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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서점에서 흑막 바보로 살아남기 (94)화 (94/120)

# 93화

“저희도 자세하게는 알 수 없었습니다. 마법에 휘말렸던 건 사실이지만, 정확하게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마법 때문에 죽었다는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

“마냥 선한 생각으로 은여우단을 맡은 건 아닙니다. 동생이 살아 있을 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고, 동생이 마법 때문에 죽었다는 분노로 은여우단을 맡으면서 마법사들을 압제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

“공께서는 제게서 누굴 보십니까?”

엘르시어는 차분하게 물었다.

뮌제는 대답했다.

“나를 보고, 윌리엄을 봅니다.”

“…….”

“윌리엄은, 예, 내가 죽이고 나 때문에 죽었지만……. 마법 때문에 죽은 것이기도 합니다. 꼭 후작의 누이처럼.”

“…….”

“나 역시 마법에 대한 분노로 루미나리에단을 이끌었습니다.”

마법사이면서도 마법사들의 최대 적수가 될 정도로.

뮌제 로헤올은 그리 맹렬했다.

“내가 온느발레에 있을 때에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 그런데 만나고 보니 당신 하는 게 너무 윌리엄이랑 비슷한 겁니다.”

“…….”

“버릇으로 웃는데 그게 너무 윌리엄이랑 같아. 보고 있으면 힘들 정도로 당신 웃는 얼굴이 눈에 박히는 겁니다. 내가 당신 웃는 얼굴을 빤히 보곤 했었는데 혹시 알아요?”

엘르시어는 뮌제의 눈을 피하지 않은 채로 침묵했다. 가타부타 대답이 없자, 그걸 어찌 받아들였는지 뮌제는 살짝 웃었다.

“그럼, 내가 당신에게 약했던 건 알고 있습니까?”

“…….”

“연쇄살인 관련해서 내가 은여우단을 며칠이라도 도왔던 것도, 후작이 내게 부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후작이 부탁했기 때문에. 당신에게서 나만 보았다면 그렇게 물러지진 않았을 겁니다.”

“…….”

“내 멋대로 당신에게서 내 동생을 봐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고백한다 치고 말해 줘요. 후작, 웃고 싶지 않음에도 웃을 때.”

거기에서 뮌제는 한 번 기침했다. 춥고 건조했다.

몸이 몹시 차가웠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당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사람을 대하면서도 웃을 때…….”

그런데 또 망설였다. 주저하게 되었다.

잠시 그녀를 기다리던 엘르시어는 대신 입을 열었다.

“제 심기를 거스르는 사람을 대하면서도 웃는데, 그 사람이 공이실 때.”

“…….”

“전 괜찮습니다. 당신이기 때문에.”

“…….”

“전 공작께서 공에게 어떤 얼굴을 했든 그분의 모든 웃음이 다 버릇일 리, 다 가면일 리 없습니다.”

윌리엄과 같은 엘르시어 클리포드는 손을 뻗었다. 감히 뮌제의 빈손을 잡았다. 얼어붙은 두 손이 만났다.

그는 무얼 기록하듯, 눈길과 목소리가 필기구라도 된 것처럼 내리눌렀다. 눈빛을 그녀에게 꾹 눌렀다. 음성도 꾹꾹 눌러 갔다.

“저는 제 동생을 한때는 경멸했고, 한때는 미워했고, 한때는 가여워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이 말하는 이 버릇으로 미소했으니 그 억지가 동생에게도 보였을 겁니다.”

“…….”

“하지만 경멸할 때조차 저는 제 동생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니 윌리엄도 당신을 사랑했으리라고 생각하라.

가만히 그를 보던 뮌제는 얼음으로 빚은 것처럼 뻣뻣해진 손가락을 구부렸다.

장녀로 성장하였으나 실은 동생이었던 그녀는 누이동생을 사랑한다 말하는 어떤 오라버니의 손을 마주 잡았다.

윌리엄.

“고맙습니다.”

그녀는 새하얗게 색이 빠진 목소리로 인사했다. 입김이 번졌다.

[내. 동생.]

윌리엄.

[사랑해. 뮌제, 네가 있어서 행복했어. 네가 태어나서 기뻤어. 사랑해. 사랑해.]

그럼에도 너는 내 후회로 남겠지.

“고맙습니다, 후작.”

“…….”

다시 한번 엘르시어의 손을 지그시 잡았다가 놓았다. 빠져나가는 그녀를 엘르시어도 놓아 주었다.

그리고 뮌제는 보석이 박힌 타이 핀을 빼냈다.

그걸 엘르시어의 언 손 위에 놓아 주고는, 그녀는 웃었다.

“해봅시다.”

“예?”

“이동해 보겠다고 시도해 볼 힘까지는 없으니, 처음부터 파훼를 노려 봐야겠습니다.”

이곳이 단순한 환상 속 어딘가라면 좋겠지만, 만약 이곳이 아티팩트와 관련된 곳이라면 이곳에서 탈출하기는 아마 몹시도 어려우리라.

쉬웠다면 아티팩트나 호문클루스에 잡아먹혀 죽은 마법사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잡아먹힌 마법사들이 일단은 살아서 탈출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바깥에 나가면 다시 호문클루스로 생명을 채울 수 있을 테니 가장 중요한 건 생명을 거의 다 퍼붓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서 탈출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탈출하지 못했다는 건 마법을 파훼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또한 그 각오로도 마법을 파훼해지 못했다는 건 어지간한 힘으로는 파훼할 수 없다는 뜻일 터.

“…….”

뮌제는 지금 그럴 만한 힘이 제게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정확히는, 마법사들의 그런 각오처럼 파훼했다가는 탈출하자마자 죽을 것을 알았다.

그녀에게는 호문클루스가 없었다. 남에게서 넘겨받을 생명이 없다.

[가지 마. 내가 널 잃게 하지 마.]

사실 엘르시어를 구하려 하지만 않았어도 뮌제는 능히 피했을 것이다.

또다시 마법에 잡아먹히려는 윌리엄을 구하려 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널 잃게 하지 마.]

그러나 일은 이미 이렇게 일어났다.

엘르시어를 탓할 일도 아니었다.

뮌제는 황제를 만나는 자리에 엘르시어가 있을 것과 하필 그 순간 엘르시어가 윌리엄과 겹쳐 보일 것을 예상하지 못했고, 아마 라파엘도 그랬을 것이다. 엘르시어를 탓할 일이 아니었다.

“파훼를 시도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성공 확률을 높이려면 단 1초라도 더 몸이 회복되어야 했어요.”

라파엘을 두고 죽고 싶지는 않았기에 여태 기다렸다. 탈출할 확률을 높이고자 기다린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았다.

기다릴 수 있을 만큼 기다렸다. 더 있다가는 죽을 것이다. 이제는 탈출에 성공하거나, 탈출에 실패해 죽는 것만이 남았다.

뮌제는 고개를 돌려 베렐의 시신이 있는 곳을 한 번 보았다.

“실패하면 당신도 나도 더는 방법이 없습니다.”

“공. 잠, 잠시. 아까 공의 상태가 좋지 않으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도는 단 한 번만 할 수 있다고도 말했었습니다.”

“아니. 공. 하지 마십시오.”

“제게 무슨 일이 생기면 무엇이라도 시도해 볼 방법이 모두 사라지는데, 제가 이미 죽고 있습니다.”

뮌제가 검지로 자기 가슴께를 톡톡 두드렸다. 엘르시어는 그제야 뮌제가 아까 몸에 무슨 침이 박혔었던 걸 떠올릴 수 있었다.

엘르시어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독이었습니까?”

“당연하지요. 죽이려 한 건데.”

엘르시어와 다르게 뮌제는 태연하게 답했다.

“너무 큰 기대는 말고……. 왕의 반지보다 강한 힘을 발산할 테니 반지는 소용이 없을 겁니다. 그 타이 핀에 무슨 마법이 담겨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거라도 가지고 있어요. 대공이 주신 거라 뭐가 있긴 있을 겁니다.”

“아니, 공.”

“내가. 당신만은 살리고 싶습니다.”

“…….”

“당신만은요.”

말을 마친 뮌제는 다른 손에 들고 있던 검도 그에게 내밀었다. 엘르시어는 약간 떨리는 손으로 그걸 받아들었다. 살며시 웃은 뮌제는 몸을 돌렸다.

눈이 밟히는 소리가 보드득보드득 들렸다.

[살아갈 거지?]

[너와 함께.]

엘르시어로부터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다다르자 멈춰 섰다.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그 고통. 아까 황제의 아티팩트를 막고 이동하느라 한 번 느꼈던 고통.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그 고통을 다시 겪게 생겼다. 각오했다. 그리고 기어이 죽게 된다면 빠르게 죽기를 바란다.

크게 숨을 들이키자 싸늘한 공기가 들어왔다. 심장이 어는 것 같았다. 눈이 온다.

“라파엘.”

조각조각 금이 갈라져 작은 돌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리는 것 같은. 그런 목소리로 뮌제는 속삭였다.

미안해.

와장창. 귓가에서 무언가가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렸다. 죽는다.

그녀가 발한 마법이 사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시도도 한 번. 기회도 한 번. 전부 토해 낼 것이다. 엘르시어를 구할 것이다. 윌리엄.

윌리엄.

한때 세상에서 가장 강했던 마법이 불의 형상으로 하늘과 땅을 두드렸다. 눈알이 터질 것 같다. 뮌제는 한 손으로 복부를 누르며 허리를 아주 조금 앞으로 굽혔다.

“크…….”

“공!”

그 간단한 부름이 뮌제를 이 악물게 했다.

내가 죽어도 저 사람은 살리겠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뮌제의 주변 허공에서 솟아난 불은 더 맹렬해졌다. 화르륵. 붉은 불이 노랗게 변했다. 노랗게.

희게.

파랗게.

생명력이 소진되어 가는 게 느껴졌다. 죽는다. 다리가 버티지 못하고 흔들렸다.

뮌제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더. 몸이 흔들렸다. 그녀는 한 손으로 땅을 짚었다. 몸이 흔들렸다.

투둑. 피가 떨어졌다. 루미나리에단을 맡은 뒤 한번 나빠졌던 눈은 그녀의 육신 중 가장 약한 부위가 되고 말아서, 마법을 쓰면 참 쉽게 반응했다. 또 눈에서는 피가 팍 튀어 흘러내렸다. 왼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뮌제는 왼쪽 눈을 꽉 감았다.

새파래진 염화가 더 강대해졌다.

그 와중에 엘르시어에게 조금도 닿지 않는 불들은 보라색으로 변할 듯 말 듯 하였다.

“크으…….”

목구멍까지 기어 올라오는 무언가를 꾸역꾸역 삼켰다. 몸속이 끓는 것 같다. 끓는데도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사방이 불인데도 몸이 차가웠다. 춥다. 추웠다.

눈이 내리는 겨울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바람이 한 줄기 뺨에 닿은 건, 아마, 그때였다.

추위 때문에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따뜻함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게 희망이라는 걸 뮌제는 알았다.

파훼……, 파훼되었나.

확인해야 했다.

그리하여 고통을 참느라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뜬 순간, 흉포한 마법이 뮌제의 마법을 덮쳤다.

뮌제의 모든 불을 감싸고 억눌렀다. 뮌제에게 도로 쑤셔 넣으려는 게 느껴졌다. 아니, 말이……. 그런 건 말이 안 되는……. 뮌제는 핑 도는 머리를 천천히 흔들었다. 정신을. 차려야.

피가 터진 왼쪽 눈으로 볼 수는 없더라도, 오른눈의 뿌연 시야라도 회복하기 위해 몇 번이고 눈을 깜박거렸다. 취한 사람처럼 휘청거리는 고개가 올라갔다.

이곳에 더는 눈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서점으로 돌아온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죽은’ 이곳에 덮여 있던 눈이 사라졌고, 뮌제는 아직 이곳에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 라파엘이 서 있었다.

라파엘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조금 전 뮌제가 목숨을 버리려 했던 걸 알았다.

뮌제의 눈길은 천천히 내려갔다. 라파엘이 서 있는 바닥. 빛나고 있는 진. 언젠가, 죽어 가는 라파엘의 방에서 뮌제가 그렸던 적 있는 진이었다. 뮌제는 살아나는 중이다.

핏발 선 뮌제의 오른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다시 라파엘과 눈을 마주쳤다. 바닥을 짚고 있는 손과 그 팔이 경련했다. 아니, 잠깐. 잠깐만.

잠깐만…….

[저……. 그럼, 그, 악마가 쓰는 그 마법도 그렇습니까?]

[그걸 파훼하려면? 아마도 그렇겠지.]

[검……, 으로 마법을 파훼할, 수는, 없는 겁니까?]

그때 라파엘 옆에 있었던 마법사가 무슨 짓을 한 거라 생각했다. 파훼를 했든 다른 마법으로 상쇄를 시켰든 그 마법사가 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중앙탑에 소속되게 했고 마법은 파훼했어.]

[그렇게 강한 마법사를 데리고 있어? 아, 혹시 그날 그 마법사인가?]

[글쎄……. 그는 아니야.]

중앙탑. 그래. 그것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기억과 추억이 뒤섞였다.

[정말 어지간히 강한 마법사가 아니고서는 굳이 그런 짓을 할 것 같진 않네. 그렇게 하고도 마법을 파훼할 자신이 있지 않고서야.]

뮌제는 이 현실 아닌 공간을 파훼한 사람은 자신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녀는 오랜 친구를 바라보다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피 섞인 음성이 끓었다.

라파엘.

“너……, 마법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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