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셀린느는 철제 독수리를 향해 다가가는 내내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괜찮은가? 좀 쉬었다 가도…….”
“괜, 괜찮아요.”
레온하르트가 거듭 쉬었다 가자고 얘기했지만 그때마다 셀린느는 고개를 저었다.
또다시 그 유령이 둘을 덮쳐 온다면 자신은 도움은커녕 짐 덩이만 될 것이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빨리 뼈를 맞추어 유령을 떨쳐 버려야 했다.
“레……!”
셀린느는 갑자기 기우뚱하는 몸과 가까워지는 레온하르트의 얼굴에 놀라 비명을 질렀다.
레온하르트는 그녀를 안정감 있게 두 팔로 들고선 태연하게 말했다.
“놀랄 일도 아닌데 놀라는 걸 보니, 몸이 많이 안 좋은가 보군. 여길 벗어나면 일주일은 푹 쉬도록.”
“……유령이 오면 어떻게 해요.”
“던져 주지. 아까처럼.”
“…….”
결코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웃을 수가 없었다.
“몸이 많이 안 좋은가? 역시 쉬었다 가는 게…….”
“괜찮아요!”
셀린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소리쳤다.
걱정스러워하며 가까워지는 레온하르트의 얼굴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차라리 용암 지대가 더 나았다. 그때는 시시각각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온전히 레온하르트에게 정신이 집중되어 민망해 미칠 것 같았다.
“그냥, 빨리 가요…….”
레온하르트는 조금 의아해하는 듯했으나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는 셀린느의 말에 동의했다.
그는 곧바로 셀린느를 안은 채 뛰기 시작했다.
‘……잘 달리네.’
셀린느는 레온하르트의 품에 안긴 채 멍하니 생각했다. 자신은 가벼운 편이지만 그래도 성인 여성의 몸이다.
하루 종일 사투를 벌인 후 가볍게 안고 달리기엔 부담이 될 터였다.
하지만 레온하르트는 잠시도 쉬지 않고 달려 거대한 철제 독수리로 장식된 커다란 건물에 도달했다.
“여기가 맞나?”
“네.”
셀린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지 존재감 없는 스테이지였기에 잘 기억나지 않았던 디테일들이, 실제로 와 보니 새록새록 살아났다.
“이 안에 뼈가 있을 거예요. 유령이 저희를 잡기 전에 원래대로 맞춰 놓으면 끝나요.”
거대한 문은 단단히 잠겨 있어 라쉬르로 부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원랜 여기 들어가려면 열쇠가 필요했지.’
셀린느는 파편으로 부서져 내린 문을 건너뛰어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홀과 몇 개의 문이 보였다.
‘홀 안에 있었어.’
셀린느는 뼈를 찾아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홀은 삭은 지 오래인 가구들과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해 무언가를 찾기 쉬운 환경이 아니었다.
셀린느는 곰팡이가 슨 이불을 들어 올리다 좀벌레가 우글거리는 장작더미를 발견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저건가?”
레온하르트가 손가락으로 쿠션이 내려앉은 소파를 가리켰다.
천천히 다가가 보니 누렇게 변한 사람의 뼈들이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었다.
“맞춰야 해요.”
“본디 형태대로 만들어 놓으면 된다는 거지?”
셀린느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강이뼈를 집어 들었다. 급하다 보니 혐오감이나 공포감조차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정강이뼈를 다른 뼈와 맞추려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정강이뼈가 맞나……?’
게임 속에선 퍼즐처럼 실선이 그어져 있어 그 안에 맞추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모든 걸 감과 지식에 의지해서 올바른 위치에 놓아야 했다.
하지만 셀린느는 기껏해야 박물관에서 수천 년 전 죽은 사람의 백골을 몇 번 본 게 전부였다.
“내가 해도 되나?”
“네, 네!”
레온하르트는 곧바로 셀린느의 손에서 정강이뼈로 추정되는 것을 낚아챈 다음 빠른 속도로 뼈를 맞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와.’
셀린느는 반쯤 경탄하며 레온하르트를 지켜보았다.
십여 분쯤 지났을까.
소파 위엔 가지런한 모습의 백골 한 구가 누워 있게 되었다.
바로 그때, 산산조각 난 대문 사이로 희끄무레한 덩어리가 흘러 들어왔다.
셀린느는 즉각 몸을 피했고, 레온하르트는 허리춤에서 라쉬르를 빼 들었다.
하지만 유령은 그들 중 누구도 공격하지 않았다.
문득, 셀린느는 깨달았다.
‘……자신의 뼈를 찾으러 온 거야.’
이런 이벤트가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유령의 움직임은 명백히 자신의 백골을 끌어안는 형태였다.
아주 서서히, 치즈 덩어리 같았던 유령의 형체는 투명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셀린느가 지쳐 바닥에 앉고 말았을 무렵, 유령은 완전히 사라졌다.
레온하르트는 조금 전까지 유령이 있던 자리에 라쉬르를 살짝 휘둘러 보았다.
“완전히 소멸했군.”
“……자기 뼈를 찾지 못해서, 안식하지 못했나 봐요.”
“잘 모르겠군.”
레온하르트는 셀린느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보통 집념으로는 유령이 될 수 없다.
그가 여태까지 봐 온 사례들은 하나같이 사무치는 한이나 후회를 견디지 못해 유령이 된 경우였다.
단순히 자신의 시신을 찾지 못한 사람이 유령이 된다면 세상엔 객사한 유령이 차고 넘칠 것이다.
“어쨌든, 여기서 할 건 이제 끝났어요.”
셀린느는 천천히 홀 밖으로 걸어나갔다.
“봐요, 레온하르트. 햇빛이에요!”
희뿌옇던 안개는 유령과 함께 사라진 듯 온데간데없었고 하늘은 겨울답게 티 한 점 없이 새파랗고 맑았다.
셀린느는 햇빛을 만끽하며 눈을 감았다.
용암 지대의 열기도, 비정상적인 안개의 습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음악이 들리지 않는 걸 보니 진엔딩의 세 번째 스테이지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지만, 적어도 이 폐가촌에서 해야 할 일은 끝났다.
“……뭔가 이상한데.”
셀린느는 눈을 뜨고 레온하르트를 바라보다 소스라치고 말았다.
안개가 걷히고 나니, 사방은 무덤이었다.
그들이 안개 속에서 걸었던 좁다란 길만이 무덤이 없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폐가촌의 나머지 땅들은 비석은커녕 십자가 하나 박히지 않은, 흙무덤들로 꽉 차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셀린느는 아연실색했다. 게임 속에서 이런 무덤들을 본 기억은 전혀 나지 않았다.
‘아니, 봤어!’
셀린느는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서 이런 흙 둔덕들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하지만 간단한 그래픽으로 그려진 데다, 묘비조차 없었기에 단순한 배경으로 생각했다.
“좀 더 살펴보아야겠군.”
레온하르트는 길을 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셀린느는 빠르게 그의 곁에 붙었다.
평상시라면 그녀를 배려해 속도를 늦춰 주었을 터인 레온하르트가 빠르게 걷는 걸 보니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십여 분 후.
꽤나 많은 곳을 둘러보았는데도 무덤이 없는 땅은 보이지 않았다.
레온하르트는 유난히 무덤이 많은 지역에 멈춰 서더니, 한참을 살펴보았다.
이곳의 무덤들은 다른 곳과 달리 제법 말쑥한 비석이 하나씩 박혀 있었다.
‘……아니야.’
급작스러운 깨달음이 찾아왔다.
애초에, 이곳만 묘지였던 것이다.
다른 무덤들은 모두 묘지가 아닌 자리에 죽어 나간 사람들을 묻은 자리에 불과했다.
“……전쟁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전쟁이면 이렇게 한 명씩 묻어 줄 수가 없지. 승자가 패자를 한데 모아 불태워 버렸을 거다.”
레온하르트는 딱딱하게 대답하며 묘비명들을 하나씩 살폈다.
“내 생각엔…… 전염병이었나 보군.”
셀린느는 레온하르트가 주시하는 묘비명을 읽어 보았다. 투박한 돌엔 이름과 함께 단 한 줄이 박혀 있었다.
[하늘에선 건강하리라.]
“이걸로는 아무것도…….”
레온하르트는 대답 대신 주변의 묘비들을 하나씩 가리켰다. 청회색 눈이 커졌다.
“다 똑같군요.”
“그래. 같은 시기에 이렇게 병으로 죽어 나가는 건…… 전염병밖에 없겠지. 한 줄밖에 없다는 것도 비슷한 시기에 사망자가 너무 많았다는 뜻이겠고.”
레온하르트는 천천히 등을 돌렸다.
“어서 나가도록 하지.”
“그럼, 그 사람은…….”
셀린느는 유령이라고도, 백골이라고도 지칭하지 않았지만 레온하르트는 그녀가 누구를 얘기하는지 알아들었다.
“마지막 남은 생존자였던 모양이다. 아마, 그 건물 인근의 무덤들은 다 그자가 팠겠지.”
셀린느는 목이 메고 속이 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무섭고, 고통스럽고…….”
레온하르트의 대답은 사뭇 딱딱했다.
“운명이란 어쩔 수 없다.”
셀린느는 고개를 떨구었다.
“저라도 유령이 되었을 거예요.”
“누구라도 그랬겠지.”
레온하르트는 동의했다.
“하지만, 죄책감은 가지지 마라. 네 마법에도 그자는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했을 테니까. 도리어 안식을 찾아 준 셈이 되지 않았나.”
“……레온하르트.”
셀린느는 고개를 들어 레온하르트와 눈을 맞추었다. 레온하르트는 눈물을 예상했다가, 반대로 결연한 청회색 눈과 마주치자 약간 놀라고 말았다.
“그 사람을 제대로 된 무덤에 묻어 주고 싶어요.”
“알겠다.”
레온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셀린느는 쑥대밭이 된 홀 속에서 그나마 깨끗한 테이블보를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한때는 흰색이었지만 지금은 눈앞의 백골처럼 누렇게 변해 버린 테이블보에 백골을 주섬주섬 담았다.
밖으로 나가자 묏자리를 보기로 했던 레온하르트가 손짓했다.
“땅이 너무 없어서…… 여기밖에 없군.”
레온하르트가 말한 곳은 부서진 문 바로 옆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자, 성인 남자 한 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한 구멍이 보였다.
그녀가 백골을 정리하는 사이 라쉬르로 파 놓은 모양이었다.
셀린느는 테이블보에 쌓인 백골을 조심스럽게 구멍에 집어넣었다.
“흙은 제가 덮을게요.”
레온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고, 셀린느는 잠시 정신을 집중했다.
미풍이 셀린느를 감싸기 시작하더니 점차 거센 바람으로 변했다.
셀린느는 손을 들어 올려 무덤 주위에 수북한 흙을 바람으로 움직였다.
마침내, 주위의 여느 무덤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는 무덤이 완성되었다.
‘묘비가 하나는 있어야겠지.’
셀린느는 산산이 부서진 문의 조각 중 가장 큰 덩어리를 하나 집어 들고, 링조르를 꺼냈다.
‘뭐라고 적지…….’
하다못해 이름이라도 적고 싶었건만 외롭게 죽어 간 자에 대해 아는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갑자기, 레온하르트가 셀린느가 묘비로 쓰려고 했던 조각을 부드럽게 빼앗았다.
“……?”
레온하르트는 단검으로 변한 라쉬르로 무언가를 공들여 새기더니 셀린느에게 돌려주었다.
[영원히 안식하소서.]
“한땐 유령이었던 자에게 줄 수 있는 묘비명은 그것뿐이다.”
“…….”
셀린느는 입술을 깨물었으나 다른 마땅한 글귀를 생각해 내지 못했다.
그녀는 천천히 급조한 묘비를 무덤에 올려다 놓았다.
“……!”
정확히 그 순간, 이젠 듣기만 해도 안도의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음악이 귓가에 울렸다.
“무슨 일이지?”
이상을 감지한 레온하르트가 다급하게 물어 왔으나 이것만큼은 말해 줄 수가 없었다.
셀린느는 넋이 반쯤 나간 채 주위를 살폈다.
진엔딩 루트의 세 번째 스테이지가 끝났다. 분명 상자가 있을 것이다.
‘저거야!’
이름 없는 무덤과 무덤 사이에, 지금까지 몇 번이고 열었던 상자가 보였다.
셀린느는 레온하르트의 시선은 하나도 의식하지 않은 채 달려가 상자를 열었다.
“뭐, 야…….”
힘이 풀린 셀린느의 손에서 상자가 땅으로 떨어졌다.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텅 빈 상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