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에필로그(2)
“5월의 신부가 되실 귀한 손님을 맞이하게 되어 영광이에요.”
에델라가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로즈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아니에요. 둘 다 결혼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는데, 사모님과 단장님께서 이렇게 신경을 써주셔서 감사하죠.”
“맞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로즈와 마틴의 말에 에델라는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신경 쓸 것이 너무 많아서 죽을 것 같았거든요. 식장이랑 드레스, 예복, 구두, 하객까지. 세상에! 겨우 하루를 위해서 이렇게 수십 일을 투자해야 하는 건지 전 정말 몰랐다니까요.”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생에 첫 결혼을 맞이하여 준비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로즈는 고향이 루젠타가 아닌 데다가 직업 특성상 아는 남자들만 많았지, 결혼 준비에 도움이 될 여자는 극소수였다.
그나마 그 극소수의 여자 중에 에델라가 있다는 것이 로즈에게는 참으로 다행이었다.
거기다가 에델라가 부티크를 운영할 정도로 센스가 뛰어난 데다가, 가게에서 판매하는 것들은 매우 저렴하게 살 수 있게 해주어 더욱더 다행이었다.
“사모님께서 부케를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셔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적어도 제가 고민해야 할 게 하나는 없어진 거니까요.”
“내가 하고 싶어서 자청한 것인걸요. 예로니아 저택의 정원에 예쁜 꽃도 많이 피어 있고요. 아, 부케는 예쁜 핑크 로즈로 하려고 해요. 아직은 봉오리지만, 결혼식쯤에는 아주 예쁘게 필 것 같거든요.”
“어머, 감사합니다!”
로즈는 제 이름과 같은 이름의 꽃으로 결혼식 부케를 만든다는 말에 환한 얼굴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녀의 결혼식 준비에 있어서 에델라는 정말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
“솔직히 제 마음 같아서는 그냥 혼인신고만 하고 같이 살면, 그게 결혼인 거 같은데 말이에요.”
“그럴 수는 없죠.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인데요.”
로즈의 말에 발끈하며 나선 것은 마틴이었다. 찌푸린 그의 인상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라고 말하는 신랑 때문에 제 맘대로 못했죠. 사모님께서는 혼자 이런 준비를 어떻게 하셨어요? 할 게 정말 많았죠?”
“아, 그게…….”
로즈의 질문에 에델라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의 경우에는 계약 결혼이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그야말로 형식적이었다.
게다가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 터라, 에델라가 준비한 것은 없었다. 그저 테라비스가 준비해둔 것들을 입고, 신고, 쓰고, 결혼식장을 걸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둘의 결혼이 그렇다는 사실은 아직도 비밀이었다.
“장모님이 큰 도움이 되어주셨지.”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는 에델라를 대신하여 나선 것은 테라비스였다. 에델라와는 달리 테라비스는 제법 뻔뻔하고, 유들유들했고, 상황에 따라서는 의뭉스럽게 거짓말도 잘했다.
그의 거짓말에 마틴과 로즈는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 예물을 찾으러 온 거죠? 여기 잠깐 앉아 있어요.”
에델라는 또 결혼에 대해서 무슨 질문이 나올까 싶어 두려웠는지 종종걸음으로 가게의 뒤편으로 향했다.
마틴과 로즈는 에델라의 부티크에서 결혼반지를 맞췄다. 부티크에서 귀금속류도 다루는 데다가, 에델라가 고른 예쁜 반지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의논 끝에 고른 반지는 여성용으로 나온 것이라서, 마틴의 반지는 똑같은 것을 남성용으로 주문해야 했다.
거기다 로즈는 오랜 단련으로 보통의 여성들보다 손가락이 두껍고 마디가 굵어서 그녀의 반지 역시 주문해야 했다.
그런 이유로 세공을 맡겨놓은 두 사람의 결혼반지가 드디어 오늘 도착한 것이었다.
“자, 여기 있어요.”
에델라는 웃으면서 미리 준비해두었던 작은 귀금속 상자를 마틴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마틴은 웃으면서 그 상자를 받아 들었다.
“어…….”
하지만 그 상자를 열었을 때, 마틴의 얼굴에서 그 미소가 사라졌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굳어진 마틴의 얼굴을 보며 로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손에 있는 반지를 보았다. 하지만 그 반지에서는 이상한 점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예쁜데?”
처음 골랐던 여성용 반지보다 조금 더 두껍고, 각지게 디자인이 나온 남성용 반지가 생각보다 마틴의 마음에 들지 않았나?
로즈의 눈에는 예쁘기만 했지만, 그녀의 예비 남편은 로즈보다 훨씬 예민하고 세심한 남자였으니 좀 다르게 생각할지도 몰랐다.
“이건 저희가 주문한 반지가 아니에요.”
“네?”
마틴의 말에 로즈는 놀라서 다시 반지를 쳐다보았다. 남성용 반지는 새로 커스텀을 조금 넣은 것 같긴 했지만, 로즈가 낄 여성용 반지는 분명 반지를 골랐을 때와 똑같은 모양이었다.
“거봐. 마틴은 바로 알아챌 거라고 했지?”
에델라를 보며 한 테라비스가 말하자, 로즈의 눈은 더욱 커졌다. 희미하게 웃고 있는 에델라를 보자 로즈의 당황스러움은 더욱 배가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로즈 혼자인 것 같았다.
“보석이 달라졌어요.”
반지를 한 번 보고, 마틴을 한 번 보고, 반지를 한 번 보고, 테라비스를 한 번 보고, 또 반지를 한 번 보고, 에델라를 한 번 보고, 또다시 반지를 쳐다보고 있는 로즈를 향해서 마틴이 말했다.
“똑같은데요? 똑같이 투명하고, 예쁜 보석이잖아요?”
문제는 그래도 로즈가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에 있었다.
“이전에 우리가 고른 건 똑같이 투명한 보석이긴 하지만, 좀 더 저렴한 보석이었어요. 그런데 이건 다이아몬드네요.”
“다이아몬드요?”
로즈의 눈이 크게 떠졌다. 보석에 대해서 잘 모르는 로즈였지만, 다이아몬드가 뭔지는 그녀도 알았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어쨌든 다이아몬드라는 것이 엄청 비싼 것이라는 것만은 로즈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다이아몬드라고? 심지어 다이아몬드가 이렇게 크다고?
“우리가 주는 결혼선물이에요.”
눈을 깜박이지도 못하고 있는 로즈를 향해서 에델라가 말했다.
“결혼선물치고는 너무 과한 것 아닌가요? 이 정도 크기라면 가격이 …….”
“이런 속물적인 사람을 봤나? 선물은 가격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거지!”
이 자리에 있는 네 명 중, 가장 세속적이며 가장 속물적인 사람이 정색하고 마틴에게 말했다. 당연히 마틴은 말없이 ‘그게 당신이 할 소리입니까?’라는 시선을 테라비스에게 보내주었다.
게다가 그런 말은 선물의 가격이 너무 비쌀 때 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저렴할 때 하는 말이었다.
“좋아. 그렇게 계산적일 거면, 이렇게 계산해보라고.”
마틴이 눈빛으로 하는 말을 전부 알아들은 테라비스는 본격적으로 계산을 한번 해보자는 듯이 도전적으로 마틴을 바라보았다.
“에델라가 이전의 그 소매치기 강도 사건으로 우리 부단장과 에몬테 님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 이미 알고 있겠지? 그런 두 사람이 결혼한다면, 당연히 에델라가 결혼선물을 해야겠지. 부단장과 에몬테 님에게 각각.”
여기까지 알아들었냐는 듯이 마틴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미심쩍다는 눈으로 테라비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쪽이 이야기가 통할 것 같지 않자, 테라비스는 고개를 돌려 로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서 동의해달라는 듯한 테라비스와 눈이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리고 나 역시, 우리 붉은바람 상단을 몇 년째 이끄는 부단장에게 당연히 결혼선물을 해줘야 할 것이고, 또한 몇 년째 우리 상단의 안전에 힘쓰고 있는 에몬테 님에게도 결혼선물을 해드려야겠지. 당연히 각각.”
여기까지 알아들었냐는 듯, 테라비스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며 로즈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로즈는 또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럼 결국 에델라와 나는 두 사람의 결혼으로 선물을 4개나 해야 한다는 거지. 사실 상대방의 마음에 들 선물을 4개나 고른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 그래서 우리 둘은 생각을 했지. 차라리 좀 더 좋은 선물로 1개를 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그래서 좀 더 좋은 선물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좋은 물건이 된 것입니까?”
“게다가 본인들 스스로 고른 디자인이니 마음에 쏙 들 것이 뻔한 선물이기도 하지.”
“하지만 너무 비싸지 않습니까?”
“그렇지 비싸지. 그건 선물이지만, 뇌물이기도 하거든.”
“뇌물이요?”
“그래. 이만큼 비싼 결혼선물을 했으니, 유부남과 유부녀가 되어서도 더욱더 우리 상단을 위해서 힘써달라~ 하는 뇌물.”
“아니, 그래도 너무 비싼 선물 아닙니까?”
“선물과 뇌물일 뿐만이 아니라, 이건…….”
“됐습니다.”
테라비스의 말이 더 길어질 것 같아지자, 마틴은 그의 말을 잘라냈다. 그의 의도는 충분히 알았다.
마틴이 알았다고 할 때까지 끝없이 말을 늘어놓을 생각임이 틀림없었다. 그는 그러고도 남을 말재주와 끈기를 가지고 있었다.
“단장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선물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한 사랑을 오래~ 오래~ 하라고. 더불어 우리 상단에서 근무도 오래~ 오래~ 하고.”
결국 마틴은 결혼선물을 받겠다고 말했고, 테라비스는 웃으며 덕담을 건넸다. 훈훈한 결말이었다.
“두 사람은 정말 행복하게 잘 살 것 같아요.”
에델라 역시 웃으면서 로즈에게 말했다.
“단장님과 사모님처럼요?”
로즈 역시 웃으면서 재치 있게 대답했다.
아닌 게 아니라, 로즈는 에델라와 테라비스처럼 살고 싶었다. 아주 가끔은 다투는 것 같기도 했지만, 두 사람은 아주 행복해 보였다.
때로는 잘 통하는 친구 같았고, 때로는 세상에서 단둘뿐인 연인 같았으며, 또 때로는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는 가족 같아 보였다. 로즈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부부가 바로 에델라와 테라비스였다.
로즈의 말에 에델라는 쑥스러운 듯 수줍은 미소를 지었고, 테라비스는 그런 에델라의 허리를 슬며시 끌어당겨서 안았다.
정말 보기 좋은 부부였다.
* * *
“보기 좋은 두 사람이었지?”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에델라가 말했다. 말한 상대방은 당연히 앞에 앉아 있는 테라비스였다.
“누구?”
“누구긴 누구야? 부단장님과 에몬테 님 말이지.”
“아아~. 그래. 정말 반대인 두 사람인데 신기할 지경으로 잘 어울린단 말이야?”
“맞아. 꼭 아귀가 딱 맞는 퍼즐 같은 연인이야. 아니, 이제 곧 부부라고 불러야겠지?”
에델라는 고개까지 끄덕이며 테라비스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래. 돌아오는 토요일이 결혼식이니 말이야.”
“신혼이겠구나.”
테라비스는 에델라의 입에서 방금 나온 ‘신혼’이라는 단어에서 얼핏 부러움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왜? 부러워?”
테라비스는 히죽거리며 에델라에게 물었다. 어쩌면 에델라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라고 말하며 조금 얼굴을 붉히거나, 귓불을 솜사탕 같은 분홍색으로 물들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은근히 하면서.
“응. 조금?”
하지만 돌아온 에델라의 대답은 테라비스가 얼굴을 굳히기에 충분했다.
“좋겠다. 신혼…….”
에델라가 창문 밖을 바라보며 아련하게 이야기를 하자, 테라비스는 완전히 굳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