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 4화
나네트는 몸속의 피가 식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황제의 책상에 놓여 있던 게 그저 고발 서신이 아니라 불온한 무언가였다면 어찌할 뻔하였는가.’ 당시 나네트는 대노했었다. 두렵다기보다는 노여웠다. 당시에는.
나네트의 찬란하고 우아한 금색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을 죽이지 않는 건 당신이 살아서 고통받기를 원해서입니다. 제가 당신을 죽일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
대공은 황제에게 예의를 갖추어 딱 떨어지는 우아한 성장을 하고 왔다.
앉아 있는 자세 또한 온느발레 귀족들과 다름 없이 적당했다. 오만하지도 않고 비굴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황제는 이 순간 자신이, 저 권태로운 눈을 한 대공의 아래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단단한 몸을 가진 이 대공이 그녀에게 칼을 겨누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곧 그녀를 죽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게……. 이거, 설마, 공포인가?
피가 식고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황제는 눈앞의 대공이 처음으로 두려워졌다.
부황과 모후를 제외하면, 그녀가 태어나 처음으로 진정 두려움을 느끼는 첫 타인이었다. 황제는 뮌제에게도 이런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나네트는 손끝이 차가워졌음을 인식했다.
그 인식을 기점으로 그녀는 깨어났다. 억지로, 애써, 이성이 비집고 들어왔다. 그녀는 황제였다.
나네트는 태어난 이래 단 한 번도 대공 따위에게 두려움을 느낄 위치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 여전히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위대한 온느발레의 지존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조금 전 느낀 감정 자체에 수치스러워하며, 또한 노했다.
“대공…….”
“그러니, 예, 폐하, 답을 가지고 가십시오. 이제부터 에흐베는 당신과 온느발레를 대적하겠습니다.”
에흐베 대공이 온느발레 황제에게 선전포고했다.
설마 했던 일이 일어났다.
황제에게도 온느발레에 소국이 덤벼들 수 있다는 개념은 있었다. 아주 희미하고 옅게 뇌리에 발린 개념이었다. 그러나 현실로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고, 사실 그녀에게 왕국을 잘 다독여 주는 편이 좋다고 가르쳐 주었던 스승들조차도 감히 어떤 나라가 온느발레에 실제로 반기를 들고 일어날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다.
나네트는 크게 기막혀했다. 그리고 아주 약간 당황했다.
“로헤올 공작 때문에?”
“…….”
“단 한 사람 때문에 그대의 나라를 혼란으로 빠뜨리겠다고?”
“전前 로헤올 공작입니다. 온느발레를 떠난 사람을 당신의 제후처럼 부르지 마십시오.”
“…….”
“그리고 내 나라가 혼란할 일은 없습니다.”
내.
여태 유창하게 유려한 온느발레어로 말하던 에흐베 대공이 이제 와서 실수했을 리는 없었다.
나네트는 뒤늦게, 라파엘이 언제부턴가 그녀를 당신이라고 거침없이 지칭하고 있었던 걸 깨달았다. 이, 개새끼가.
황제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눈이 시렸다. 나네트는 싸늘하게 말했다.
“여기에서 내, 나의 온느발레를 걸고 맹세하건대, 에흐베는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다.”
“…….”
“내 대에서.”
“…….”
에흐베 대공은 에흐베의 멸망을 들었음에도 무덤덤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엄슬한 선포를 들은 적도 없는 것 같은 차분함이었다.
그는 의자 앞을 떠나기 전, 나네트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럴 힘이 당신과 온느발레에는 없습니다.”
낮은 음성은 냉혹하게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