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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게임의 악역은 밤마다 여주인공의 꿈을 꾼다-2화 (2/120)

2화.

셀린느의 동공이 커졌다.

‘이럴 리가 없는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다 해도 이렇게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손을 떨며 뒷걸음질 쳤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귓가까지 울리는 듯했다.

“역시 네가 뭔가를 했군.”

남자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셀린느는 가슴을 치고 싶었다. 얼굴을 본 순간 알아차렸어야 했다.

갈까마귀의 날개처럼 새카만 머리칼, 야수의 눈처럼 느껴지는 새파란 눈, 창백한 피부까지 전부 게임 속 레온하르트 베르누이를 쏙 빼닮았다.

하지만 2차원 캐릭터가 실제 사람이 되어서, 그것도 사람 혼을 쏙 빼놓는 미남이 되어 나타났는데, 쉽게 알아볼 수 있을 리가……!

레온하르트 베르누이가 셀린느를 향해 성큼 다가왔다. 셀린느는 더는 생각하지 않고 등을 돌려 뛰었다.

레온하르트는 유저 최대의 적이었다. 데드 엔딩 109가지 중 48개가 그에게서 비롯되었기에 레온하르트의 그림자만 보여도 유저들은 치를 떨었다.

‘첫 번째 스테이지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지금은 튜토리얼이다.

본디 레온하르트는 북부 대공의 촉망받는 후계자였다가, 모종의 사건을 통해 살인을 즐기는 살육귀로 변한다는 설정이었다.

하지만 흑화한 레온하르트가 찾아와 셀린느를 죽여 대려면 5년은 더 흘러야 했다.

‘왜, 왜 나타났냐고! 흑화하려면 멀었잖아!’

레온하르트가 냅다 던진 질문 따윈 이미 셀린느의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엔 오직 자신을 맹수처럼 추격하는 레온하르트로부터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허억, 허억……!”

셀린느는 저택의 계단을 뛰어올랐다. 밟으면 균형을 잃고 추락사하는 몇몇 계단을 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서라, 흑마녀!”

순간 서러워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다.

‘내가 흑마녀라니!’

진짜 흑마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당장 레온하르트를 두꺼비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텐데.

셀린느는 망설임 없이 복도를 내달렸다. 돈과 음식을 찾기 위해 수십 번이 넘게 죽어 가며 이 미로 같은 저택을 뒤진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셀린느는 레온하르트 역시 이 저택을 수십 번 경험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바로 그녀가 죽어 가는 꿈을 통해서.

셀린느는 무서운 기세로 뒤따라오는 레온하르트 때문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괴물 자식, 여기 처음 오는 거 맞아? 하드코어 모드에서도 저 정도로 잘 따라오진 않았잖아!’

막다른 복도 끝에 좁은 계단 하나가 보였다. 이제 갈 수 있는 곳은 단 하나였다. 지붕으로 나가는 다락방.

셀린느는 초조하게 입술을 핥았다. 셀린느가 된 이후 단 한 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지붕은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었기에.

‘그래도…… 붙잡히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게임과 달리 죽어도 세이브 포인트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 잔학무도한 레온하르트에게 잡혔다간 끝없이 죽었다 되살아나는 것만 반복할 것만 같았다.

‘내가 되살아난다는 걸 확인하면 용광로 속에 던져 넣을지도 몰라. 되살아나자마자 불에 녹아내리도록…….’

셀린느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계단을 뛰어올랐다. 다락방으로 들어가는 문을 들어 올리니 경첩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먼지 냄새가 훅 끼쳐 왔다.

먼지 구덩이 속으로 몸을 던졌다.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몸을 벌떡 일으키니 지붕으로 나갈 수 있는 창문이 보였다.

“……크윽!”

다락방 바닥의 문이 벌컥 열리며 레온하르트의 조각 같은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쿵, 쿵, 쿵.

심장이 거세게 뛰다 못해 전신이 덜덜 떨렸다. 셀린느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잡히고 싶지 않았다.

셀린느는 창문을 벌컥 열고 몸을 잡아뺐다. 지붕은 손바닥만 한 폭이었지만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뭐 하는 짓이냐!”

레온하르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셀린느는 지붕에 한 발을 올려놓았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자신이 죽지 않고 무사히 지붕을 통해 달아날 확률은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얌전히 레온하르트에게 잡힐 수는 없었기에, 셀린느는 그 미약한 가능성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역시나 운은 따르지 않았다.

지붕 위를 조심스레, 한 걸음 내디딘 순간.

-쾅!

고통이 셀린느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 짧은 순간에 청회색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넘쳤다. 정말, 정말 죽고 싶지 않았다.

하루에 몇 번씩 죽어도 죽음엔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었고, 고통은 조금씩 그녀의 이성을 갉아먹었다.

간신히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노력하면 덜 죽을 수는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레온하르트가 나타났다.

예상보다 5년이나 일찍.

이제는 그나마 적게 죽으려는 그 어떤 노력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오직 끝없는 고통만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발, 제발 레온하르트에게 일말의 자비심이 남아 있기를…….’

마침내, 셀린느의 눈이 감겼다.

“미친……!”

레온하르트의 욕이 먼지투성이 다락방에 울려 퍼졌다.

저 마녀가 무슨 짓을……!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니 셀린느 헌트는 목이 괴상하게 꺾인 자세로 바닥에 너부러져 있었다. 반짝이는 금발은 순식간에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로 뒤엉켰다.

레온하르트는 성급히 다락방을 뛰쳐나간 다음, 저택을 빠져나갔다. 수십 번 꿈속에서 본 구조라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셀린느 헌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레온하르트는 그녀의 코에 조심스레 손을 가져다 댔다. 미약한 숨결도 느껴지지 않았다.

‘…….’

피가 식었다.

셀린느 헌트는 방금, 실제로 죽었다. 바로 레온하르트 자신 때문에.

동시에 그녀는 본인의 결백을 입증했다. 흑마녀라면 겨우 이 정도 추락에 죽을 리가 없을 테니.

레온하르트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죄책감이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해를 끼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단지 진상을 캐내려고 하였을 뿐인데 여자는 자신의 말을 듣자마자 달아났다.

마치 잡혀서는 안 되는 사람처럼.

순간 흑마녀일지도 모른다는, 자신의 악몽이 이 여자 탓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돋아 쫓았을 뿐이다.

레온하르트는 초조하게 눈을 깜박거렸다. 어쨌든 자신 때문에 사람이 죽었으니 관청에 보고하여 마땅한 죄의 대가를 치러야…….

“뭐지?”

레온하르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셀린느 헌트의 기묘하게 부러진 목이 돌아가더니 커다란 청회색 두 눈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뭐, 뭐야…….”

레온하르트는 저택 안에서 그녀를 추격할 때에도 꺼내지 않았던 검, 라쉬르를 꺼내기 위해 손을 허리춤에 가져다 댔다.

아무리 강한 마법이라 한들 죽었다가 다시 되살아날 수는 없다.

자신을 흑마법으로 미혹해 죽은 척했을 뿐이리라.

“제, 제발 죽이지 마세요!”

“흑마녀! 나 레온하르트 베르누이가 라쉬르의 주인으로서 널 처단하겠다! 영광으로 알라!”

셀린느는 울고 싶어졌다.

저 멍청한 인간이 또 자신을 죽이려 들고 있다.

추락사한 고통이 아직 생생한데, 사람을 일곱 조각으로 쪼개 놓는 라쉬르에 당한다면 미쳐 버릴 것이다.

라쉬르의 검날이 푸르게 달아올랐다. 셀린느는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라쉬르로 베어 봤자 전 되살아나요!”

“뭐……?”

격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셀린느는 살며시 눈을 떴다. 레온하르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훑고 있었지만, 어느새 라쉬르를 검집에 집어넣은 걸 보니 아주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어떻게 죽든, 전 다시 살아날 거예요.”

“……하지만 라쉬르는 다르겠지.”

레온하르트의 대답은 완고했지만, 셀린느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똑같아요. 죽고, 다시 살아나겠죠.”

라쉬르는 그녀에게 여태껏 느껴 보지 못한 고통을 안겨 주겠지만 목숨을 영원히 끊어 놓지는 못할 것이다.

“믿을 수가 없군. 방금도 죽긴 한 건가? 죽은 척한 게 아니고?”

셀린느는 침을 꼴깍 삼켰다.

‘다시 죽었다 살아나는 걸 눈앞에서 봐야지만 완전히 믿으려나.’

그녀는 천천히 집으로 걸어갔다.

“따라오세요.”

다행히 레온하르트는 셀린느를 멈추라며 위협하는 대신 순순히 뒤를 따랐다.

셀린느는 현관에 서서 침을 꼴깍 삼켰다. 박제된 사슴의 머리가 그녀를 음흉하게 내려다보았다.

사슴 밑 수납장을 잡아당기면 맹독 가루가 그녀를 덮칠 것이다.

‘……뭐, 아주 아픈 죽음은 아니었으니까.’

문득 겪은 지 한 달이나 지난 죽음이기에 미화된 기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셀린느는 진저리쳤다.

하지만 어떻게든 레온하르트를 납득시켜야 했다.

셀린느는 수납장을 열기 위해 팔을 뻗었지만,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한순간 몸이 땅에서 붕 떴다. 레온하르트가 소리치며 그녀를 세차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무슨 짓이냐!”

“놔 주세요. 이상한 짓 하려는 게 아니니까.”

셀린느는 짜증스레 대답하다 곧바로 얼어붙었다.

레온하르트의 입에서 절대 나올 수가 없는 말이 튀어나왔기에.

“미쳤어? 또 죽으려고?”

셀린느는 당황한 얼굴로 입을 뻐금거렸다. 머리가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했다.

“어떻게…… 어떻게?”

“맞았군.”

레온하르트는 말보다는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토해 냈다.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

눈앞의 여자는 정말로 죽으려 했다.

꿈속에서처럼.

‘……!’

순간, 깨달음이 그를 강타했다.

그는 아직 멍한 얼굴의 여자를 조심스레 흔들었다.

“정신 차려. 혹시 독사에 물려 죽은 적이 있나?”

“……어제였어요.”

“그저께는? 아니, 내가 말해 보지. 녹슨 샹들리에가 떨어져 목이 부러졌다, 넌.”

“그리고 집안의 샹들리에를 다 떼려다 두 번 더 죽었고요.”

여자는 여전히 어리둥절해 보였지만, 레온하르트의 말에 꼬박꼬박 대답했다.

“……맞아. 맞아!”

레온하르트의 목소리엔 묘한 흥분이 번뜩였다.

“하! 신이시여, 드디어 제가 안식을 찾았나이다.”

셀린느는 잔뜩 상기된 얼굴의 레온하르트를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네가 내 꿈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네? 저요?”

셀린느는 깜짝 놀라 혀를 씹을 뻔했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소리를 아까 레온하르트가 한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도저히 들을 정신이 아니었지만.

“그래. 날마다…… 날마다 나타나.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설마…….”

셀린느의 시선이 레온하르트의 짙은 다크서클에 머물렀다. 그제야 그녀는 레온하르트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깨달았다.

“제가 죽는 걸 보는군요. 꿈속에서. 그래서 잠을 자지 못해 절 찾아낸 거고.”

“끝도 없이 죽더군.”

셀린느는 쓰게 대답했다.

“정말로 그렇게 죽었으니까요. 이건 저주예요. 끝없이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

레온하르트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 작은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깡 좋게 달아나길래 눈치채지 못했는데, 가까이서 관찰하니 무척 가녀린 여자였다.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비쩍 마른 몸이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얇은 드레스를 입고 떨고 있었다.

“……이러니 그렇게 죽어 대지.”

“뭐라고요?”

레온하르트는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엄숙하게 선언했다.

“셀린느 헌트, 앞으로 죽는 걸 불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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