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117)

65화

“벌써 사흘째인가?”

“여전히 방문을 꺼리신다는군.”

“식음도 전폐하셨다는데 정말… 공작님이 걱정이네….”

이안이 모두를 물리고 방안에 틀어박힌 지 어느새 사흘이 넘었다.

저택 안의 모든 이들은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그의 명령에 감히 그의 방문 앞에 서지도 못하고 그를 걱정할 뿐이었다. 그가 걱정되는 마음에 리제아나가 그의 방을 찾았지만 그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안….”

리제아나는 그의 방문 위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안에서 또 아프기라도 하는 건….”

그에 대한 걱정에 방문 앞을 서성거렸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리제아나는 초조하게 문을 바라보았다.

방 안에서는 어떤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본 이안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아마 그가 리제아나를 해칠 뻔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리제아나는 직감적으로 그에게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시간이 필요한 걸까.

그런 생각이 스치자 그녀는 섣부르게 억지로 문을 열지 않기로 했다.

마법은 시전자의 의식이 이어지는 한,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법이 문을 막고 있으니 그에게 별다른 일은 없는 듯했다.

‘그렇지만 이안이 걱정돼.’

그날 이안의 눈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언제나 모든 상황을 주도하며 여유롭게 웃음을 짓던 그였는데, 그날의 이안은 너무나도 위태로워 보였다.

몰아치는 눈바람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이안.

그때 그에게 달려가 안아줘야 했을까.

무엇인가가 그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리제아나는 어떤 반응도 없는 문을 바라보며 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 눈에 서린 두려움은 아마….

그 눈은 무언가를 잃을까 두려워 하는 눈이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두렵게 했을까.

그를 돕고 싶었지만 그가 왜 방에 틀어박혔는지 알 수 없었다.

“아가씨…. 벌써 반나절 동안 여기 계셨습니다…. 이제 그만 방으로 들어가 쉬세요. 거기, 아가씨를 안내해주렴.

시엘은 그의 방문 앞을 지키는 리제아나 또한 걱정이 되었다. 보다 못한 시엘이 인자한 웃음을 띠며 부드러운 미소로 근처에 있던 하녀를 시켜 리제아나를 안내하게 하도록 했다.

“시엘.”

“추운 날씨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 더 큰일 나십니다.”

리제아나가 거부하려고하자 시엘이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시엘이 빠르게 움직여 하녀를 재촉했다. 그녀의 걱정 어린 강요에 결국 리제아나는 하녀를 따라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리제아나가 하녀를 따라가는 모습을 확인한 후 시엘은 다시 이안의 방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후….”

깊은 한숨을 내쉬고 시엘이 방문을 조용히 세 번 두드렸다.

-똑똑똑

“도련님, 시엘입니다.”

“….”

“답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냥 제 말만 들어주세요, 도련님.”

“….”

“그날 도련님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로서는 감히 짐작도, 하지 못할 테죠. 하지만… 도련님, 이리 계실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시엘은 대부분의 일생을 데벤시아 공작가의 사용인으로 보내왔다. 선대 데벤시아 공작이 결혼을 하고, 공작 부인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공작가를 이어받을 때까지.

시엘은 어린 이안의 모습이 아직 선명했다. 조그마한 두 손을 곤히 모으고 미소 어린 얼굴로 자는 작은 이안을.

그는 어려서부터 웃음이 많았으며 또래보다 눈치가 빠르고 조숙했다.

그래서 시엘은 어린 이안이 겪은 비극에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다. 선대 데벤시아 공작부인은 이안을 출산하고 일찍이 목숨을 잃어 데벤시아 공작만이 유일한 어린 이안의 버팀목이었다.

어머니가 없어도 이안은 보통의 아이처럼 밝았다. 공작이 그가 어머니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게 노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엘…. 아버지가… 왜 보이지 않지?’

시엘은 아직까지 또렷이 기억했다.

그 조그마한 아이가 콩알만 한 손으로 제 가슴을 쥐며 울었던 날을.

또래보다 어른스럽다고 하나 그 또한 아이였다. 그의 유일한 가족이 사라진 날에 그는 넋을 놓고 울었다. 울다가 혼절한 탓에 그는 열에 들떠 일주일을 앓았다.

그 후로 그는 그날의 기억을 잃었다.

이안이 황궁에서 돌아혼 후 그를 보살핀다며 공작저로 황궁의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황궁의 개입이 시작되자 이안은 밝은 모습을 잃었다.

하지만 아가씨를 만나고 다시 어렸을 적 밝은 모습을 되찾은 줄 알았건만….

과거를 천천히 회상하던 시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늙은 몸도 압니다. 도련님이 굴곡 많은 생을 살아오신 것을요.”

“….”

“그때마다 도련님은 누구에게도 의지 않고 스스로 딛고 일어서셨습니다. 스스로 성장하셨죠. 그 모습을 지켜보며 전….”

시엘이 말을 잇다 잠시 멈칫했다.

어린 이안의 햇살처럼 빛나던 웃음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졌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응석 부려야 할 나이에 너무 빠르게 어른이 되셨습니다.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서가시는 모습을 남들은 장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언제나 저는 도련님 걱정뿐이었습니다.”

“….”

이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어떤 일이 있어도 의연하게 위기를 극복했던 이안이 이리 절망할 일이라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리라.

앞만 보고 달려온 나머지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과거의 그림자가 기어코 그를 덮쳤을 것이다.

시엘은 그를 옮길 때 그가 괴로운 얼굴로 속삭이던 것을 떠올렸다.

‘아버지….’

어쩌면 그를 덮친 그림자는 선대 데벤시아 공작과 관련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시엘은 예전에 이안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처럼 손바닥으로 문 위를 쓸었다.

“때로는 의지를 해주세요. 주변 사람들에게.”

여전히 문 너머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시엘은 낮게 숨을 내뱉었다. 그녀의 간절한 마음이 이 단단히 닫힌 문 너머로 전해지길 바랄 뿐이었다. 시엘은 문에서 손을 뗐다. 이제 남은 것은 그가 방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녀가 발걸음을 돌리고 막 문가에서 벗어날 때였다.

“시엘.”

그때 방 너머로 이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목소리는 다소 가라앉아 있었으나 평소와 같았다.

시엘은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문 앞에 섰다.

“네, 도련님.”

“나는 내가 소중하게 여긴 것들을 모두 부서트렸어. 어머니도, 아버지도. 이젠 내가 사랑하는 여자까지 해하려 했어.”

담담한 이안의 목소리에 시엘은 가슴 위로 손을 올렸다. 그가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어째서 자신을 탓하시나요, 도련님. 모두 그분들의 선택이었습니다.”

“…뭐?”

“그분들은 모두 자신의 선택으로 도련님 곁에 남았던 겁니다. 선대 공작님도, 아가씨도. 그만큼 이안 님을 사랑하신 것이지요. 아가씨가 아픈 이안 님을 저택으로 모시고자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 이안 님은 모르실 겁니다.”

“…리제아나가?”

리제아나의 이야기에 잠시 이야기가 끊겼다. 시엘은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기다렸다. 긴 침묵 뒤에 문 너머로 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 사람은… 괜찮나?”

긴 고민 끝에 이안이 물었다.

그녀를 지키겠다고 했는데. 누구보다 그녀를 아껴주고 싶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뻔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이안은 그 스스로가 괴물처럼 느껴졌다.

괴물 같겠지. 그녀의 목숨을 빼앗을 뻔했던 그를 리제아나가 앞으로 어떻게 바라볼지 두려울 뿐이었다.

그런데도 알고 싶었다.

리제아나가 무사히 있는지, 그녀가 상처를 받진 않았는지.

“네. 아가씨의 상처는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

“그것보다, 아가씨께서는 도련님 걱정에 더 힘들어하시는 눈치입니다.”

“….”

“이 방문 앞을 매일같이 지키고 서 계셨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이안의 낮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이안, 당신은 강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선해요.’

강한 사람은 리제아나였다.

그녀를 죽이려 들던 그가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그를 향한 그녀의 믿음은 곧기만 하다. 자신을 죽이러 들던 사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계속 기다려주지 않았던가.

‘이 일도 당신이 일부러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난 알아요. 왜냐하면, 당신은 나를 몇 번이고 구해줬잖아. 난 당신의 선함을 믿어.’

방 너머로 이안은 낮게 자조했다.

“시엘.”

“네, 말씀하세요.”

“내가 강하고 선하다고 그러더군.”

“강하고 선하다….”

그의 말을 되짚던 시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엘. 나에게 그 역사서를 가져다줘.”

지금 이안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마주 볼 용기였다.

⚜ ⚜ ⚜

하르힌은 초조하게 마탑 입구를 창가를 통해 내려다보았다.

복도를 이리저리 오가는 그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하르힌은 다시 한번 입구를 바라보았다.

대체 공작저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이안으로부터 연락이 통 닿지 않았다.

벌써 그가 돌아오기로 한 날로부터 나흘이나 지났다.

한참 그를 기다리고 있는데 두 통의 편지가 두둥실 마탑 안으로 날아왔다.

하르힌은 다급하게 편지를 받아들었다.

하나는 데벤시아 공작저의 문장이 또 다른 편지에는 황실의 인장이 찍혀져 있었다.

“왔다.”

하르힌이 다급한 몸짓으로 데벤시아 공작저의 편지를 뜯어보았다.

우아한 필체는 누가 보아도 이안의 것이었으나 평소와 다르게 급하게 펜을 휘두른 듯한 모양새였다.

편지 내용은 짧았다.

[보류.]

무엇이 보류인지 주어가 쓰여 있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디터들의 체포를 앞두고 있던 하르힌으로서는 단번에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공작저에 잘 가신 거 아니었나? 대체 무슨 일이 있으신 거지? 아니! 편지에 짧게 이야기라도 해주시던가. 항상 이런 식이시네 정말!”

알 수 없는 이안의 행방에 구시렁거리던 하르힌은 손에 들고 있던 두 번째로 온 황실의 편지를 뜯으려던 참이었다.

-쿵쿵

마탑의 정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마탑 내의 마법사라면 으레 마탑 안으로 이동할 수 있는 마법진을 이용할 것이다.

단번에 심상치 않은 손님이라는 것을 눈치챈 하르힌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한쪽 손에 공격 마법을 시전하며 천천히 문을 열었다.

“안녕.”

문 앞에 있던 사람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이었다. 하르힌은 당황한 나머지 쉽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너,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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