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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서점에서 흑막 바보로 살아남기 (110)화 (110/120)

# 109화

마법사.

라파엘이 마법사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도 잠시였다. 뮌제의 좁아진 시선은 저기 서 있는 라파엘 전부를 어찌어찌 담다가, 그러다가, 라파엘이 밟고 있는 진이 여전히 빛나고 있는 걸 보았다.

둔해진 머리는 이 상황이 불안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째서 불안한 건지는 바로 깨닫지 못했다.

천천히. 천천히 뮌제는 상황을 인식했다.

마법. 진. 저거.

저거.

뮌제는 힘이 돌아오지 않은 손을 덜덜 떨며 뻗었다.

“멈춰…….”

생명의 근원이 넘어오고 있는 중이다.

라파엘이 죽고 있는 중이다.

“라파엘. 멈춰!”

너, 라파엘, 네가 죽고 있는 중이다.

뮌제의 얼굴이 다른 의미로 새하얗게 질렸다. 그 순간, 라파엘이 마법사라는 사실을 엘르시어에게 들키게 된다는 염려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엘르시어가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도 잊어버렸다. 그럴 수밖에. 라파엘이 죽고 있었다.

내가 마법사이고, 네가 실은 마법사여서, 그래서 어린 날의 우리 둘 다 살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지금은 딱 그 정도만 알았다. 정확히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지금은 모른다.

하지만 그게 그 어린 날의 기적이었던 건 지금 이 순간 본능적으로 느꼈다.

한 번 생명의 근원을 넘기기 시작했다면 멈출 수가 없다. 라파엘이 죽을 것이다. 뮌제는 뻗었던 손을 내려, 눈이 사라진 차가운 땅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흙먼지가 들어왔다.

뮌제는 다른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다.

뮌제의 아래에 라파엘의 것과 같은 진이 떴다. 땅에서부터 시작된 빛이 뮌제의 얼굴을 밝혔다.

라파엘은 뮌제의 밑에 그 진이 뜨는 걸 보고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뮌제가 켈록, 마른 기침을 했고, 잔 핏방울이 튀었다.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에서 다시 생명이 라파엘에게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두 사람의 심장이 또다시 얽혔다.

묶였다가 풀고, 너무도 간만에 만난 서로를 지나쳐 서로가 여태 고여 있던 곳으로 향했다.

또다시 기적은 일어나는 중이었다.

생기가 빠져나가던 라파엘의 얼굴도 서서히 혈색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뮌제를 바라보기만 하던 라파엘은 비틀비틀 다가와 그녀의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그리고 뮌제를 꽉 끌어안았다.

“…….”

연금술을 기반으로 하여 목숨을 옮기는 마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두 마법사는 아직 엎치락뒤치락하며 서로를 살리고 있었다.

뮌제는 자신만큼이나 뜨거운 라파엘에게 멍하게 안겨 있다가, 제 몸까지 전해지는 떨림과, 목덜미로 떨어지는 뜨거운 것을 느꼈다.

뮌제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울어?

그녀는 살며시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지금 볼 수 있는 건 눈꼬리 시야에 들어오는 라파엘의 회색 머리카락뿐이었다.

“라……파엘?”

“…….”

그 조심스러운 부름에 라파엘은 그녀를 더, 더 품에 안았다.

뮌제는 제 등을 누르고 있는 손이 아주 뜨겁다는 것, 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가만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다가, 코가 알싸해지는 걸 느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소년 소녀일 적, 아마 라파엘이 아팠던 날이었던 것 같다.

그녀가 라파엘을 살리고 죽으려 했던 날. 아마도 그날.

그날 뮌제는 라파엘의 눈물을 마지막으로 닦아주었다. 이후로 라파엘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라파엘이 울고 있다.

라파엘. 네가.

내 사람. 사랑하는 사람. 윌리엄이 살아 있을 때부터 이미 유일했던 사람.

보고 있는데도 그립고, 이미 사랑하는데 계속 사랑하게 되는 사람.

로헤올의 역사가 만든 짐과 나의 실수가 만든 짐에 의해 짓눌려 가는 나를 끊임없이 건지고 건지며 제정신으로 버티게 해 줬던 유일한 사람.

지치거든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

나의 구원자.

너.

네가.

네가 울고 있다.

“울지 마…….”

나 때문에 네가 울고 있다.

뮌제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미안해, 라피.”

“죽게 두라고 했잖아.”

라파엘은 잠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시는 이러지 마.]

[왕이 다칠 수도 있었어.]

[응. 그랬겠지. 다치게 둬.]

[…….]

[왕을 죽일 공격이었다 하더라도 그대로 둬. 죽게 둬.]

“다치지 말라고. 너만 위하면서 살라고 했잖아.”

[다치지 마. 건강하게 있어. 건강하게 살아. 너만 위하면서 살아.]

“나와 함께하겠다고 했잖아.”

[네가 역부족이고 내가 역부족이라서 만약 온느발레가 에흐베를 멸망시킨다면, 그래도 끝까지 함께할 거야.]

아직도 뮌제의 어깨 옷자락에는 눈물이 떨어지고 있는데, 목소리는 조금도 떨림이 없었다. 그저 잠겨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 목소리를 듣는데, 그의 말을 듣는데, 왜 이리 아프지.

마침내 뮌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끅. 억누르려 했던 울음이 그녀의 잇새로 새어 나왔다.

그녀는 바들바들 떨리는 두 팔을 들어 라파엘의 등을 마주 안았다.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그녀의 입가가 닿아 있던 라파엘의 어깨를 젖게 했다. 뮌제는 자신을 안은 라파엘을 부둥켜안았다.

그녀가 윌리엄에게 잡혀 그를 살릴 방법을 찾는 동안, 포기하지 않고 그녀를 찾아 헤맸던 라파엘이 말해 주었었다.

[혼자 많이 힘들었지.]

그때, 대답하고 싶었다.

날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마워.

[수고한 거 알아. 노력한 거 알아.]

날 찾아 줘서 고마워.

“사랑해.”

뮌제가 떨며 말했다.

친구끼리 하는 장난이나 농담으로라도 뮌제는 결코 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라파엘의 몸이 굳었다. 그 말을 한 뮌제도 스스로 놀라서 흠칫했다. 뮌제가 그의 등을 놓으려 하자, 라파엘은 그녀를 더 강하게 안았다. 두 사람 아래에 있는 두 개의 진에서 빛이 꺼지기 시작했다.

뮌제의 머리카락이 뿌리에서부터 천천히 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물이 흐르는 것처럼 금색이 내려왔다. 전과 같은 색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제야 모든 것을 끝낸다.

이제야 모든 것을 끝낸 뮌제가 울컥 토해 낸 마음을 들었다.

그녀의 이 고백이 한순간의 방심이었더라도 상관없다. 놓을 생각이 없으니, 상관없다. 라파엘은 낮게 말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연멸하지 않은 마음이었다.

“사랑해.”

마법이 완성되었다.

“사랑해, 뮌제.”

서로를 살리기 위해 생명을 넘기려 했던 두 사람은 또다시 서로를 가지고 살아남았다.

* * *

‘피에 흠뻑 젖은 황제가 왕궁으로 돌아왔다.’

‘뮌제의 서점에 가 보니 그 안은 피가 잔혹하게 튄 살육장이었다. 온느발레인들이 죽었다.’

발롬브로사는 그 보고를 듣고 반사적으로 한 차례 파르르 떨었다. 조절할 수 없었던 충격이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아 가슴이 비는 느낌이 끔찍했다.

왕은 이 순간 가장 염려되는 부분에 대해 가까스로 물었다.

“……클리포드 경은.”

“없었습니다.”

은여우단의 부단장은 이를 악문 발음으로 대답을 올렸다. 왕은 약간 멍해진 머리로 물었다.

“없었다니?”

“없었습니다. 로헤올 전 공작도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시신뿐이었습니다.”

“…….”

발롬브로사는 침묵했다.

죽었나.

설마 죽었나.

로헤올 전 공작을 배려한답시고 한 일 때문에 엘르시어가 죽어 버린 건가.

왕은 눈을 감고 말았다. 미간이 좁아졌다.

엘르시어는 클리포드다. 장차 클리포드 공작이 될 클리포드 후작이다. 엘르시어에게 변고가 있다가는 클리포드 공작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가뜩이나 클리포드의 후계자가 왕의 아래에 들어오는 것에 격분했던 그 공작은 이미 여식을 잃었다.

골치 아프게 됐다. 발롬브로사의 입술 사이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 아니, 잠깐, 라파엘 에흐베의 흔적도 없던가?”

“예.”

“대공이…….”

반쯤은 현실을 잊으려는 마음으로 왕은 의아해했다. 꽤 무서울 정도로 냉철하게 행동하던 에흐베 대공이 이렇게 손 놓고 당했다고?

“…….”

제이는 혈색이 하얗게 가신 무표정으로 제 부친을 보다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저기 멀리에 있는 창문의 바깥을 보았다. 여전한 밤하늘.

전에, 삼 년이 못 미치는 전에, 그가 아직 온느발레에 있을 때, 뮌제는 폭사했지만 라파엘 에흐베는 움직이지 않아서, 제이는 라파엘 에흐베가 어린 시절 머물렀다는 저택에 무작정 서신을 보내어 약속을 잡았다. 그때 잠시 제이가 온느발레를 벗어나 에흐베에 갔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적었다.

라파엘 에흐베는 아티팩트까지도 지원해 주며 순순히 제이를 에흐베로 데려왔다.

그때, 자신이 라파엘 에흐베에게 무어라 했던가.

[당신은 뮌제가 죽어도 멀쩡해. 아무것도 안 해.]

그래,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라파엘 에흐베는 제이의 그 비난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었다. 이제 와서 보면 아무래도 그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이미 조용히 뮌제를 찾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라파엘 에흐베가 이제 와서 뮌제를 혼자 뒀을 리가 없었다.

설마 대공이 황제가 여기에 실은 뮌제를 만나러 왔다는 걸 모를 리도 없고.

뮌제가 능히 황제를 대할 수 있다는 사실은 라파엘 에흐베에게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으리라. 뮌제는 라파엘 에흐베가 잃었다가 되찾은 사람이었다.

그건, 의미가 크다.

제이 자신도 살아 있는 이 사람은 내 것이라며 기뻐했었지 않았던가.

“…….”

젊은 왕자는 피식 웃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왕의 눈길이 따라왔다. 매서운 눈빛이다. 제이는 부친의 그런 눈을 내려다보면서 힘없이 미소지었다.

“이 정도 어울려 드렸으니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제 와서 말씀드리지만, 제가 전하와 함께 있었든 아니든, 그 어떠한 일이 일어났어도 그 일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무슨 말이냐.”

“여기 숨어 있는 이 수많은 자가 전부 아리오인은 아닐 것 아닙니까.”

그 뜬금없는 말에 잠깐 움직임을 멈추었던 발롬브로사는, 은늑대관의 관장을 향해 휙 고개를 돌렸다. 테드 서튼 백작은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은늑대 다섯입니다.”

“은여우 둘입니다.”

은여우단의 부단장은 상황 돌아가는 깐을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눈치껏 이어 대답했다. 제이는 그사이 미소를 지운 지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여섯이 에흐베인이겠군요. 아니면 뮌제 그 사람의 사람이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황제가 보낸 온느발레인이든지.”

제이는 심술궂게 덧붙였다.

발롬브로사의 얼굴에 충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럴 수밖에. 오전부터 여태 누군지도 모를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는 뜻이기에. 제이는 힘이 빠진 소리로 하하 웃었다.

테드 서튼 백작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은늑대, 은여우, 아티팩트를 해제해라.”

그러자 하나둘 곳곳에서 일곱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역시 못지않게 당황한 눈치였다. 제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어떻게 여섯이 더 숨어 있다는 걸 알고 말하는 건지 몰라서 당황한 것이든지, 아니면 다른 자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 자체에 당황한 것이든지.

아리오인들을 말없이 살피던 제이는 빈 곳을 차례대로 여섯 번 가리켰다.

분노한 발롬브로사는 바로 호령했다.

“숨어 있는 너희는 누구냐!”

사실, 여태 왕을 해하지 않고 발롬브로사를 따라다니던 사람들이 설마 황제가 보낸 온느발레인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들은 황제가 아리오에 도착하기 전부터 발롬브로사의 주위에 있었다.

제이는 킥 웃음을 흘리고는 몸을 돌렸다. 그가 방을 빠져나갈 때까지 여섯 중 모습을 드러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그중 하나는 지금 그와 함께 방을 빠져나왔다. 호위 대상 중에 제이도 있음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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