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다니엘은 다급하게 입을 막고 고개를 돌렸다. 웃으면 안 된다. 웃으면 안 된다. 웃으면 죽는다. 웃으면 안 된다.
그러나 평소 유한 성격인 그의 상관은 이 상황마저 웃음으로 넘어갈 생각이 조금도 없는 모양이었다.
시선이 날카로워진 엘르시어는 이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탑 소속이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건방지군.”
살벌한 말을 들은 위즈의 눈이 동그래졌다.
본디 놀라울 정도로 순한 얼굴인지라, 이 순간 위즈의 잘못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그녀를 마냥 안쓰럽게 여기고 말았다. 놀라서 딸꾹질이라도 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금세 울 것처럼 입술을 우물우물 움직이던 위즈의 입이 잠시 후 열렸다.
“……큰일 났다.”
그리고 침울하게 액자를 내려놓은 뒤, 다시 카운터 아래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또 액자였다.
“이걸 안 보여 드렸지 뭐예요.”
“이게 뭐……, 헉.”
다니엘은 액자에 끼워진 종이를 확인하고 눈을 부릅떴다.
지금 현실인가?
눈앞에 나타난 저것이 현실인가?
“어휴, 여기까지 도달한 손님은 손님밖에 안 계세요. 항상 깜박 잊고 있었는데 손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반짝! 하고 떠올랐어요. 이런 비상시에는 이것을 보이면 된다던 그 사실이!”
잊으면 안 될 텐데!
간 작은 진상 손님들 숨 넘어가게 만들 작정이 아니라면 잊으면 안 될 텐데!
직장 상사를 내심 진상 손님 비슷한 것으로 여기고 있던 다니엘의 아주 깊은 속내가 좀 더 얕은 곳으로 격하게 올라오고 말았다.
엘르시어를 어떤 마지막 관문에 마침내 도달한 용사 정도로 만들어 버린 위즈는 겁먹은 눈으로 두 사람을 살피고 있었다.
‘얘는 내 비호 아래 있으니 얘를 건들면 넌 나한테 죽는다.’는 취지의 인증서에는 탑주의 직인이 밀랍 위에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걸 보고도 엘르시어의 눈은 여전히 단단했다.
그는 웃으며 상당히 싸늘하게 물었다.
“그게 네 가치를 높여 준다고 생각하나.”
“탑주님이 아니라면 제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말씀하시는 거지요?”
“…….”
위즈는 의외로 엘르시어의 비꼼을 알아들었고, 직후 벌쭉 웃으며 액자를 높이 들어 보였다. 아주 당당하게 외치는 개선장군의 형상이었다. 그 상태로 늠름하게 외쳤다.
“가치고 뭐고 살기 편하면 장땡입니다!”
두 관료는 그 순간 무심코, 이 여자의 머릿속은 꽃밭임을 확신하고 말았다.
* * *
이 나라에도 저 나라에도, 이 대륙의 모든 국가에는 이른바 특수 수사를 전담하는 기관이 반드시 하나씩은 있었다. 수면 위에 드러나 있든 비밀기관으로 남아 있든지 간에.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수사는 이 시대에 이르러서는 대체로 무언가를 찾아 회수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되었고, 그 ‘무언가’라는 것들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마법사들이 남긴 아티팩트나 호문클루스.
마법사들은 특별하다.
그리고 그들이 고의로 ‘남긴’ 아티팩트와 호문클루스는 더 특별하다.
이 빌어먹을 놈들이 평범한 물체에 온갖 해괴한 마법을 심어 그것들을 만들기 때문이었다.
그 ‘빌어먹을 놈들’ 중에는 온 대륙에 악명을 떨칠 만큼 강했던 마법사도 있었고, 위명을 남길 만큼 강했던 마법사도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끔찍한데, 마법사로 태어나 아티팩트를 하나라도 만들지 않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것이 마법사들 사이의 암묵적인 강령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솔직히, 만들면 재밌잖아여어.]
연세를 코로 잡수신 일흔세 살의 마법사가 실실 웃으며 토설했고, 그 내용은 신문 기록에 빠짐없이 적혔다.
아티팩트에 당해 살해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장애를 가지게 된 이들은 그보다 더 많았다.
마법사들이 추구하는 재미 때문에 사람들은 극심하게 피해를 보았다. 따라서 마법사들이 대대로 미움받고 증오당하며 천하게 여겨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국 군주들은 눈에 불을 켜고 마법 아티팩트들을 모았다.
사용 횟수에 제한이 있기도 하고 수명마저 존재하나, 다채로운 마법이 새겨진 아티팩트들은 국력과 관계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었다. 제국과 왕국들의 차이에는 아티팩트의 수와 거기에 새겨진 마법의 종류가 포함되어 셈해질 만큼.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아티팩트에 비해 호문클루스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마법사로부터 어떠한 증언도 나온 적이 없었다. 마법사들은 그리도 떠벌리기 좋아하는 족속인데도.
여하튼, 오늘도 어딘가에서 어떤 마법사는 낄낄거리며 괴짜를 자처하고 있을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도록 마법사와 연금술의 조합을 최초로 생각해 낸 사람은 공공의 적이었다. 그놈을 바퀴벌레가 가득한 방에 밀어 넣는 건 모든 특수 수사기관에서 일하는 이들의 절실한 소원이었다. 물론 안타깝게도 그 자식은 수백 년 전에 죽었다.
못 말리는 괴짜 놈들에게 날개를 달아 준 꼴이라고 그 세대의 사람들이 탄식했던 대로, 지금에 이르러서는 마법이나 연금술 둘 중의 하나만이라도 세상에서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죽도록 고생 중인 공무원들이.
한쪽은 아티팩트를 세상에 퍼트리고 다른 한쪽은 그것을 찾기 위해 수사하는 이 과정은 마법사와 비마법사 간의 술래잡기, 혹은 보물찾기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마법사들은 이 술래잡기를 상당히 재미있어했는데, 재미를 높이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일기, 마법 이론서, 논문 등을 풍성하게 남겼다.
내 힘이 강해져야 더 재미있지!
마법의 종류가 다양해져야 더 재밌지!
귀찮은 마법을 남겨야 더 재밌지!
그리고 그에 따른 문제는, 그 수많은 기록물을 읽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생기는 중이다.
읽고 공부해야 하여 이론만은 여느 마법사에 비해도 될 만큼 좔좔 꿰고 있는데, 마법사는 결코 될 수 없음에 수많은 지식인이 억울해했다.
특히 특수 수사기관에 정식 임용되기 위해 죽어라 공부해야 하는 취업 준비생과, 취직한 기사들은 열 받아 미치려 했다.
실제로는 구현하지도 못할 마법들을 오로지 아티팩트 하나 안전하고 수월하게 찾자고 공부해야 하다니!
억울하면 특수 수사기관에 취직하지 않으면 되겠지만, 안타깝게도 특수 수사기관은 소위 꿈의 직장이었다. 받는 급여의 액수 대단하며, 받는 존중 또한 대단했다.
그곳에 취직했다고 하는 것은 이미 최소 한 분야 이상에서 엘리트 급이라는 뜻이었다. 취직을 시도하지 않기가 대단히 아쉬울 수밖에.
유능한 비마법사들이 이러한 상황이었다.
하면 같은 마법사들이 퍼뜩 튀어나와서 수사에 도움을 주면 좀 나을 텐데, 어떻게 된 놈들이 하나같이 꽁꽁 숨어서 비마법사를 가장하고 살기만 했다.
그럼 그렇게 숨어서 얌전히 살아 주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꼭 어딘가에서 마법을 쓰고 난 후 잡힐락 말락 팔랑팔랑 튀어서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 것이 일상.
사람들을 약 올리거나 해칠 수 있는 마법을 담은 아티팩트를 땅에 묻어 놓는 것이 일상.
간단히 말해, 특수 수사기관 소속 요원들을 약 올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물론 왕실이나 황실에 소속된 마법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급이 낮아서 도움이 안 될 뿐.
해변가의 연인처럼 기사들에게 나 잡아보라며 팔랑팔랑 꺄르르 뛰어다니는 마법사들은 보통, 왕실 마법사들보다 급이 높았다.
그러다 간혹 상당한 실력자가 국가에 고용되는 일도 있었는데, 국가가 그 마법사를 이용하여 여타 마법사들에게 위협을 가할 것 같으면 그 실력자보다 훨씬 더 강한 마법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초야에서 몸을 세워 일어났다. 그리고 국가에 고용된 마법사를 제지하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 태도가 되게 쓸모없게 멋졌다.
비마법사들은 마법사들의 이러한 세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으나 단 하나의 진실만은 알고 있었다.
‘비마법사는 그 어떠한 노력을 해도 마법사는 될 수 없다.’
‘마법사로 태어나는 사람들만이 마법사다.’
약하고 멋모르는 어린 마법사들을 데려다 해부하고 실험하기를 반복하였어도 알아낸 것은 그뿐이었다. 후천적으로 마법사가 된 이는 대륙 역사상 한 명도 없었다.
그래도 포기치 않은 비마법사들 때문에 어째서 이 대륙에 마법이란 것이 나타났는지, 연금술은 어쩌다 나타났고, 남부러울 것 없을 마법사가 어째서 연금술마저 섭렵하게 되었는지 등, 그런 묘한 의문들을 연구하는 학자들마저 생겨났다.
하는 이야기.
“그리하여 오늘도 그네들은 삽질을 하고 있답니다.”
“…….”
“이야기 끝.”
사탕을 물어 불룩한 볼을 한 위즈는 이야기를 마치고 박수를 짝짝짝 쳤다.
이야기에 무언가 맥락이 없다. 아니, 그보다, 진짜 쓸모없는 이야기다.
삼십여 분을 참고 들어 주었던 쇼리는 결국 만지작거리고 있던 꽃다발의 줄기 부분을 허벅다리에 콱 꽂았다. 퍽 험한 손길이었다.
그의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 위즈는 배시시 웃었다.
“박수 대신인가요? 감사합니다.”
“…….”
쇼리는 속이 끓어올랐지만 애써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 이제 내 연애 상담에서 왜 멍청한 학자들 이야기로 이어졌는지 어디 한번 변명해 보시지.”
“공통점이 있잖습니까.”
“공통점?”
“둘 다 승산도 없고 가능성도 없고 캄캄하기만 한 미래인데도 굳이 시도해 보려는 그…….”
“…….”
말하는 금붕어지만, 정말 바보지만, 정말이지 기적의 바보지만, 그래도 나름 이 상담에 대한 답례로 꽃다발을 선물하려고 가져왔는데, 왜 나는 지금 그 꽃다발로 강속구를 던지려 하고 있나. 쇼리 스스로도 깊이 의아해했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저 멀리 도망가고 있던 위즈는 뒤통수에 꽃다발이 예쁘게 꽂히자 쓰러졌다.
“해……, 해치웠다!”
“용사여!”
“우리의 혈압은 이제 살았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잡동사니 골목에서 사는 사람들이 휴식을 취할 때 이용하는 골목 내의 작고 둥근 광장이 소란스러워졌다.
돌바닥에 드러누워 일광욕을 하거나 스케치북에 낙서를 하며 머리를 비우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쇼리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쇼리는 높이 묶은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자비롭게 미소했다.
“그간 고생이 많으셨지요? 이제는 다 괜찮습니다.”
“아아, 용사님……!”
“이 어찌나 용감한 분이시란 말인가!”
눈부신 존재를 보는 시늉을 하는 예술가들은 위즈를 놀릴 만반의 준비가 일 년 삼백육십오 일 스물네 시간 되어 있었다. 그러니 기회가 오면 잡는다.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이 항상 잊는 것은, 모든 일의 끝에서 결국 뒷목을 잡는 건 위즈가 아니라 그들이라는 사실이었다.
꿈틀거리던 위즈가 몸을 뒤집고 우물쭈물하더니, 다리를 확 위로 들어 올렸다가 그 반동으로 벌떡 일어났다.
퍽.
육지에 나온 생선이 팔딱거리듯 생생한 움직임이었다. 이어 들린 소리는 분명 무언가 깨지는 소리였고.
“…….”
광장에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위즈의 상태를 보려고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간 쇼리의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아진 탓이다. 누군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일어나 툭툭 치마를 털던 위즈는 자신이 저지른 참상을 그제야 눈치챘는지 쇼리에게 물었다.
“어라, 왜 그러세요?”
“…….”
쇼리는 차마 말도 나오지 못할 정도의 고통으로 쓰러져 파들파들 경련하는 중이었다.
잠시간 그를 내려다보고 있던 위즈의 눈이 이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헛숨을 들이킨 그녀가 쇼리를 가리키며 경악하여 외쳤다.
“정신을 차린 마왕이 용사님을 쓰러트리고 도망갔다! 다들 도망쳐요!”
“……인생 하나 끝장내 놓고 평범한 마을 주민 1로 태세 전환했어! 심지어 애꿎은 마왕한테 뒤집어씌웠어!”
“…….”
그리고 우연하게도 이 슬픈데 웃긴 사건을 거의 전부 목격한 다니엘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행해야 하는 일의 우선순위는 명명백백했으므로 그의 시선은 대체로 처치당한 용사보다는 위즈에게 향했다.
마왕이 실로 있는 것처럼 위즈는 꺅꺅 비명을 지르며 도주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