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상관의 명령을 받고 은신한 다니엘은 위즈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깨닫고, 깨닫고, 깨닫는 중이었다. 아무도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 위즈는 대단한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단히 두껍고 단단한 철판을 얼굴에 깐 사람이다. 줄여서 대단한 사람.
위즈를 감시하는 건 한편으론 재미있었으나 대체로 괴로웠다.
왜냐. 따로 집을 두고 있지 않고 서점에서 생활하는 것 같은데, 식사만큼은 당연하다는 듯 옆옆집으로 가는 것부터 시작해 볼까. 그것이 옆옆집의 주인과 합의한 적 없는 사항인 것 같은 게, 매끼 젊은 화가의 절규가 집 밖으로 새어 나와서…….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위즈는 심심해서 서점에 놀러 오는 예술가들에게는 아주 극심한 고통을 동반한 마음의 상처를 주고 돌려보내곤 했다. 악의 없는 진심이라는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더 상처였다.
물론, 결국에는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놀러 오는 사람들의 성향에 진지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잡동사니 길 안에 있는 둥근 모양의 작은 광장에 위즈가 출몰했다 하면, 광장에 있던 모두가 합심해서 그녀를 골리려 하다가 역으로 정신이 피폐해졌다. 혹은 몸이 아프게 되든지.
그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오히려 위즈야말로 누군가 다가오지 않으면 다가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시간 대부분을 서점 안에서 홀로 보내고,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에는 용감하게도 홀로 산책을 다녔다. 어둡고 조용한 길을 골라 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들었다. 사소한 기묘함이었다.
그런 사람이다. 만 이틀도 감시하지 않았는데 다니엘과 미니는 이미 하나의 결론을 내린 후였다. 이렇게 특이한 사람은 찾기 힘들 것이라는.
해서 단탑에 들러 단장 명령을 가져온 미니도, 명령을 전해 들은 다니엘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흘 만의 해방이다.
두 사람은 그 상쾌한 기분을 온전히 만끽하기 위한 마지막 절차로 간단히 가위바위보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패배한 다니엘은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침을 흘리며 자고 있던 위즈를 흔들어 깨웠다. 일어난 그녀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앗, 손님이신가요? 여긴 책 안 파는데.”
손수건으로 침을 닦는 손길은 단정한데, 잠기운에 흐리멍덩한 눈은 아주 적나라했다. 다니엘은 점잖은 동료의 드문 폭소를 온 등으로 맞으며 애써 미소했다. 또 잊었냐.
“저 며칠 전에도 왔던 다니엘입니다.”
“며칠 전……?”
“기억나지 않으면 그걸로 됐습니다. 지금 당장 은여우단의 탑까지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
“귀찮은데.”
“탑에 도착한 후에 사탕을 드리겠습니다.”
“어디요? 어디로 가면 된다고요?”
낚았다.
다니엘은 클로크를 집어 들어 휘리릭 두르고 씩씩하게 서점을 나서는 위즈를 망연하게 보았다. 문을 잠가야 하니 어서 나오라 재촉하는 말에 급히 나오긴 했으나 어쩐지 얼떨떨했다.
미니는 그의 표정을 보고는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위즈가 찰칵찰칵 열쇠를 돌려 문을 잠갔다.
그 희귀한 책들을 쌓아 두고 열쇠 하나로만 문을 잠그고 다니다니, 보는 사람의 심장이 쪼그라든다. 보는 사람의 심장만 쪼그라들어서 문제지. 서점을 두고 차마 발을 떼지 못하는 건 위즈가 아니라 미니와 그였다. 자물통을 열 개는 달아 주고 싶다. 쇠사슬로 문을 잠그고 싶다. 앞에 경비를 열 명은 세워 두고 싶다…….
자꾸 뒤를 돌아보는 두 기사를 위즈가 톡톡 두드렸다.
“사탕.”
“…….”
굳어 있던 정신이 팍 깨졌다.
후드득 떨어지는 정신 부스러기들을 모아 모아 챙기며, 미니는 부드럽게 미소했다.
서점이 불안하여도 지금 당장 취해 줄 무슨 조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공직 생활을 하는 기사들이고, 조직 내에서는 중간급이다. 그 말인즉 상관이 노래를 부르라 명령하면 성의 표시를 위해 막춤도 곁들여야 하는 처지라는 뜻이다. 위즈를 데리고 오라 했으니 신속하고 정확하고 데리고 가는 게 그들의 앞날에 좋았다.
그러나 위즈는 큰길로 들어서자마자 통 과일 사탕 노점으로 그들을 끌고 갔다. 그녀는 노점상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다.
“오, 위즈 왔네. 오늘은 딸기?”
“어떻게 아셨습니까?!”
“딸기 먹는 순서거든.”
“와, 굉장하시네요. 처음 보는 손님의 취향까지 알아맞히다니!”
“처음 아니거든. 또냐. 또 잊은 거냐. 여기에서 사탕을 판다는 걸 기억했으면 자기가 왔었다는 것도 기억해!”
위즈는 사탕을 세 개 샀다. 하나하나 나눠 주는 손길이 몹시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두 기사는 얼결에 받고 말았다. 위즈가 사탕을 사 달라고 조르는 게 아니라 사 주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으며.
방긋 웃은 위즈는 길을 가리켰다.
“자, 갑시다!”
흡사 모험을 떠나는 용사 같았다. 위풍당당한 기세에 다니엘과 미니는 그녀에게 길을 안내하면서도 지금 신문 받으러 가는 사람이 저래도 되는지 고찰했다.
미니보다 더 위즈에게 익숙한 다니엘은 사탕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위즈에게 다시 넘겼다. 몇 걸음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미 그녀의 손에는 빈 막대기만 있었기 때문이다. 위즈는 예의 바르게 꾸벅 인사하고 받아들었다. ……충격의 연속이다. 인사했어. 이 아가씨가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고!
중앙탑 소속 학자라는 걸 어느 순간 잊어버리고 말았던 그가 대단히 힘이 들어간 눈으로 위즈를 응시했다. 실례다. 그걸 본 미니가 팔꿈치로 그를 건드렸다. 정신 차리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미니는 위즈가 다니엘을 보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위즈 씨. 중앙탑에서 무얼 연구하십니까? 무슨 분야의 학자이신데 저런 희귀 서적들을 가지고 계신 겁니까?”
“음.”
“…….”
“그냥 이것저것…….”
“이것저것이라 하시면 여러 가지를 연구하고 계시다는 말씀입니까?”
“예, 뭐.”
“그럼 그 이것저것 중 하나만 예를 들어 보자면?”
그녀는 최대한 사근사근하게 물었다.
무례할 만큼 끈질기게 묻고 있다는 인식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수사의 기본이었다. 예의를 지켜야 한답시고 응당 물어야 할 것도 묻지 못하는 게 미니의 직장에서는 외려 멍청한 것이었다.
미니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위즈는 한 손을 들어 뺨을 감쌌다. 옅은 회색의 눈동자가 도르르 굴러갔다.
“으음. 어디 보자. 한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면…….”
왼쪽 눈의 눈머리, 오른쪽 눈의 눈꼬리까지 굴러간 눈동자는 비스듬하게 하늘을 보았다. 고개가 귀엽게 기울어졌다.
“음. 바보들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예?”
다니엘이 반문했다. 그도, 미니도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혹은 위즈가 잘못 말했든지.
그런 다니엘을 어째서인지 유심히 살피는 것처럼 시선을 고정한 위즈는 뺨이 아닌 턱을 매만졌다. 그리고 말없이 눈을 가늘게 떴다. 눈동자는 조금 내려가서, 이제는 그의 얼굴이 아닌 가슴 즈음을 보고 있었다. 불쾌하게 여길 시선은 아니었다. 그는 기다렸다.
“음. 역시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그리고 혈압을 사서 올렸다. 위즈의 중얼거림이 무얼 뜻하는지 짐작한 다니엘은 입 안쪽 살을 콱 깨물었다가 놓았다.
미니는 옆을 보며 걷고 있는 위즈가 넘어지려 하자 붙잡아 주면서 웃음을 삼켰다. 다니엘은 이를 갈지 않게 주의하며 대답했다.
“며칠 전에 만났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아, 아, 그랬지. 그랬었죠! 어, 그래서 성함이……?”
“다니엘.”
“아, 맞다. 다잉메시지 씨.”
“…….”
두통? 복통? 몸이 아픈 건지 마음이 아픈 건지 모르겠다. 이 참신한 인간은 그의 어딘가를 아리게 했다.
며칠 전 위즈를 해치웠다면서 환호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기까지 했다. 위즈의 뒤통수를 날렸던 그 남자, 그야말로 진정한 용사였음에 다니엘은 공감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마른세수를 하곤 물었다.
얼굴이 까슬까슬하게 느껴지는 건 착각일 것이다.
“어떻게 매번, 매번 이렇게까지 잊을 수가 있습니까? 지난번엔 하루 만에 절 잊었고.”
“그, 그게, 좀 부끄러운데, 그, 하루하루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게 좋아서요.”
……좀 다르지 않나.
다니엘은 표정으로 실례하지 않기 위해 애쓰며 몹시 힘겹게 미소 지었다.
“새롭게 시작하라는 말이 매일 뇌를 깨끗하게 비우란 말은 아닐 텐데요.”
그리고 말로 굉장하게 실례했다.
슬슬 이 여자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 왔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즈는 당혹감이나 부끄러움 같은 것은 조금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진지하게 손사래를 쳤다.
“무슨 말씀이세요. 중요한 것들은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는걸요.”
“예를 들면?”
“식사 시간이라든지. 식사를 하고 싶을 때는 옆옆집으로 가면 된다든지. 드디어 내일이 탑에서 생활비가 나오는 날이라든지. 오늘은 책에서 먼지 떨어내는 날이라든지. 오늘이 바로 《리리리리 마법사 뾰로롱》의 3권이 출간되는 날이라든지.”
“그럼 저희는.”
“처음 뵙는 분들이 《리리리리 마법사 뾰로롱》보다 중요할 수는 없잖습니까.”
“…….”
그러니까 처음 만나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야 하나.
위즈에게 관대해졌다고 생각했건만 왜 이리 울컥하게 되는지 그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다니엘의 표정이 흉흉해졌다. 이러다 다니엘이 실수할지도 모른다. 미니는 그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서라도 주제를 바꿨다.
“어쨌든, 위즈 씨, 바보를 연구한다 했었지요.”
“네? 네.”
“마법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연구하는 겁니까?”
그 질문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다니엘은 제 동료를 끔뻑끔뻑 보았다.
학자들을 한순간에 바보들로 후려쳤다는 걸 미니는 깨닫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며칠 새 위즈로부터 위즈병 같은 것이 옮았나.
위즈도 특별히 미니의 말을 반박하지는 않고 천연스럽게 대답했다.
“그거 진짜 재미있겠네요. 근데 아닙니다.”
통 딸기가 다 보이는 투명한 과일 사탕을 혀끝으로 톡톡 건드리는 것을 멈춘 위즈는 유심히 사탕을 살폈다. 침이 닿아 번들거리는 사탕을 보는 얼굴에 점차 행복이 번졌다.
대화를 잊었음에 틀림이 없다. 다니엘과 미니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다니엘이 똑똑, 위즈를 깨웠다.
“그럼 바보란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어. 그냥.”
“그냥?”
“그냥, 마법 같은 걸 쓸 수 있는 자들이요.”
마법 같은 걸 쓸 수 있는 자들이라면 마법사뿐이다.
두 사람은 이런 대답을 진실로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객관적으로 마법사들은 천재에 가까운 지식인이다. 그들이 일으키는 사건 사고도 어지간한 머리가 없으면 치지 못할 사고가 많았다, 그들이 마법과 같이 제 몸처럼 여기는 연금술은 몹시 깊은 학문. 따라서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모여 있는 중앙탑 급은 아닐지라도 범인들보다야 아는 것이 많다는 인식이 강했다.
두 사람은 마법사를 괴짜나 원수라 하는 사람은 봤을지언정 바보라 하는 이는 오늘 처음 보았다.
그리고 마법사를 바보로 부르고 있는 이가 다른 사람도 아닌 위즈라는 것을 알면 마법사들은 깊이 상심할 것이다.
미니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째서 그들이 바보입니까?”
“바보라서요.”
“…….”
“실은 멍텅구리, 머리는 심심할 때 차고 놀기 위해 달고 다니는 놈들, 왜 태어났니, 숨 쉬는 것도 아까비, 죽어 버려, 죽어 버리면 좋겠다, 죽일 거야, 기타 등등이기도 하지만.”
이 정도면 악의가 있다. 그들은 이제 의아해하지 않고 그저 놀랐다. 위즈의 표정과 목소리는 여전히 해맑았다.
다니엘은 직설적으로 묻기로 하였다. 목을 가다듬고 툭 뱉었다.
“혹시 마법사들을 싫어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