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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게임의 악역은 밤마다 여주인공의 꿈을 꾼다-67화 (67/120)

67화.

레온하르트는 구구절절 묻지 않았다.

셀린느의 계획은 명확했다.

그녀 자신과 레온하르트, 파라디소 기사단 전원은 물론 우두머리 마물 셋까지 데리고 황도로 이동하는 것.

“훈련장이 아닌, 다른 곳에 떨어질 수도 있지 않나.”

“그럴 가능성은 없어요.”

셀린느는 곧바로 부정했다.

이동 마법은 항상 두 가지가 한 세트였다.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마법과, 이동한 곳에서 원위치로 돌아올 수 있는 마법.

레온하르트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셀린느가 파라디소 기사단과 함께 돌아간다면 당장은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그다음은?

자신을 기다리는 동안 셀린느 혼자 흑마법사들의 위협을 버텨 낼 수 있을 것인가?

또 납치되기라도 한다면…… 레온하르트는 결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임무 측면으로 봐서도 셀린느의 판단이 옳았다.

레온하르트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알았다. 그 혼자서는 우두머리 마물 셋을 모두 해치울 수 없다.

기껏해야 세력이 약한 두 놈.

그리고 어쩌면 돌아가기가 힘들 정도로 크게 다칠지도…….

하지만 레온하르트는 이 사실들 중 무엇 하나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새 건물을 하나 선물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렇죠?”

셀린느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현재 파라디소 기사단이 쓰는 건물은 카르파티아로 뽑힌 후 새로이 정비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황실 소속 기사단 중 가장 못한 건물이었다.

셀린느는 이동 마법을 각인한 마력석을 움켜쥐었다.

레온하르트가 기사단에게 알리는 순간, 즉시 이동할 생각이었다.

“지금 이동해라.”

“……?”

셀린느는 머뭇거렸다. 아무리 레온하르트의 말이라 해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부탁이다.”

하지만 시간은 없었고 파라디소 기사단이 시시각각 지쳐 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셀린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력을 분출시켰다.

“어……?”

“공자님, 이건……!”

“루테!”

경악에 가득 찬 비명 소리가 잠시간 사방에 울렸지만 이내 강력한 마력의 흐름에 뒤섞이고 말았다.

잠시 후.

마물로 한가득 메워져 있던 벌판 한가운데가 구멍이 뚫린 것처럼 휑해졌다.

“허어억…….”

셀린느의 눈에 접경지대에 내동댕이쳐지기 전에 보았던, 훈련장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이다.’

레온하르트에게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지만 내심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오차가 나도 너무 심한 오차가 나지 않았던가.

셀린느는 가쁘게 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오늘 다소 무리한 모양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 당장 접경지대에서 우두머리 마물들과 싸울 생각조차 하지 않고 파라디소 기사단의 숙소를 찾았으니.

레온하르트가 부드럽게 셀린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쉬고 있도록.”

“그럴 순 없…… 레온하르트!”

셀린느가 제대로 대답하기도 전에, 레온하르트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파라디소 기사단을 향해 성큼 걸어갔다.

“공자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바트 단장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마물을 베며 소리쳤다.

“거기에 있으면 다 죽을 상황이었다.”

“그래도, 이건……!”

“너희들은 잔당을 베는 것에만 집중해라. 나머지는 내가 상대한다.”

바트의 대답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예!”

단원들 역시 금세 대형을 갖추었다.

여전히 어리둥절해 보이는 단원들도 있었으나 당장 마물이 그들을 덮쳐 오는 상황.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검을 바로잡을 수밖에 없었다.

레온하르트는 단원들처럼 당황한 기색을 내는 우두머리 마물들을 노려보았다.

‘……유의미한 지능이라니.’

레온하르트는 숱하게 많은 우두머리 마물을 베어 왔다. 그중 지능을 가졌다고 느낀 것들이 제법 되었다.

하지만 모두, 오직 살육과 생존을 위한 본능에 기반한 지능이었다.

당황한 티를 내며 사방을 관찰하는 우두머리 마물이라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 황실에서 연구하겠지.’

자신이 할 일은 이것들을 몇 초라도 빨리 베고 핵을 추출하여 행동 양식과 함께 보고하는 것이다.

레온하르트는 가장 약해 보이는 놈부터 노리기 시작했다.

‘내버려 둘 순 없어.’

셀린느는 불안하게 우두머리 마물에게 달려드는 레온하르트를 바라보았다.

레온하르트는 자신만만했지만, 이미 파라디소 기사단에겐 조무래기 마물들만 처치하라고 지시한 상황.

그를 철석같이 믿고 있는 파라디소 기사단이니 결코 그 명을 어기지 않을 것이다.

만약 셀린느가 레온하르트를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면 그녀 역시 그의 말을 따랐을 것이다.

‘이제는 알아.’

이 세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레온하르트 베르누이는 결코 불사신이 아니었다. 정작 본인조차 자신이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레온하르트는 죽을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닌 사람이었다.

지금도 도움 없이는 크게 다칠 것이다.

‘한꺼번에 우두머리 마물 셋이라니. 말이나 돼?’

셀린느는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지만 그깟 사소한 일에 쓸 신경은 없었다.

레온하르트는 거대한 말벌의 관절 부위를 노렸다.

아직도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모양인지 당황한 우두머리 마물은 천장으로 솟구쳤고, 곧 단단한 지붕에 부딪쳤다.

천장은 순식간에 금이 쩍 가며 갈라졌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레온하르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이럴 줄 알았지.’

그는 핀으로 박힌 말벌처럼 천장에 부딪친 모양새 그대로인 우두머리 말벌을 라쉬르로 내리 찔렀다.

-붕

그 순간, 가장 큰 우두머리 마물이 레온하르트를 덮쳤다. 레온하르트는 라쉬르를 거대한 방패로 변환시켰지만, 충격에 밀려 나가고 말았다.

-화르르

파란 불길이 레온하르트와 우두머리 마물들을 일제히 감쌌다.

결코 그 자신 말고 모든 걸 태워 버리는 라쉬르의 불길이 아닌, 다른 이의 불길이.

‘……셀린느.’

레온하르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동 마법이 끝난 직후, 셀린느의 파리한 안색을 보자마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왜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셀린느의 마력이 고갈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셀린느는 또다시 마법을 썼다.

자신을 돕기 위해서.

라쉬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혹은 나중에 셀린느를 질책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

그 자신이 혼자 우두머리 마물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지 않은 탓이었으니.

지금은 이미 받아 버린 도움을 최대한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레온하르트는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셀린느가 만들어 낸 강력한 불길 덕에 우두머리 마물들의 날개가 불타올랐고, 그대로 땅으로 떨어졌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주었다면 우두머리 마물들은 금세 날개를 복구해 냈을 것이다.

하지만 레온하르트는 곧바로 급소 몇 군데를 발견했고,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챙!

-챙!

-챙!

금속음과 함께 우두머리 마물 셋의 머리가 모두 떨어져 나갔다.

허무할 정도로 쉽게.

레온하르트는 곧바로 셀린느를 향해 달려갔다.

기사들이 내지르는 환호성도 경탄하는 바트 단장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벽에 기대 서 있는 셀린느는 몸이 좋지 않은 모양인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다.

“셀, 셀린느…….”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레온하르트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셀린느가 고개를 들었다.

안도감이 레온하르트를 감쌌다. 셀린느는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레온하르트, 이거…….”

“……?”

셀린느는 우두머리 마물들에 대해서도,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그녀의 신경은 온통 손에 들린 투명한 구체에 빼앗겨 있었다.

“……!”

레온하르트의 눈이 커졌다.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그리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수정구였다.

깨질 때마다 따라야 하는 구절이 나오는.

“어디에 있었나?”

“루가 뱉어 냈어요.”

“루가?”

레온하르트는 놀란 표정으로 셀린느의 손목에 감긴 용, 루를 바라보았다.

루는 만족스러운지 작은 불씨를 내뿜더니 눈을 감고 두 눈을 반쯤 내리깔았다.

“공자님!”

바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셀린느는 곧바로 수정구를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그녀는 기사단의 면전에서 자살 시도를 할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호텔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

레온하르트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셀린느는 큰 고민이 있을 때마다 이맛살을 찌푸리며 입술을 곱씹었다.

그녀가 전장의 한가운데가 아닌 곳에서 이런 행동을 보인다는 건 문제가 있다는 얘기였다.

“뭐가 문제지?”

“네?”

청회색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고민이 있지 않나.”

“없, 없어요.”

셀린느는 되레 손을 세차게 내저었고, 레온하르트의 의심만 더욱 짙어졌다.

“나에게 말 못 할 고민인가?”

“아무것도 아니에요. 진짜로!”

셀린느는 이번만큼은 알았다. 이건 레온하르트에게 알리고 상담할 사안이 못 되었다.

‘방으로 들어가서, 링조르로 한 번 찌르면 돼. 그럼 다음 퀘스트를 받을 수 있을 거야.’

실제로 죽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지 모를 일이었다.

셀린느는 입술을 다시금 깨물었다.

아니, 실제론 잘 알았다.

‘수정구는 이 게임에서의 목숨이었어.’

게임 속에 들어온 지금도 딱히 다르진 않았다. 만약 자살 시도를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이것 덕에 목숨 한 번을 건질 것이다.

대신 퀘스트를 늦게 알게 되리라. 레온하르트의 운명이 걸려 있는…….

“셀린느.”

셀린느는 갑작스레 들려온 레온하르트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새파란 눈이 속을 알 수 없는 분위기를 띠며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피가 난다.”

“아, 아.”

그제야 입에서 피 맛이 느껴졌다.

셀린느는 시선을 어디에도 두지 못하고 허둥댔다.

자신이 지금 괜찮지 않다는 걸 레온하르트 앞에서 광고하는 듯해서 마음이 불편했다.

“……문제가, 뭔가.”

셀린느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미 레온하르트가 문제가 있다는 걸 눈치챘으니 둘러대는 건 기분만 더욱 상하게 할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해.’

하지만 셀린느의 혀는 두뇌를 배신하고 제멋대로 움직였다.

“수정구를 깨야 하나, 깨지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었어요.”

“역시. 그런 고민 중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네?”

레온하르트는 화들짝 놀라는 셀린느를 의아스럽게 쳐다보았다.

“네가 말했잖나. 그 수정구는 네 죽음을 막아 주며 깨진다고. 그럼 그 말은…….”

“네, 제가 죽으려고 시도해야만 깨진다는 거죠.”

레온하르트는 즉각 할 말이 굉장히 많은 얼굴로 입을 벌렸으나 바로 다물었다.

셀린느는 조금 죄책감을 느끼며 레온하르트의 시선을 피했다.

그는 셀린느에게 최대한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말을 고심하는 듯했다.

“깨질 때, 아픈가?”

“아, 아뇨. 이게 그냥 그대로 흡수한다고 보면 되어요. 그냥, 제가 고민하는 이유는, 이게 있으면 한 번은 죽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

레온하르트는 한참을 셀린느의 손에 들린 수정구를 바라보았다.

셀린느는 그의 머릿속을 알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하면 수정구가 저절로 깨질 때까지 기다리게 설득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겠지.’

마침내, 레온하르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

청회색 눈이 크게 떠졌다.

셀린느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레온하르트의 입에선, 그녀가 결코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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