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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서점에서 흑막 바보로 살아남기 (6)화 (6/120)

# 5화

그러나 지켜보고 있던 엘르시어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가 돌아왔다. 저 여자는 의심스럽다. 어쨌든 중앙탑에 소속된 사람. 멍청할 리가 결코 없는데.

책을 보러 갔던 어제 저녁, 위즈는 곧바로 관련 내용을 찾아 주었다. 따라서 기억력에는 문제가 없을 터. 이 일을 꾸민 게 어쩌면 저 여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수사관들은 염두에 두어야 했다.

마음을 진정시킨 벨라가 신문을 이어 갔다.

“그 남자에 대해서 더 설명해 보시지요.”

“어, 음……. 연구자고. 그다지 친하지는 않아서 잘 모릅니다.”

“아니, 연구하던 사람 말고 그림을 그린 남자 말입니다.”

“아, 그 남자요? 어, 저도 더는 모르는데. 그거 연구하던 사람한테 물어보시는 게 더 좋을 텐데요. 연결해 드릴까, 아, 먹혔지, 그림한테.”

“…….”

벨라는 천천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충분한 심호흡을 거친 후, 충분히 차가워진 이성을 가지고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쾅!

또 괜히 다니엘이 움찔했다. 막상 겁먹길 바랐던 위즈는 오히려 천연덕스럽게 박수를 한 번 짝 치고 있는데.

“아, 그러고 보니 그림 그린 남자가 그림을 아티팩트로 만든 마법사와 동일 인물일지도 모르겠다고 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엘르시어의 눈썹이 올라갔다.

신문실 안의 벨라도 마찬가지였다. 벨라가 반응을 보이자, 위즈는 검지로 입꼬리를 누르며 눈을 굴렸다. 해맑은 표정에 약간의 신중함이 깃들었다.

“또 뭐가 있지……. 아, 연구하다 실종된 사람이 아는 마법사한테 아티팩트 여부를 식별해 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아티팩트라고 했대요. 그런데 무슨 마법인지를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어서 아티팩트를 만든 게 상당히 높은 급의 마법사가 아닐까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저는 그, 뭐라고 하지, 음, 그 사람이 연구할 때 잠깐 탑에 들렀던 거라서 정말 잘 모릅니다.”

정말 잘 모르는지 아닌지, 벨라는 알아보기로 했다.

“사탕을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누가 저한테 말입니다. 너는 사탕만 주면 나라 하나도 팔아먹을 것 같다고 한 적이 있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바보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 그림, 연구 가치는 있는데 감당키가 힘든 물건인 것 같다고 아리오에 판다고 하시더라고요, 탑주님이.”

“…….”

탑 소속 학자가 탑을 팔아먹은 역사적인 일이 발생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벨라의 입술이 움찔거렸다.

지금 너 굉장한 걸 팔아먹었다고 짚어 줘야 하나. 사탕 하나면 정치나 외교도 물 말아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며 감탄을 해야 하나. 아니면 사탕 하나면 악마한테 영혼도 팔 인간이 나타났다고 경악해야 하나.

아니, 그보다, 바보 아니라며.

아니라더니 삼 초도 안 돼서 팔아먹었어.

폐 깊은 곳에서 숨이 허덕허덕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나 위즈는 곧 제 실수를 깨달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탑주님이 이거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큰일 났다!”

“…….”

그랬을 것 같다. 이는 가치가 막대한 정보였다.

이번 연쇄살인의 책임이 사람 잡아먹는 아티팩트임을 알고도 그림을 아리오 민간에 팔아넘긴 중앙탑에게도 있다는 취지의 증언이다.

이 증언으로 인해 아리오와 중앙탑 사이에 공식적으로 분란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분란이 진행되는 중에 이 나라 아리오는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게 될 것이다.

놀라서 오른손으로 입을 가린 위즈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상당히 낙담한 것 같은 그녀의 입안에서 이와 사탕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게 났다. 딱. 표정은 어찌 되었든, 내심은 절대 낙담한 것 같지 않았다.

이 여자, 감당이 안 된다.

벨라는 떨며 웃었다. 울 것 같다. 코가 매워.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헬렐레 웃으며 뛰어가는 마법사에게 ‘저놈 마법사 자식 잡히면 머리부터 날려 버릴 거’라고 싸늘하게 웃던 기사가 처참하게 무너졌다.

“사탕을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남자의 정체는 정말 모릅니까?”

벨라는 자괴감에 잠긴 채로 물었다.

묻는 사람은 그리도 자아 성찰을 하고 있는데, 답변하는 사람은 여전히 해맑았다. 위즈는 고개를 갸웃하고 우물우물 대답했다.

“모르는데…….”

“그럼 그 외에 아는 정보는?”

“딱히.”

“혹 나중에 생각나는 게 있으면 자발적으로 출두하여 정보를 공유할 생각이 있습니까?”

“귀찮은데…….”

“좋은 정보가 있어 오시면 사탕 바구니를 드리지요. 아주 크게 이이만한 걸로요.”

“아휴. 오겠습니다.”

“…….”

벨라는 거듭 회의감을 느꼈다. 이게 지금 다 큰 성인에게 내밀 제안이고, 이게 지금 다 큰 성인이 보일 반응인가. 지금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도대체 어디까지 참신한 반응을 보여 줄 것인가. 그녀는 깍지 낀 두 손에 이마를 기댔다.

관찰실에 있던 다니엘과 엘르시어도 신문실에서 시선을 돌렸다. 보는 사람이 다 민망했다. 다니엘은 어색한 어조로 상관에게 말을 걸었다.

“어찌해야겠습니까?”

그에 엘르시어는 옅은 미소를 짓고 대꾸했다.

“단순한 참고인으로 여기기에는 저 여자의 의뭉스러움이 강하군요.”

“저도 동의합니다. 덕분에 중앙탑에서 얻어낼 게 생긴 것 같지만.”

그 의견에는 엘르시어도 동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앙탑이 국가가 아닌 대륙 중립 기관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하나의 국가처럼 여겨지고 있는 지금, 이 일은 그가 아닌 왕이 결정해야 했다.

은여우단이 국가에서 손꼽을 정도로 자유로운 재량을 가진 기관이라고는 하지만 이번 건은 엘르시어의 결정권을 넘어서 있었다.

은여우단 단장이 청하는 알현은 웬만한 상황보다 우선시되는 게 다행한 일이었다.

지금 평범한 서계를 올리면 왕까지 도달하는 데 상당히 오래 걸릴 것이다. 현재 왕궁 안팎으로 왕자의 귀국 맞이 준비를 하느라 바쁘므로.

엘르시어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전하께서 용단을 내리실 때까지, 다니엘 경, 경이 저 여자를 일거일동 감시하세요.”

“따라다니란 말씀입니까?”

잡동사니 길은 몸을 숨기기가 어렵다. 다니엘은 엘르시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은신 마법이 담긴 아티팩트를 떠올리고 말했다.

“허가서 작성해서 오겠습니다.”

“단장실로 오면 됩니다. 교대는……, 미니 경이.”

“알겠습니다.”

기사는 경례하고 관찰실을 나섰다.

* * *

위즈가 은여우단의 탑에서 신문을 받은 다음 날.

수치의 역사 하나가 일단 끝났다.

왕국 백성들은 나와서 오랜 기간 볼모로 잡혔던 왕자의 귀향을 꽃길과 나팔, 수금과 비파, 춤과 환호와 눈물로 환영하였다. 어서 오소서. 어서 오소서, 로드. 육 년의 치욕을 참아 내시고 건강히 돌아오시니 우리는 기뻐 춤을 추옵니다!

꽃과 색색의 종이들이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았다.

왕자 제이는 날아온 꽃잎 하나를 손에 쥐었다.

환영 속에서 그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싱글벙글 웃었다. 백성이 눈물로 전송했던 육 년 전의 길과는 전혀 달랐다. 왕자는 육 년간 더 늠름해졌고, 백성은 그 모습에 더욱 감격했다.

그러나 그 감격은 귀국한 당사자의 감정에 비할 바 아니었다. 그러니까, ‘비할 바 아니어야 했다’. 그립던 내 나라에 돌아왔다. 그럼에도 제이의 내심은 온전히 기쁘지 않았다. 왕궁이 정말 가까워졌다.

점점 더 커지는 건물을 보는 제이의 입에서, 어떤 감정에 겨운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 참, 돌아 버리겠네. 진짜 돌아온 거야?

목숨이 위험한 정도로 따지면 제국의 제도보다 자국의 왕성이 훨씬 위험하다.

계승 서열이 삼 위에 불과한 그가 형제들과 새 모친의 손에 의해 인질로 선택되어야 했던 건, 이 나라의 왕좌는 ‘쟁취’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귀찮아서 계승 싸움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제이를 지지하는 귀족들이 많지만 않았어도 참 행복했을 것을.

그래도 덕분에 온느발레에서 좋은 경험을 하였다.

제국 온느발레에서 그의 안위를 책임지던 로헤올 가문의 전 가주와는 퍽 좋은 관계였고, 그 저택에서의 생활도 몹시 편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리오의 왕실에서 장난질을 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평생 머무를 나라를 고르라면 제국을 고르리라고 2년 전까지는 생각하고 있었다.

황제가 그 가주를 그딴 식으로 처리해 버릴지 누가 알았겠는가.

공작위를 계승한 다음 가주와 제이는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제 핏줄을 처리하기로 황제와 합의하고 결국 살해를 묵인한 자.

친구를 잃은 제이는 인질이라는 제 입장이 있어 새 가주와 웃으며 지내긴 하였으나 결코 친해지지는 않았다. 친해질 수가 없었다.

그건 죽은 친구를 향한 그리움의 뜻, 애도의 뜻, 추도의 뜻이기도 하였으며, 새 가주를 향한 경계의 뜻이기도 하였다.

제이는 모국에 있는 그의 이복형제들과 하는 짓이 똑 닮은 새 가주에 대해 치를 떨었다.

어찌.

도대체 어찌 권좌를 위해 제 형제를 죽이나.

죽은 가주는 남동생을 그 사람 생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었다. 제이의 눈에 보이도록 끔찍이도 아꼈었다. 그가 무심코 질시할 정도로. 그런데 그 사랑을 전부 저버리고 어찌.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

2년이 지나도록 극복하지 못한 마음이 불같이 치솟는다. 그러나 행렬은 그새 정문을 지난 상태였다.

제이는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지금은 온느발레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다시 전장 같은 자리에서 적과도 같은 이들을 만날 때가 다가오는 중이다. 그가, 다가가는 중이다.

메마른 입술을 지나온 숨이 뱃속으로 내려갔다.

그는 빠르게 진정했다.

그리고 기억하고 있는 것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내부를 일없이 훑으면서도 짜증스럽게 웃음을 유지했다.

어쨌든 이 정도면 된통 끌려다녀 주지 않았는가. 제이는 저 왕궁에 찾아가서 왕을 알현하면 첫인사를 무엇으로 할까 아직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덕담을 주고받기에는 두 부자의 관계가 소원했다. 나락 가까운 곳까지 치달아 있다는 뜻이다. 적어도 제이의 마음은 그랬다.

또, 그의 동복, 이복형제들과 그들의 모친은 어떤 인사로 만나야 하나.

제이는 뾰족하게 선 감정을 삼켰다.

이 나라 아리오의 왕궁 안에 있는 모든 것이 그를 긴장하게 했다. 왕궁 안에 있는 모든 것이 그를 진저리치게 했다.

황제로부터 일방적으로 귀국 허가가 떨어진 뒤, 육 년이나 지났으면 이제 지지 세력은 없어졌으리라는 희망만을 붙잡고 그는 돌아왔다. 당장 닥친 일은 희망이 현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인데.

곧 그는 모여 서 있는 왕실 일원들의 시선을 확인하고 쓴 코웃음을 쳤다. 왕자들, 공주들, 그들의 모친. 시선은 날카롭고 싸늘했다. 저 꼴을 하고는 웃으리라. 잘 돌아왔다고.

상상하자마자 목 뒤가 쭈뼛 섰다. 소름이 돋았다.

그는 저보다 앞서가던 호위병 여섯이 멈춰 서자 하마했다. 그리고 아리오에서 가장 귀한 족속들에게로 걸어갔다.

그들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잘 돌아왔습니다, 왕자.”

“건강한 모습을 보니 기뻐요, 오라버니.”

왈왈왈 개 짖는 소리. 제이도 빙긋 웃으며 화답했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돌아와서 기쁩니다.”

오는 말이 개소리여서야 가는 말도 개소리일 수밖에 없었다. 왕족들은 사이좋게 소름을 나눠 받았다.

그러나 아무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느 순간에라도 화기애애했다. 수면 위로만 우아한 백조와도 같은 치열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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