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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서점에서 흑막 바보로 살아남기 (20)화 (20/120)

# 19화

뒤를 지나가던 기사 하나가 황급히 응급 의료 가방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는 수하가 달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위즈의 이마에서 손을 뗐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식은땀에 젖는 중이었다.

필시 고통스러울 텐데도 신음 한 번이 없다. 조금 전 돌 깨졌다고 외쳤던 사람이.

아랫입술을 꾹 깨문 그녀를 보며 엘르시어는 차분하게 말했다.

“잠시만 참으세요.”

미니는 그때까지도 호문클루스를 내려놓지 않고 있었다.

점잖은 그녀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려 있었다. 사람 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것을 이대로 도망치게 두어도 되느냐는 망설임일 터. 엘르시어는 위즈에게 신경 쓰면서도 그걸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미니를 보며 입을 연 순간,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우물우물 말한 사람이 있었다.

“장갑 꼈으니까 아마 괜찮은데…….”

위즈였다. 목에 걸고 있던 작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작은 환을 꺼내는 손길은 마비되어 투박하였다.

그녀는 목멘 음성으로 그리 말하고는 환을 입에 집어넣었다. 그걸 잘게 씹어 먹고, 이번에는 작은 병을 꺼냈다. 그 안에서 찰랑거리는 무색의 액체를 마셨다. 그다음에는 왜인지 생 약초가 나왔다. 금방 채취한 것처럼 싱싱한.

그걸 질겅질겅 씹기 시작했다.

“…….”

“…….”

세 사람 사이에 알 수 없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우물거리는 입 움직임에 맞추어, 입술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긴 풀잎이 위아래로 살랑거렸다. 위즈는 동그란 눈으로 그를 보면서도 열심히 약초를 우물거렸다. 약간 긴장되어 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지금 두 기사가 느끼고 있는 심경은, 뭐라고 해야 하나, 마치 가출한 소와 맞닥뜨린 소 주인의…….

가출한 주제에 굉장히 편안하게 짚을 씹으며 주인을 보고 있어서 뒷목 잡고 싶어지는…….

왜 소가 나오고 왜 주인이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눈? 눈 때문일까? 강아지나 소가 연상되는 눈 때문에? 아니면 소가 짚 먹는 모양으로 약초 씹고 있는 것 때문에?

무어라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는데, 뭔가 그런 비슷한 느낌으로 대단히 미묘했다. 이런 경험 처음이다. 우리에게 이런 느낌 들게 한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야……. 그들은 매우 미묘하게 가슴 벅차고 말았다.

혈압 때문이었다.

그때 헐레벌떡 달려온 기사가 엘르시어에게 병을 내밀었다.

“중화제 가져왔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게도 이 미묘한 분위기를 없애 준 기사는 위즈를 힐끔 보고 다시 사망자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엘르시어는 병을 쥐고 잠잠히 그녀를 보았다. 일단 받아들긴 하였으나, 아마 쓸 일이 없을 것 같다. 아직 얼굴이 창백하긴 하지만 입술의 푸른 기도 조금씩 가시고 있었고 숨도 훨씬 평온하였다.

밖에 나와 있던 줄기도 전부 입에 쑤셔 넣은 위즈가 이내 말하였다.

“멍멍이 같은 것들을 상대할 때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

“죽을 뻔했네.”

감상 자체는 살벌한데 어조는 편안했다. 위즈와의 첫 만남이 엘르시어의 뇌리를 스쳤다. 이상한 데서 한결같다.

그녀가 복용한 해독약 삼 종은 은여우단 저희의 것보다 훨씬 효능이 좋은 듯 보였다. 무슨 독인지도 모르는데 용케 해독되었다.

그래도 그는 예의상 병을 내밀며 물었다.

“중화제입니다.”

“어휴. 뭘 이런 걸 다.”

“…….”

위즈는 정중하게 사양하면서 냉큼 가져갔다.

당장 복용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목에 걸고 있는 작은 주머니에 들어갔다.

도대체 저 주머니의 정체는 무언가. 사탕도 나오고 젤리도 나오고 약도 나오고. 그렇게 큰 주머니도 아니었다. 병을 쑤셔 넣은 위즈는 주머니 입구를 조인 뒤 크게 한숨지었다.

아직 이마가 검긴 하지만 곧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엘르시어는 완전히 안심하고 그녀의 앞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의외라면 의외이게도 위즈는 그의 손을 잡았다.

먼저 내밀었으면서도 멈칫하였던 엘르시어는 이내 그 작은 손을 부드럽게 쥐었다.

단숨에 일으켜 세워진 위즈가 맑게 웃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그도 반사적으로 미소 짓고 대답하였다. 위즈는 곧바로 미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눈동자가 이쪽저쪽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다가 다시 미니의 주먹을 보았다.

위즈가 말했다.

“그건 그게 그러니까, 음, 양동이……?”

“……예?”

“아니, 양, 양파? 파……. 파절이?”

처음에는 끝말잇기를 하나 했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상황에 몹시 여러 번 부딪힌 일이 있다. 두 기사 모두. 하여 위즈가 무얼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름 떠올리고 있구나.

어쩐지 기특하게 느껴졌다. 시선이 따스해졌다. 부르는 이름이 틀렸다는 것을 인지하고 올바른 이름을 떠올리려 하다니 장하다. 사람은 확실히 하루하루 성장하는 게 틀림없다.

그러나 그 기특함은 반 정도가 뚝 잘려 나갔다.

“양동이 아저씨가 만들어서 일기도 썼습니다.”

“…….”

선택한 이름이 결국엔 양동이였거든.

위즈는 위화감을 조금도 느끼지 못한 것처럼 더듬더듬 설명을 이어 갔다.

“보시다시피 찾기가 되게 어려워서요. 양동이 아저씨도 몇 번이고 잃어버렸었는데, 마지막으로 잃어버렸을 때는 그냥 안 찾았다고 했었나. 그게 왼쪽 책장에 있었고…….”

“…….”

“거기서 몇 장을 넘기면, 아, 맞아, 성격이 참 까탈스럽고 더러워서 박치기하는 걸 참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양동이 아저씨도 몇 번이나 그렇게 독을 주입당해서 영면에 들 뻔했다고, 음, 맞다, 그래서 버리고 싶다고 했지. 조그마한 게 틈만 나면 주인 들이받는다고. 그러고 나서 톡톡 튀면서 도주하는 게 굉장히 얄밉다고 했어요.”

“…….”

“아…….”

외마디 소리를 흘린 위즈의 표정이 엄숙해졌다. 무언가를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개량한 돌멩이 2번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찾기 쉽게요. 그리고 영면에 드셨습니다. 학자들이 추정하기로 돌멩이 2번한테 배신당한 모양이던데.”

“…….”

개량한 의미가 없이 또 들이박혔다는 뜻이다.

“음. 돌멩이 2번은, 그, 뭐라고 해야 하지, 해독할 시간도 없이 죽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강한 독을 가,”

“악!”

“졌다고 했는데…….”

“돌이다!”

위즈의 설명 도중에 비명이 들려왔다. 세 사람의 시선이 사망자의 집 문 쪽을 향했다.

기사들이 집에서 뛰쳐나와 길 반대쪽으로 도주하고 있었고, 주먹 크기의 돌이 발랄하게 튀며 그들을 쫓아가고 있었다.

……저건가 보다.

“맨살에 닿지만 않으면 괜찮을 겁니다.”

위즈가 웃기는 걸 보는 얼굴로 덧붙였다.

엘르시어와 미니는 이 순간 이 자리에 위즈가 있었음에 감사했다. 미니가 동료들을 향해 달려갔다. 엘르시어가 수하들이 구해지는 걸 보는 사이, 위즈는 아직 창백한 얼굴로 한 차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알 수 없는 행동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위즈는 다시 앞을 보았고, 모기 잡히듯 돌멩이가 두 손으로 짝 낚이는 것을 보며 웃었다.

* * *

네 시간 후.

엘르시어는 위즈가 언급하였던 양동이, 양파, 파절이가 티모시라는 이름에서 파생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도 기가 막혔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흘러간 과정을 추적해 보려고 한번 시도해 보았다.

실패했다.

“…….”

손때가 탄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크게 서점을 울렸다. 서점에서 일기를 꺼내 준 위즈는 카운터 앞에 앉아 사탕 바구니를 비우고 있었다. 간간이 꺽, 하는 목에 젤리 걸리는 소리가 나긴 했지만 금세 회복했다.

시간 간격을 두고 띄엄띄엄 쓰인 일기는 이백여 장에 달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오늘도 죽을 뻔했다.’, ‘도망치는 놈을 벌레 잡듯 손바닥으로 내리쳤다가 또 죽을 뻔했다.’, ‘놈을 발로 차서 바깥으로 날려 버리려 했으나 이놈이 발등에 박혀서 또 죽을 뻔했다.’처럼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썼다는 느낌이 물씬 났다. 흘러넘쳤다. 버려도 버려도 돌아온다는 것이다. 귀소본능 있는 비둘기도 아니고 도대체 왜 돌아오는 거냐는 하소연 옆에는 색 바랜 물방울 자국이 있었다.

어디에서 본 적 있는 물 자국이었다.

“…….”

위즈를 보는 탑주의 마음과 비슷하였던 모양이다.

그는 옅은 한숨을 쉬고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망할 자식이 웬일로 사라졌고 돌아오고 있지 않다며 환호하는 내용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정상적인 호문클루스를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도 적혀 있었다. 개발 과정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일기는 새 호문클루스에 대한 간단한 설명, 심은 독에 대한 흡족함과 호문클루스 자체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

끝이다.

일기를 덮었다. 꽤 빠르게 끝났다. 서점에 도착하여 읽기 시작한 지 이제 한 시간 정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탑으로 돌아가 그가 할 일이 많았으므로.

시계를 본 엘르시어는 이 마법사가 남긴 호문클루스에 관한 기록물까지 읽을 시간은 없음을 깨달았다.

나머지는 퇴근 후에 읽는 게 좋겠다. 필요한 내용을 추려 보고해줄 수 있겠느냐고 위즈에게 아까 부탁해 보았으나, 차라리 일 때려치우겠다는 정중한 거부가 나와서 어쩔 수가 없었다. 기사들이 직접 읽고 추리는 수밖에. 그는 두 번 묻지 않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마법사가 만든 호문클루스는 은여우단 기사들이라 해도 알아내기 힘들다.

애초에 모든 특수 기사단은 마법사와 아티팩트를 주로 취급했다. 호문클루스는 세상에 알려진 속성, 정체, 존재 의미 등이 거의 없고, 왕실에 소속되어 있는 마법사들마저도 호문클루스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입을 다물어 왔다. 오죽하면 호문클루스의 의의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 돌이 아티팩트가 아닌 호문클루스라는 점을 알 수 있는 일기를 제공해 준 것, 그것을 만든 마법사를 단번에 알려 준 것만으로도 위즈는 제 할 일을 성실히 해 주었다.

위즈는 이제 젤리를 후루룹 흡수하고 있었다.

엘르시어는 옅게 미소하고 말했다.

“그럼 일단 돌아가지요.”

“에!”

대충 ‘예’로 알아들었다.

“다른 사망 사건의 증거물들을 살피고 짐작 가는 것들을 조언해 주면 됩니다.”

“우웨!”

이번에도 대충 ‘예’로 알아듣기로 했다. 젤리가 목에 걸려서 한 헛구역질 같기도 했지만.

그가 먼저 일어났다. 위즈는 안고 있던 바구니를 카운터 위에 올려 둔 뒤에 일어났다. 그녀가 목에 걸고 있는 주머니 입구에서 난데없이 검은 장미가 피어난 건 그때였다.

“어.”

꽃 주위에 반짝이는 가루가 내리기까지 하였다.

아티팩트?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되는데.

엘르시어는 미간을 좁혔다.

기본적으로 모든 아티팩트는 왕실에 귀속된다. 비밀리에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은여우단 소속 기사 앞에서는 꺼내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다. 엘르시어가 얼떨떨하게 보는 동안 위즈는 검은 장미를 버린 뒤 주머니를 열고 무엇 하나를 꺼냈다.

엘르시어는 그것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렸다.

끼북이었다.

끼북이와의 만남이 몹시 인상 깊었기 때문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위즈는 중앙탑 소속 학자였다. 각국 왕실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아티팩트를 가질 수 있는 자 중 한 명.

그는 이제 평온하게 그녀의 하는 행동을 보았다.

위즈는 끼북이의 보석을 손바닥에 툭툭 툭툭 두드렸다.

“음?!”

나타난 것은 두께가 손바닥 정도인 책 두 권이었다. 위즈는 그 무게에 휘청거리며 책과 함께 쓰러졌다. 엘르시어는 놀라서 카운터를 돌아 그녀의 앞으로 갔다. 그녀는 책 옆에서 바닥을 짚고 앓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끄어어어. 허, 허리…….”

훗날 뒷목 잡고 쓰러질 각오로, 그러나 일단은 지금 당장 널 엿 먹일 수 있으니 그걸로 좋으며 혈압 걱정은 미래의 내게 맡기겠다는 각오로, 탑주가 보낸 엿이었다. 노인의 상큼한 웃음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분명 후회하게 될 텐데.

위즈는 한 손으로 허리를 짚고 바들바들 떨었다.

그리고 천천히 상체를 뒤로 물리며 세웠다. 심호흡. 엘르시어는 심상치 않은 그 움직임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여러 번 숨을 들이켰다 내쉬기를 반복한 위즈가 얼마 지나지 않아 긴 한숨을 쉬었다.

“아, 됐다.”

“괜찮습니까?”

“예, 예. 괜찮습니다.”

이번에는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기도 애매했다.

그가 망설이는 사이, 위즈는 주저앉아 있던 어린아이가 일어서듯 땅을 꾹 짚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엘르시어는 바로 한 걸음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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