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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서점에서 흑막 바보로 살아남기 (19)화 (19/120)

# 18화

엘르시어는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인사 비슷한 것을 받았다.

“책은 팔지 않습니다.”

“…….”

잘 자고 있었는지, 자는 동안 눌린 뺨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위즈는 침을 들이켰다. 흐리멍덩한 눈도 대단하다. 그는 잠시 문간에 서서 침묵했다.

잊혔을 것은 알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기대한 적 없건만, 오늘따라 묘한 기분이었다.

그는 푹 가볍게 날숨을 쉬고 좀 더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위즈의 이런 모습을 보자 불편한 감정은 완전히 해소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엘르시어입니다.”

“아, 예……. 엘도라도 씨.”

오늘은 그의 이름으로 어디까지 갈 건지 지켜보기로 했다. 그는 익숙하게 다른 단서를 제공하였다.

“은여우단, 기억하나요?”

“으음. 전에 오셨었나요?”

“예.”

“어…….”

위즈는 오만상을 찌푸리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삼 초 만에 그만두었다.

“어쨌든, 책은 안 팝니다.”

“알고 있습니다만, 오늘은 책 때문에 온 게 아닙니다.”

끈기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작태였으나 그는 태연하게 넘겼다.

조곤조곤 말하자 위즈가 고개를 기울였다. 순해 보이는 동그란 눈이 깜박였다. 눌려서 붉어진 볼이 그녀의 그 순진한 인상을 철저하게 뒷받침하는 중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던 그가 말을 이었다.

“당신을 일시 고용하고 싶습니다.”

“저를요? 뭐하시려고요?”

“아마도 마법과 관련된 무언가로 사람들이 많이 사망하였습니다. 저희가 알지 못하는 마법사이거나 아티팩트라면 찾아내거나 추정해 내야 하는데, 그것을 당신이 도와주었으면 합니다.”

설명을 들은 위즈의 표정은 순식간에 떨떠름해졌다. 실로 적나라한 표정이다.

그녀는 손을 들어 뒷목을 긁적이듯 쓸었다.

“그런 거 잘 모릅니다만…….”

모를 리가 있나.

다니엘의 보고에 의하면 그녀가 연구하는 것은 마법사다. 또한, 반년 전에 그녀는 많이 도와주었다. 그 정도로만 일해 주면 된다.

엘르시어는 부드럽게 그녀를 다독였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도와주었던 것처럼, 그 정도로만 도와주면 됩니다.”

“어……. 제가 도와드린 적이 있나요?”

“…….”

그리고 알고 있던 장애물에 막혔다.

각오하고 왔는데도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는 헛기침하여 목을 가다듬고, 의자를 가리켰다. 위즈는 말똥말똥 그 손끝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엘르시어는 앉기 전 벗은 얇은 코트를 제 다리 위에 올려놓고 위즈를 마주 보았다.

위즈도 그를 물끄러미 보았다. 눈을 피하지 않는다는 느낌에서 더 나아가 그를 흥미롭게 관찰한다는 느낌이었다.

조금 전까지 잠에 반쯤 젖어 있던 눈동자가 총명하게 빛났다. 순순히 그 시선을 받아치던 엘르시어는, 어쩐지 그녀의 눈빛이 대단히 시리고 날카롭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그는 찬찬히 다시 위즈의 얼굴을 살폈다.

작은 입이 열린 것은 그때였다.

“그런데 누구라 하셨지…….”

“…….”

엘르시어는 정신을 차렸다.

퇴근길이 아니라서 이 일이 끝나면 다시 궁으로 들어가 봐야 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수하들은 여기저기에서 개고생 중이었다. 최선을 다해 최대한 빠르게 위즈를 설득하는 편이 좋았다.

그는 혀로 입술을 갈라 열었다.

“은여우단에서 잠시 일해 주면 좋겠습니다.”

“아, 맞다. 전 정말 그런 게 안 맞습니다.”

“당신은 할 수 있어요. 급여도 높이 책정하겠습니다. 원한다면 왕궁의 은여우단 관저에서 취식하여도 되고.”

“먹고 사는 것에 문제가 없어서요.”

거절이 단단했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천장을 힐끗 보고 눈길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제안하였다.

“매일 군것질 바구니를 드리지요.”

“…….”

“……안 되겠습니까?”

처연하게 미소짓고 묻자,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던 위즈가 잠시 후 빙긋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번만은 아니 될 것 같으면서도 결국에는 환영합니다, 손님.”

“…….”

상황은 빠르게 종료되었다.

엘르시어는 극심한 허탈함에 숨을 후드득 떨고 말았다. 하긴 그랬다. 사탕에 탑도 팔아먹었는데, 일자리를 못 받겠나.

그러고 보니 다니엘이 위즈를 알게 된 것도 군것질거리에 낚여서 아이 대신 납치될 뻔했던 걸 구해 주면서라고 했었다.

그는 무어라 말하려고 입을 달싹이다가 포기했다.

그러나 위즈는 의외로 또렷한 음성으로 한 가지를 추가로 짚었다.

“그런데, 막, 높으신 분들을 만나야 하는 거라면 싫은데. 무서워서.”

이건 또 왕 앞에서 부탑주 지위를 내려놓았던 사람이 할 말인가.

엘르시어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때 왕의 존재를 알고도 모른 척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몰랐던 걸까. 그러나 중앙궁에서 탑주와 협의서를 나눌 사람이 왕 외에 또 누가 있다고.

게다가 어찌 되었든 위즈는 중앙탑 소속 학자, 박사다. 알현실 바깥에서 대기하면서 상황 파악을 전혀 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그녀를 보던 엘르시어는 고개를 한 번 까닥였다.

어쨌든 지금 짚을 일은 아니다.

“이해해요. 그렇게 되지 않도록 신경 쓰겠습니다.”

“그런 일 있으면 막 도망칠지도 모릅니다.”

“알겠습니다.”

경고라도 해 주니 고맙다.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한 그는 이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겉옷을 입고 가볍게 정리한 그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내일부터 출근 가능할까요?”

“예.”

“그럼 내일 아침에 기사가 당신을 데리러 올 겁니다. 여덟 시쯤.”

위즈는 그 말을 듣고 다시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보기를 십여 초. 마치 ‘그날의 저녁’을 연상시키는 듯한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엘르시어는 그것을 인지하자마자 자연스럽게 눈을 돌렸고, 돌리기 직전 위즈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리 밝지 않았다.

그가 그 웃음을 확인하기 위해 그녀를 다시 보았을 때는 이미 없어졌으며.

위즈는 씩 웃었다.

“그럼 내일 뵈어요. 에, 에어로빅 씨.”

“……내일 보지요.”

그러나 잘못 본 건 확실히 아니었다.

그는 서점을 나서서 얼마간 멀어진 후에, 잠시 서점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저희 둘이 나누었던 대화를 돌이켜보다가 도로 앞을 향했다.

* * *

위즈는 항상 그렇듯 아침 다섯 시쯤 기상하였다.

사라지지 않는 습관이었으며, 사라지지 않도록 일부러 유지하고 있는 습관이기도 하였다. 건강이 더 나빠져서는 아니 되기에 최대한 규칙적으로 생활하고자 한 탓이다.

아직 세상이 어둑한 시간에 아침 산책을 다녀와서는, 이미 서점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손님을 맞이하였다. 아침 여섯 시. 잘 잠갔던 자물통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손님은 실수였다고 쩔쩔매며 허리를 꾸벅거렸다. 괜찮다. 그럭저럭 짧은 만남을 끝내고 손님을 배웅하고 나서는 손님이 가져온 책을 읽었다.

오전 8시 직전에 그녀를 데리러 온 기사는 미니였다.

미니는 오랜만에 만나는 위즈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했고, 위즈도 머쓱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전에 뵈었던 적이 있나요……?”

“…….”

기대를 배반치 않았다. 시작부터 이리 슬플 수가. 오늘부터 출근이라는 사실만이라도 잊지 않아 줘서 진심으로 다행이다.

미니는 살짝 웃고는 위즈를 안내했다. 걸어가는 길은 그리 화기애애하지 않았다. 오늘 새벽에 한 사람이 추가로 살해당한 탓이었다.

미니는 위즈를 은여우단의 탑이 아니라 현장으로 안내했다. 그러면서 오늘부터 할 일에 대하여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위즈는 열심히 듣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에는 엘르시어도 있었다.

두 사람이 도착하였을 때 그는 마침 피해자가 쓰러져 있던 땅을 살피고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을 보고 무릎을 펴고 일어났다.

그러나 위즈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미니의 등 뒤에서 나오지 않았다.

당황한 미니가 눈을 굴리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데, 엘르시어는 기사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위즈의 머리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첫날부터 현장에 나오게 하여 미안합니다.”

“…….”

“……제 생각이 짧았군요.”

엘르시어는 선선히 인정하였다.

민간인이 살인 현장을 살피는 건 힘들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현장을 살피는 게 위즈가 어떤 것이든 추정해내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만 했던 바.

그는 좀처럼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는 위즈에게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미니를 보며 명령했다.

“경은 위즈 씨를 탑으로 인도하세요.”

“알겠습니다.”

미니 역시 위즈에게 심한 짓을 했다는 걸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경례하고 조심스럽게 몸을 돌렸다. 미니를 방패로 삼고 있던 위즈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고 있었다. 양어깨도 축 늘어져 전반적으로 힘이 없어 보였다.

증거품을 수집하고자 돌아다니고 있던 다른 기사들도 힐끔힐끔 그녀를 볼 정도였다.

이렇게 오래 마주 서 있을 시간은 없다. 이곳은 그가 지시해야 할 것들이 많은 현장이었다. 엘르시어는 신중하게 위즈에게 말했다.

“위즈 씨. 미니 경이 당신을 안내할 겁니다. 가서 마음 추스르면서 쉬세요.”

“…….”

“위즈 씨.”

그러나 위즈는 대답 없이 그 자리에 몸을 굽히고 앉았다. 고개는 그대로 땅을 향하고 있었다.

엘르시어와 미니의 눈길도 그녀를 따라 내려갔다.

쪼그리고 앉은 위즈는 제 발 앞의 땅을 손끝으로 훑고 더듬었다. 아무것도 없는 흙바닥이다. 손톱보다도 작은 돌멩이들이 섞여 있는 흙바닥.

거기서 어떤 돌멩이를 하나 집었다.

엄지와 검지로 집어 아침 햇빛에 비춰 볼 것처럼 정수리 높이까지 들어 올리자, 돌멩이가 갑자기 위즈의 이마로 달려들었다.

딱.

“응악!”

돌 깨지는 소리가 났다.

음므흐흐흐흐. 위즈가 두 손으로 이마를 부여잡고 흐느끼는 사이, 돌멩이는 통통통 벼룩처럼 뛰어 도망가기 시작했다.

미니는 그것을 제 종아리 정도 높이로 뛰어올랐을 때 허공에서 낚아챘다.

그러나 또 튀어서 도망칠까 봐 섣불리 손을 펼 수가 없었다. 방금 뭐였지? 벼룩? 벼룩이야? 돌로 위장하는 벼룩? 아니면 벼룩으로 위장하는 돌?

세상에 이런 참신한 아티팩트는 처음 본다. 미니는 물론이요, 본의 아니게 목격한 기사들도 말을 잃었다. 모두의 시선이 미니의 주먹을 향해 있었다.

아무도 위즈를 챙겨 주지 않았다. 그래서 위즈는 자기 고통을 어필했다.

“돌 깨졌네! 아이고!”

“…….”

드디어 그들은 위즈를 보았다. 모든 시선이 착잡하였다.

자기 머리를 거침없이 돌로 지칭하고 있는 사람에게 어찌 반응해야 하나.

그 돌 괜찮냐고 위로하는 건 이상하다. 머리를 돌로 인정했다는 거잖아.

기사들은 결국 조용히 고개를 돌리고 자리를 벗어났다. 일하러 가자.

그러나 위즈의 바로 앞에 있던 엘르시어와 미니는 자리를 피할 변명이 아무것도 없었다. 미니의 입이 살며시 열렸다가 닫혔다. 그리고 다시 열렸다가, 또 닫혔다. 눈물겨운 시도였다.

엘르시어는 짧은 한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까?”

“끄으으.”

바닥에 웅크리고 있던 위즈가 상체를 세웠다. 두 손이 이마에서 슬슬 내려왔다. 그렇게 그가 본 것은 검은 멍이었다.

직전까지만 해도 착잡한 심정만 그득하였던 엘르시어의 시선이 달라졌다.

얼어붙어 있던 그가 눈을 찌푸리고 손을 올렸다. 장갑으로 감싼 손가락이 환부에 닿았다. 상사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본 미니도 한 걸음 옆으로 와서 위즈의 이마를 보았고, 그녀 역시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독입니까?”

위즈는 중독되어 죽어 가고 있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에서 순식간에 파래진 입술과 검은 이마가 도드라졌다. 이마에 충돌하는 순간 주입한 것 같다.

이번 사망자가 이런 색으로 쓰러져 있었다.

그들은 미니의 손안에 있는 것은 사인임을 깨달았다. 살해자이기도 했다.

이리 빠르게 찾아낼 줄은 몰랐지만, 이대로 미니가 쥐게 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어떤 독인지도 모르는데 미니마저 당하게 할 수는 없다.

“그렇게 보입니다. 경, 내려놓으세요. 중화제!”

“예? 옛!”

엘르시어는 망설이지 않고 명령하고는, 이어 크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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