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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게임의 악역은 밤마다 여주인공의 꿈을 꾼다-40화 (40/120)

40화.

“당연히 들어드려야죠!”

샤프 백작의 얼굴이 환해졌다.

“거기서 뭘 가지고 나오시든, 공자 소유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샤프를 구해 주셨으니까요.”

***

그들은 다음 날 아침, 해가 밝자마자 출발했다.

광산은 베론 남작령으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말을 타고 꼬박 한나절을 달린 다음에야 첫 번째 광산 입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가 네가 찾던 남부의 티아라다.”

“남부의 티아라…….”

셀린느는 말에서 능숙하게 뛰어내린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광산은 산 중턱에 있었기 때문에 광활한 백작령이 한눈에 들어왔다.

높은 곳에서도 마물 무리가 농작지와 민가를 할퀴며 지나간 흔적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광산 입구를 바라보았다.

마법을 써 만든 듯한 긴 갱도에 심연이 도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들어갈까요?”

레온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라쉬르를 꺼내 어둠을 밝히며 갱도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묵묵히 걸었다.

‘……스테이지, 맞을까?’

셀린느는 네 번째 스테이지를 떠올렸다.

간혹 어둠 속에서 발광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들이 있을 뿐, 이렇게 어두컴컴한 갱도 안이기는 했다.

하지만 스테이지라면 그녀를 위협해 오는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특히, 네 번째 스테이지는…….

“뭐지?”

레온하르트가 우뚝 멈춰 섰다.

“왜 그래요?”

“무언가가 우릴 따라오고 있다.”

“마물인가요?”

“그런 것 같지는 않군.”

네 번째 스테이지의 적은, 정체가 끝끝내 밝혀지지 않는 어둠 속의 위협이었다.

만약 붙잡히게 된다면 플레이어는 어둠 속에서 각종 잔인한 방법으로 사망한다.

셀린느는 잠시 고민했다.

‘맞서 볼까.’

그녀도, 레온하르트도 힘이 있다.

하지만 레온하르트가 마물은 아니라고 판단한 점이 마음에 걸렸다.

만약, 마물이 아니라 그녀가 잘 모르는 이 세계의 무시무시한 몬스터라면?

‘그리고 게임처럼 쫓기는 게 아니라, 맞서 싸우면 클리어 조건을 달성하지 못할지도 몰라.’

셀린느는 레온하르트의 팔을 붙잡았다.

“빨리 가는 게 좋겠어요.”

얼마간 후, 셀린느도 어둠 속에서 그들을 쫓는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

소름이 쭈뼛 돋았다.

시커먼 모니터를 클릭하며 으스스한 음악과 함께 정체 모를 적으로부터 달아나던 공포가 되살아났다.

라쉬르로 어둠을 밝히곤 있었지만, 그들이 나아갈 앞 몇 걸음 정도만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기척은 그들에게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느껴졌다.

“저놈,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셀린느는 네 번째 스테이지에서 플레이어의 뒤를 쫓는 적이 갑자기 느려졌을 때를 기억했다.

힘을 비축했다가 플레이어를 갑자기 덮치기 위해서.

이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해 얼마나 많은 데드 엔딩을 보았던가.

“……뛰어요.”

그들은 전속력으로 갱도를 달렸다.

기척은 그들보다 아주 조금 느린 속도로 쫓아왔다. 셀린느의 목덜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기척이 그녀의 등 뒤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느껴졌다.

‘더, 더 빨리 뛰어야 해.’

숨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마법을 써 땀을 바람에 날리게 할 수도, 추격자를 방해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레온하르트에게 맞서 달라고 했다간 스테이지 클리어 자체가 안 될지도 모른다.

셀린느는 지나치게 빨리 달려 죽지 않기만 바라며 미친 듯이 뛰었다.

마침내, 그들은 셀린느가 떠올릴 수 있는 기역 자형 코너에 도달했다.

코너를 돌아가기 직전, 자물쇠가 달린 쇠사슬로 묶인 작은 나무 문이 보였다.

“들어가나?”

“네.”

레온하르트는 곧바로 라쉬르로 쇠사슬을 내리쳤다.

-끼이익

나무문은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궤짝이 있어!’

셀린느는 재빨리 문으로 뛰어 들어가 궤짝을 열었다. 평범해 보이는 암녹색 로브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로브로 몸을 가리면 추격자는 더는 플레이어를 쫓아오지 않는다.

“레온하르트!”

“……?”

레온하르트는 머리 위로 로브를 뒤집어쓴 셀린느를 어리둥절하게 쳐다보았다.

셀린느는 레온하르트에게로 바짝 다가가 로브를 들어 올렸다.

“같이 덮어요.”

“무슨 소린가?”

“어서요!”

셀린느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는 레온하르트의 머리 위로 로브 자락을 덮었다.

게임 속 플레이어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고도 남는 크기였기 때문에 두 사람이 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제 나가요.”

“……?”

셀린느는 레온하르트의 팔을 잡아끌며 재촉했다.

순간, 레온하르트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지만 거부하지 않고 그녀에게 끌려 순순히 문을 나섰다.

“기척이 사라졌군.”

“이걸 덮고 있어서 그래요.”

“이것도 꿈속에서 봤나?”

“네.”

레온하르트는 무척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코너를 돌아 길을 계속해서 걸어갔다.

‘따뜻해.’

셀린느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한기 서린 동굴 안에서 레온하르트와 함께 로브를 덮으며 걸으니 점점 몸이 따뜻해졌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레온하르트의 몸에 살짝 기댔다.

‘……?’

갑자기, 레온하르트가 몸을 흠칫거렸다.

“왜 그래요?”

“아, 아무것도 아니다. 로브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벗으면 안 되겠나?”

“안 돼요. 불편해도 좀 참으세요.”

“……알았다.”

그 뒤로도 레온하르트는 몇 번을 더 흠칫거렸고, 그때마다 로브 핑계를 대었다.

‘어지간히 불편한 모양이네.’

하지만 지금은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상황이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드디어!’

청회색 눈에 환희가 차올랐다.

저 멀리서 신선한 바깥바람이 훅 끼쳐 왔고, 통로의 끄트머리에선 햇살이 반짝였다.

마침내, 갱도는 드디어 끝이 났고 그녀는 보이지 않는 위협의 마수에서 벗어났다.

조금만 더 걸으면 된다. 조금만 더 걸으면, 이 갱도를 빠져나가서…….

하지만 갱도의 끝에 다다른 순간, 셀린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깊다 못해 푸르른 호수가 그들의 앞에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다섯 번째 스테이지였다.

레온하르트의 어리둥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샤프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꿈에서 나왔어요.”

“……보통이 아닌데. 북부로 돌아가면 우리 가문의 정식 예언자로 채용해야겠어.”

셀린느는 레온하르트의 농담에도 웃지 못했다.

그들에게서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물가에 번듯한 노란색 보트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걸 타고 건너야 하나?”

레온하르트가 천천히 보트로 다가갔다.

“안 돼요!”

셀린느가 소리쳤다.

“왜지?”

“그걸 타면 죽어요.”

“…….”

레온하르트는 보트로부터 몇 걸음 물러섰다. 셀린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레온하르트는 이 게임의 악역이니 그녀만큼 쉽게 죽진 않겠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그럼, 돌아가야…….”

“아뇨.”

셀린느는 입술을 짓이겼다.

“여길 건너가야 해요. 헤엄쳐서.”

레온하르트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할 만해요. 물고기들은 살갗을 물어뜯으려고 덤비고 해초들은 발목을 묶어 물귀신이 되게 하려고 하지만.”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레온하르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지만, 셀린느는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여긴 정말, 정말 조심해야 해요.”

“여태까지 더 위험해 보이는 곳들도 순조롭게 지나왔지 않나.”

셀린느는 빠르게 대답했다.

“유독 무서운 꿈이었으니까요.”

다섯 번째 스테이지는 혼신의 화살표 키 컨트롤을 해야만 클리어가 가능한 곳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리 유연하게 움직이지 못한다.

믿을 건 링조르뿐.

셀린느는 숨을 깊이 들이켰다.

“레온하르트, 이 호수는 저만 지나가는 게 좋겠어요.”

“왜지?”

레온하르트는 다소 날카롭게 반응했다. 셀린느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레온하르트라도 바로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 위험해요. 죽거나 다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네가 죽는 걸 그냥 보고만 있으란 말인가?”

“다시 살아날 테니 상관없잖아요! 하지만 레온하르트가 죽거나 다치면, 그걸로 끝이란 말이에요!”

“셀린느.”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수심 깊은 바다처럼 새파란 눈이 자신을 깊숙이 바라보고 있었다.

“상관없지 않아. 나에게도, 네게도 상관없지 않다.”

“하지만…….”

“그리고 날 좀 믿어 줬으면 좋겠군. 죽다가 살아나는 재주가 없어서 미덥지 않은 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

자신이 그를 믿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를 레온하르트가 정확히 집어냈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다.

셀린느는 한숨을 내쉬었다.

“같이 가요. 대신,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요. 좀만 다쳤다간 억지로 입을 벌리고 약을 부어 버릴 테니까.”

“누가 할 소릴.”

레온하르트는 물에 들어가기를 앞서, 조사를 어느 정도 해 보기를 원했다.

셀린느는 그가 라쉬르를 물속에 집어넣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레온하르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왜 기분이 좋아 보이지?’

무언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이미 한 발짝 늦은 후였다.

“레온하르트!”

호수 전체가 부글거리더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온천과 같은 꼴이 되었다.

셀린느는 죽은 식인 물고기들이 배들 뒤집으며 떠오르는 모습을 안절부절못하며 바라보았다.

“레온하르트, 이건…….”

“네가 위험하다고 느낄 정도면, 위험 요소를 없애 주면 그만이다.”

레온하르트는 천천히 라쉬르를 빼냈다.

“아직 살아남은 독종들이 느껴져. 하지만 수가 훨씬 줄었겠지. 온도는 적당히 식혀 놓았으니, 바로 들어가면 된다.”

“……고마워요.”

셀린느는 간신히 냉정을 되찾았다. 생각해 보니 게임과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아직 살아남은 식인 물고기가 있다고 하니, 적을 피해 호수를 가로질러야 하는 조건은 동일했다.

-풍덩!

셀린느는 숨을 한 차례 크게 들이켠 다음 바닥이 보이지 않는 호수에 뛰어들었다.

호수의 물은 속까지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차갑다고 서술되었던 게임과는 달리, 레온하르트가 적당한 온도로 맞춰 놓아 따뜻했다.

온천물에 목욕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녀를 물어뜯으려고 달려드는 식인 물고기들만 아니라면.

셀린느는 링조르를 휘두르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식인 물고기들을 하나씩 처치했다.

식인 물고기들은 하나같이 재빠르고 크기가 작아 저격하기 힘들었지만, 그간 링조르를 사용한 덕에 세밀한 마법에 숙달되어 있어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링조르가 아니라 일반 마법을 썼다면 진작 물어뜯겼을지도…….’

얼마 못 남아가 도저히 숨을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허푸!”

셀린느는 수면 위로 올라가 크게 숨을 들이쉰 다음, 다시 잠수했다.

마음만 같아선 헤엄만 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하반신이 식인 물고기들에 물어뜯길 것이다.

몇 번을 수면 위로 올라가고, 다시 내려오기를 반복한 셀린느의 눈에 작은 모래섬이 보였다.

‘저기야…….’

이제는 기뻐서 흥분할 기운도 없었다.

셀린느는 간신히 모래섬 위로 올라갔다.

‘……!’

그녀가 기억하는 다섯 번째 스테이지의 클리어 보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여태껏 본 그 어떤 장신구보다도 화려한 티아라가 모래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자수정, 오팔이 알알이 박혀 휘황찬란하게 번쩍였다.

셀린느는 티아라의 한가운데에서 그 어느 보석보다도 환하게 빛나는 검붉은 돌을 알아보았다.

마력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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