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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70/117)

70화

이안에게 프로디터들의 주거지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게다가 하르힌도 그의 밑에서 여러 정보를 수집해오고 있었다.

하르힌은 이전에 이안에게 온 황실의 편지를 전하며 대화를 이었다.

“편지에는 무엇이라 적혀있었지?”

편지를 받아든 이안은 그 안에 동봉된 서신을 꺼내어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프로디터들을 체포할 계획에 진전은 있느냐는 무언의 압박이 담긴 내용이었다.

“이런.”

천천히 한 글자씩 읽어 내려간 이안은 별안간 느껴지는 불편함에 인상을 찌푸렸다.

“왜 그러십니까?”

이에 하르힌이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이안은 덧붙여 설명하지 않았다.

“쯧.”

“?”

“아무것도 아니다. 폐하께 연락 보내. 곧 간다고.”

“언제라고 보내드릴까요?”

“음….”

하르힌의 물음에 이안은 점점 밝아 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을 마쳤는지 다시 눈동자를 돌려 하르힌을 바라보았다.

“오늘.”

“네, 오늘. 예? 오늘이요? 괜찮겠습니까? 몰골이 말이 아니신데요?”

하르힌이 눈을 당황스럽게 깜빡거렸다.

“괜찮아.”

이안은 뻐근한 몸을 움직이더니 긴 팔을 쭉 뻗어 스트레칭을 했다.

“으으- 이런 모습이 가장 제일 잘 먹힐 작자니까.”

“아….”

누군가의 약점을 곧잘 이용하는 황제라면 분명 이안의 초췌한 몰골을 놓치지 않을 터였다.

이 얼굴을 구실로 어떻게든 거짓말을 하면 그는 분명히 넘어갈 것이었다.

그에게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며 은근히 약점을 드러내기만 하면 되었다.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이안은 구겨진 옷깃을 펴고 집무실을 한 바퀴 빙 돌았다.

“할 일이 많군.”

“프로디터들에게 홀로 찾아가실 생각이시고요?”

“당연하지. 이래 봬도 난 마탑주잖아? 그리고….”

“그리고?”

이안은 저도 모르게 모든 진실을 말하려던 스스로를 탓하며 도로 입을 다물었다.

하르힌에게 저주와 얽혀있는 선대 데벤시아 가문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프로디터들의 숨겨진 수장 역시 데벤시아 공작이라는 것까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다.”

“저하! 사람을 짜증 나게 만드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는 거 아십니까? 하나는 말을 하다 마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에 하르힌은 성내며 가슴에 쌓인 답답함을 표출했다.

“그러는 너야말로 왜 말을 하다 말아? 은근 답답한 면이 있네.”

“아니 제가 방금 그런 건… 어쨌든 저하께서 갑자기 말을 하다 멈추시니까 그런 거죠!”

하르힌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반문하는 이안을 보며 조금 전 그가 했던 행동을 상기시키려 했지만 여전히 이안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응?”

“…됐습니다. 황궁 가실 준비나 하시죠.”

놀리려 했지만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그였다. 오히려 화가 쌓이는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은 하르힌은 결국 입을 다물기로 했다.

“싱겁긴.”

이안이 가볍게 혀를 찼다.

⚜ ⚜ ⚜

“이, 이안 렌디 데벤시아 공작 저하 드십니다!”

황궁은 여전히 겉으로는 평화롭고 아름답게만 보였다.

하지만 그곳에 언제나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안은 평소처럼 입궁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황제의 목을 가져가고 싶었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이안은 멀끔하게 다린 검은 제복을 입고 등장했다.

게다가 그의 얼굴은 피곤함에 물들어 있었다. 그가 미간에 힘을 주자 범접하기 어려운 매서운 분위기가 흘렀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챈 병사는 몸을 움츠리며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이안의 도착을 알렸다.

“열어라.”

엄숙한 목소리에 병사들은 다급하게 알현실 문을 열었다. 웅장한 소리를 내며 정교한 무늬와 우아한 보석들이 박힌 황궁의 알현실 문이 열렸다. 이안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한 걸음 걸어 들어갔다.

“이안! 오랜만이구나.”

그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보아 황제는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평소에는 이안을 공작이라고 부르던 그가 활짝 웃음을 지으며 이안을 맞이했다.

“폐하를 뵙습니다.”

반면 이안은 살짝만 고개를 까딱할 뿐이었다.

“어디 있었다가 온 거지? 안색이… 무척 안 좋아 보이는 것 같구나.”

걱정하는 듯한 얼굴을 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들떠있었다. 아무래도 황제는 그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수장을 찾기 위해서 애썼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공작저에 가기 전까지 그는 그의 명령을 따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공작저에서 우연찮게 앞으로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된 것뿐이었다.

“오호라, 프로디터의? 그래서 찾았느냐?”

꽤나 구미가 당기는 주제였는지 아까까지 조금은 걱정스러운 기색을 보이던 표정을 거두어낸 황제는 꽤나 호탕하게 웃으며 제 무릎을 두어 번 두드리고 몸을 앞으로 뺐다.

“네가 이런 꼴이라니. 찾기 힘들었던 모양이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얼핏 실마리 정도만 잡았습니다. 그래서 폐하께 감히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온 것입니다.”

“실마리밖에 잡지 못했다?”

“그러니 시간을 조금만 더 주셨으면 합니다. 제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신다면 프로디터들은 물론이고 수장까지 모두 붙잡아 오겠습니다.”

이안은 자신감에 찬 단단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는 마치 황제에게 다짐을 받듯이 말했다.

이안의 이런 표정은 오랜만이었다. 황제는 가슴 어딘가에서 묘한 흥분감이 들끓었다.

“호오…!”

뒤는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감탄사를 내뱉으며 눈을 반짝이는 황제의 모습에 이안은 그가 곧 내놓을 답을 예상할 수 있었다.

“역시 이안이군. 아침부터 이리 기분 좋은 이유가 여깄었어.”

황제는 이안을 칭찬하고서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연신 주억거렸다.

“좋다, 좋아. 체포 계획을 한 달 뒤로 미루도록 하지. 공작, 믿고 있겠네.”

“…물론입니다.”

이안은 내키지 않지만 자신이 가장 지을 수 있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화답했다.

속이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당장 뛰어들어 황제의 숨통을 끊어놓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겨우 참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한 달. 고대하던 황제의 목을 베어버리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단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 ⚜ ⚜

아비드 제국.

한 여성이 황궁 안으로 들어가려고 애쓰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날 알지 않는가. 왜 안 된다는 거지?”

결국 황궁을 찾아온 델리사였지만 예상치도 못하게 입구에서부터 막혀버린 것이었다.

“폐하께서 당분간 황궁에 의회 귀족들을 제외하곤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녀를 막아선 성문의 병사는 그녀를 보내줄 생각이 없는 눈치였다.

“열어라.”

“안 됩니다!”

“적어도 보좌관이라도 불러라!”

일부러 눈에 띄지 않게 성의 뒷문으로 온 델리사는 병사에게 일라이자를 불러 달라 청했다.

“네가 이것조차 들어주지 않는다면 난 네가 내 말을 들어줄 때까지 여기 있을 거야. 그러니 빨리 부르는 게 좋을걸?”

‘빨리’를 느릿하게 강조하며 델리사는 병사를 재촉했다.

벌써 라이핀을 못 본 지 몇 달이나 지났다. 어느 순간 변해버린 듯한 그가 미웠지만 그래도 여전히 델리사는 라이핀을 사랑했다.

그의 찰랑거리는 파란 머리칼과 온화한 갈색 눈빛까지 어느 하나 그녀의 취향을 저격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게다가 그의 다정한 어투까지…. 먼저 애타고 고달파지는 것은 항상 그녀였다.

“하….”

병사는 그녀의 고집을 막긴 어려웠다. 그는 결국 그녀의 다그침에 못 이겨 성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병사의 부름을 받고 다급하게 내려온 일라이자는 정중하게 델리사에게 예를 갖추었다.

“델리사 님.”

“일라이자. 어째서 날 이렇게 대접하는 거지?”

델리사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일라이자 등 뒤로 땀을 뻘뻘 흘리며 선 병사를 쏘아보았다.

“폐하께서는 뭐라고 하시지? 나를 허락해주시지 않던?”

“그으게….”

곧바로 허락해줄 것이라 생각했던 델리사의 생각과는 다르게 일라이자는 답하기를 망설였다.

“무엇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에 델리사는 더욱 일라이자의 대답을 종용했다.

‘어떻게 전해야 한단 말인가….’

일라이자는 입술을 자꾸만 깨물며 라이핀의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였다.

그가 델리사를 만나러 오기 전, 병사가 그를 찾아와 용건을 얘기했다. 그 얘기가 라이핀에게 전달되자 그는 왈칵 얼굴을 구겼다.

“델리사? 그녀가 왜 여길. 저택으로 내려간다 했을 텐데?”

그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읽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책상에 팔을 걸쳐 턱을 괴며 혼잣말했다. 가뜩이나 얼마 전 팬텀이 황궁에 찾아와 앞으로는 텐젤 일에 절대로 가담하지 않겠다고 한 뒤로 심기가 불편하던 차였다.

“어…어떻게 전할까요, 폐하? 일단 제가 내려가야 하긴 할 것 같은데.”

델리사의 불같은 성격을 알고 있던 이들이라 그대로 그녀를 두었다간 다른 일이 생기리란 걸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라이핀의 대답을 가지고 내려가야 했던 일라이자가 그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흠….”

그의 질문에 라이핀은 턱을 괴며 다른 손으로 마호가니 책상을 두어 번 두드렸다. 긴 손가락이 규칙적으로 리듬을 만들었다.

“헤어지고는 싶다만… 뭔가 아직은 버릴 패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라이핀이 심술궂게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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