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짜 서점에서 흑막 바보로 살아남기 (29)화 (29/120)

# 28화

“앞으로는 부디 조심하면 좋겠습니다.”

“예?”

“중앙탑 소속 학자라고 해도 무시할 사람이 왕왕 있지요. 탑주의 인증서도 그렇고. 무시하고 당신을 조용히…….”

그는 말을 고르려 했지만, 다르게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옅은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죽일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중앙탑과 아리오의 외교전으로 번져도 범인을 찾아내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당신이 가진 책들은 가치가 그토록 높습니다. 미련한 자들이라면 무엇이든 감수할 정도로.”

“…….”

“설령 당신이 다른 국가의 사람에게 살해당한다 하더라도 당신이 아리오에서 살해당하는 이상, 모든 문제는 아리오가 감수해야 할 것이 됩니다.”

피로 물든 수건을 내려놓았다. 소독약을 집으며 위즈를 보았다. 그녀는 그의 말을 조금도 듣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큰일을 겪어 잠은 다 깼는지 또렷한 눈으로 카운터 한쪽을 보고 있으면, 듣지 않았다는 건 당연히 알게 된다. 심지어 보고 있는 게 사탕 두 개면 더더욱.

한숨이 깊은 속에서부터, 정말, 우러나왔다.

“…….”

엘르시어는 수건을 들고 있던 손의 손등으로 제가 아까 두고 갔던 사탕을 밀어 주었다. 단숨에 챙긴 그녀는 한 손으로 열심히 포장을 벗기고 사탕을 입에 넣었다.

엘르시어도 이만 포기하고 소독약을 들었다.

피가 닦여 훨씬 깨끗해진 환부를 소독하기 시작하자마자 위즈가 사탕을 들이마시지만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컥. 커억!”

“…….”

많이 아팠는지 흠칫 숨을 들이켰고, 그대로 사탕이 목에 걸렸다. 죽어 가는 방법도 참 다양하다. 아티팩트에게 독살당할 뻔하더니, 이제는 사탕으로 질식사인가. 피곤하다.

엘르시어는 큰 동요 없이 일어나 그녀의 등과 뒷목을 두드려 주었다. 바닥을 구른 옷이라 그런지 두드릴 때마다 피 냄새 섞인 먼지 냄새가 물씬 일어났다. 연신 켁켁 숨길을 뚫으려고 노력하던 위즈의 입에서 갑자기 딱, 하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요?”

“오…….”

어떤 감탄사를 흘린 위즈가 몸을 세웠다. 볼은 불룩했다. 엘르시어는 소리의 정체를 깨달았다. 목에 걸려 있던 사탕이 넘어와 이와 부딪히는 소리.

목숨과 함께 돌아온 사탕을 위즈는 또 태연하게 먹기 시작했다.

멀쩡한 손으로 목을 매만지던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죽을 뻔했습니다.”

“…….”

상대하다가는 한도 끝도 없었다. 엘르시어는 적당히 무시하고 다시 손을 씻고 왔다.

이번에는 그도 그녀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였다. 긴장하여 잔뜩 힘이 들어간 손을 그는 최대한 부드럽게 소독했다.

이어 연고를 바르는 손길도 퍽 상냥하고 조심스러웠다. 또 사탕을 잘못 삼키지 않도록. 뼈마디 굵은 제 손안의 작은 손에 집중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위즈의 손이 그의 것처럼 굳은살이 박이고 거죽 두꺼운 손이라는 걸 그제야 인식했다.

엘르시어의 눈동자가 멈칫 가늘어졌다가 돌아왔다.

필기구만 잡아 온 손은 분명 아니었다. 연고를 다 바른 뒤 붕대를 감으며 그는 지나치듯 말했다.

“손이 꽤 거칠군요.”

“예? 아. 뭐. 좀 그렇습니다. 박사가 되기까지……. 음, 공부만 할 수 있을 만큼 가정 상황이 좋은 편은 아니어서요. 이것저것 일을 했었습니다.”

보통 거기에는 가정 형편이라고 하지 않나. 선택한 단어가 독특했다.

그러나 사람이란 무릇 제게 익숙해진 단어라면 다른 사람은 잘 쓰지 않는 고어라도 자주 쓰게 되는 법이다. 엘르시어는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지나갔다. 작금의 그가 신경 쓰는 것은 단어보다는 그녀 손의 상처였다.

이건 아무리 봐도 칼에 찔린 자상이었다.

오래된 두 개의 상처를 잠시 내려다보던 그는 위즈의 손을 부드럽게 돌렸다. 손등에는 손바닥만큼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

엘르시어는 반사적으로 눈을 들어 위즈를 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위즈도 엘르시어를 멀뚱멀뚱 보기 시작했다. 연한 회색의 눈동자에 그가 비쳤다. 저 약간의 걱정도 없는 것 같은 얼굴을 보면 도저히…….

살짝 눈을 찡그리고 그는 미소했다.

“저번에 여기 수도 출신이라고 했었지요.”

“예? 예.”

악당 릴리아의 아티팩트 때문에 신문하던 당시, 진술상으로는 그랬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엘르시어보다 두 살 연상이라고도 했었다.

“농노는 아니었을 테고, 그럼.”

“아. 무슨 일을 했었냐는?”

“예.”

“평범한 삯일이요. 바느질도 하고. 밭일도 하고. 정원사 보조도 하고. 짐승도 돌보고. 정말 이것저것 했습니다. ……동생을, 음, 돌봐야 했거든요. 돌아가신 부모님이 단단히 부탁하셔서.”

붕대를 묶어 고정하던 엘르시어의 표정이 묘해졌다.

누가 들어도 ‘열심히 살았다’는 감상이 나올 이야기였다. 지독히 실례지만, 그가 겪은 위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는 잠시 망설였다.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던 탓이었다.

울음기는 사라졌으나 아직 약간 붉은 기가 남아있는 눈으로 그를 보던 위즈는 불쑥 물었다.

“손님은 여기에 왜 오십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그러나 질문의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질문 자체가 왔다는 것이 이상하게도 어색했다. 기시감 따위는 아니었다. 엘르시어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애매한 미소가 번졌다.

“여기에 있는 자료를 얻는 방법이 와서 읽는 것밖에 없으니까요.”

“아니. 그게 아니라. 부하 나리들 시키시지 않고 왜 직접 오시는 건지 여쭙습니다. 제가 알기로 높으신 분들은 직접 이런 작은 서점에서 독서할 만큼 시간이 여유롭지는 않으신지라.”

“높아서 부하들을 시키니 시간이 많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짧게 웃고 반문했으나, 위즈는 동그랗게 눈 뜬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는 반문한 직후에 어째서 자신이 위즈의 질문을 어색하게 느꼈는지 깨달았다.

위즈는 대답하기 위한 반문을 자주 한다. 누구인지를 묻는 일은 항상 있었다. 그러나 먼저 새 주제로 질문을 던지는 일은. 아마도, 여태 한 번도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엘르시어는 피로로 인해 평소보다 기민하지 못한 머리로 기억을 더듬었다.

위즈가 질문한 일이 정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서점은 정적에 잠겼다.

엘르시어는 느릿느릿 생각에 잠겨 있었고, 위즈는 그 얼굴을 담담하게 살피고 있었다. 고통과 눈물로 인해 핏발이 선 눈이 엘르시어에게서 한참 벗어나지 않았다. 엘르시어는 버릇으로 옅게 미소했다.

위즈는 정말, 물끄러미, 그를 보았다. 세상에 그 한 사람만 보이는 것처럼.

그러나 이어질 대화를 기다린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엘르시어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 다른 것을 보는 것 같기도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아직 그의 손끝이 닿아 있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위즈는 붕대 밖으로 나와 있는 손가락을 움직여 톡톡, 엘르시어의 손을 두드렸다.

회상에서 빠져나온 그의 눈이 마침내 그녀를 똑바로 담았다. 얼굴 위로 촛불 그림자가 진 위즈는 샐쭉 웃었다.

“이제 그만하겠습니다.”

맥락 없이 나온 선언이었다. 의아해하는 엘르시어를 보며 그녀는 몸을 뒤로 뺐다. 손도 물러나 카운터 아래로 떨어졌다.

“연구할 시간이 없습니다. 길어질 거라고 생각을 안 한 건 아닙니다만, 막상 사흘이나 지나니 좀 곤란해지네요. 홀려서 받아들이긴 했는데 이젠 정말 안 되겠습니다.”

이해했다. 무엇을 선언한 건지도. 어째서 선언한 건지도.

그는 이 밤에 어째서 그녀를 만나러 왔었는지, 본래 가지고 왔던 용건을 상기하고 고개를 느리게 한 번 까닥였다. 붙잡아 봤자 오늘처럼 집중하지 않을 거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살인 사건의 피해자와 그 유족들을 생각해 달라고 호소할 뜻은 그다지 없다.

위즈는 군것질거리를 대가로 이미 크게 도움을 주었고, 민간인인 그녀에게 상관없는 죽음을 억지로 더 짐 지게 하는 건 미안한 일이었다.

엘르시어는 미소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그간 수고했어요.”

“음?!”

“…….”

불안하게 왜 저러나……. 뒤통수가 차갑게 식을 만한 무언가가 또 나올 것을 자동으로 예감했다. 그러나 저 입을 막는다고 무언가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엘르시어는 포기하고 잠잠히 기다렸다.

“손님을 어디서 뵌 것 같습니다.”

“…….”

피곤한 그는 하마터면 울컥할 뻔했다.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하나만.

엘르시어의 웃음이 살짝 허물어졌다. 오늘 유독 대화가 물 흐르듯 잘 이어졌다는 사실과 잘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위즈의 기억 상실이 없었다.

이러다 지금까지 말했던 대화 주제마저 잊을 가능성이 대단히 농후했다.

애써 쓴웃음이라도 지은 그는 묵묵히 고갯짓으로 인사한 뒤 몸을 돌렸다. 반쯤은 도주였다.

위즈는 서점을 나가는 엘르시어의 뒷모습을 보다가, 서점이 비자 짧게 헛기침하듯 웃었다. 긴장 풀린 어깨가 내려갔다. 붕대 감긴 왼손을 내려다보는 시선에 쓴 감정이 들었다. 눈꺼풀이 떨리며 약간 내려갔다.

오늘 퇴근한 이후 잠시도 잠든 적 없는 눈이 느리게 움직였다.

엘르시어의 버릇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 미소에 약해졌던 것을 처음부터 자각하고는 있었다. 엘르시어가 아니라 다른 기사가 와서 권유했다면 은여우단의 일을 돕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도.

그러나 마법으로 기사를 잡아먹은 아티팩트가 하얀 꽃임을 본 오늘, 엘르시어를 누군가와 겹쳐 보며 약해지는 건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엘르시어는 어떤 죽은 공작이 빚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순간, 쓸데없이 은여우단의 일에 시간을 쏟을 이유는 사라졌다.

위즈는 엘르시어가 닿았던 그 손, 그 붕대에 오른손 끝을 살며시 기대었다. 엘르시어가 그녀의 상처를 보고 의아해했다는 걸 알았다. 둘 중 하나의 상처는 그녀가 엘르시어에게 겹쳐 보았던 사람에게 가장 끔찍한 죄를 짓던 날 입은 상처였고, 다른 상처는 그 사람을 구하겠다는 핑계로 편해지려고 했던 날에 입은 상처였다.

어찌 되었든 두 상처 모두 위즈에게는 무거웠다.

“…….”

지그시 통증이 올랐다.

위즈는 조용히 숨을 정리했다. 아직 입안에 남아 있던 사탕 부스러기가 그 순간 완전히 녹아 없어졌다. 좋아한 적 없는 사탕의 단맛이 뻑뻑하게 혀끝에 남았다.

* * *

사신단 대표인 아르망 페레이라 백작은 황제의 격려와 당부를 받은 후, 대기 중인 사신단에 합류했다.

마침내 출발한다.

윌리엄 로헤올은 사 개월 일정으로 아리오를 향해 떠나는 사신단 무리를 지켜보았다.

손님으로 육 년간 머물며 온느발레 황제의 좋은 말 상대가 되어 주었던 아리오의 왕자가 아리오에 잘 도착하였는지, 건강히 지내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고 왕자에게 황제의 호의와 인사를 전하는 것이 사신단의 공식 임무였다.

몹시 가치 없는 임무이므로, 로헤올 공작이나 되는 사람이 굳이 배웅 나올 까닭이 없었다.

그럼에도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사신단의 비공식 임무가 반드시 있을 터.

크게 중요한 왕국도 아닌 아리오에, 그것도 볼모로 왔던 일개 왕자를 위하여 굳이 사신을 보낼 필요가 없었다. 온느발레의 중앙 귀족들은 황제의 영리한 간교함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 황제와 현 로헤올 공작이 단 한 번 손잡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온느발레 방패의 사망이다.

그런 서늘한 주시를 알고 있는 윌리엄의 눈꺼풀이 조금 내려갔다. 찬란한 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 속에 허무한 조소가 들었다.

뮌제 로헤올. 너를 내가 죽였다.

너를.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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