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게임의 악역은 밤마다 여주인공의 꿈을 꾼다
1화.
에이브 거리에는 귀신의 집이 있다.
한때는 제법 화려했겠지만, 지금은 성한 창문 하나 없고 곰팡이로 뒤덮인 으스스한 대저택은 동네 아이들의 담력 시험 장소였다.
몇 주 전, 한 여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 멍청이들아, 좀 꺼져!”
쌀쌀한 날씨에도 얇은 여름 드레스를 입고 산발 머리를 한 초라한 여자는 빗자루를 들고 아이들을 쫓아냈다.
“으아아악!”
“흑마녀다!”
“……휴.”
셀린느는 도망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 아이들은 그녀가 이 저주받은 집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 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사실 아이들이 죽든, 죽지 않든 그녀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무고한 생명이 스러지게 할 순 없었다.
셀린느가 양지바른 곳으로 몸을 옮기려던 때였다.
“아악!”
순간 발목이 불타오르는 듯했다. 셀린느는 비명을 내지르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독사가 꿈틀거리더니, 그녀의 발목에 독니를 한 번 더 박았다.
“아아아악!”
셀린느는 발목을 부여잡으며 반쯤 굴렀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곧 고통은 그녀의 전신을 파먹었고, 수십여 분을 몸부림친 뒤에야 어둠이 찾아왔다.
싸늘하게 식은 그녀의 시체를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셀린느 헌트의 84번째 죽음이었다.
***
“허억……!”
한 사내가 어둠 속에서 소스라쳤다. 식은땀이 창백한 피부를 타고 흘러내렸다.
“또, 그 꿈인가.”
북부의 젊은 늑대, 레온하르트 베르누이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새 한 마리 울지 않은 고요한 밤이었으나 쿵쾅대는 심장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다시 잠이 들어도 또 그 여자, 셀린느가 나타나리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레온하르트는 눈을 감았다.
조금 전 자신의 꿈속에서 독사에 물린 발목을 부여잡고 울부짖던 여자의 모습이 선명했다.
-아아아악!
창백하게 질려 가다, 이내 숨이 끊어지는 모습도…….
“우욱!”
토기가 올라왔다. 레온하르트는 하인이 미리 준비해 둔 시원한 물을 들이켰다.
‘미쳐 버리겠군.’
이로써 그는 정확히 39일째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매일 밤 꿈속에 셀린느라는 여자가 나타나 처참한 모습으로 죽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여자가 죽으며 겪는 고통과 비통함, 억울함까지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처음 며칠간, 여자는 그저 공포에 질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여자의 정신은 피폐해져 자기 자신의 이름, ‘셀린느’를 부르짖으며 저주하기까지 했다.
대공의 후계자가 날마다 초췌해져 가는 모습에 모두가 걱정했지만, 명의도 대마법사도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어떻게든 그 여자를 찾아야 하는데…….”
이미 보름 전, 베르누이가의 정보망을 동원해 그 여자를 찾아내라는 명을 내렸다.
하지만 아무리 인상착의를 자세히 알려 준다 한들 제국은 넓고 셀린느는 흔한 이름이었다.
정보원들이 데려오는 여자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기에 레온하르트의 짜증은 극에 달해 있었다.
그 여자가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대공가의 일원들 사이에 퍼져 나갔지만, 레온하르트는 단 한마디로 일축했다.
‘그냥 알아.’
레온하르트의 감은 그녀가 이 제국 어딘가에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간 무수히 많은 적들을 베어 온 그의 감은 틀린 적이 없었기에, 레온하르트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오늘도 못 주무셨습니까.”
등 뒤로 깃털처럼 가벼운 인기척과 함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온하르트는 서서히 돌아섰다. 누구도 눈치챌 수 없게 몰래 들어온 베르누이가의 정보원이 무릎을 꿇었다.
“찾았습니다.”
레온하르트는 눈썹 하나 꿈틀대지 않았다. 실망은 여태껏 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20살. 풀네임은 셀린느 헌트. 몰락 귀족의 딸로 황도의 변두리에 혼자 살더군요. 가족은 몇 년 전 사고로 죽었다고 합니다.”
레온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꿈속의 여자와 정확히 부합했다.
“데려왔겠지? 당장 확인하겠다.”
“그게…….”
정보원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상하게도 그 여자를 데리고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소리지?”
“아무리 감시를 해도 어느샌가 사라져 버려서…….”
기묘한 확신이 레온하르트를 사로잡았다. 범상치 않은 악몽이다. 그 주인 역시 범상치 않은 게 당연하다.
“내가 직접 가 보겠다. 마침 아버지께서 리카르도 전하께 서한을 보낸다고 하셨으니, 직접 전하면 되겠지.”
“공자님!”
정보원이 고개를 들고 만류했다.
“당연히 아시겠지만, 그 여자도 그 여자가 사는 집도 보통 음산한 게 아닙니다. 흑마녀일 수도 있습니다!”
레온하르트는 피식 웃었다.
“음산하다니, 세간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소리가 아니던가?”
“공자님!”
정보원이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게다가 흑마녀면 어떤가. 라쉬르로 그들을 베는 게 내 일인데.”
레온하르트는 침대 옆 세워 둔 명검, 라쉬르를 애정이 담긴 눈길로 바라보았다.
푸른 불길로 모든 마법을 무효화시키고 적에게 극한의 고통을 가져다주는 라쉬르를 뽑을 수 있는 자는 제국에서 오직 그 하나였다.
정보원의 입에서 마지못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공자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레온하르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괜한 걱정 하지 말도록.”
정보원은 입을 얌전히 다물었다. 레온하르트가 무언가를 결정했을 땐, 대공 부부조차 그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으니까.
다음 날.
레온하르트 베르누이는 수행원 하나 없이 황도를 향해 말을 달렸다.
***
“죽는다, 안 죽는다, 죽는다, 안 죽는다…… 죽는다.”
셀린느는 데이지 꽃을 한 잎 한 잎 떼며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역시나 오늘도 죽을 운명인 모양이었다.
‘어떻게 죽으려나.’
독사의 이빨도 쉽사리 뚫지 못할 두꺼운 부츠를 꺼내 신었다. 벌에 쏘이는 게 두려워 꽃도 조심스레 뜯었다.
불을 낼까 봐 녹슨 화덕에 불 한 번 올리지 않았다. 파상풍이 걱정돼 항상 장갑을 착용했다.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셀린느는 죽을 것이다.
그녀는 공포 게임, [셀린느의 악몽]의 여주인공이니.
너무 많이 울어 더는 흐를 것도 없다고 생각한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툭, 떨어졌다.
‘힘들어…….’
공포 영화와 공포 게임을 좋아한 게 천인공노할 죄라도 된다는 말인가?
[셀린느의 악몽]은 그런 그녀를 잘 아는 친구가 추천해 준 게임이었다.
그녀는 귀여운 캐릭터가 저주받은 저택에서 살벌한 데드 엔딩을 겪으며 진행되는 스토리에 흠뻑 빠져들었다.
온종일 플레이한 끝에 주인공이 간신히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나 행복해지는 첫 엔딩을 보고, 스토리의 진면목을 알려 준다는 진엔딩을 보기 위해 두 번째 플레이를 시작하려는 순간…….
그녀는 튜토리얼 시점의 ‘셀린느’가 되어 있었다.
셀린느가 새로운 삶에서 가장 먼저 익숙해져야 했던 건 바로 죽음이었다.
오늘로 빙의한 지 정확히 41일째. 그동안 셀린느는 수없이 죽었다.
첫날, 다섯 번 죽었다.
둘째 날엔 세 번이었다.
셋째 날엔 죽음이 두려워 온종일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어 보았다.
아주 멍청한 짓이었다.
실제 게임 속 셀린느가 그랬던 것처럼, 점차 사지가 마비되더니 숨조차 쉬어지지 않아 질식하고 말았으니까.
죽음들은 하나같이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죽음보다도 더욱 셀린느를 공포에 질식하게끔 만드는 건 지금이 가장 나은 시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셀린느는 현재 20살. 아직 튜토리얼 나이에 불과했다.
튜토리얼이 끝나면 시작하는 본편의 첫 번째 스테이지에서의 셀린느는 25살이었다.
즉, 5년 후엔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처참한 데드 엔딩들이 휘몰아칠 것이다.
셀린느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차라리 실제 게임처럼 세이브 포인트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셀린느는 단지 끝없이 되살아날 뿐이었다. 서서히 사라지는 죽음의 고통을 계속해서 느끼면서.
당장 어제만 해도 그랬다.
독사에 물려 죽은 후, 깨어나 보니 발목의 상처는 여전히 아렸고 독 때문에 몸 전체가 시큰거렸다.
화재로 죽은 날도 마찬가지였다. 깨어나 보니 셀린느는 잿더미 속에서 콜록대고 있었고, 온몸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불사신이네. 불사신 셀린느!”
셀린느는 짐짓 유쾌한 듯 소리쳤다.
최근 들어 뭐라도 지껄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혼자니 볼 사람도 없다.
‘아, 그 사람들 빼고.’
셀린느는 얼굴을 팍 찌푸렸다.
며칠 전 분명 게임 속에서 본 기억이 없는 시꺼먼 복면을 쓴 자들이 나타나 혼비백산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셀린느를 사로잡았고, 저택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 했다.
솔직히 말해, 셀린느는 조금 기뻤다.
사방에 죽음이 도사리는 이 저택에서 빠져나갈 수가 있다니!
하지만 기대는 순식간에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꽁꽁 묶인 채 마차에 실린 셀린느는 어느 순간 저택 안으로 돌아와 있었다.
혼자 탈출하려 해 보았던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인간들은 튜토리얼의 일부일까?’
귀찮다고 튜토리얼을 반쯤 하다 스킵해 버린 게 화근이었다. 셀린느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이 셀린느를 죽이지 않는 이상, 신경 쓸 일이 못 된다.
근래, 그녀의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한 번이라도 덜 죽을지에 관한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게임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나, 이 계속되는 죽음을 멈출 근본적인 방법이 있으리라는 희망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게임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를 하면 할수록 그녀는 더욱 처참히 죽을 뿐이었으니까.
셀린느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얇은 드레스 차림이었기에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빨리 들어가지 않는다면 독감으로 죽을 것이다.
-덜컥!
대문이 활짝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셀린느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저절로 눈이 커지면서 입이 벌어졌다.
정말…… 정말 잘생긴 남자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셀린느를 직시하고 있었다. 새파란 눈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에 불타올랐다.
“누…… 누구세요?”
셀린느의 입에서 얼빠진 물음이 흘러나왔다. 홀린 듯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머리가 멈춘 것 같았다.
바보처럼 느껴진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장인이 혼을 담아 깎은 그리스 조각이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믿어 버릴 것 같은 미남이었으니.
사파이어처럼 번뜩이는 눈 밑의 짙은 다크서클마저 우수에 젖은 미남자의 필수품처럼 보였다.
남자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섹시한 입매가 움직였다. 셀린느는 입술의 움직임을 홀린 듯 따라갔다.
가슴 한편에서 이 남자는 대체 누구길래 불쑥 들어왔냐는 경고음이 울렸지만 셀린느는 무시하고 말았다.
잘생긴 입술에서 나직한 미성이 흘러나왔다.
“다 죽어 갈 줄 알았는데, 아주 멀쩡해 보이는군.”
“네……?”
“말해 봐. 대체 왜 내 꿈에서 죽어 대는 거지?”
“누, 누구세…….”
셀린느는 입을 다물었다. 남자의 오른쪽 가슴팍에 수 놓인 문양을 알아본 탓이었다.
가시덩굴에 갇힌 새하얀 장미.
베르누이 대공가의 문장.
남자는 [셀린느의 악몽]의 악역, 레온하르트 베르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