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짜 서점에서 흑막 바보로 살아남기 (95)화 (95/120)

# 94화

마법사는 증오와 혐오, 경멸과 공포의 대상이다.

마법사들이 스스로 유발한 감정들이었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라면 비마법사들의 생명은 얼마든지 거두어 갔다. 비마법사들의 공포가 그들에게는 재미였다. 비마법사들의 짜증이 그들에게는 재미였다.

마법사가 가진 힘은 분명 가치 있다. 귀족들이 눈독 들이기에 좋은 힘이었다.

그러나 마법사를 회유하여 누군가의 충성스러운 손발이 되게 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왕실 마법사다, 황실 마법사다 하는 그 마법사들도 온 마음 다해 왕실과 황실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세상에 장난을 치자니, 장난 후 도주할 자신조차 없을 정도로 약한 마법사이기에 중앙으로 기어 들어온 것뿐.

마법사들은 그 누구에게도 신뢰를 얻지 못했다.

잡아 죽이면 좋을 것들.

한때는 잡아들여져 인체 실험을 당했음에도 비마법사들 중 그 누구도 반발하지 않았을 정도로, 더럽고 천한 개새끼들.

라파엘은 마법사였다.

* * *

사실 로헤올 가문이 특이한 경우였을 뿐, 귀족들은 마법사라 하면 질색을 했다. 자신의 가문에서 마법사가 나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닥칠 불명예가 어마어마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역사서에는 적히지 않았으나, 마법사로 태어나 버려지거나 숨겨지거나 죽임을 당한 귀족 출신 아이들이 많았다.

그 정도로 귀족들에게는 자신의 핏줄에 마법사가 생겨나는 게 치욕이었다.

라파엘의 부모인 에흐베 대공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기껏 낳은 아이가 마법사라니.

더더군다나 에흐베는 그저 평범한 귀족 가문이 아니었다. 공국의 주인이었다.

일국의 군주가 되어야 하는 자가 끔찍한 마법사라니 대공 부부를 당황시키고도 남았다.

두 고귀한 이들은 그들의 갓난아기를 한 번 만지는 것도 버거워했다.

손끝에 아기의 분내 나는 살갗이 닿는 것조차 꺼려 했다.

그래도 저희 아이라고 어떻게든 보듬어 보려 하였으나, 잘 안고 있다가도 문득 흠칫, 잘 어르고 있다가도 문득 화들짝 놀라곤 하였다. 숨기려 했지만, 숨기지 못한 그 감정. 마음 기저에 깔린 두려움이었다.

라파엘이 일곱 살 아이가 되었을 때, 결국 부모는 아이를 포기했다.

사실 그들은 아이가 그 나이가 되기까지를 기다려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말귀를 알아먹도록.

결코, 결코, 어딘가에 가서 마법을 사용하여 대공가에서 마법사가 나왔다는 걸 들키는 일이 없도록.

“그게 아니라면 널 가둬야 한다.”

눈치를 보며 성장해 왔던 일곱 살의 아이는,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해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에게 귀애받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해 왔던 영특한 대공자.

그래 봤자 일곱 살 아이.

아이가 온느발레로의 ‘유학’을 떠나는 그날, 대공은 아이와 함께 보내는 자신의 최측근에게 단단히 일렀다.

“경. 내가 저 아이를 죽이게 하지 마라.”

들키거든 저 아이를 죽일 것이다. 그러니 들키게 하지 마라.

귀족으로서도 아니고, 군주로서도 아니었다.

한 아이의 부친으로서 그는 마지막 남은 부정을 그렇게 표현했다.

별채에 가둬 키우는 더 간단하고 안전한 방법이 있는데도, 대공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아이를 온느발레로 유학 보내는 것이다.

넓은 세상을 보며 성장하여라.

사랑이라면 사랑이었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대공 부부가 라파엘에게 가진 감정은 사랑보다는 혐오가 강했다.

라파엘은 자신이 마법사이기 때문에 부모가 그리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는 마법사가 싫었다. 마법사가 아니면 좋았을 것이다. 마법사가 아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행복했을 것이다.

온느발레에 도착한 아이는 마법사라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증오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증오를 거쳐야만 마법사는 마법사가 되는 걸지도 몰랐다.

마법사와 스스로에 대한 증오는 결국에는 자신을 적대한 비마법사와 세상을 향하게 되기 때문에.

“안녕.”

그런데 라파엘은 온느발레에서 뮌제를 만났다.

* * *

에흐베는 공국에 불과하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하나의 국가였다.

그리고 그곳의 군주가 될 후계자라 하니 로헤올 가주가 후계자들끼리의 교류를 구태여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대공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 꽤 흔쾌히 받아들였다. 에흐베에 빚을 지워 둬 나쁠 것도 없다.

그렇게 라파엘은 에흐베 대공이 준비해 둔 온느발레의 유력 가문 후계자와 친구가 되었다.

라파엘의 첫 친구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뮌제는 라파엘에게 살갑지 않았고, 라파엘 역시 첫 친구에게 약간 짜증을 느꼈던 탓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 교류했다.

알고 지낸 지 1년이 훌쩍 지났을 땐 라파엘은 뮌제에게 느끼던 짜증을 버린 상태였지만, 뮌제는 여전히 살갑지 않았다. 그래도 뮌제는 선뜻 라파엘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지금 뭐해?”

책에 푹 빠져 있던 라파엘은 문득 눈을 들었다가 굳었다. 잠시 후 가까스로 던진 게 그 질문이었다.

뮌제는 그런 그를 힐끔 보고는 다시 하던 일에 몰두했다.

책을 벽돌 삼아 벽을 쌓는 중이었다. 탑이 아니라 벽이다. 딱 봐도 책 백 권 이상이 고문당하는 중이었다.

라파엘은 어색하게 말했다.

“뮌제……. 책으로 그러면 안 돼…….”

“…….”

뮌제는 대꾸하지 않았다.

바깥에서도 말수가 적은 그녀는 라파엘의 앞이라고 특별히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밖에 외출할 때보다도 라파엘의 앞에서 더 말수가 적어졌다.

라파엘은 다시 한번 그녀를 말렸다.

“그러다 혼날 거야.”

“안 혼나.”

“금방 공작 각하 오시잖아.”

“공작님.”

어색한 온느발레어로 말하자, 뮌제는 책 한 권을 또 올려 두며 툭 말했다. 공작님. 라파엘은 바로 한 번 중얼거렸다.

그걸 들은 뮌제는 또 책을 올려놓고 각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넌 아무한테도 ‘각하’라고 말 안 해도 돼.”

“말 안 해도 돼?”

말 안 해도 되냐고 묻는 게 아니라 ‘말 안 해도 돼’의 뜻을 헷갈려 하는 것이다. 라파엘은 부정형이 들어가는 문장은 가끔 이상한 곳에서 헷갈려 하곤 했다.

그걸 귀신같이 알아챈 뮌제는 다시 말했다.

“각하라고 말하지 마. 님이면 돼.”

“아, 응.”

“그럼 후작은?”

“후작님.”

라파엘은 조금 전 뮌제가 말해 준 걸 응용하여 제대로 대답했다. 뮌제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탁.

책이 책 위에 놓이는 소리가 계속해서 났다. 이제 라파엘은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아홉 살의 소년은 조곤조곤 물었다.

“그거, 왜 하는 거야?”

“…….”

“응?”

“그냥. 좋은 생각이 났어.”

뮌제는 다정한 듯 아닌 듯하면서도 다정한 아이였다. 그가 대답을 바라면 한동안 무시하다가도 결국에는 대답을 해 주곤 하는.

그게 라파엘에 한해 보이는 태도라는 걸 라파엘은 이미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여태 세 번 참석하였던 어린 귀족들의 모임에서 뮌제는 적당히 예의 바른 모습만을 보였다. 말을 무시하는 일도 없었고, 어조도 부드러웠다. 그리고 말하는 속도는 라파엘과 있을 때보다 빨랐다. 라파엘이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들도 쉽게 입에 담았다.

그 속도와 어휘력의 차이를 인식했을 때, 라파엘은 뮌제가 나름대로 자신을 배려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뮌제의 이런 쌀쌀맞은 태도를 더는 짜증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라파엘은 저런 불친절한 설명에도 마음 상하지 않고 의문만 품었다.

좋은 생각?

“…….”

라파엘은 일단 조용히 뮌제가 하는 모양을 지켜보았다.

뮌제는 한동안 더 벽을 쌓다가, 그녀가 일어서고도 정수리까지 가려질 정도의 높이까지 책이 쌓이자 벽 쌓기를 멈추었다.

“후…….”

이제 라파엘이 보는 건 책 벽뿐이었다. 뮌제는 책 벽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소녀가 심호흡을 하는 건 들렸다.

소년은 의아해했다.

그리고 직후 경악했다.

“뮌제!”

“오오……. 응악!”

잠깐 책 벽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던 뮌제는 결국 담담한 외마디 비명을 남기고 책과 함께 휩쓸려 내려왔다.

라파엘은 책으로 만들어진 파도를 훌쩍 피했다.

뮌제는 흐트러진 책들 위에 편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라파엘은 발로 슥슥 책들을 밀어 길을 만들어 가며 뮌제에게로 다가갔다. 누워서 천장을 보고 있던 뮌제가 눈만을 움직여 그를 보았다. 어딘가 다친 것 같지는 않았으나 라파엘은 물었다.

“괜찮아?”

“…….”

“이게 좋은 생각이야?”

“…….”

뮌제는 무덤덤하게 그를 보다가 입을 비죽거렸다. 이것도 라파엘에게만 보이는 격의 없는 반응이다.

누군가에게 특별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게 라파엘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뮌제의 특별한 언행을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사람. 뮌제에게 특별한 사람. 라파엘이 누군가의 특별한 사람이 되어 본 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가 뮌제에게 물러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뮌제는 그런 것에 크게 의미를 두는 것 같진 않지만.

라파엘은 쓴웃음을 짓고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혼날 거야. 어서 청소하자.”

“안 혼나.”

그러고는 뮌제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젓고 다시 툭 책에 떨어뜨렸다.

소년은 옅게 한숨을 쉬었다. 혼나지 않을 거라는 이 자신감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로헤올 공작 부부가 뮌제와 윌리엄, 라파엘에게 다정하긴 했다. 그러나 라파엘은 뮌제가 로헤올 공작에게 무섭게 혼나는 걸 우연히 들은 바 있었다. 정말 무섭게.

라파엘은 겹쳐져서 흩어진 책 위에 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뮌제의 한 손을 잡고 그녀의 등을 받쳤다. 기어이 소녀를 일으켰다.

축 늘어진 상체를 흔들거리며 뮌제는 라파엘을 보았다. 그녀의 어린 얼굴에 약간의 짜증이 드는 게 보였다. 라파엘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넌 왜 그렇게…….”

“…….”

“아니다.”

물끄러미 라파엘을 응시하던 그녀는 말을 돌렸다. 짜증도 사라지고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뮌제는 몸을 옆으로 기울였다. 등을 받친 라파엘의 손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명치가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버거웠던 소년은 뮌제에게서 두 손을 전부 거두었다. 뮌제는 옳다구나 하고 다시 뒤로 누웠다.

라파엘은 떨리는 호흡을 들키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숨을 짧게 짧게 나누어 들이켰다. 그러나 그 방법이 통하지 않을 만큼 마음이 공허했다. 그래서 그는 그냥 뮌제의 곁에서 물러나는 걸 택했다.

일어나려는 그의 무릎을 뮌제가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소년은 흠칫 놀랐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던 뮌제는 아마 처음으로 그에게 상냥한 웃음을 보였다.

“슬퍼하지 마.”

“……어?”

“…….”

뮌제는 그 ‘슬퍼하지 마’에 대한 설명은 덧붙이지 않았다.

대신 라파엘의 소매를 툭툭 잡아당겼다.

“누워.”

“어?”

“마음대로 놀아. 안 혼나.”

혼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은 있었다.

그러나 라파엘은 그녀의 이 말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이건 뮌제가 처음으로 살갑게 라파엘에게 먼저 손 내민 것이다.

라파엘은 여전히 살짝 웃고 있는 뮌제의 얼굴을 보다가 어색하게 뻣뻣한 움직임으로 책 위에 누웠다. 서로 비스듬하게 누운 두 아이는 한쪽 어깨와 머리통이 서로 닿았다.

어딘가 쿰쿰한, 그러나 결코 불쾌하지 않은 책 냄새가 가득한 로헤올 저택의 서고는 한동안 적막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