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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서점에서 흑막 바보로 살아남기 (13)화 (13/120)

# 11화

사망 자체에 대해 캐려는 것과, 사망을 아예 부정하고 생존을 전제로 사람을 찾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다른 의미이기도 했다.

탑주가 생각하기에 후자는 진실로 미친 짓이었다.

온 세상에 알려진 사망인데, 그걸 부정하는 게 말이 되나.

현재 그 ‘친구분’의 비밀스러운 행보는 지나친 슬픔으로 인한 일시적인 부정 정도가 아니었다.

전 공작이 비참하게 폭사한 지 벌써 2년여가 지났다. 2년이 지나도록 여태 슬픔을 추스르지 못한 게 아니라면, 그 ‘친구분’은 미친 것이어야 한다. 정말 미쳐서, 그래서, 죽은 사람을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멀쩡하게 국가를 다스리고 있었다.

제정신으로 망자를 찾아 헤맨다는 뜻이었다.

탑주는 손장난에 몰두한 위즈에게 물었다.

“전 공작 각하와 그분 사이에 무언가 있었을까요?”

그 ‘어느 전 공작’과 그 ‘친구분’은 절친한 사이로 잘 알려져 있다. 성별이 각각 다른데도 서로 친밀하기가 남달라서, 많은 사람이 그 둘의 연애를 의심할 정도였다. 전 공작은 그 의문에 대해 일관적으로 차게 부정해 왔었다.

그러나 혹시 수면 밑에서는 단순한 친구보다 특별한 관계인지라 전 공작의 사망에 대해 무언가를 사전에 전달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면 서로의 생존을 알아차릴 수 있는 마법이 담긴 물건을 서로 나누어 가졌다거나.

탑주는 지금 그걸 묻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다면 위즈만큼 잘 아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터.

그리고 위즈는 오래도록 침묵했다.

“…….”

“있었을까요?”

“…….”

“듣고 있습니까?”

“…….”

“위즈 박사!”

“에구머니나!”

지극히 작위적인 비명과 함께 위즈가 튀어 올랐다.

갑작스러운 반응에 덩달아 기겁한 노인은 가슴에 손을 올렸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는 않았나. 엄청나게 놀랐다. 소리도 지르지 못할 정도로. 그러나 적반하장으로 위즈가 항의했다.

“깜짝 놀랐잖아요!”

“누가 할 말을! 제가 몇 번을 부른 줄 압니까?”

“안 듣고 있었는데 제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

당당하다.

처치하고 싶을 만큼 당당하다. 탑주는 끓어오르는 답답함으로 덜덜 떨다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가 나이에 비해 정정하다 해도 청년에 비할 바 아니요, 이 여성에 비할 바는 더더욱 아니었다.

결국 노인의 잇새로 끙끙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도 노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전 당신을 존중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차할 시 당신을 보호하기에 부탑주의 지위만큼 좋은 게 없었습니다. 어차피 부탑주는 탑주와 다르게 얼마든지 신분을 숨길 수 있었고, 그래서 여태 당신도 숨겨져 왔지 않습니까.”

구차한 변명과 일말의 거짓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위즈는 생글생글 웃기 시작했다.

“부탑주만큼 덤터기 쓰기 좋은 자리도 없고요. 이야아. 위에선 탑주가 압박해, 아래에서는 학자들이 압박해. 낀순이 낀돌이가 역사상 얼마나 많은 박해를 받아 왔는지 아세요? 수많은 형제자매 중 가운데 애의 괴로움을 탑주님이 아시나요!”

“압니다. 딱 가운데였으니까. 그리고 지금 그 말을 하고 있는 당신이 첫째인 것도 잘 알고 있지요. 이 무슨 징그러운 위선이란 말인가.”

“…….”

그러자 위즈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잘못 걸렸다는 표정일까.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도 좀처럼 이성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그녀를 탑주는 잠시 노려보았다.

그녀는 잠시라도 철저하지 않으면 아니 될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 버릇, 그 습관이 이런 식으로 발현되니 그의 혈압만 높아졌다.

탑주는 뒷목을 잡고 싶은 마음을 내리누르며 애써 말을 이었다. 철저하게 위즈로 남아 있고자 한다면, 그는 차라리 이 기회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부탑주를 그런 입장과 같다고 가져다 대면 당황스럽습니다. 궤변을 늘어놓는 실력은 매우 좋아지셨군요, 그래.”

이리 비꼬아도 위즈는 그에게 뭐라 못한다. 왜냐하면 위즈이기 때문에.

이리 빈정거려도 그녀는 그에게 노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평범한 학자에 불과한 위즈이기 때문에.

위즈는 역시나 헤벌쭉 웃으며 대답했다.

“바보의 힘입니다.”

“스스로 바보라고 인정하지 마십시오. 듣는 사람이 슬퍼집니다.”

“어휴…….”

“부끄러워도 마십시오! 혈압 오릅니다!”

이 여성이 위즈가 아닐 때 몇 번이고 만난 적이 있었지만, 정말이지 그때의 모습과 이리도 다를 수가 있을까. 그 괴리감이 심각하여 탑주는 아직도 종종 소름이 돋곤 하였다.

이 말씨름 아닌 말씨름에서 진 노인은 차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리가 파할 기색이 보이자마자 위즈가 활짝 웃었다.

어서 꺼지라는 것 같다.

한 시간 정도 더 눌러앉아 있어 볼까 하는 유혹이 들긴 들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기로 한 건, 그랬다가는 종국에 피폐해질 사람은 그인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덕분이다. 경험과 연륜의 힘이다.

위즈가 대단히 아쉽다는 음성으로 우울하게 악수를 청했다.

“끼북이를 통해서 소식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언젠가는.”

“사고만 일으키지 않으면 됩니다. 논문 보낼 때 말고는 연락 안 주셔도 되고. 피차 행복하고 마음 편하게 삽시다.”

진심이다. 그러나 탑주의 말을 들은 위즈는 양 검지 끝을 톡톡 부딪치며 수줍게 웃었다.

“매일 보내야지. 탑주님의 괴로움이 제 행복이라서요.”

“…….”

즉시 도달한 역공은 탑주의 정신에 일직선으로 꽂혔다. 그러나 탑주는 포기하지 않고 눈을 부릅떴다. 질 수 없다.

“그건 도대체 어디 사는 변태……, 가 아니라, 깜박할 뻔했군. 이걸 알고 계시는 게 나을 듯싶습니다.”

“예? 탑주님이 변태라고요?”

왜 정상적으로 끝낼 수 있었던 반문에도 꼭 무언가를 덧붙이는 거냐. 왜. 도대체 왜. 탑주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다가, 그래도 애써 담담한 척 말을 이었다.

“말씀드렸지만, 그분은 시신을 찾고 있는 게 아닙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위즈는 수줍은 웃음을 그대로 유지했다. 못 들은 척, 혹은 모르는 척, 혹은 이해를 못 하는 척이다.

위즈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그녀가 본디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탑주는 저 매끄러운 표정을 보고도, 그 표정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짧게 숨을 들이켜고 내쉰 후 말했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전 공작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물론 저는 전 공작께서 학자인 사실은 물론, 탑 소속의 학자라는 사실도 그분이 모르고 계시리라는 가정 하에 대응했습니다.”

“…….”

“이미 작고하신 분에 대해 어찌하여 물으시냐며, 혹시 작고하신 분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학자를 찾으시는 거라면 그런 학자도 없다고 답변드렸습니다. 그분이 직접 온 게 아니라 그분의 사람이 와서 서신을 전한 것뿐입니다만, 어찌 되었든 깊게 파고드는 기색은 아니었습니다. 혹시나 하여 탑에 질의하셨던 것 같습니다.”

“으음. 저는. 이게 저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이런 일이 있었으니 알고 있으라는 것뿐이었다. 노인은 굳이 울컥하지 않고 몸을 돌리려 했다. 그런데 꼭 한마디씩 덧붙이는 위즈가 이 말을 해서.

“하여간에 저는 무슨 말인지 모를 것을 가지고 머리싸움하는 건 싫습니다. 잘 몰라서……. 알아서 하세요, 탑주님.”

“…….”

그게 지능적으로 탑 팔아먹고 지능적으로 부탑주 지위 반납한 인간이 할 말이냐.

부탑주 지위에 대한 게 아니었다면 은여우단을 조금이라도 도왔을까 의문이다.

머쓱해 하는 얼굴로 헤실거리며 뒤통수를 긁적이는 게 이 순간 최고로 열 받는다. 순진하지만 눈치 없는 사람이라는 단어에서 전형적으로 떠오르는 바로 그 모습! 그 모습이다!

노인은 숨이 넘어갈 것 같아서 뒷목을 잡았다. 그 모습을 보며 위즈는 실실 웃음을 흘렸다. 직전의 순진한 웃음과는 달랐다. 그렇다고 악의가 철철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가볍게 재미있어하는 정도의 웃음이었다.

그는 속에서 우러나온 감정으로 흐느꼈다.

“도대체…….”

위즈의 현재 기치에 대하여는 그녀가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어 모른다.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결코, 몸을 숨기기 위하여 이런 짓을 하는 게 아닐 것이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 몸을 숨기고자 했다면 평생 탑에 있는 게 훨씬 나았을 터.

정녕 몸을 숨기고자 했다면, 아무리 부탑주직을 반납하기 위해서라 하더라도 이번처럼 온느발레에 조금이라도 엮이는 일 역시 일으키지 않았을 터.

실로 바보인 적 없고, 실로 머리 부족한 적 없던 사람의 까닭을 알 수 없는 이 판단. 그는 아마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정말이지 ‘그녀는 본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탄식만 가지고 숨을 거둘지도 모르는 일이다.

탑주의 아련하게 흐려진 눈은 위즈의 흐린 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위즈는 그의 시선을 받아 내며 방실방실 웃었다.

그녀 일신의 안전은 솔직히 말하여 그 자신과는 상관이 없었다. 관계있고 싶지도 않았다. 상관있게 되는 것도 절대 사절. 그러나 위즈의 손안에 그와 관계있는 한 사람의 목숨이 있었다. 그렇게 위즈는 노인을 옭아매었다.

또한, 사적인 이유를 배제하고서라도, 그는 중앙탑의 발전을 위해 위즈가 전처럼 돌아오길 바랐다. 이미 중앙탑에 머무르는 학자들 여럿이 위즈의 이름만 들어도 흠칫 놀라 줄행랑을 칠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 모든 학자가 위즈를 인정한다.

“…….”

탑주 역시 그렇다.

그가 세상 모든 유망한 학자들을 질시하는 한이 있어도, 위즈를 질투하는 것은 그 모든 질투의 마지막이 아닐까.

위즈는 천재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너무도 다른 세계, 그가 넘볼 수도 없는 세계에 있으니 부탑주 지위를 주는 데에 외려 그는 흔쾌했었다. 위즈가 설령 탑주를 넘어설 정도의 업적을 내도 그는 그저 허허롭게 웃고 말 것이었다. 올 것이 왔군 하며.

그러니 제발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의 아련한 회상을 전혀 모를 위즈는 태연했다.

“그럼 끼북이를 통해서 연락 자주자주 드리겠습니다.”

“진지하게 말씀드리는데, 하지 마십시오. 진심입니다.”

정색하고 드디어 몸을 돌리려는데, 정말 마지막으로 떠오른 용건이 있었다. 이 순간 문득 떠오른 질문이었다. 그는 몸을 돌리다 말고 멈춰 서서 위즈에게 물었다.

“그런데 혹시, 그 끼북이란 이름, 혹시 어디서 나온 이름인지 아십니까?”

“토끼와 거북이. 줄여서 끼북이.”

“그러니까 그거 어디서 나온, 누가 지은 이름인지 아시느냐고 여쭈었습니다.”

“제가요.”

“범인은 너였냐!”

단단히 갑주를 챙겨 입은 것처럼 보였던 탑주의 마음은 결국 박살났다. 챙겨 입은 게 갑주가 아니라 자폭 버튼이었다.

다른 학자들이 너도나도 끼북이라 부르고 다녀서 출처를 찾고 있었는데, 얘였어. 얘였어! 이 사람이었다고! 생각해 보면 이 사람밖에 없는데 도대체 어딜 찾아다닌 거냐, 이 노망난 노친네야.

스스로를 죽으라 욕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자 위즈가 동그랗게 뜬 눈을 깜박였다.

“전 탑주님이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하시기에 이름이 토끼와 거북인 줄 알았는데.”

“…….”

썩을. 무덤 판 게 나였어. 노인은 결국 눈물을 흘리며 뒤돌았다.

어쩌면 이렇게 결심 하나로 사람이 달라질 수가 있나. 콘셉트를 잘못 잡은 게 맞다. 그녀 자신은 편한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명백히 주변의 정신이 피폐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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