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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서점에서 흑막 바보로 살아남기 (42)화 (42/120)

# 41화

또 중앙탑인가.

뮌제 로헤올 공작이 사망한 뒤 공식적으로 로헤올을 떠난 요인要人은 베렐뿐이다. 뮌제에게 일이 있었던 그 산길에서 함께 사망하였다는 수행원들을 제외하면.

베렐은 에흐베의 기사들이 저를 계속 살피고 있으리라는 걸 전혀 생각하지 못할 남자는 아니었다. 뮌제가 움직이던 시절, 베렐은 아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중앙탑의 땅에는 피치 못하게 들러야 한다는 것이든지.

아니면, 에흐베를 교란하기 위하여 부러 들른 것이든지.

라파엘은 뮌제의 생존을 부정한 베렐을 어떤 의미로든 전혀 믿지 않았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결단을 내렸다. 입을 열었다.

“그쪽은 이제 내가 직접 관리하지.”

대공은 바쁘다. 보고 있으면 숨 막힐 만큼 바쁘다.

대공을 곁에서 보좌하며 조율 및 관리하게 된 일들이 많은 두 보좌보다도 바빴다. 대공은 일국의 군주였다.

그런 사람이 어떤 정보를 중간관리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관리하는 건, 같은 일을 옥타브가 할 때 느끼는 것보다도 훨씬 힘이 들 것이다.

하여 옥타브는 라파엘을 진정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도리가 없었다.

무얼 말리고자 했다면, 죽은 사람을 살았다고 여기며 찾는 것부터 말렸어야 했다.

옥타브는 걸고 있던 목걸이를 풀었다. 베렐을 쫓는 캠벨과 나눈 아티팩트였다.

이제부터 베렐에 대한 정보에서 옥타브는 배제될 것이다.

라파엘은 책상에 놓인 아티팩트를 잡으며 이어 명령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보다도 더 뮤니르 자작을 주시해라.”

윌리엄 로헤올이 무언가를 명령했다면 뮤니르 자작일 확률이 높았다.

라파엘은 사신단이 온느발레를 떠나는 날 마주친 윌리엄의 모든 것을 그저 넘기지 않았다. 그날 윌리엄의 반응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길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신단이 얼숍에 도착한 이래, 뮤니르 자작은 매 순간 에흐베의 기사에게 추적당하는 중이었다.

이제는 둘째 왕자가 급사하여 사신단이 일찍 귀국할 가능성이 작게나마 생긴 상태였다. 뮤니르 자작은 긴급하게 움직일 것이다. 아무리 철저한 사람이라 해도 조급할 때는 실수할 가능성이 컸다.

“예, 전하. 그리고 덧붙여, 아직 일레인은 찾지 못했습니다.”

수색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바로 찾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레인을 찾기 시작한 건 그가 얼마 전 로헤올 저택까지 가서 직접 《덴트 젠비세르》를 찾아본 뒤였다. 대공은 실망을 표하지 않았다.

보좌는 이외 다른 보고가 없음을 아뢰고, 경례한 뒤 퇴실했다.

“…….”

라파엘은 아직 쥐고 있던 목걸이의 펜던트를 손안에서 몇 차례 굴렸다.

생각하고 있는 건 베렐이 아니라 고발에 관한 것이었다.

지리. 정치. 이익. 사람 관계. 외교. 현 상황. 대담한 결정. 마법. 그리고 그것들과 뮌제의 연관점.

이 대담한 고발이 과연 우연히 지금 일어난 것인가.

“…….”

그럴 리가.

아리오에서 온느발레 사신단을 바삐 배제하고 싶은 이가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정말 어지간히 철저하고 대담한 자가 아니라면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펜던트가 들어 있는 시야가 잠시 감겼다가 돌아왔다. 오른 손바닥 위로 약지, 첫째 마디 뿌리에서 빛나는 반지로 눈길이 옮겨 갔다.

손을 내려다보고 있던 그의 눈이 가만히 올라갔다.

그는 정적인 얼굴로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생각에 잠겨 의미 없이 보이는 움직임으로 보였다.

느릿느릿 고개가 다시 정면으로 돌아왔기에 더더욱 그리 보였다.

그렇게 또 잠시 침묵했다.

라파엘은 손을 책상 위로 올렸다. 아직 잡고 있던 팬던트를 누르듯 내려놓은 그는, 손에 그대로 힘을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호흡이 잠잠했다.

책상 왼편의 벽에 박힌 지지대에서 검을 빼낼 때까지 모든 게 잠잠했다.

무겁게 가라앉는 왼손 안의 검을 짧은 시간, 아주 짧은 시간 응시했다.

라파엘은 오른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휘두르기에 좋은 게 아니라 땅에 박기에 좋을 것처럼 거꾸로 잡았다. 그는 그대로 뒤돌았다.

검은 순식간에 검집에서 벗어났고, 그는 반대편 벽의 책장 쪽을 향해 그것을 박듯 던져 날렸다.

“컥!”

비명이 들렸다.

묵직하게 허공을 밀고 들어간 검 끝은 책장의 칸을 나눈 나무에 박혔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피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법 아티팩트로 추정되는 옅은 기운이었다. 아마 옥타브가 퇴실할 때 들어왔을 확률이 높으나 그 전부터 있었음에도 라파엘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어떤 상황이든, 그는 침입자를 인식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침입자를 살려 보낼 생각이 없었다.

뮌제가 보냈을 거라고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경악한 음성이, 마찬가지로, 허공에서 들려왔다.

마르지 않았다. 목에서 피나 침이 끓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침입자의 신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복부 윗부분이나 가슴에 박혔을 터다. 그렇게 되도록 날렸다.

허공을 보며 대충 가늠하던 라파엘은 이렇다 할 말 없이 책상에 검집을 내려놓고, 장갑을 들어 착용했다.

침입자의 몸을 함부로 만질 수는 없었다. 또 어떤 아티팩트를 소지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므로.

그는 루미나리에단 단장이었던 뮌제의 절친한 친구였고, 하여 마법과 관련되는 모든 것들을 대할 때 응당 신중해야 할 것을 그녀에게서 몇 번이고 들어 왔다. 그러나 그 걱정스러운 경고가 아니었더라도 그는 마법을 대할 때 조심하였을 것이다. 뮌제만큼은 아니더라도 라파엘 역시 마법을 잘 아는 편이었다.

책상 뒤의 창문에도 커튼을 쳤다. 오전 특유의 이슬 맺힌 것 같은 햇빛이 뚝 끊겼다.

그는 마지막으로 단검을 들었다.

침입자는 제게 가까워지는 라파엘을 보며 다시금 아득바득 물었다.

“마법을 어떻게 파악했지?”

생애 마지막 질문이었다.

* * *

가족이라고 있는 게 서로 죽이고, 물어뜯고. 재미있어 죽겠다. 재미있어 죽겠어.

검은 옷을 입은 제이는 책을 읽다가도 피식피식 웃었다. 식사하다가도 웃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아버지가 아들을.

가족이 가족을.

사신단이 떠날 텐데. 뮌제 일을 알아봐야 하는데. 그들을 들쑤셔야 하는데.

해야 할 일이 있고 그의 삶의 목표는 그 일이 전부인데도, 제이는 움직이지 못했다.

각오하였던 죽음인데도 부친이라고 있는 사람에게서 위협을 받아 그런가. 아니, 그건 분명 아닐 터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뮌제가 죽었을 때보다도 몸이 무거웠다. 이상한 일이다. 몸이 무거운데 텅 빈 것처럼 허하였다.

사이 좋지 않던 형제의 죽음이라도 죽음은 죽음이다. 그러나 사망을 앞에 두고 그는 운 적 없이 웃었다. 평소보다 더 자주 웃은 것 같았다. 그 죽음에 대해 생각만 하면 웃겨서.

부친이 되어서.

자식을.

나를.

“…….”

마치 뮌제의 죽음보다도 며칠 전의 일이 더 충격인 것처럼 그는 사로잡혀 있었다.

[내가 너를 거두게 하지 마라.]

움직이게 만든 인형을 보는 눈길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사람을 가늠하는 시선을 제이는 많이 겪었다. 같은 세대 형제자매들이 받은 것에 비교할 수도 없이 더 혹독한 시선이었으리라고 확신한다.

온느발레의 귀족들에게 아리오의 왕자는 기본적으로 가소로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발롬브로사에게서도 여러 번 받아 본 적 있었다. 그는 자식의 부친보다는 만인의 군주 역할, 정치 중심의 역할에 충실한 편이었다. 따라서 이번이 특별하게 여겨질 까닭이 없는데.

제이는 읽고 있던 책을 덮어 테이블에 던졌다.

턱. 책을 제대로 받아 내지 못한 티 테이블은 불안하게 흔들리다가 쓰러졌다. 와장창 깨지는 것들이 많았다. 제이는 눈을 찌푸리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졸리고 뻐근하고 무겁다.

장례식은 이미 그제였다.

식이 있기 전 하루는 방 밖으로 나가질 않았고, 어제와 오늘은 침실에서 아예 나가지 않았다. 드레스룸으로 나가지도 않아서 시종이 옷을 가져와 침실에서 갈아입었다. 움직이지 않을수록 남은 힘이 쌓이기는커녕 움직임이 처졌다.

이불에 얼굴을 박고 있던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다시 피식피식 웃었다.

아. 웃겨. 재밌어. 진짜 웃겨.

어깨와 팔뚝에 힘을 주고 몸을 틀었다. 반 바퀴 구른 몸이 천장을 향했다. 침대 바깥으로 나가 있는 무릎이 구부러졌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이불 위에 퍼졌다.

한참 천장을 보던 웃는 얼굴은 서서히 무표정이 되어 갔다.

울 것처럼 축 처졌던 입꼬리는 그가 입에 힘을 주고 침을 몇 번 삼킨 뒤에 끌어올렸다. 완전히 무표정이 된 제이의 귓전에 위로가 떨어졌다.

[어쩌면 당신을 가장 귀애하시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위로를 부서뜨리는 말도 떨어졌다.

[내가 너를 거두게 하지 마라.]

보고 싶다.

뮌제. 당신이 보고 싶다.

눈을 감은 제이는 깍지 낀 두 손을 들어 눈꺼풀 위에 내려놓았다. 자세 탓에 벌어진 어깨에서 우둑우둑 뼈 꺾이는 소리가 났다. 방 안의 정적에 묵묵히 잠기던 그의 입이 벌어졌다. 뜨거운 숨이 흘러나왔다.

하. 움직여야 하는데. 사신단에 한 번이라도 접촉해야 하는데.

일정을 길게 보고 움직였더니, 도중에 이따위 일이 일어나서 계획이 쓸모없어졌다. 온느발레 사신단이 아직 아리오에 머물고 있는지 어떤지도 그는 알지 못했다. 움직여야 하는데. 보고픈 뮌제는 이 며칠 자주 떠오르는데 정작 제이는 그녀를 위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움직여야 하는데.’ 그 탄식뿐이다.

“…….”

제이는 곧 크게 하품했다. 코가 알싸해졌다. 축축해진 눈을 느끼며 손을 치웠다. 그러나 눈뜨지는 않았다. 여태 깍지 끼고 있던 양 손끝만 이불 위에서 잠시 꿈틀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잠들었다.

이리 모든 의욕을 잃은 듯 보이는 제이에 대해, 왕은 당연히 보고받고 있었다.

제이를 모시는 시종으로부터 시종장을 거쳐 올라가는 보고와 은여우단 기사로부터 엘르시어를 거쳐 올라가는 보고가 있었다.

은여우단 기사의 경우, 제이의 침실 안까지 드나드는 것은 아니었다. 기사로부터 엘르시어를 거쳐 왕에게 가는 정보는 몹시 적었다. 해서 현재 엘르시어도 제이가 어떤 상태인지만 어렴풋이 아는 상태에 그쳤다. 장례식에서 언뜻 보기에도 왕자는 퍽 기분이 가라앉아 보였었다.

왕실과 귀족들이 모여 추도하는 자리도 있었고, 이어지는 행렬도 있었다. 마법사들이 또 어떤 사고를 칠지 몰라서 은여우단은 피로에 찌든 몸으로 장례가 진행되는 내내 사납게 날을 세우고 있었다.

엘르시어도 그들을 통솔하고 다른 기사단들과 수시로 소통하느라 바빠 제이에게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그래서, 설마 발롬브로사가 그를 불러 제이에게 한번 들르기를 부탁할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오, 후작. 오랜만입니다.”

캄캄한 눈으로 하는 말은 전과 같았다.

제이의 허락을 받고 침실에 들어온 엘르시어는 가장 먼저 왕자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했다.

제이는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이제 막 잠에서 깬 듯 목소리는 잠겨 있고 얼굴은 조금 부었다. 엘르시어는 하얗게 질려 있는 왕자의 얼굴을 잠시 살폈다.

사실, 좋아하던 동료가 죽고 넋 잃은 얼굴로 하루 만에 잘 돌아다니던 다니엘은 대단한 편이었다.

처음으로 시신을 보고 크게 충격받아 며칠간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던 기사. 처음으로 죽을 뻔한 후 며칠간 거동치 못했던 기사. 동료를 눈앞에서 잃고 한동안 방황하였던 기사.

엘르시어에게는 그런 수하들이 많았다.

하여 저렇게 하얗게 질린 채로 부어 있는 얼굴 상태 역시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동생을 잃고 잠시 속을 추스르지 못했던 때의 자신의 얼굴도 저만치 창백했었다.

그러나 그가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격려도 위로도 섣불리 할 수 없었다. 그 자신이 이미 비슷한 것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 어떠한 것도 와닿지 않았던 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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