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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서점에서 흑막 바보로 살아남기 (62)화 (62/120)

# 61화

그녀가 온느발레의 방패로 불렸던 건 어느 정도의 무위와 마법사와 마법을 대할 때의 능숙함으로 인해 마법사들의 원수로서 압도적으로 강하게 보였기 때문이지, 결코 이 세상에서 가장 강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착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뮌제는 그 착각을 굳이 수정해 주지 않았다.

정계에서 유리하게 사용할 카드를 굳이 내치는 멍청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사실, 뮌제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강해질 수도 있었다는 것을, 실은, 모르지 않았다. 극도로 경멸하는 세계에 한 번만 몸을 던지면 지금이라도 가장 강해질 수 있다는 것도 모르지 않았다.

뮌제는 로헤올의 역사상 로헤올이 낳은 최고의 결과물이었다.

그녀가 호문클루스를 가졌다면 악마도 이리 비상시를 대비하지 못하고 처음부터 전력투구했을 것을 알고 있었다.

뮌제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분산시켜 두었던 마법을 지웠다. 베렐이 있으니 그 기사가 애쓸 것이다.

전 로헤올 공작은 현 로헤올 공작이 공격해 오기 직전 말했다.

“물러나.”

다시 만난 친구에게 처음으로 한 말이 이따위라서 미안할 따름이었다.

이 사람이 강하다는 건 알지만 악마를 죽일 수 있는 건 생명이다. 또다시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을 맞이할 이곳에서 라파엘과 눈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로도 라파엘은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뮌제가 윌리엄과 부딪히는 걸 보면서 전투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만 자리를 피해 줄 뿐, 그는 거의 그 자리에 있었다.

이 골목. 뮌제의 불이 가득한 만큼, 악마가 쓰는 요술에서 피어난 하얀 꽃도 가득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꽃비였다.

* * *

막다른 골목이었다.

사실, 이제 구해 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전투에 임한 각오는 이러했다.

버티지 못해 이미 윌리엄이 죽었다면 이대로 저 육신과 함께 악마를 죽이면 되며, 윌리엄이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면.

그렇다면.

“뮌제 로헤올……. 이…….”

같이 가자, 윌리엄.

천국이란 곳이 있다면 그곳에서 사죄할 테고, 없다면 지옥에서 외치겠다. 지옥에서 사과를 부르짖겠다.

미안해.

너무 미안해.

피 떨어지는 소리가 고요했다. 날이 흐리다. 모든 소리가 물기 어린 채로 가라앉고 가라앉았다.

뮌제는 조금 전의 저처럼 무릎을 꿇고 무너져 있는 윌리엄의 앞에 섰다. 상대를 죽이고 자신은 살아남으려 애쓰는 자와 동반 자살을 결심한 자는 전투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윌리엄은 몸을 사렸고, 뮌제는 검에 몸이 갈려 나가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끝, 서로의 전력의 끝은 비로소 이러했다.

같이 가자.

널 마지막으로 악마를 끝내겠다.

푸욱. 가슴에 칼 꽂히는 소리가 부드러웠다.

망설임 없는 말뚝이 박히자 악마가 몸부림을 쳤다. 뮌제는 더 깊숙하게, 윌리엄의 어깨를 잡고 제게로 끌어안으며 칼을 더 깊이 찔러넣었다.

그리고 심장 있는 가슴을 열고자 했다.

형제의 심장을 손에 쥐는 건 죽도록 끔찍했다. 물컹물컹하고 단단한데 피가 뚝뚝 떨어지고 아직 몸과 연결되어 있는 섬유가……. 차마 보지 못했다. 서로 껴안은 가슴 사이에서 뮌제는 그 심장을 쥐었다.

연회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생명에게 잡혀 악마는 도주하지 못했다. 윌리엄의 몸이 덜덜 떨었다. 꽃이 가득 떨어져 있는 이 길에서 다시 시작한 죽음이다. 뮌제는 그 몸을 더 부둥켜안았다.

“…….”

몇 년이더라.

이 악마와의 악연이 도대체 몇 년이더라.

그때 나이가 열셋……, 열넷이었었나. 열다섯? 열둘? 선선대 공작 부부가 작고한 게 언제였더라. 뮌제는 멍하게 생각했다.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그녀의 손에 의해 윌리엄이 죽어 가고 있었다. 머리가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서 거기에 집중하다 보니 뮌제는 자신의 무언가를 기준으로 삶을 반추한 적이 없었다.

잃어버린 추억이 너무 길었다.

너무.

그러나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 윌리엄의 육신과 함께 죽고 있었다. 마치, 그 언젠가 라파엘에게 생명의 근원을 넘겨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도 같았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죽고 있었다.

그때는 살리기 위해서였고 지금은 죽이기 위해서라는 게 다를 뿐.

조금은 해방감이 들었다. 끝이다. 드디어.

그녀는 무겁게 숨 쉬었다.

그때, 두 사람 사이를 파고든 손이 뮌제의 손등을 감쌌다. 손과 손 사이에 무언가 차가운 것이 느껴졌다. 그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뮌제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이 손이 누구의 것인지만은 알 수 있었다.

“같이 가.”

나른하게 낮은 목소리가 반론의 여지 없이 그의 것이었다.

뮌제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감싼 손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라파엘은 무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가야 한다면 같이 가.”

“아니…….”

“가고 싶다면 같이 가.”

“아니……. 아니…….”

우리는 서로를 가졌잖아. 약속했잖아.

[이제 우리는 서로를 가졌어. 가지 마. 내가 널 잃게 하지 마.]

설마 이래서 전투를 주시하며 내내 가까이 있었던 건가. 그가 이럴 줄은 몰랐던 뮌제는 당황하여 손을 떨었다.

그럴 줄 알았다. 라파엘은 내심 웃었다.

본디 그녀의 손을 잡은 가장 큰 목적도 달성했기 때문에, 라파엘은 뮌제의 손을 잡은 채로 눈짓했다.

라파엘과 함께 왔던 기사 두 명이 몸부림치는 노인 한 명을 질질 끌고 왔다. 그 노인의 손은 바들바들 떨리면서 뻗어 왔다. 그 손을 강제하는 게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무언가가 노인의 손을 억지로 잡아당기는 것처럼 뻣뻣한 움직임이었다.

그 손이 윌리엄의 심장에 닿았다. 아무의 손도 닿지 않은 부분에.

노인은 마법사였다.

“으읍!”

두 명의 기사는 노인을 꽉 잡았다.

라파엘의 무감정한 시선이 노인의 얼굴에 꽂혔다. 여러 사람이 있는 그 바닥 자리에 진 하나가 크게 그려졌다.

죽는다.

정말 죽는다.

자기 아래에 뜬 진이 무엇인지를 안 마법사는 공포에 질렸다.

반쯤 연회색으로 물든 심장은 이제 푸른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노쇠한 푸른 눈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이 얼굴은 창백했다.

얼떨떨하게 윌리엄의 심장을 놓으려는 뮌제에게 윌리엄은 신음처럼 말했다.

“가지……, 마…….”

뮌제는 멈추었다.

윌리엄이 돌아왔음을 눈치챈 라파엘의 표정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친구의 표정을 보지 못한 뮌제는 윌리엄을 안고 있는 팔에 더 힘을 주었다. 그녀는 속삭였다.

“윌리엄.”

그것은 위즈가 된 이후 처음으로 불러보는 제대로 된 이름이었다.

이름을 틀리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 사람과 있었던 일조차 잊어버린 건, 위즈 스미스로 살며 추억을 키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히 키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위즈 스미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마친 뒤 다시 뮌제가 되어 윌리엄 앞에 설 날. 그날 몸을 찾아 돌아올 윌리엄에게, 윌리엄이라 부르려 했다. 그 이름을 부를 때까지는 다른 사람의 이름은 제대로 부르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하여 이제 이 자리에서 불러 보는 윌리엄.

찾아볼 책이 아직 많은데, 아직 할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그런데도 마주한 윌리엄.

윌리엄은 죽어 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책, 봤어……. 우리 약속……. 이 정도면 나도 너도 지켰어.”

“…….”

“버텼어.”

“…….”

“버텼어, 뮌제. 나, 버티고 있었어…….”

힘이 들어간 뮌제의 눈에서 피눈물이 떨어졌다. 이미 찢기고 탄 윌리엄의 등으로 둥그렇게 떨어졌다.

“괜찮아.”

“…….”

“괜. 찮아. 울지 마…….”

윌리엄. 버티고 있었어.

넌 살아 있었어.

서로를 죽음으로 몰고 가기 위해 피를 흘린 끝에야 확인한 생사였다.

뮌제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나 그리 가다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고, 윌리엄은 숨이 저물어 가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내. 동생.”

“오라버니.”

두 사람은 처음으로 그렇게 불러 보았다. 윌리엄이 웃었다.

차라리 증오한다며 이를 갈았으면 좋겠는데, 윌리엄은 파르스름한 사랑을 속삭였다. 사랑해. 사랑해. 뮌제, 네가 있어서 행복했어. 네가 태어나서 기뻤어. 사랑해. 사랑해.

내 누이. 동생.

숨을 몰아쉬거나, 피로 적셔진 목구멍을 버거워하면서도 더듬더듬 애정만을 이어 붙였다. 그의 종말까지 반걸음도 채 남지 않았다. 악마의 죽음은 윌리엄의 죽음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사이에서 심장은 푸른색을 밀어내고 찬란한 금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윌리엄의 금색 눈동자는 천천히 흐려졌다.

윌리엄도 로헤올이었다.

완전한 마법사는 아닐지언정 로헤올이었다.

악한 힘의 영향을 받아 약했던 몸이었을지언정 그도, 로헤올, 뮌제의 형제였다.

숨지기 직전의 충격으로 인해 윌리엄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영혼이 악마의 영혼과 심장을 감쌌다. 이 정도는 해야 했다. 이 정도라도 해야 했다. 윌리엄은 식어 가는 머릿속으로 의지를 다졌다. 나도 로헤올이다. 나도, 로헤올 공작이다.

윌리엄은 뮌제가 마지막까지 생명을 걸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그것이면 되었다. 그녀가 생명을 걸어 악마를 옭아매었기에 그가 느리게나마 그의 힘으로 악마를 감쌀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전혀 건강하지 못했던 이 우애와 죄책감, 미움, 질투. 이 전부를 그의 힘으로 끝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이 끝을 감히 다른 자가 손대게 하지 않겠다. 이건 그와 뮌제의 문제였다. 그와 뮌제의 끝이었다.

사랑해. 그럼에도 네 행복을 빌어 주지 못하는 나를 용서해. 내가 불행했던 만큼 너도 죽을 때까지 불행했으면 좋겠어. 네게는 죄가 있어.

끝의 끝까지 건강하지 못한 저희 남매 사이를 되새기며 그는 천천히 힘을 놓았다.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갔다. 그러나 아직은 괜찮았다.

“윌리엄.”

“응…….”

아직은 이 부름에 대답할 힘이 남아 있었다.

윌리엄은 웃는 듯, 우는 듯, 기뻐하는 듯, 힘없이 경련하며 대답했다. 뮌제의 입술이 파들거렸다. 그가 점차 묵직해지고 있었다.

“윌리엄.”

“……으응…….”

“빌. 내 오라비.”

“…….”

“내 형제.”

“…….”

“윌리엄.”

“…….”

뮌제는 조금 더 힘주어 윌리엄을 부둥켜안았다.

없는 자리라도 만들어서 더 꼭, 더 꼬옥 부둥켜안았다. 보듬어 안는 이 큰 몸이 모든 활동을 중지했음을 알면서도, 알기에, 안고 보듬었다.

죄 없이 잡아먹힌 이의 말로는 결국 이것이 되었다.

평생을 그녀의 동생으로 살다가, 그녀 때문에 영혼을 잡아먹히고, 그녀의 손에 몸을 꿰뚫리고, 그녀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애정만을 아낌없이 표하다가 그는 갔다. 윌리엄이라 하는 한 사람의 모든 인생이 뮌제에게 달려 있다가 마지막 순간 원망 한 번 없이 숨을 거두었다.

괴로워하지도 않는 몸에서 칼을 뺐다.

피가 단 한 번 왈칵 쏟아져 뮌제의 옷을 적셨다. 아직도 따뜻했다. 죽은 사람의 무게를 다 받아 낸 뮌제는 칼을 옆에 떨어뜨리고 두 팔로 그를 안았다. 윌리엄의 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심장이 아직 그녀의 손에 있었다.

피만큼 뜨거운 것이 눈에서 뚝뚝 떨어졌다.

윌리엄. 빌.

이렇게 착하면 어떡해. 이렇게 착하면, 어떡해. 날 원망해야지.

날 원망했어야지.

“…….”

조용히 눈물만 떨어뜨리는 뮌제를 보던 라파엘은 흐리게 경멸 어린 눈으로 윌리엄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뮌제의 기사들에게 들어 이제는 전말을 알고 있고, 그렇기에 마법사도 데려올 수 있었지만, 듣는 게 조금만 더 빨랐어도 뮌제와 윌리엄이 맞닥뜨리기 전에 온느발레에서 윌리엄을 죽였을 것이다.

뮌제의 형제고 뭐고 상관없었다.

조금 전 그는 윌리엄이 끝까지 뮌제를 어찌 ‘취급’했는지를 확실하게 목격했다.

라파엘은 깊은숨을 흘리며 입가를 쓸었다. 그는 고개를 기울여 뮌제의 머리에 입 맞춘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뮌제가 피와 피눈물에 젖은 얼굴로 그를 보았다. 윌리엄을 앞에 두고도 그녀의 주의가 쉽게 제게 돌려진 것에 라파엘은 조금 놀랐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난 이후 처음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침묵하던 그는 몸을 굽혀 그녀의 오른쪽 눈밑을 손으로 부드럽게 훔쳤다.

“…….”

대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바로 세웠다. 뮌제와 닿을 때 가지고 있던 아티팩트는 안주머니에 넣었다.

은여우단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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