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인간의 육신을 삼킨 악마는 종국에는 영혼을 완전히 앗아감으로써 완전히 그 인간을 앗는다.
마법의 역사는 의외로 오래되지 않아서, 아직 채 300년도 되지 않았다.
* * *
기원후 612년, 인세에 처음으로 악마라는 게 나타났다. 그 괴이한 존재는 그날로부터 사흘에 걸쳐 여섯이 나타났다.
아름다운 외향을 가진 그것들은 내내 공중에서 눈 감고 있다가 사흘째 되던 날 다 함께 눈떴다.
그 끔찍한 것들의 장난과 조롱은 그 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들이 쓰는 요술은 청정한 세상에 눈송이처럼 스며들어 뿌리를 내렸다. 그렇게 뿌리내린 요술은 아직 청정했던 인세에 한 번 걸러져 어떤 인간들의 생명에 박혔다.
그 인간들로부터 태어난 아기들은 악마가 쓰는 것과 비슷한 무형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잠시 손 닿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육신을 썩어 가게 하는 요술과는 조금 다른지, 아기들은 그 힘을 쓰면서도 멀쩡했다. 멀쩡한 것처럼 보였다.
인간들은 기겁했다.
마법으로 명명한 그 힘을 쓰는 아기들은 마법을 쓰는 자라 하여 마법사로 명명되었다.
그리고 인간들에게 기피당했다.
마법의 근원은 굳이 살펴볼 필요도 없이 악마들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어떻게 마법사가 나타나게 된 것인지는 인간의 힘으로 알아낼 수 없으니 추정에 불과한 논리였다. 그럼에도 마법사는 혐오 당했다.
어째서 나타났는지도 모르는 악마들에 인간은 진저리쳤고, 하여, 그것들과 관련된 모든 것을 혐오하고 두려워하게 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혐오는 마법사가 태어난 지 오래지 않아 어떤 땅에까지 미쳤다.
인세에 모습을 드러낸 악마들이 처음으로 발 디딘 땅이었다. 인간은 그 땅을 재앙의 땅, 절망의 땅, 악마의 땅이라며 기피했다. 그 땅에 잠시라도 발 디뎠다가는 오염된 땅의 힘을 받아 몸에 마법이 섞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 땅.
기원후 931년 기준, 제국 온느발레의 대귀족인 로헤올 대공작이 가진 공작령이었다.
모두가 꺼려 사람 없는 폐허만이 가득한 그 땅이 기원후 666년에 로헤올에게 분배된 까닭은 간단했다.
당시에는 백작이었던 로헤올이 원했다.
황제는 깊이 신뢰하는 제후였던 당시 로헤올 백작을 말렸으나, 로헤올 백작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어차피 황제에게는 골칫덩이일 뿐인 땅이니 그냥 제게 맡기시라 했다.
악마의 기운이 실로 남아 있다면 로헤올이 감당할 것이며, 남아 있지 않다면 그것으로 다행한 일이 아니냐며.
온후한 얼굴에는 당시 황제를 향한 다정한 염려만이 가득했다.
그 충심에 감동한 황제는 백작에게 미안해하면서 땅을 분배했다.
새로이 땅을 가지게 된 백작을 당시 귀족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 더러운 땅, 쓸모도 없이 두려운 땅, 얼마든지 가져서 관리하라지.
로헤올 백작은 새롭게 백작령이 된 그 땅에 거침없이 발을 디뎠다.
그는 기피 대상이 되며 몰락하게 된 한 후작의 영지였던 그 땅의 영주성을 살폈다. 청소하고 가꾸면 지내기에는 크게 나쁘지 않을 곳임을 확인한 것이다.
로헤올 본령으로 돌아온 백작은 뱃속에 아이를 가진 몇 부부를 그 땅으로 보냈다. 두려워 울며불며 부디 명령을 거두어 주시라는 그들은 평민에 불과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목이 잘려 태아와 함께 죽을 것인지 그 땅에 갈 것인지 선택할 것을 요구받았다.
열 부부는 뱃속의 태아를 부둥켜안고 악마의 땅으로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이들이 하나둘 태어나기 시작했다.
열 중 하나. 마법사.
이듬해 백작은 다시 새로이, 아이 가지지 않은 다섯 부부를 선발해 그 땅에 내려보냈다.
그 땅에서 수정하여 태어난 다섯 아이 중 하나. 마법사.
백작은 십 년을 그런 식으로 실험했다.
그리고 마침내 제 아들 부부를 내려보내며 명령했다.
앞으로 로헤올 직계의 아이는 반드시 로헤올령에서 수정되어야 하며, 열 달을 로헤올령에서 성장해야 하며, 로헤올령에서 태어나야 했다.
확률을 높이기 위해 택한 조건이었다.
백작은 가문 내에 마법사가 태어나길, 넘쳐나길 바랐다.
백작에게 마법사는 크게 기피하고 혐오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마법사의 영리함을 봤고, 마법의 편리함과 무서움을 보았다. 알 수 없는 힘, 가질 수 없는 힘이기에 꺼린다고들 하지만, 가질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든든한 힘이었다.
로헤올 백작의 복심은 백작에게서 백작에게로, 그 백작에게서 후작에게로, 그 후작에게서 공작에게로, 공작에게서 다음 공작에게로, 이하 같게, 끊기지 않고 전해져 내려왔다.
로헤올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세상이 꺼리는 마법사를 비밀리에 몇 명이나 가져 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세상은 몰랐다.
로헤올 당시 백작은 판돈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대대손손의 후손들을 걸고 도박했고,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후유증도 분명 있었다.
마법의 근원은 결국 악마의 요술이었다. 그 더럽고 끔찍한 뿌리는 분명 여러 갈래로 힘을 발휘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후손이 많이 태어나게 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현 로헤올 공작인 윌리엄 로헤올도 그런 경우였다.
한 번 걸러진 요술이라도 악마의 힘이긴 매한가지다. 마법은 결국 인간에게 맞지 않았다. 마법사들 역시, 사실은 멀쩡하지 않았다. 육신도. 정신도.
* * *
마법사로 태어난 뮌제는 어릴 적부터 윌리엄에 대해 들어 왔다.
그녀가 어째서 윌리엄을 책임감 있게 살펴야 하는지, 어째서 그 사랑을 잃어서는 안 되는지, 부모에게 듣고 들어 왔다.
어린 소녀는 마법사의 본능으로 마법을 자랑스러워했고, 윌리엄을 굉장히 짜증스러워했다. 누가 그리 약하게 태어나라 하던가. 누가 그리 비마법사로 태어나라 하던가. 왜 책임을 내게 전가하나.
그러나 부모의 이야기는 교육이라기보다는 거의 세뇌였다. 공작 부부는 절실하게 뮌제를 가르쳤다. 윌리엄을 사랑해라. 윌리엄을 보살펴라. 네가 가진 모든 게 윌리엄의 것이었다. 윌리엄에게 감사해라. 가엾은 윌리엄.
가엾은 네 오라비다.
어린 시절부터 질릴 만큼 들어야 했던 당부는 기어이 소녀의 가치관을 서서히 바꾸어 갔다. 사실 자포자기에 가까운 순응이었다.
너무 약하게 태어난 탓에 숨겨져, 건강하고 강한 뮌제가 태어난 후에야 세상에 소개된 윌리엄.
뮌제의 오라비지만 뮌제의 남동생.
뮌제가 가진 모든 것은 그녀가 윌리엄으로부터 앗은 모든 것.
차츰 뮌제는 자신이 마법사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으리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부모는 그녀에게 지나치게 강요했고, 사랑은 오지 않았다. 부모에게 남은 것은 가엾은 윌리엄에게 퍼부을 사랑뿐이었다.
그리고, 가엾은 윌리엄…….
뮌제는 책임감에 짓눌리기 시작했다.
그 나이의 아이에게 허락되어야 했을 시간은 라파엘과 있을 때만 누릴 수 있었다. 소녀에게 라파엘은 휴식이 되고 해방이 되었다. 라파엘은 속을 토하는 뮌제를 다정하게 안아 주었다. 소녀가 받을 수 있는 유일하게 순전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런 라파엘이 알 수 없는 병으로 죽어 갔다.
알 수 없는 병이 옮아 귀한 후계자를 잃을까 하여 로헤올 공작 부부는 뮌제가 에흐베의 저택에 드나드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뮌제는 몰래 마법을 써서 라파엘의 곁에 수시로 갔다.
라파엘은 하루가 다르게 점점 상태가 나빠졌다. 실로 죽어 갔다.
뮌제는 겁에 질렸다.
[네가 없으면 안 돼. 라파엘.]
의식도 없이 죽어 가는 라파엘의 손을 잡고 그녀는 펑펑 울며 애원했다. 라파엘 없이 살 생각을 하니 죽도록 무서웠다. 부모를 잃는 것 같았다. 부모가 했어야 할 보호를 준 친구를 잃어 가는 소녀는 새까만 공포에 시달렸다.
일어나.
제발 일어나.
라파엘의 옆에서 두 손을 대고 싹싹 빌었다. 무엇이든 내가 잘못했다고 빌었다. 일어나. 일어나, 라파엘.
로헤올 공작이 될 후계자로 늠름하게 성장하던 소녀는 혼자 될 자신이 그토록 무서웠다.
홀로 이어 가는 목숨에는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각오도 마침내 들어섰다. 어느 오후였다. 라파엘의 한 손을 잡고 한동안 멀거니 앉아 있던 어린 마법사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마법사여서 다행이다.’는 절실한 안도는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었다.
다행이었다.
너무나도 다행이었다.
뮌제는 라파엘의 손을 끌어올려 볼을 묻었다.
[미안해.]
혼자 남겨지는 게 무서웠다.
뮌제는 죽기 직전의 라파엘에게 자기 생명의 근원을 옮겼다. 죽을 각오였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가진 심장. 피가 울컥울컥 샘솟는 씨앗. 그 심장은 샘물이 흐르는 것처럼 무형의 흐름으로 변하여 라파엘에게로 흘러갔다.
연금술은 그렇게 사용할 수 있는 좋은 학문이었다.
자기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법사는 결코 하지 않을 일을 뮌제는 기꺼이 해냈다.
가엾은 윌리엄에게도 시도하지 않은 일을, 뮌제는, 라파엘에게 해냈다.
뮌제의 생명을 받은 라파엘의 색은 뮌제의 생명으로 꿈처럼 물들었다. 본디 진한 회색이던 머리카락의 색이 살살 연해져 가는 게 보였다. 머리카락의 색이 물들기 시작하였다면 감은 눈꺼풀 아래의 눈동자는 이미 연회색, 이미 뮌제의 생명의 색일 것이다.
환상적이다. 네가 살았어. 너는 이제 살 거야.
기쁨에 벅차하며 뮌제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일주일 후 그녀는 로헤올 저택에서 다시 눈을 떴다. 고열에 들떠 헛것을 보는 건가 막연하게 생각했다. 자신이 어떻게 아직도 살아 있는 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곧 죽을 건가. 아무 말도 못하고 깜박이는 눈으로 천장을 보는 그녀의 손을 누군가가 잡아 왔다.
그 사람에게로 천천히 눈을 돌린 뮌제는 이내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전과 같이 진한 회색 머리카락과, 전과 다르게 연한 회색 눈동자를 가진 라파엘은 고개를 내려 그녀의 뜨거운 이마에 입 맞추고 그대로 한동안 있었다.
소년은 속삭였다.
[이제 우리는 서로를 가졌어. 가지 마. 내가 널 잃게 하지 마.]
사랑해. 가지 마.
뮌제는 살아남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어야 할 자신이 어떻게 살 수 있었던 건지 조금도 몰랐다.
그로부터 2년 후.
마법사인 덕분에 라파엘을 살릴 수 있었던 뮌제가 마법과 마법사, 세상에 하나 남은 요술을 쓰는 자를 완전히 혐오하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 * *
그건 우연과 필연이 겹쳐 벌어진 일이었다.
악마가 나타난 지도 약 삼백 년이었다.
악마를 물리치고자 하는 시도가 아예 없기에는 삼백 년은 긴 시간이었다.
그러나 악마의 악함에 지친 인간들에게는 악마를 죽일 수 있는 무력이 없었다. 모든 시도는 처절한 결과와 함께 무산되었다.
각 나라에 특수 수사기관이 설립되어 악마를 죽일 방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악마와 관련된 사건 모두를 수사하며 악마를 쫓아다녔음에도.
그래도 기적적으로 영웅은 나타났다.
그 영웅은 자기 목숨을 던져 악마 하나를 끝장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전투가 있었는지는 모른다. 사람들은 어디선가 나타난 한 남자가 악마와 맞서기 위해 마을을 등지고 우뚝 선 모습을 보았을 뿐이고, 악마를 보자마자 도주하였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시신이 된 남자의 손에 악마의 심장으로 추정되는 장기가 아름다운 호박색으로 변해 들려 있던 것을 보고 악마가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뿐.
악마의 사체는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사람들은 자기 목숨을 바친 남자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그 마을이 속해 있던 영지의 주인은 사비를 들여 극진하게 영웅을 추모하고 장례했다.
그 영웅이 여태의 역사가 경멸하고 혐오했던 마법사라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