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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게임의 악역은 밤마다 여주인공의 꿈을 꾼다-66화 (66/120)

66화.

셀린느는 곧바로 레온하르트를 파라디소 기사단이 집결한 곳으로 안내했다.

바트를 포함한 단원들 중 그 누구도 레온하르트가 멀쩡히 나타났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았다.

“어디 있다 이제 오십니까.”

“늪에.”

“……!”

청회색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별건 없더군.”

레온하르트는 간단하게 덧붙였지만, 셀린느의 심장은 방망이질을 멈추지 않았다.

스테이지는 플레이어인 자신이 들어서는 순간 활성화되는 듯했다.

‘확인해 보기 전엔 아무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마물 처치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었다. 셀린느는 익숙한 태도로 지시를 내리는 레온하르트의 냉철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우선적인 목표는 우두머리 마물들을 끌어내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달려들었다간 우두머리들은 숨어 버릴 가능성이 높다. 전력이 약해 보이도록, 최소한도로만 마물을 상대하도록.”

셀린느의 몸이 긴장으로 굳었다.

이번 임무는 여태까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파라디소 기사단의 단원들은 하나같이 납득하는 표정이었다.

“보고에 따르면 우두머리 마물들 중, 그들의 우두머리급으로 강력하고 영리한 마물이 있다고 한다. 그것을 죽이지 못한다면 이곳에 온 보람이 없겠지. 그것은 나와 셀린느 루테가 상대한다.”

레온하르트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숲 안으로 들어가진 마라. 살기 위해 도망치는 건 괜찮다. 하지만 숲 안으로 가선 안 된다.”

바트가 옆에서 엄포를 놓았다.

“공자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숲속으로 꽁무니를 내빼는 놈은 제 손으로 베어 버리겠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을 거다.”

순간,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사냥 대회 때처럼 마물들이 숲속에서 튀어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해가 머리 위를 넘어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할 때까지도 마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바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냥 대회 이후, 어딘가로 이동한 게 아닐까요?”

“아니.”

레온하르트는 시커멓게 보일 정도로 울창한 숲속을 노려보았다.

“아직 저 안에 있을 거다.”

“왜…….”

“세력을 모으는 거지. 우리를 한꺼번에 쓸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세를 불리는 중일 거다.”

바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럼, 그 전에 공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근거지로 들어가서…….”

바트는 입을 다물었다. 마물의 근거지는 저 섬뜩한 숲.

레온하르트가 들어가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던 곳이 아니었던가.

“기다려라.”

“예.”

바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온하르트의 판단에 따르는 것이 옳다는 것 정도는 세 살배기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숲속의 그림자가 더욱더 짙어져 더는 그림자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였다.

그 어떠한 예고도 없이 사방에서 마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예상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파라디소 기사단의 그 누구도 당황하지 않았다.

“명심해라! 최소한도로 상대하도록.”

레온하르트가 다시금 상기시킬 필요가 없이, 바트가 목청을 높여 큰소리로 외쳤다.

긍정하는 외침이 사방에서 들려옴과 동시에, 파라디소 기사단의 단원들이 날래게 움직였다.

레온하르트는 파라디소 기사단의 움직임을 단 한 순간도 빠트리지 않고 날카롭게 주시했다.

파라디소 기사단의 움직임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질서정연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이 정도면 안심해도 되겠군.’

긴장을 푼 레온하르트는 무얼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는 셀린느를 불렀다.

“내 곁에 있어라.”

셀린느는 자신을 조심스레 잡아당기는 레온하르트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이상하게도 사방에 득실거리는 마물들은 그들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왜 안 올까요?”

“……이것들은 영리해. 지나칠 정도로.”

“이게 다 그 우두머리 마물 때문이겠죠?”

셀린느는 레온하르트가 언급한 가장 강력한 우두머리 마물을 떠올렸다.

“그래. 보고에 따르면, 사람을 구분할 줄도 알고, 그에 따른 전략을 세울 줄도 안다더군.”

“마물이요? 설마…….”

셀린느는 아가티르수스를 떠올렸다.

오래되어 마물의 근거지인 줄 알았으나, 실은 백 년 묵은 흑마법사의 근거지였던 곳.

레온하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확실히 아니다.”

“어떻게 알죠?”

“저 숲속 깊이 침투했다가,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 마법사가 있었다.”

불안이 셀린느를 엄습했다.

레온하르트의 말은 과거형이었다.

“……괜찮은가요?”

“보고만 하고 죽었어.”

레온하르트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

셀린느의 눈이 경악에 질렸다.

저 숲에 잠입할 정도면 상당한 실력자일 터.

“그 죽음마저 계산한 것 같다는 말이 있더군. 경고만 하고 바로 죽어 버리도록 말이야.”

말문이 턱 막혔다.

“정말, 인간 같군요.”

“고도로 발달한 우두머리 마물과 흑마법사는 그리 다르지 않아.”

레온하르트는 씁쓸하게 대답했다.

“어떨 땐 구별할 필요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래도, 흑마법사는 한때 인간이었잖아요…….”

“한때 인간이었던 게 무슨 소용인가? 머릿속엔 힘을 위해 살육해야 한다는 생각뿐인데.”

셀린느는 움찔했다. 레온하르트의 대답엔 다소 날이 서 있었다.

“흑마법사가 더 낫다는 말은 아니었어요. 그냥, 다르다는 거죠.”

“……그래. 그 말이 맞는군.”

레온하르트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흑마법사는 한때…….”

셀린느는 들리지 않는 뒷부분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모든 흑마법사는 한때 마법사였다.

마치…… 셀린느처럼.

파라디소 기사단은 힘겹게 싸웠다. 결코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마물들과 맞서 싸우되, 전력이 약해 보여야 한다는 레온하르트의 주문을 지키는 건 전력을 다해 우두머리 마물과 싸우는 것보다 힘들었다.

게다가 레온하르트는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서 있는 상황.

의문과 불만이 터져 나올 법도 했으나 누구도 레온하르트를 의심하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레온하르트 베르누이만큼 마물에 대해서 잘 아는 자는 없다.

파라디소 기사단은 항상 무시당하는 기사단이었고, 언젠가 올 기회를 위해 힘을 키웠다.

기사단장 바트부터 신참내기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레온하르트의 일거수일투족을 탐구했다.

마물과의 전투는 물론 마물에 입은 부상의 응급 처치, 시체의 처리에 이르기까지 그만한 권위자가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파라디소 기사단은 엄정한 검정의 결과로 레온하르트를 신뢰했다.

실력을 숨기는 대가로 목숨을 위협받는 지금 역시 마찬가지였다.

“……!”

“이게 무슨……!”

갑자기, 사방에서 경악에 질린 외침이 터져 나왔다.

천지가 진동했다.

적어도 셀린느와 파라디소 기사단의 단원들은 그렇게 느꼈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으며 숲의 나무들마저 휘청거렸다.

오직 레온하르트만이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숲을 노려보았다.

-쿵

-쿵

-쿵

셀린느는 마른침을 삼켰다. 마력을 한껏 끌어모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곧 우두머리 마물들이 한껏 불린 세력을 이끌고 나타나리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마침내, 어둠 속에서 우두머리 마물 셋이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게 뭐야…….”

불과 며칠 전, 우두머리 마물을 손쉽게 처리한 파라디소 기사단원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날 처치한 우두머리 마물과는 차원이 다른 우두머리 마물 셋이 모습을 드러냈다.

‘……말벌?’

셀린느는 눈을 의심했다.

여태까지 봐 온 우두머리 마물들의 모습은 정교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단 한 번, 레온하르트의 앞에서 아기의 모습을 흉내 내었을 때를 제외하곤.

하지만 지금 햇빛 아래 모습을 드러낸 우두머리 마물들은…… 거대한 말벌 같은 모양새였다.

인간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셀린느의 시선이 번쩍이는 두 눈과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여섯 개의 다리, 그리고 1미터는 족히 될 듯한 거대한 침을 정신없이 오갔다.

“이것들도…… 마물입니까?”

이름 모를 단원 하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벌을 흉내 낸 것 같군. 본연의 모습은 아니야.”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지능이 높은 것들은 어린아이로 변화할 수도 있다. 방심하지 말도록.”

“방심할 인간이 누가 있겠습니까.”

바트가 곧바로 받아쳤다.

다행히 파라디소 기사단은 당황도 잠시, 침착하게 대형을 갖추었다.

“……레온하르트.”

레온하르트는 셀린느의 부름에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그 순간, 셀린느에게서 마력이 간헐천처럼 솟구쳐 올랐다.

발이 지면에서 살짝 떠오르고 머리카락이 붕 뜨는 게 느껴졌다.

전신을 감싸는 마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히 웅웅댔다.

셀린느는 폭발하는 마력을 사방으로 펼쳤다.

그녀가 서 있는 지점으로부터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마물들이 불에 타 쓰러졌다.

셀린느는 벌판을 싹 쓸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지금은 마력을 아껴야 할 때였다.

그들은 서서히 가장 덩치가 큰 우두머리 마물을 향해 접근했다.

사람 얼굴 크기의 시꺼먼 눈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지만,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레온하르트는 곧바로 그것을 향해 도약했다.

본연의 모습이 아닌, 말벌을 흉내 낸 모습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단칼에 갈라 버릴 생각이었다.

“레온하르트!”

셀린느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갔다.

레온하르트의 칼은 말벌의 단단한 머리에서 미끄러졌고, 거대한 말벌은 곧바로 허공으로 치솟으며 유선형으로 이동했다.

말벌이 향한 곳은, 아직 고전하고 있는 파라디소 기사단이었다.

셀린느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것들은 레온하르트에게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떻게……!’

여태까지 마물들은 제 목숨 무서운 줄 모르고 레온하르트에게 달려들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오직 살육을 위한 본능만이 존재하는 마물이 어떻게 레온하르트를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겠는가?

둘은 곧바로 거대한 말벌을 쫓아갔지만, 금세 수도 없이 밀려 나온 마물 무리에 가로막혔다.

“레온하르트, 저건…….”

“안다.”

라쉬르가 포물선을 그리며 순식간에 마물 수십 마리의 목을 베었다.

“셀린느, 내가 저것들의 시선을 돌려 놓는 동안 저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겠나.”

“돌, 돌아가는 것 말고는…….”

셀린느는 말끝을 흐리며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어 이동 마법을 각인한 마력석을 만지작거렸다.

최상등품의 마력석을 사용했음에도, 대규모 이동 마법은 겨우 두 번이 한계였다.

“다행이군.”

“레온하르트!”

“저들을 돌려보내라.”

“하지만 그러면 시전자인 저도……!”

셀린느의 말이 뚝, 하고 끊어졌다.

“그게 레온하르트가 원하는 거군요. 기사단 분들과 함께 돌아가는 게.”

레온하르트는 부정하지 않았다.

“이것들의 행동 양식은 기묘해. 너와 파라디소 기사단이 상대하기에는 지나치게 위험하다.”

“기사단분들도 원하지 않을 텐데요.”

“원하지 않아도 내 명에 따르겠지.”

셀린느는 잠시 침묵했다.

눈앞의 마물들을 아무리 죽여도 금세 그 시체를 다른 마물들이 짓밟고 메워 끝이 보이지 않았다.

레온하르트는 셀린느가 납득했다고 생각했는지 차분히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이것들을 모두 베고 돌아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레온하르트.”

셀린느는 그들과 파라디소 기사단 사이에 일직선으로 길을 내며 레온하르트의 말을 끊었다.

시체를 밟고 공간을 메우려던 새로운 마물들도 계속해서 타오르는 불길에 쓰러졌다.

“좀 더 안전한 곳에서 저것들을 잡는 건 어때요?”

“무슨 소리지?”

“예를 들어…… 파라디소 기사단의 훈련장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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