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짜 서점에서 흑막 바보로 살아남기 (60)화 (60/120)

# 59화

현 공작은 일행을 돌아보지도 않고 오로지 뮌제 로헤올만 바라보고 있었다.

보호할 정도로 사랑한 누이를 향할 만한 지칭도, 그런 목소리도 아니었다. 뮤니르 자작의 심장이 명치로 쿵 떨어졌다.

자작과 다르게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다른 일행은 의아해했다.

공작의 요청대로 현장으로 안내한다고 따라온 은여우단 기사 둘과 아리오의 귀족 둘을 제외하고 온느발레인은 공작과 자작뿐이었다.

그 말은 뮌제 로헤올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이 중에서 공작과 자작뿐이라는 것이다.

어찌할 줄 모르는 일행에게 공작은 다시금 명령했다.

“괜찮으니 다들 돌아가.”

“하, 지만 각.”

대표로 반박하려던 뮤니르 자작은 멈칫했다.

현 로헤올 공작과 전 로헤올 공작이지만, 뮌제의 앞에서 다른 사람을 로헤올 공작으로 지칭하는 게 본능적으로 꺼려졌다. 처음으로 맞닥뜨린 이런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바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괜찮네. 그리고 자네, 당분간은 함구해 주면 좋겠어.”

말을 고르지 못해 헤매는 자작에게 공작은 부탁처럼 부드럽게 지시했다. 여전히 뮌제 로헤올만 바라보면서.

뮤니르 자작은 뮌제 로헤올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말없이 눈을 돌렸다.

“……예, 각하.”

자작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윌리엄이 뮌제를 보호했다고? 아니다. 저건 살기였다. 뮌제는 윌리엄의 함구 명령에도 입 다문 채였다. 심지어 자작이 공작의 명령을 받들기 쉽도록 눈까지 피해 주었다.

또다시 죽어 줄 생각인가.

살아남았으면서, 또다시?

* * *

골목에는 이제 뮌제와 윌리엄만 있었다.

멀리 다른 골목에서 잡동사니의 길 거주자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날이 흐려서 소리가 길에 가라앉는 것 같았다. 물안개처럼 촘촘하게 번져 왔다. 뮌제는 내밀었던 모든 간식을 다시 품으로 끌어왔다.

품 안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안겼다.

로헤올 공작은 다정하게 웃었다. 윌리엄의 버릇이었다. 언제나 웃는 저 얼굴. 정치인의 가면과는 조금 다른 저 버릇.

그래서 항상 미소하고 있는 엘르시어를 볼 때마다 윌리엄이 떠올랐었다.

그런데 역시 윌리엄의 미소가 더 슬펐다. 더 마음에 박혔다. 윌리엄이기 때문일 터다.

뮌제는 말없이 대치하고 있는 이 상황을 무리 없이 이어 가며, 윌리엄의 얼굴에서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등허리에 긴장으로 인한 소름이 돋았지만 견딜 만했다. 긴장은 윌리엄도 하고 있었다.

윌리엄도…….

“이제 널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뮌제, 내 누이.”

“…….”

윌리엄의 얼굴로 악마의 속내를 말한다.

뮌제는 가라앉은 음성으로 대꾸했다.

“망령된 말을 지껄이는군. 나는 네놈의 누이였던 적이 없다.”

“무슨 소리야, 뮌제. 우린 형제잖아.”

“네가 진정 내 형제라면 두려워할 것 없으니 이리 와서 내 손을 잡아라.”

“…….”

간식을 한 팔에 몰아 안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 바람에 사탕 몇 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윌리엄의 미소가 천천히 사라졌다.

그래도 뮌제는 내민 손을 그대로 유지했다. 윌리엄은 건물 한 채만큼의 거리를 사이에 둔 뮌제의 손에 시선을 박았다. 한겨울 눈보라 속에라도 서 있는 것처럼 덜덜덜덜 떨리는 손.

여전히 살갗 거친 손.

여전한, 로헤올 가주의 손.

“…….”

윌리엄은 주춤 반걸음 떼었고, 그대로 멈췄다. 뮌제는 냉소적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그럴 줄 알았다. 쓰레기.”

“……넌 날 못 죽여, 뮌제 로헤올.”

“…….”

“날 죽일 거야?”

또다시 윌리엄이 말하듯 슬프게 물었다. 사라졌던 미소를 복구하여 그는 다시 미소했다. 뮌제는 이 미소에 항상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나 지금의 뮌제는 말없이 희미하게 웃었다. 가소로운 것을 들었다는 얼굴이었다.

“내가 괴로운 게 그토록 보고 싶은가?”

“…….”

“네가 죽으면 된다.”

네가, 윌리엄의 몸과 함께 죽으면 된다.

그가 아는 뮌제의 입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말이 나오자, 윌리엄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 갔다. 윌리엄을 위해 순순히 죽고 여태 조용히 숨어 살아온 뮌제가, 마치, 윌리엄을 더는 봐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말한다. 산길에서처럼 순순히 져 주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윌리엄을 위해 여태 조용히 숨어 살아온 주제에.

윌리엄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내려놓을 것처럼 살아온 주제에.

윌리엄의 입매가 씰룩거렸다.

“호문……, 그래, 호문클루스라 하던가? 그것도 없는 놈이 날 이겨 보겠다?”

“모르나? 호문클루스 없이 악마를 죽인 이들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너는 무리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나? 그동안 수많은 생명을 앗아 회복해 온 너는 강해졌고, 나는 생명을 앗아 내 생명을 채우지 않아서 약하다고?”

뮌제가 아직까지도 내밀고 있는 손이 잔웃음으로 떨렸다.

다가오지 못할 줄 알았다며 조롱해 놓고 손은 거두지를 않는다. 그녀의 속내를 이해하지도 짐작하지도 못하는 자는 그저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 평생 호문클루스를 둔 적 없다. 그런데도 어린 몸으로 널 거의 다 죽였었지. 네가 그 몸으로 도망쳐야 했던 때를 기억해라.”

“…….”

“힘을 회복하였다는 자신감으로 나를 찾았다면 이제 각오는 했을 텐데. 거기 서서 무얼 하는 거지? 이번에야말로 죽을 것 같아 두려운가? 무서워서 섣불리 움직이지도 못하는 꼴이 실로 우습다.”

“…….”

“네놈은 수백 년 살면서 도대체 뭐했나? 철들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하는 꼴이 그야말로 네놈 악마들이 천하게 여겼던 마법사들과 같다.”

차분하게 도발이 이어졌다. 이어지고 이어졌다.

윌리엄이 달려들었다.

뮌제는 그를 피해 벽 쪽으로 달려들었고, 벽돌 사이의 틈을 짚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올라간 그녀는 윌리엄의 정수리 있는 곳보다 더 높은 곳의 벽을 발로 밟고 박찼다.

허공에서 반 바퀴 제비를 돌며 윌리엄의 등 뒤로 떨어져 내렸다.

머리부터 떨어져 왼손으로는 땅을 짚었다. 그대로 허리가 넘어가 또다시 공중제비를 돌았다.

한쪽 바닥에 무릎을 꿇은 낮은 자세로 착지한 뮌제의 오른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다. 일어난 그녀는 무표정으로 검을 털었다. 머리부터 떨어지면서 한 공격이 유효타로 들어갔다. 윌리엄의 등이 찢겼다.

“하…….”

윌리엄은 지금까지 내내 윌리엄을 향해 내밀고 있던 손에 무기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비웃었다.

그는 그렇게 킬킬 웃다가, 바닥에 쏟아져 있는 간식거리와, 간식거리에 가려 있었던 책 한 권을 보았다. 뮌제의 피 몇 방울이 묻은 칼이 늘어졌다.

윌리엄은 허리를 굽혀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제목을 본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곧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 하하!

“어쩐지 순순히 죽어 준다 했었지!”

뮌제는 실금 같은 절창이 생겨 따가운 목을 잠시 손으로 감쌌다.

베인 높이까지 한 뭉텅이 잘려 나간 머리칼이 손등을 쓸었다. 온몸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눈을 조금 찡그렸다. 목을 더듬은 검지와 중지 손끝을 확인하니 피가 번져 있었다.

“아무리 사랑하는 동생이라 하더라도 목숨 빼앗는 건 다른 문제잖아. 어쩐지 순순히 항복한다 했었어. 푸흐흐.”

윌리엄은 그녀의 목을 자르려 했다. 확실히 죽이려 했다.

뮌제는 그 피를 엄지로 문질렀다.

우리 둘 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걸까. 윌리엄. 넌 정말 죽었나. 아니면, 그래도 그 속에서 분투하고 있을까.

잠시 어떤 감정에 잠긴 그녀에게 윌리엄은 물었다.

“그래서 원하는 건 찾았어?”

“…….”

“날 여기서 떼어 내려 했던 것 아니야? 그런데 어떡하지? 뮌제, 내 귀여운 누이, 나는 죽었는데.”

윌리엄의 조롱은 거의 듣지 않고 손끝만 내려다보고 있던 뮌제는 천천히 눈을 홉떴다.

그 순간, 윌리엄의 머리 위로 용암 같은 불길이 쏟아져 내렸다. 윌리엄은 닿는 것만으로도 살이 녹아내릴 것처럼 펄펄 끓는 그 불을 알아보았다.

한때는 세상에서 가장 강했던 마법사의 마법이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불길을 시작으로 용암, 쇳물, 불, 불, 불, 온통 불이었다. 꽃을 즐겨 쓰는 마법사, 돌을 즐겨 쓰는 마법사, 바늘을 즐겨 쓰는 마법사, 독을 즐겨 쓰는 마법사들이 있듯이, 가장 강했던 어린 날 한때, 이 마법사는 불을 썼다.

엄청난 기세로 공격해 오는 마법을 받으며 악마는 미친 것처럼 웃었다.

넌 질 것이다. 뮌제 로헤올! 너는 호문클루스가 없어!

* * *

마법이라 불리는 것의 근원은 악마의 힘이다. 그런 더러운 힘을 인간의 몸에 담고 쓰는데 멀쩡할 리가 없었다. 로헤올의 후손이 그랬던 것처럼.

마법사들은 멀쩡하지 않았다.

마법을 쓰면 쓸수록 생명이 닳았다.

그들은 마법을 쓰는 만큼 일찍 죽을 것을 감수해야 했다.

그럼 마법을 쓰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 하겠지만, 마법사들은 태어날 때부터 마법에 섞여 악마나 가질 법한 어떤 간악함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미 악마에게 어느 정도 감화되어 있는 본성이라는 게 있었다.

물들지 않고자 하면 물들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만큼 정신적으로 강해야 하고 성숙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법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어쩌면 쉬운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법사들은 마법을 거부하기 어려워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마법을 거부해 보려고 애썼던 마법사들은 비마법사들이 마법사들을 학살하려 할 수도 있으니 마법은 있어야 한다는 등 좋은 핑계들을 찾아냈다. 그들에게는 마법을 거부해야 할 절실한 이유가 없었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그 간악함에 기꺼이 몸을 맡기고 흘렀다. 그들은 마법을 포기하지 못했다. 마법을 가지고 인간을 괴롭혀야 했다. 어쩌면 이리 재미있는지!

어찌 보면 악마가 준 강한 본능을 인간의 몸으로는 이기지 못한 불쌍한 자들이었고, 어찌 보면 그저 본능에 몸을 맡긴 여타 범법자들과 다르지 않은 새끼들이었다.

하여간, 마법사들은 마법을 죽도록 쓰고 싶어 했고, 그러면서도 고통 속에 요절하기는 싫어했다.

마법도 수명도 포기하지 못했다. 개새끼들이었다.

그래서 수명을 늘릴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한 마법사가 드디어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현대의 수많은 공무원이 다시 살려내 다시 처단하고 싶어하는 그 마법사가 알아낸 방법은 다름 아닌 연금술이었다.

정확히는 연금술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호문클루스.

연금술은 그렇게 필연적으로 마법사들과 연결되었다.

호문클루스란 마법사에게 한 가지 명령을 받은 무언가였다.

마법사의 생명 일부를 가지고 태어난 호문클루스는 다른 죄 없는 사람들의 생명을 삼켰다.

삼킨 그 생명은 호문클루스의 몸 안에서 한 번 걸러져 마법사에게 옮겨졌다.

마법사는 마법으로 잃은 제 목숨의 분량에 타인의 생명을 채워 넣었다.

단순한 장난에서 그치는 아티팩트가 있는가 하면 생명을 앗을 정도로 공격력 있는 아티팩트 역시 있었던 것은, 그런 위험한 아티팩트는 사실 호문클루스였기 때문이다. 종종 주인 마법사를 공격하여 생명을 삼키는 호문클루스도 생기곤 했지만, 그건 다루기 어려운 호문클루스를 만든 마법사가 멍청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장수했다. 희게 센 머리칼을 가지고 주름진 몸을 가지고서도 여전히 아이처럼 철없이 실실거릴 수 있었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철들지 않았다. 철들 수가 없었다.

비마법사의 생명은 제 목숨의 비축분처럼 여기는 주제에 그리도 자기 생명은 소중히 여겼다. 자기 생명‘만’ 소중히 여겼다. 다른 마법사의 일신도, 사실은 거의 관심 없었다.

결국 연금술을 가져와 적용시킨 건 마법사들이 마법사로서 살아남기 위한 발로였다. 비마법사들 골리길 좋아하는 마법사들이 연금술에 대해서만큼은 비마법사들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 역시 개개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였던 것이다.

자기 생명과 관련된 그 한 가지 비밀만큼은 결코, 결단코 발설하지 않았다.

그것이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에 절어 있는 마법사들이 유일하게 한마음으로 지켜 왔던 진짜 강령이었다.

그리고 뮌제 로헤올은, 현재 기준, 이 세상에서 호문클루스가 없는 유일한 마법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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