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짜 서점에서 흑막 바보로 살아남기 (24)화 (24/120)

# 23화

위즈는 아직 세 번째 사건을 검토 중.

조금만, 조금만 더 일찍 위즈에게 그 사건 기록을 살피게 했다면 그 꽃이 아티팩트라는 걸 알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는 아티팩트가 사람을 삼키는 걸 본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먹힌 사람이 미니였다. 하필이면 미니.

그는 떨리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말했다.

“제발, 위즈 씨. 제 눈앞에서 미니가 잡아먹혔습니다. 남은 게 팔 하나뿐입니다. 벌써 두 시간 전의 일입니다.”

“…….”

혼비백산한 동료들이 일심으로 미니를 구해 낼 방법을 찾아내려 했지만 실패했다. 위즈가 마지막 보루였다.

다니엘은 말이 없는 위즈에게 애원하듯 설명했다. 침착하려 했지만, 음성은 점점 흐느낌을 담았다.

“미니요. 미니 말입니다. 당신을 은여우단의 탑에 매일 데려다 주었던 기사. 어제 당신을 여기까지 배웅해 주었던 기사.”

“…….”

얼굴이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해야 한다. 며칠간 잊지 않고 꼬박꼬박 출근할 수 있으려면 그건 기억을 하고 있었어야 했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극도의 피로와 흥분, 간절함에 가린 다니엘은 보면서도 인식하지 못했지만, 위즈는 무표정이었다. 시선을 잠시 돌려 바닥에 누워 있는 피트를 보았다.

그 말없이 끈질긴 눈길에 다니엘도 몸을 돌려 피트를 보는 순간, 다니엘로 눈을 돌린 위즈의 얼굴에 피로가 스치고 지나갔다.

다니엘이 다시 그녀를 볼 때 위즈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슬픈 일……. 잡아먹힌……. 마법과 관련된 것에 잡아먹힌 사람……. 순식간에 울기에 충분한 회상이다.

위즈는 카운터로 가서 얇은 겉옷을 걸쳤다. 작은 쪽지에 빠르게 몇 줄 적은 뒤에 피트 옆에 내려놓았다. 그녀의 뜻을 알아차린 다니엘은 먼저 서점 밖으로 나갔다.

* * *

다니엘과 함께 온 사람을 본 엘르시어는 피곤 어린 숨을 억눌렀다.

설마 했는데 위즈에게 갔었나. 심지어 데려오기까지 했다.

피 뿌려진 현장을 위즈에게 보일 수도 없었다. 그 경솔한 행동은 첫날 충분히 했다. 언제 다시 시동하여 무얼 삼킬지 몰라서 밀실에 따로 넣어둔 아티팩트 앞으로 데려가자니 그것도 문제였다.

이쪽으로 오는 두 사람에게 다가간 그는 애써 부드럽게 사과했다.

“새벽부터 미안합니다.”

“아티팩트…….”

운 것인지 눈가가 발갛다. 평소처럼 여유롭게 화답하는 게 아니라 우물우물 말하는 게 상당히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엘르시어는 다니엘을 힐끗 보고 결국 한숨을 쉬었다.

“언제 시동할지 모르는지라 당신에게 보일 수가 없습니다. 설명은 들었나요?”

“꽃이라고……. 이만한…….”

“예. 무언가 알려줄 게 있을까요?”

“단장님, 이럴 시간에 차라리 위즈 씨에게 보이는 게 낫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확률이 낮아집니다.”

다니엘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살아 돌아올 확률을 말하는 걸 엘르시어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악독한 아티팩트가 이 세계에 나타난 이래, 아티팩트에게 잡아먹힌 사람이 다시 나타난 경우가 한 건도 없었다. 그런 획기적인 사례가 있다면 반드시 알려질 테고, 그렇게 되면 중앙탑이 먼저 달려들어 연구할 테며, 그에 관한 논문도 당연히 나왔을 터다.

엘르시어는, 실은, 다니엘이 무얼 바라고 위즈에게 달려갔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위즈는 분명 많은 걸 아는 학자다. 하지만 아티팩트에게서 사람을 돌려받는 건 궤를 달리하지 않는가.

미니가 먹혔을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필사적인 사람은 다니엘뿐이었다.

다른 기사들은 일이 일어난 직후에는 경악하여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그럼에도 처음부터 포기한 상태였다. 엘르시어는 아예 뛰어다니지도 않았다. 먹히는 중이었다면 살릴 가능성이 있으니 뛰어들었겠지만, 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전부 먹힌 상태였으므로.

엘르시어는 깊은 피로에 잠긴 음성으로 나직하게 대답했다.

“위즈 씨는 민간인입니다. 위험한 아티팩트 앞에 노출시키는 건 불가한 일입니다.”

“미니 경이! 미니 경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경.”

다니엘은 이성을 잃었다. 겁먹어 내내 주눅 들어 있던 위즈의 눈이 깜짝 놀라 동그래졌다.

위즈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나. 엘르시어는 수하가 이토록 정신이 나간 이유 역시 알고 있었다. 섣불리 윽박지를 일은 아니었다. 차라리 기절시키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그것도 아니 될 일이다. 그가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다른 기사들에게 눈짓했다.

적당히 기사 세 명이 어두운 복도를 걸어 조심스럽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두 사내를 번갈아 보던 그녀가 무언가를 말한 건 그때였다.

“생명체를 먹는 모든 아티팩트는, 그, 러니까, 호문클루스인데…….”

“……예?”

엘르시어와 다니엘이 그녀를 보았다.

손을 들어 손등으로 눈을 문지른 위즈가 코를 훌쩍이고는 말을 이었다.

“아티팩트가 사람을 먹는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으면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곰 같은 맹수에게 사람이 먹혔다고.”

엘르시어는 위즈와 다니엘에게 보이지 않도록 조용히 손짓했다. 다가오던 기사들이 멈추었다.

흰자위마저 빨개진 눈을 깜박이며 위즈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소생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까?”

“…….”

다니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른 기사들이 다니엘을 배려하느라 하지 않았던 말을 위즈는 하얀 긴장 속에 내리꽂고 있었다.

엘르시어는 무언가 희망적인 방법이 있나 싶어서 일단 들어 보기로 한 것뿐이었다. 다니엘의 멘탈을 부수라고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라.

설마 이런 질문을 던질 줄은 몰랐다. 그는 지금이라도 위즈의 입을 막을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그러나 위즈는 태연하게 병을 주고 약을 주었다.

“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몇몇 학자들은.”

“예?”

그야말로 지옥에 떨어뜨렸다가 천국에 끌어올린 것과 다름없었다.

“증명할 수도 없고, 이렇다 하게 이론적이나 가정적으로 풀어낼 것도 많지 않아서 논문은 나오지 않았지만요.”

“있을 수도 있다?”

“예. 예를 들면, 아작아작 씹혀서 먹힌 사람은 절대 살아 돌아올 수가 없겠지만, 한 번도 씹히지 않고 꿀꺽 삼켜서 위장까지 내려갔다면 그 사람은 천천히 죽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설명은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사납게 넋 나간 다니엘의 얼굴에 희망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에 위즈는 약간의 배려도 없이 다시 지옥을 가리켰다.

“여기서 문제는 그 위장에 해당하는 공간에서, 그러니까, 아티팩트가 먹은 사람을 보낸 공간에서 사람을 빼낼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

“사람을 삼키는 아티팩트라는 게 어떻게 보면 살아 있는 것 같이 보이니까, 체했다든지 더부룩하다든지 하는 이유로 스스로 토해 내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하는 주장은 있는데, 그런 실제 경우가 없다는 것도 문제고.”

“…….”

“여기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알려드릴 수 있는 거라곤 그 아티팩트에 대해서인데,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보여 주시면 감사히 보겠습니다. 위험해서 안 되겠다 하시면 나중에 기록물로 읽고 분석해 드리겠습니다.”

나직한 설명 끝에서 그녀는 다시 코를 훌쩍였다.

병 주고 약 주고 병 주었다. 마지막으로 나와야 하는 약이 없어!

세 기사는 경악하며 다니엘의 눈치를 보았다. 여차할 시 다니엘을 제압하기 위하여 몸에 힘이 들어갔다. 엘르시어도 익숙한 편두통이 오르는 기분에 숨을 떨었다. 그러나 막상 다니엘은 잠잠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눈으로 위즈를 응시하던 기사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정말 입이 문제야…….”

“…….”

“정말…….”

다니엘이 머리를 감쌌다. 이어 자리에 털썩 쪼그려 앉은 그에게서 억눌린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알고 있었다. 미니가 죽었으리라는 것, 살리지 못하리라는 것, 알고 있었다. 그래도 차마 희망을 놓을 수가 없어서.

손에 굳어 있던 미니의 핏가루가 그의 머리카락 위로 부서져 내렸다.

오래도록 사랑해 온 사람의 죽음이 마침내 다니엘에게도 현실이 되었다.

그 모습을 위즈는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더는 태연하지 않았다. 얼어붙고, 흐렸다. 초점 흐려진 두 눈이 한동안 다니엘을 보다가 위로 올라왔다. 엘르시어는 그 움직임을 전부 보았다.

위즈는 엘르시어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려 그를 피했다. 보기 어려웠다.

그녀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다니엘의 손을 눈에 담았다. 미니의 피가 묻은 손이었다.

새벽 푸른 달빛이 그림자를 그리며 위즈의 얼굴에 떨어졌다. 슬퍼하는 다니엘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도 까만 그림자가 졌다.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뜬 위즈는 입을 열었다.

“어떤 꽃인지 보여 주세요. 적어도 그 아티팩트를 만든 자를 체포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그 어조와 목소리가 조금 전과 달랐다.

어딘가가 단단하고, 어딘가가 차가웠다. 음성 한가운데에 심지가 세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이 순간적으로 달라진 것도 같아서, 다니엘마저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위즈를 보았다.

엘르시어는 다른 기사 한 명에게 손짓했다.

그 기사는 밀실로 들어가 아직 바닥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꽃잎 중 하나를 집어 들어 돌아왔다.

엘르시어는 그것을 위즈에게 내밀었다.

온통 붉은 그 한 장의 꽃잎이 위즈의 손바닥 위에 안착했다.

그리고 그 직후, 위즈는 화들짝 놀라서 한 걸음 물러섰다.

그 유난한 반응에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커졌다. 위즈 스스로도 자신의 그런 반응에 놀란 듯 보였다.

“위즈 씨?”

“…….”

한 손으로 입을 막은 위즈는 바닥에 팔락팔락 떨어지는 꽃잎을 내려다보다가 휙 돌아섰다. 엘르시어는 급하게 그녀의 팔을 잡았다.

“위즈 씨. 잠깐. 무언가 아는 겁니까?”

“흰 꽃이잖아…….”

“……예?”

위즈는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흰 꽃이 내게 닿았잖아요. 흰 꽃이면 흰 꽃이라고 말을 했어야지…….”

그때쯤 꽃잎이 바닥에 닿았다.

모두의 시선이 그 붉은 꽃잎을 바라보았다. 맞다. 미니를 잡아먹은 꽃은 흰 꽃이었다. 저 붉음은 미니의 피였다. 밀실 안의 꽃잎 중 미니의 피가 닿지 않은 꽃잎이 없었다.

위즈는 두 손으로 얼굴을 한 번 훑어내리고는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제게 마법과 관련된 하얀 꽃은 그 무엇도 닿게 하지 마세요.”

“……위즈 씨.”

“무서워요. 무서워.”

눈물이 고였다. 흰 꽃과 무슨 사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사정이 무엇이든, 지금 들을 수는 없겠다 싶었다.

위즈는 이제 손등으로 눈가를 벅벅 문질러 눈물을 훔쳤다.

그 손목을 잡아서 멈추게 한 엘르시어는 몸을 조금 굽혔다. 그녀와 눈높이를 맞춘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알았어요. 울지 말아요. 미안합니다.”

“…….”

“바로 짚이는 게 없다면 일단 가서 쉬는 게 좋겠습니다. 곧 아침이니 서점으로 돌아가지 말고 여기서 쉬어요. 페이브 경, 회의실에 이 사람을 데려가세요.”

엘르시어는 꽃잎을 가져다 주었던 기사에게 말했다. 그는 위즈의 손을 아래로 떨어뜨린 뒤 손목도 놓았다.

위즈는 머뭇거리다가 기사를 따라갔다.

엘르시어는 두 사람이 멀어지는 걸 잠깐 보다가, 위즈의 손에서 떨어진 꽃잎을 주웠다.

위즈가 꽃잎과 닿았을 때 먼 땅의 어느 공작 저택 안에서 어느 공작이 새벽잠에서 번쩍 깨어났다는 걸 아리오의 누구도 알 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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