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짜 서점에서 흑막 바보로 살아남기 (59)화 (59/120)

# 58화

방법을 찾았다면 끝을 정하는 이는 그녀였겠으나, 그게 아니므로 악마에게 달려 있었다. 악마가 뮌제 로헤올을 찾는다 하니 끝은 다가온 것이다.

그녀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포기했다. 그리고, 다시 한편으로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양심이 있거든 포기할 수 없다.

죄인은 감히 먼저 포기하고 손 놓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 그런 선택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이 끝이 그녀는 끔찍했다. 온종일 긴장에 절어 있었다.

그녀가 설마 이 저택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이들을 떠올리며 끊임없이 마지막을 상상했다.

차마 편할 수 없었다. 저 침대에 누웠다가도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몸은 피곤해서 축축 늘어지는데, 정신이 잠시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았다.

“…….”

그녀는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렸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나간 갈색 머리카락이 늘어졌다. 날씨가 흐려서인지 평소보다 무거웠다.

뒤통수를 쓸고 내려온 손은 뒷목을 감쌌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목 살갗과 손바닥 사이에 잔뜩 갇혔다. 위즈는 물끄러미 바깥을 보았다. 보면서 손을 천천히 내렸다. 갇혀 있던 머리카락도 함께 풀려 내려왔다.

그녀는 길게 숨을 흘렸다.

바깥이 어찌 돌아가는지 그녀는 아직 몰랐다. 일부러 세상으로부터 눈 돌려 몸을 숨겼다.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들르는 엘르시어에게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 역시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즈는 자신이 아리오에게 준 기회가 범상치 않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발롬브로사가 싸우기를 선택한다면 온느발레는 어쩔 수 없이 움직일 것이다. 회피하기를 택한다 하더라도 온느발레 귀족의 시신이나 실종이 있는 한 온느발레는 움직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 바깥에 나가면 어떻게든 엮여 있는 아리오와 온느발레를 볼 수 있을 것 또한,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크게 관심 없었다.

그녀에게는 그것의 반응이 가장 중요했다.

그것은, 자신이 있다면 이번 일을 핑계 삼아 여기 올 것이며, 두렵다면 오지 않을 것이다.

“…….”

위즈는 책을 안은 손의 손등 위에 다른 손을 올렸다. 미지근하게 식은 손이 축축했다.

잠시 그대로 있던 그녀는 턱을 들었다.

안고 있던 책은 한 손에 들었다. 두 팔을 떨어뜨리고 어깨를 펴고 서자, 한때 익숙했던 자세가 되었다. 그녀는 새까만 표정으로 바깥을 보다 몸을 돌렸다.

그리고 티 테이블에 책을 내려놓았다.

책 대신 잡은 것은 목에 건 주머니의 끈이었다.

그녀는 주머니를 아예 목에서 풀어냈다.

작은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반지 다섯 개, 열쇠 세 개, 사탕 하나였다. 끼북이, 끼북이와 닮은 반지 셋, 열쇠 세 개, 그리고 이것…….

위즈는 테이블에 쏟아 냈던 것 중 하나의 반지를 손바닥 위에 올리고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에게 유일한 반지, 특별한 반지였다.

산길에 놓고 올 수 없었던 이것을 그녀는 정말 오래도록,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그리고 보이지 않도록 손으로 감쌌다. 눈을 들었다. 각오하고 떠나 온 이상 한순간도 낄 수 없다.

그녀는 티 테이블에 이미 올려 두었던 두 통의 편지도 잡았다.

한 통은 서점에 쌓여 있는 수많은 책과 연구실에 둔 책들의 소유권을 옮기는 문제, 그녀를 위해 움직였던 아홉 사람이 안전할 수 있도록 의탁하는 문제에 대해 부탁하는 편지였다.

그리고 다른 한 통은 베렐에게 보내는 편지로, 당부의 글이었다. 시간이 없어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니 미리 당부해 놓는다, 앞으로 어떠어떠한 소식이 들려오면 그 즉시 어찌어찌하면 된다, 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부디 그 일을 마지막으로 그녀가 준 모든 아티팩트를 폐기하라는 부탁 또한 추신으로 달아 놓았다.

이 세상에 그 어떠한 마법 조각으로도 남고 싶지 않다, 하며.

잠시 후 위즈는 반지 하나와 열쇠 세 개와 두 통의 편지를 베렐에게 보냈다.

거의 교환이라도 하듯 테이블 위의 끼북이에서 꽃이 피었다.

위즈는 예상치 못했던 쪽지를 폈다. 탑주는 온느발레의 소식을 알려 주었다. 경악한 노인이 이 짧은 쪽지에서 읽혔다.

위즈는 웃었다. 우는 것처럼 웃었다. 끝이 왔다.

* * *

클리포드 저택을 나온 위즈는 한 번 하늘을 보았다.

비가 내릴 것 같진 않지만, 산책하기에는 묘하게 기분이 늘어지는 하늘이었다.

저택의 사람들이 그녀를 잡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잡지는 않았다. 엘르시어가 그녀에게 무례하지 말라 한 모양이었다. 대신 그들은 이 소식을 엘르시어에게 알리기는 할 것이다.

차림을 톡톡 정리한 그녀는 평범하게 걸었다.

잡동사니의 길이 있는 곳에 가까워질수록 아는 얼굴들도 많아졌다.

서점에 은여우단이 들락날락거렸다는 게 소문났는지, 위즈를 본 사람들은 멀찍이 서서 안부를 묻거나 걱정했다. 절대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위즈의 표정이 묘하게 밝았기 때문이다. 저런 얼굴의 위즈를 건드리면 혈압 오를 일이 생긴다.

오늘은 날씨도 흐려서 혈압이 쉽게 오를 것 같았다.

“어이고……. 얼굴이 반쪽이 되었네! 이거 줄 테니까 가져가서 먹어, 아가씨.”

“아, 그래, 그래. 이것도 가져가. 오늘만 서비스야.”

단골 사탕 노점 주인과 기타 등등의 군것질거리를 파는 노점 주인은 위즈에게 먹을 것을 한가득 안겨 주었다.

위즈는 더 밝아진 얼굴로 인사했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이 친절은 잊지 않겠습니다.”

“…….”

“…….”

잊을 거잖아.

벌써 잊었잖아.

두 상인은 이를 꽉 악물었다.

그러나 위즈는 두 사람의 투지는 느끼지 못한 것처럼 자리를 벗어났다. 쫄랑쫄랑 잡동사니의 길에 들어서기까지 이제 아무도 그녀를 잡지 않았다. 간만에 다른 사람 혈압 높이는 걸 봤으니 됐다는 심정으로 사람들은 위즈를 시원하게 보냈다. 당하는 걸 보는 건 재밌지만 내가 당하고 싶진 않았다.

방해 없이 품 안에 가득한 사탕과 젤리, 초콜릿을 살피며 걷다 보니 어느새 서점 앞이었다.

아, 잠깐. 위즈는 잘 닫혀 있는 서점 문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자물통의 열쇠가……, 열쇠가……, 베렐에게 보냈는데…….

힘겹게 한 손을 삐죽 내밀어 문을 흔들어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

이건 진짜 실수였다.

다시 한번 문을 잡고 덜컹덜컹, 자물쇠를 잡고 철컥철컥 흔들어 보았다. 변함없었다.

대신, 열리라는 이 문은 열리지 않고 옆옆집의 문이 열렸다.

소란스럽게 문 흔드는 소리를 듣고 나와 본 피트는 위즈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야, 너!”

“아, 오늘 저녁은 스테이.”

피트는 문을 닫고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위즈는 천천히 문장을 완성했다.

“크…….”

어차피 오늘 저녁 식사는 못할 것 같지만.

그녀가 문을 흔들 때쯤 모퉁이에서 모습을 드러내 이쪽으로 다가오는 일행의 옷차림은 하나같이 고급스러웠다. 누구인지 안다. 그녀는 이쪽으로 안내받고 있는 사람, 저 일행의 중심인 사람과 시선을 마주쳤다.

골목의 끝에 있는 서점 앞에 있으니 도망할 곳도 없고, 도망할 생각도 없었다.

위즈는 간식거리를 고쳐 안았다.

아까 탑주가 보내준 소식으로 로헤올 공작이 아리오에 왔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일행은 윌리엄의 제지로 피트의 집 앞에서 멈추었다. 안내와 호위를 겸하고 있던 은여우단의 기사들도 다르지 않았다. 위즈는 그 기사들 중 하나를 힐끔 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다른 이에게 분산되었던 건 오로지 그 순간뿐이었다.

위즈는 이 자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그는 위즈를 보며 미소했다.

“재미있게 살고 있었구나. 이런 데에서 만날 줄은 몰랐어.”

“…….”

그 친근한 인사에 은여우단의 기사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제국 온느발레의 로헤올 공작이 일개 평민과 친분이 있다 하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특히 그 평민이 저 위즈라면.

위즈의 침묵에 굴하지 않고 그는 다시 한번 말을 걸었다.

“안녕. 잘 지냈어?”

꽤 긴장한 듯 보이니 아마도 이건 그도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일 것이다.

웃음, 눈, 얼굴, 안색, 거동하는 몸. 하나하나 조용히 살핀 어떤 누이는 소리 없는 웃음을 지었다. 비가 올 것처럼 흐린 웃음이었다. 마침내 그녀는 대답했다.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다.”

적어도 육신은 건강해져서…….

그것만이라도 다행이다.

뮌제는 치밀어오르는 것을 삼켰다.

목에서 숨이 끄르르 떨리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그녀는 애써 웃으며 품에 있는 것을 내밀었다.

“이거 먹어.”

“…….”

“네 거야.”

“…….”

“건강해지면 같이 먹고 싶었어. 널 잊지 않으려고 계속 먹었어. 끝날 때까지 내 책임을 잊지 않으려고 계속 먹었어.”

“…….”

“네 거야. 좋아하잖아.”

“…….”

“같이 먹자.”

나지막하게 절박한 말이 이어지고 이어졌다.

윌리엄은 움직이지 않았다. 일이 일어난 현장을 보고 싶다 하여 공식적으로 이 서점에 방문한 로헤올 공작은, 수많은 사람 앞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표정에도 변화가 없었다. 그저 미소하고만 있었다.

눈물도 없었다.

건조한 얼굴을 본 뮌제는 힘겹게 숨을 들이켰다. 아니, 버티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살려서 구해 낼 방법이 없었다.

윌리엄은 약속을 지키고 있을 텐데, 그녀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날이 흐렸다.

* * *

뮌제 로헤올은 생전 마법사들의 천적으로 불릴 정도로 마법사들에게 강한 모습을 보여 왔다. 압도적으로 마법사들을 제압했다.

공부한 내용은 여타 공무원과 거의 같을 텐데, 뮌제 로헤올은 마법사의 습성이라도 꿰뚫은 것처럼 마법사와 아티팩트를 피해 없이 잡아들이고 회수했다.

그래서 뮌제 로헤올이 마법사가 아니냐는 의심이 일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마법사들은 이기적일 정도로 홀로 생활하다가도, 마법사들에게 일방적으로 해 될 것 같거든 힘을 합해 적을 물리쳐 왔다. 마법사들은 비마법사를 골리는 걸 좋아하면서도, 비마법사가 저희만의 특별한 사회에 침입하는 것만큼은 철저히 막았다. 마법사는 세상에 대해 극도로 배타적이었다.

비마법사들과 마주 보고 선 그 선민사상과 배타성은 마법사의 특징이었다.

잔혹할 정도로 마법사를 잡아들이고 제압하는 뮌제 로헤올은 마법사일 수가 없었다.

마법사는 그리할 수가 없다. 세간의 상식이 그랬다. 그들이 아는 역사도 그랬다.

뮌제가 마법사를 극히 혐오하고 경멸하는 건 온느발레 수도의 귀족 사회에 발 들인 자라면 모두 알았다. 뮌제는 그 혐오를 숨기려 한 적도, 숨기려 노력한 적도 없었다. 윌리엄을 향한 그녀의 맹목적인 애정을 숨기지 못했던 것처럼.

뮌제는 분명 마법사가 아니었다.

“어떻게…….”

너무 놀라 눈까지 부릅뜬 뮤니르 자작의 그 경악은 숨이 넘어가는 것처럼 새어 나왔다. 반쯤은 비명과 같이 흘러나왔으나, 그나마도 끝은 저물고 만 어정쩡한 신음이었다.

그는 입을 막았다.

뮌제 로헤올이 폭사했다 하는 현장을 직접 본 사람에게서, 그 현장의 참담함을 들은 적 있었다.

누군가가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미약했던 폭발이 아니었으리라고 들었다. 누군가가 살아남는 기적은 현실적으로 바랄 수가 없으며, 혹시라도 만에 하나 살아남을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자는 마법사여야 할 거라고 했다. 기적이라는 것도 마법이 있어야 걸어 볼 수 있는 판돈이었다. 그만큼 처참한 현장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저 얼굴은.

닮은 정도가 아니라 그냥 뮌제 로헤올이었다. 머리색만 다르다 싶을 뿐.

어떻게.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살아 있지?

뮤니르 자작은 그녀에게서 떼어지지 않는 시선을 억지로 떼어 윌리엄의 뒷머리를 바라보았다.

윌리엄이 사실은 그 정도로 미치지는 않아서, 황제에게서 뮌제를 보호하기 위해 뮌제를 잠적시킨 건가?

그것도 확실히 말이 되긴 했다.

어쨌든 뮌제 로헤올이 그리 허망하게 아티팩트에 당해 죽는다는 것도 실은 어이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힘겨운 납득도 곧 흔들렸다. 윌리엄 로헤올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이 사람과 잠시 이야기하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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