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짜 서점에서 흑막 바보로 살아남기 (18)화 (18/120)

# 17화

“근데, 야. 나 오늘도 현관 잘 잠가 놨었거든? 진짜 잘 잠가 놨었거든? 응? 그런데 집에 있는 널 보면 내가 심장이 떨어지겠어, 안 떨어지겠어?”

씹고 있던 무언가를 꼴깍 삼키고 난 위즈는 멍하게 입을 열었다.

“아, 어쩐지 문이 잘 안 열리더라.”

“…….”

으아아아! 피트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들고 있던 나이프를 테이블에 꽂고 부들부들 떨었다. 신이시여. 제 혈압 좀 제발 지켜 주소서. 이 자식만 없으면 돼요. 이 자식만 제 옆옆집에서 치워 주세요.

다른 사람은 잘만 잊으면서 절대 피트와 옆옆집의 존재는 잊지를 않는다. 잊어 줬으면 좋겠다. 잊어 줬으면! 좋겠다!

“잘 안 열리더라? 잠긴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 하는 말이 ‘잘 안 열리더라’? 지금 그거 다 열고 들어왔으면서 ‘어쩐지 잘 안 열리더라’?!”

“후. 아마츠…….”

“아마추어 같기는 어쩌기는 그딴 말 한 번만 더 하면 죽인다. 신께 맹세코 네 코에 오늘 점심을 모조리 부어 넣을 줄 알아.”

잠시 고민하던 위즈는 심각하게 물었다.

“왜 코입니까? 기왕 제 손 대신 수고해 주시는 거, 제 목에 넣어 주시면 맛있게 먹겠습니다.”

“…….”

그때부터 점심식사는 전쟁이었다. 음식을 상대의 코에 부으려는 사람과 그걸 어떻게든 입으로 받아먹으려는 바보의.

그리고 지나가던 길에 우연히 그 광경을 창문으로 보고 만 쇼리는 기기긱 고개를 돌렸다.

품위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저 상황.

피트 저 불쌍한 자식.

그러나 뛰어들어 그를 구제해 주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피트가 절규하고 있는 저 자리에 쇼리 자신을 놓고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함은 충분히 체험 가능했다. 현실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간접 체험으로도 충분해.

쇼리는 가던 길을 다시 가기 시작했다. 날씨는 좋고 그는 아무것도 못 봤다.

* * *

제이의 선언으로 발롬브로사가 머리를 싸맨 지 한 달 정도 지나서, 사건이 발생했다.

릴리아의 아티팩트로 보이는 하얀 꽃 그림을 회수한 지도 이미 반 년도 훌쩍 넘었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영문 모를 행방불명은 마땅히 멈추었다. 남부 세 개 지방에서 아티팩트로 보이는 것이 각각 한 개씩 발견되었다고 해서 기사가 추가로 파견된 것 말고는 피 흐를 만한 일이 없었다. 꽃 그림의 감식 결과만 나오면 릴리아 사건은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약 한 달 전부터 아리오 곳곳에 또다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단발적인 살인이 아니었다. 릴리아 사건과 비슷하게 사람들이 줄줄이 사망하였다.

다른 점은 릴리아의 것으로 추정되는 아티팩트는 사람을 잡아먹었고, 이번 일에는 그래도 시신들은 남아 있다는 점, 각각 사인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처음에는 살해 방법이 다양할 뿐 일반적인 연쇄살인 사건인 줄 알았다.

다섯 번째 사망자의 시신 주변에 피 묻은 흰 꽃이 흩어져 있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일반 사건으로 취급하였으리라.

은여우단은 즉시 사건을 이관받았다.

최초 사건 발생 26일째, 사망자는 그새 여섯에 달하였을 때였다.

이렇게 굵직한 사건이 몇 달 간격으로 연달아 발생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혹 온건치 않은 마법사들이 떼로 손잡고 무슨 계획이라도 세웠나.

은여우단은 빠르게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전국 각지에서 추가 보고들이 올라왔다. 은여우단이 수사해야 할 사건들이, 찾아서 회수해야 할 아티팩트들이 무진장 늘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죽도록 바빠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엘르시어는 입을 열었다.

“릴리아의 것으로 추정되는 아티팩트 조사도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사건과 이번 일이 관계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니 릴리아의 사건 기록도 면밀하게 다시 살펴야 합니다.”

“…….”

“추가적인 문제는, 이번 연쇄살인의 사인이 다양하다는 겁니다. 만일 그 모든 사망 원인이 마법 혹은 마법 아티팩트, 혹은 호문클루스와 관련이 있다면 아티팩트와 호문클루스를 추정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조사해야 할 테고요.”

“…….”

차가운 침묵이 흘렀다.

눈물 어린 침묵이다. 참고 서적을 찾느라 서고에 틀어박혀서 ‘아, 이게 지옥인가.’하고 있었더니 진짜 지옥이 찾아왔구나. 앞으로 말조심해야겠다는 현실 도피적인 감상만 무럭무럭 자랐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면, 신이시여, 지옥 이야기는 들으셨는데, 마법사들 다 나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안 들리셨는지.

엘르시어를 제외한 간부 여덟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엘르시어도 그들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잠시 주었다.

단장인 엘르시어는 다수 살인 사건 두 개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행해지는 아티팩트나 마법사 수색 등 은여우단에서 진행 중인 모든 일을 관장해야 했다. 덧붙여 제이와 관련하여 발롬브로사에게 받은 밀명도 있었다.

어느 정도를 넘어가니 엘르시어는 그저 허허롭게 웃으며 일하는 중이었다. 여기에 사건 하나 더 추가된다고 해서 과로로 죽기밖에 더 하겠나. 자포자기를 넘은 해탈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에서 한 번 걸러 줄 사람이 간절했다.

얼마간 지나자 엘르시어는 옅게 웃음기 어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적어도 수도 내의 사건들만이라도 책임지고 지휘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

“중간 책임자로 자원할 사람 있나요?”

“…….”

없지.

없다.

미치지 않고서야 자원할 리가. 지금 하는 일만으로도 곧 쓰러져 죽을 것 같다.

여덟 명 중 일곱 명이 하나 되는 순간은 아름다웠다. 그 순간에서 빠진 유일한 한 명은 벨라였다. 그녀가 슬그머니 손을 들자 다니엘은 왈칵 감동했다.

네 희생은 잊지 않을게.

벨라가 헛소리를 할 줄은 몰랐을 때의 이야기였다.

“책임자로 추천하는 건 아니지만, 잡동사니 길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그 위즈 씨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

“?”

“…….”

지금 무슨 지옥의 헛소리를 들었느냐는 물음표가 허공에 가득 떴다. 뭐가 어쩌고 어쩐다 했더라. 듣는 것만으로도 혈압이 오르는 무언가를 들었는데.

벨라와 엘르시어만이 담담한 얼굴이었다.

그들은 엘르시어가 확연하게 생각에 잠긴 표정을 하자 벨라를 보며 기겁했다.

“야, 야. 그건 아니지!”

“이 사람이 미쳤군! 아, 하, 하! 등증 읍 득츠즈 믓흘끄.”

진짜 엄청나게 기겁했다.

“단장님. 그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니엘은 진지하게 말했다.

기사들도 속으로 죽어라 동의했다. 아직 그들은 기억한다. 탑주와 위즈가 재회하던 순간을. 거기 있는 기사들은 정말 심각하게 안도했었다. 위즈와 같이 일할 일이 없어서 실로 다행이라고. 그건 진심이었다.

옆에서 동료에게 멱살 잡힐 뻔한 벨라는 그 동료를 발로 차서 추락시켰다. 의자와 함께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가 우당탕 크게 났다. 다니엘은 뻗었다.

그러나 그런 격렬한 반응에도 엘르시어는 턱을 매만지고 있었다. 좋은 방법이라는 느낌으로 표정이 좀 펴진 것 같은데 착각이길 바란다.

위즈가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인 건 맞는데, 다른 사람이 당하는 걸 보는 건 재미있어도 당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의자에 기어서 올라온 다니엘은 위즈네 옆옆집 화가의 절규를 떠올리고는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진중하게 표정을 고치고 입을 열었다.

“단장님.”

“예.”

“봐 주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면,”

다니엘은 왼손 검지로 허공에 얼굴 크기 정도의 원을 하나 휘휘 그려 보였고, 이어 오른손 검지로 허공을 콕콕 가리켰다. 두 손짓은 어깨 너비만큼 떨어져 있었다. 다니엘은 오른손이 가리킨 허공을 고갯짓했다.

“위즈 씨는 여기 있는 사람입니다.”

“…….”

“규격 외입니다. 동떨어져 있어요. 그 탑주마저 울게 한 사람입니다. 단장님, 그 인증서에 있는 물방울 자국이 탑주 눈물 자국이라는 거 보고 안 드렸던 것 같은데,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에 보고 드렸어야 했는데 후회가 막심합니다. 심지어 탑주가 울먹거리는 걸 저희는 봤고요. 그 빌어먹게 여린 감수성하고 조금도 상관없는 눈물이었습니다, 그건.”

차분하게 격렬하다. 거부가 눈물 날 정도로 절실하였다.

엘르시어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는 부드럽게 물었다.

“어쩌면 지난번 릴리아 사건 때처럼 서적을 참고하러 그 서점에 자주 드나들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사람을 여기에 두고 물어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

“…….”

“……그.”

“…….”

“…….”

반박할 수가 없다.

다니엘은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찾는 내용이 어느 책 왼쪽 책장에 있는지 오른쪽 책장에 있는지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민망하게 틀린 적이 있긴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 맞아떨어지지 않았던가.

새삼 생각해 보니, 걸어 다니는 서점 비슷한 거야.

새삼 생각해 보니 유능해.

잊고 있었다. 탑주 이야기를 하면서도 위즈가 중앙탑 소속 학자라는 걸 잊고 있었어. 부디 천재와 바보 중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헷갈린다.

연륜 쌓인 곰처럼 듬직한 부단장마저도 위즈의 새삼스러운 유능함을 깨닫고 멘탈이 잠시 나갔다.

엘르시어는 제 수하들의 안쓰러운 반응들을 보고 옅은 한숨을 쉬었다.

“은여우단은 특수 집단입니다. 어차피 전하께 윤허를 받지 못하면 그 사람과 일 못 해요. 위즈 씨가 동의할지 어떨지도 모르고요.”

“그, 그럼…….”

“되도록 오늘 중으로 전하를 알현하고 오지요.”

“아니……, 그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그게…….”

위즈와의 만남을 되도록 늦추고 싶은 어리석은 자의 발악이었다.

그러나 위즈가 오지 않는다고 그들의 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단장의 계획에 수긍했다.

그날 엘르시어는 발롬브로사를 뵈었다.

탑을 순진하게 팔아먹어 주나 했더니 제 뒤통수를 친 전적이 있는 위즈를 잠시 기용하겠다는 말에 발롬브로사는 오랜 숙고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기밀 문건은 철저하게 관리해야 할 것이네.”

“예, 전하.”

“만만치 않은 사람인 건 알고 있겠지.”

“예.”

그녀가 전前 부탑주임이 밝혀지던 자리에 그도 있었다.

엘르시어는 왕의 염려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므로, 신중하게 대답하고 조금 더 당부를 듣다가 물러 나왔다.

그는 복도를 걸어가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복도 창문 바깥은 선명하게 밝았다. 그는 웃듯 오른눈을 살짝 찡그렸다.

위즈를 고용하는 것에 조금의 거리낌도 없다 하면 거짓이다. 그러나 다른 기사들이 질색한 이유처럼 그건 그녀가 다루기 힘든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

다물었던 입술이 열리고 짧은 한숨이 새었다. 엘르시어는 다시 앞을 보며 걸었다.

위즈의 생일이라 하던 날에 만난 것이 마지막이었다. 전수 조사로 바쁜 와중에도 한 번씩 그 서점에 들러 필요한 책을 한두 권씩 읽곤 하였는데, 지난 한 달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한 달 전 그 밤에 받았던 느낌 때문일까. 그는 아직도 이유를 찾지 못했다. 까닭도 알지 못하는데 그녀를 생각하면 그저 거리꼈다.

[또, 그립고…….]

갈라진 웃음. 진중한 고백. 취한 밤.

산책 간다는 그녀를 잡고 교환하였던 시선. 어둠 속에서 함께 잠겼던 침묵.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의문 많은 사람이라고 경계를 하면서도 그 대책 없는 순진함과 발랄함에 익숙해지긴 했었다. 그래서 그 짧은 시간마저도 그에게 어색하다 못해 숨 막히게 곤두섰던 것이다.

그는 다시금 눈을 찡그렸다. 이런 상태에서 만남은 무슨. 한 달을 가지 않은 건 그래서다. 공사 구분하여 일을 추진하긴 하였으나, 여전히 마음이 불편하였다. 그러나 사감은 접어 둘 때였다.

위즈를 왕궁으로 불러들여 제안하는 것보다는 직접 방문하는 게 좋으리라.

그 일에 적합한 기사들을 떠올려 보던 엘르시어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삼켰다. 우습게도,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였다. 그렇게 긍정적인 마음으로 거부하게 되는 사람도 드물지.

그는 조금 더 고민하다가 제복 겉옷 앞섶을 두 손으로 고치고 걸음을 재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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