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아마 그중 대부분이 호문클루스겠지.”
“…….”
더 재미있게 비마법사들을 약 올리기 위해 마법사들은 마법에 대해 수많은 지식을 각종 매체를 통해 전파하고 다녔다. 그러나 마법사들이 결코 설명하지 않는 지식이 있으니, 바로 연금술과 호문클루스에 관해서였다.
따라서 호문클루스에 대해서 비마법사는 제대로 알 수 없었다. 호문클루스의 정의와 개념조차 제대로 알지 못할 정도로 제한된 지식이 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주군은 호문클루스를 잘 알고 있었고, 현재 떠도는 중인 아홉 기사는 주군이 어찌 그 지식을 가졌는지도 알고 있었다. ‘살아난’ 날, 주군의 비밀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청년은 주군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호문클루스를 만드는 이유는 생명을 삼켜서 마법사에게 옮기기 위해서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마법사들에게 일상적인 일이라고…….”
“하지만 이 많은 수의 호문클루스가 일상적일 수는 없지. 저건 필시 그것이 만든 호문클루스다.”
“외람되지만, 각하, 비약이십니다. 부디 염려하지 마시.”
“그건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알고 있어.”
뮌제는 옅은 미소조차 짓지 못했다.
눈 부릅뜬 청년 역시 그랬다.
“사, 아, 어……. 살아……. 어떻게.”
“아마 나 때문일 거다.”
뮌제는 말을 삼켰다. 부주의하게도 흰 꽃을 만진 적이 있었다.
“예?”
“내가 멍청한 짓을 하나 했어. 아마 그것 때문일 거야. 그래서 내가 여기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지. 온느발레에서 온 귀족이 나를 찾았다는 걸 보면, 그건 이제 분명히 날 마주할 준비가 되었어.”
“귀족 말씀이십니까? 누가?”
“아마 뮤니르 자작이겠지. 그래, 그렇군. 갑자기 왜 아리오로 사신단을 보냈나 했다. 이제 알겠다.”
“…….”
“혹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곧 될 터다. 지금 저리도 끔찍하게 앞뒤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죽이고 있으니.”
뮌제는 차가운 손으로 책 표지를 넘겼다.
아티팩트로 인한 연쇄 살인이라니 설마설마 했지만, 온느발레에서 온 귀족까지 그녀를 찾았다는 것을 보면 아티팩트를 뿌린 건 필시 ‘그것’이다.
한 자만한 마법사의 짓거리, 혹은 만에 하나의 확률로 웬일로 동업한 여러 마법사의 짓거리일 것 같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리 의심했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녀는 서문을 빠르게 훑으며 말했다.
“요즘 나타나는 호문클루스의 수만 봐도 많이 회복된 모양이야.”
“저게, 저게 그것이 흩뿌리는 호문클루스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직 약할 수도 있습니다. 회복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아 하는 부정에도 그의 주군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책에 집중하여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책장 하나가 더 넘어갔다. 팔락. 목차가 나왔다.
결국 청년은 억눌린 목소리로 속삭이듯 물었다.
“도련님께서……, 돌아가셨습니까?”
“아니, 버티고 있을 거다.”
칼 같은 단언이 허공을 잘랐다.
“…….”
“윌리엄은 버티고 있을 거야.”
뮌제는 고집스럽게 말을 반복했다. 책장이 또 넘어갔다.
그에 기사는 생각했다. 저것은 ‘버티고 있을 것이다.’ ‘버티고 있어야 한다.’보다는 ‘죽었을 리가 없다.’에 가까운 말씀이지 않을까. ‘네가 죽었을 리가 없어.’
……어쩌면 벗끼리 이리도 닮으셨을까.
청년은 서부 지방에서 만난 베렐과 잠시 나누었던 담소를 떠올렸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연상이었다. 그만큼 대단히 충격받았던 내용의 대화였기 때문에. 그는 그 대화 덕분에 에흐베 대공이 뮌제 로헤올 공작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바.
기사는 감히 한숨을 삼켰다.
사실 그는 주군이 에흐베 대공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몸을 의탁하면 좋으리라고 생각했다. 그 에흐베 대공이라면 기꺼이 주군을 도울 것이며, 에흐베 대공에게는 기동력이 충분했다.
주군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기사에게 세상의 모든 주군은 따르기 위해 존재하는 분이지, 이해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주군이 절친한 에흐베 대공을 외면하는 일 자체가 주군 자신의 죽음을 대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건, 너무 무서운 생각이었다.
“그는 버티고 있어…….”
“…….”
스스로를 이해시키려 하듯 하는 말을 기사는 묵묵히 들었다.
청년이 아는 한 윌리엄 로헤올은 육신과 정신이 강했던 적이 없다. 뮌제를 죽이려 했던 그날에 이미 죽은 상태였어도 놀랍지 않을 만큼 심신 연약한 도련님이었다. 그런 사람이 ‘버티고 있으리라’ 하는 주군의 심정도 오죽하겠나 싶었다. 감히 위로하기도 어렵다.
기사의 침묵 속에서 뮌제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는 건 확실하지. 이제는 내가 직접 움직여야겠다.”
“……예?”
“아리오에 있다는 걸 들킨 이상 아리오를 떠나는 게 좋아. 적어도 얼숍은 떠나야지.”
하지만 여태 직접 움직이지 않았던 까닭이 여럿 있다.
“하지만 다른 왕국은 정착하기에…….”
“시간이 없다고 했지 않아. 이제 어디에 정착할 일이 없을 거야.”
윌리엄의 일이 끝난 후에는 그럼 어찌하려 하시냐고 묻고 싶었다.
황제가 있는 온느발레로 돌아가실 건가.
아니, 애초에 그건 생존을 전제로 둔 의문이다.
여쭙고 싶건대, 살아 계시긴 할 건가.
살지 않을 테니 정착할 곳도 더는 필요 없다는 말씀만은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하지만 물을 수 있는 종류의 질문이 아니었다. 기사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가 다른 것을 물었다.
“화가는 어찌하려 하십니까?”
옆옆집에 사는 화가 피트는 중앙탑 탑주의 숨겨진 손자였다. 탑주를 통제하기 위한 인질로 삼기에 훌륭했다. 피트는 제 조부가 누구인지, 심지어는 살아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지만, 탑주는 손자를 사랑하고 있었기에.
권력자였던 전에도, 공작으로서의 권력을 잃은 현재에도, 뮌제 로헤올은 필요할 시 살인도 불사할 ‘권력자’라는 사실을 탑주는 잘 알고 있었다.
피트를 살리고 싶거든 탑주는 온전히 뮌제에게 협력해야 했다.
그걸 다르게 말해 보자면, 피트라는 인질이 없다면 탑주는 뮌제에게서 등 돌려도 이상하지 않을 자였다.
그럼에도 뮌제는 이리 대답했다.
“이제는 의미 없다.”
방법을 찾는 데에 집중하고 싶었고,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방해받지 않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녀의 생존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기를 원했으나 이미 윌리엄이 알았으니 더는 탑주를 통제할 이유가 없었다.
탑주에게 생존을 알려 가면서까지 중앙탑에서 얻어내고자 했던 것들도 전부 가졌다. 잠시 몸을 의탁해야 했던 장소로도 썼고, 그들이 가진 자료들 중 그럴싸한 것들도 전부 보았다. 중앙탑과 아득바득 연결되어 있어야 할 까닭이 이제는 없었다.
“배신한다면 그렇게 둬. 이제는 상관없다. 다만 그 대가를 치르는 건 별개지.”
“……각하. 외람되지만 제 우견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각하께서는 그간 몸을 혹독하게 움직이지 않으셔서 체력이 전보다 떨어지신 상태입니다. 여행하시기에 적합한 상태가 아니십니다.”
적합한 상태가 ‘여전히’ 아니다. 여전히.
중앙탑에 잠시 몸을 의탁해야 했던 때에 비하면 훨씬 건강해졌고,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체력 문제에 불과하지만, 여행 다니기에 적합한 상태가 아니라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같았다.
청년은 말을 고르고 골랐다. 말을 버릇없이 한다고 해서 크게 화를 내실 분은 아님에도 그는 조심스러웠다.
“필시 피로하실 존체를 이끌고 돌아다니신다 하더라도 곳곳을 누비는 인력이 한 분 분량 늘어난 것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녀가 손을 보태 봤자 효과가 미미하니 굳이 그녀가 손 보탤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차라리 이곳에서 화가를 확보하신 상태로 머물며 서적을 받으시는 편이 낫지 않을까 사료됩니다.”
“…….”
“…….”
“말 고르느라 수고 많았다.”
뮌제의 담담한 칭찬에 기사는 헛기침했다. 농담이라는 걸 알아 더 민망했다. 그의 주군이 그가 한 말에 어지간해서는 노하지 않으리라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농담을 하실 정도로 평온하게 받아들여 주시니 많이 황송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본디, 친구인 라파엘 에흐베 대공이 서릿발같이 냉철하게 신하들을 다스리는 것에 비해 뮌제 로헤올 공작은 퍽 자상하게 신하들을 대하는 편이었다. 옅은 미소를 보이는 건 예사요, 농담과 같이 친근한 말도 꽤 자주 했다.
그리고 그건, 그녀가 항상 여유 있기 때문은 아니었으리라.
마음에 여유가 없을 법한 상황에서도 뮌제 로헤올 공작은 아랫사람이 평온할 수 있도록 태연한 태도를 보였다.
마치 지금처럼.
뮌제는 그를 보며 희미하게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경 말이 맞아. 내가 머리가 많이 굳었지?”
“당치 않으십니다.”
“윌리엄의 일이라 눈이 가려. 그러지 않으려 해도 머리 한구석이 너무도 쉽게 마비된다.”
안정감 있는 목소리가 빠르지 않게 기사를 달랬다.
이런 음성을 낼 수 있을 만큼 주군이 이성적으로 계신다는 사실이 기사에게는 큰 위안이었다.
기사는 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기사된 입장으로 듣기에 민망한 말이었다.
그러자 뮌제는 조금 더 큰 미소를 지었다. 한숨 쉬는 것처럼 흩어지는 웃음소리도 아주 조금 흘러나왔다.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건만 결국에는 때가 다가오는구나.”
“…….”
“그래도 끝까지 노력해 봐야지. 이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가라. 조금만 더 수고해.”
“예, 각하.”
기사는 어깨를 펴고 자세를 고친 후 주군에게 경례했다.
뮌제는 다시 위즈가 되었다.
그는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그녀를 뒤로하고 서점을 나섰다.
끼릭거리며 나무 문 닫히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저벅저벅. ‘잡동사니의 길’로 구분된 골목을 걸어 나가던 기사는, 문득, 아주 문득, 눈물이 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 나 때문일 거다.]
끝을 끌고 온 실수가 주군 당신이 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속이 과연 평온할 수 있을까.
조금 전 분명 감정이 요동치셨을 텐데도 주군은 그에게 한 조각 노여움도 보이지 않으셨다. 전과 달라지지 않은 그런 자상함을 계속 받고 있으니 윌리엄을 향한 그의 분노는 오히려 켜켜이 쌓여 갔다.
윌리엄만 놓으면 뮌제 로헤올은 그녀가 마땅히 가져야 할 것들을 가지고 고귀한 공작으로 서서 경외 받을 수 있는 분이었다. 윌리엄만 놓으면. 윌리엄만 놓았다면.
처음부터 윌리엄을 놓았다면.
청년에게 윌리엄은 그 정도 가치였다. 태생부터 주군을 방해하는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도련님.
그러나 그의 주군은 결코 윌리엄을 놓으실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윌리엄을 향한 공격마저 대신 맞이하여 목숨까지도 내어 주려 하셨고, 작위는 기꺼이 내어 주셨다.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이 정도면 할 만큼 하시지 않았나.
도대체 어째서 윌리엄에게 이토록 모든 것을 걸고 집착하시나. 낳은 부모도 아니고, 함께 어리고 똑같이 젊은 형제에 불과한데 도대체 언제까지 윌리엄을 위해 전부를 거실 건가.
도대체 왜 저렇게 윌리엄을 외면하지를 못하시나.
* * *
위즈는 기사가 나가자마자 책을 놓았다.
이리 놓을 시간이 없다. 없는데, 마음이 요동쳐 미칠 것 같았다. 시간이 없다 하니 오른 초조감이 사람을 망가뜨리려 했다. 미안해, 윌리엄. 내가 꽃을 만지지만 않았어도 이것보다는 조금 더 시간을 벌 수 있었을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텨.
버티고 있어야 해, 윌리엄.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이 평생일 수는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대한 길게 버텨 주기를 바랐고, 윌리엄이라면 버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산길에서 죽던 날 마지막으로 당부를 남긴 것도 그래서였다.
[빌. 들리거든 명심해. 부디 내 이 죽음에 슬퍼하지 말고 끝까지 버텨. 넌 이겨낼 수 있어. 반드시 그럴 거야.]
절박한 낙관이었다.
그 스스로 이겨 낼 수 있을 것처럼 버티고 있으면 꼭 구해 주러 돌아올 것이라고.
그런데 결국 그녀는 아직 아무것도 찾지 못했는데, 그녀를 마주할 힘을 되찾은 것이 그녀를 찾고 있었다. 그건 윌리엄이 이미 죽었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기도 했다.
“…….”
위즈는 잘게 흔들리는 두 손을 모았다.
흔들린다. 그녀 자신이 약해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오랜 책임의 종착지가 다가온다는 긴장이 심신을 좀먹고 있었다. 윌리엄이 부디 버텨야 하듯 그녀 역시 당연히 버텨야 하는데도.
라파엘이 곁에 있었다면 이것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을 가진 죄인으로서 버티고 있는 뮌제 로헤올을 사람으로서 버틸 수 있게 했던 그가 곁에 있었다면.
아, 어떡하지, 라파엘.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