티아스를 노려보았다. 자신보다 키가 한 뼘 더 큰 것조차 거슬리게 느껴졌다.
“……노력해 볼게.”
“이번엔 정말로 그래야 할 거야.”
마음만 같아선 마티아스는 나무 위에라도 올라가서 덜덜 떨고 있으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는 우두머리 마물.
반항 하나 못 하는 마티아스 따윈 가볍게 찢어 버릴 것이다.
여태까지 레온하르트가 봐 온 시체들처럼.
임무 당일.
레온하르트는 크게 심호흡했다.
자신의 뒤에서 부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간신히 따라오는 마티아스가 거슬려 죽을 지경이었다.
“마티아스.”
“어, 어.”
“못 견디겠으면 도망쳐. 알겠지?”
“…….”
침묵이 돌아왔다.
마티아스는 명령 불복종을 할 수 없다는 알량한 마음가짐과 생존 본능 사이에 갈등하는 듯했다.
레온하르트는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우두머리 마물을 보면, 생존 본능이 다른 모든 것을 앞지를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기사들마저 그랬으니.
잠시 후, 익숙한 악취가 훅 끼쳐 왔다.
동시에 마티아스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빠져나가며 몸 전체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도망쳐.”
“싫어.”
마티아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럴 줄 알았지.’
레온하르트는 속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상스러운 욕을 내뱉었다.
마티아스는 우두머리 마물이 나타날 때까지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즉, 자신은 그때까지 이 짐 덩어리를 데리고 떼거지로 달려드는 마물을 물리쳐야 한다.
***
셀린느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튀어나오는 말을 멈출 수 없었다.
“레온하르트를 처음 만났을 때의 제가 생각나네요.”
“…….”
“저도 그때, 짐 덩이였죠.”
“상황이 많이 달랐어.”
레온하르트는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마티아스와 제가요?”
“아니.”
레온하르트는 뻣뻣하게 굳은 혀를 굴렀다.
“내가 달랐어.”
***
훗날, 레온하르트는 당시 자신이 느낀 짜증과 당혹감이 무능력함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레온하르트는 겨우 열두 살이었고, 그런 사실을 깨닫기엔 너무 어렸다.
“뭐 해? 도망가라니까!”
레온하르트는 악을 지르며 사방의 마물들을 베었다.
옆에 꼭 붙어 있는 마티아스는 해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마물들을 최대한 많이 베어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마에서 쉬지 않고 떨어져 내리는 땀마저 성가시게 느껴졌다.
“좀 꺼져!”
하지만 마티아스는 계속되는 폭언에도 레온하르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여전히 손에선 불꽃 하나 만들어 내지 못했지만, 땅에 붙박인 듯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끌어낼 순 없는 노릇이었다.
레온하르트는 속으로 상스러운 말을 몇 차례 더 내뱉었다.
만에 하나 우두머리 마물이 나타나도 마티아스가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면 속으로 중얼거리는 것만으로 멈추지 않을 생각이었다.
바로 그때.
거대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
마티아스의 몸이 용수철을 눌렀다가 튀어 오르는 나무토막처럼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역시.’
레온하르트는 숨을 죽이며 가만히 우두머리 마물을 관찰했다.
마티아스가 도망치자마자 우두머리 마물을 공격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마티아스는 우두머리 마물이 그들을 향해 꿈틀대며 다가오자마자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쳤다.
레온하르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마티아스가 끝까지 고집부리며 자신 곁에 있었다면 기절을 시켜서 마물에게 시체처럼 보이게 할 생각이었다.
라쉬르를 쥔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레온하르트는 자리에서 도약해 우두머리 마물을 향해 라쉬르를 내리쳤다.
‘……!’
순간, 레온하르트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무어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라쉬르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우두머리 마물의 살을 베고 들어가 핵을 노렸지만, 어딘가가 불안했다.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저번에 비슷한 직감이 들었을 땐, 레온하르트의 두 다리가 부러졌다.
그전에는 팔 하나를 완전히 잃을 뻔했다.
“쿠웨에엑!”
라쉬르에 반쯤 갈라진 우두머리 마물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래, 우연일 뿐이야.’
레온하르트는 핵을 찾기 위해 라쉬르에 힘을 주었다.
“아아아악!”
새된 비명이 평야에 울려 퍼졌다.
레온하르트는 잠시 뒤에야 그게 자신의 비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 너무 아팠다.
그동안 마물에 꽤나 다쳤다. 생살이 찢어지고 팔다리 부러지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이성을 잃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본능만이 남을 정도의 고통은 처음이었다.
레온하르트는 비명을 지르고 또 질렀다. 라쉬르조차 어느새 손에서 벗어나 있었다.
난생처음으로 마물 앞에서 정신을 잃었을 때, 레온하르트가 느낀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레온하르트가 정신을 차리기까지는 일주일이 걸렸다.
전신을 제대로 쓸 수 있을 때까지는 반년이 걸렸다. 그마저도 의사들은 기적이라고 했다.
레온하르트는 그 반년 동안에도 마물을 처치해야 했다. 당연히, 기사단과 함께.
그리고 마티아스와 함께.
***
“……그럼, 마티아스는 계속 골칫덩어리처럼 느껴졌겠군요. 레온하르트에게.”
레온하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마티아스는 그 이후, 처음으로 수행한 임무에서부터 마물을 처치하기 시작했어. 아주 능숙하게.”
“아.”
눈에 띄게 안도하는 셀린느를 바라보는 레온하르트의 표정은 복잡미묘했다.
***
레온하르트가 눈을 떴을 때, 눈앞에 보인 건 벌건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마티아스였다.
“미안해, 미안해…….”
“…….”
레온하르트는 사과를 받아 주기도, 그렇다고 타박하기도 싫어 등을 돌려 돌아누웠다.
마티아스는 무어라 말하려는 듯 목을 가다듬더니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밖을 나갔다.
그날 밤.
레온하르트는 마티아스가 처음으로 마물을 불살라 죽였다는 사실을 전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