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키스해도 될까?2022.01.14.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뒤, 테라비스는 내내 에델라의 안색을 살피고 있었다. 원래 그의 예상대로라면 에델라는 오늘 오랜만에 부모님을 뵈어서 기분이 좋아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기분 좋은 얼굴이 아니라 내내 근심 가득한 흐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혹여, 예로니아 백작의 건강이 나빠진 것인가 해서 테라비스는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건강은 어떠시냐고 물었지만, 덕분에 아주 좋아졌다는 대답이 되돌아왔다. 그 대답을 할 때만은 에델라도 희미하게 웃었다.
“아, 저녁 식사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테라비스는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에델라에게 물었다. 사실은 그녀의 기분을 봐가며 물어보려고 저녁 내내 눈치를 살폈으면서.
“당분간 바쁜 일이 없어서 언제든 괜찮다고 말씀드렸어?”
“그게……. 당분간은 힘들 것 같아.”
이 역시 뜻밖의 대답이었다. 예로니아 백작 내외의 초대에 테라비스가 기꺼이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자 기뻐했던 에델라였다. 테라비스에게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고, 실은 예로니아 백작 부인이 그리 음식 솜씨가 뛰어난 편은 아니라는 것을 수줍게 고백하기도 했다. 그가 보기에 에델라는 분명 예로니아 저택에서 온 가족이 다 같이 저녁 먹고,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설레하는 것 같았다. 그런 에델라가 오히려 당분간은 힘들 것 같다며 난색을 보이자, 테라비스는 예로니아 저택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을 확신했다.
“왜? 무슨 일이 있어?”
테라비스는 그저 지나가는 말처럼 질문을 던졌다.
“집에 손님이 와 있어서.”
“손님?”
이상한 일이었다. 예로니아 백작 가는 루젠타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다. 귀족들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그들을 외면했고, 평민들은 신분의 차로 귀족과 교류하지 않았다. 귀족도, 평민도 방문하지 않는 예로니아 저택에 손님이 있다는 것은 퍽 의아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혹시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누군가가 사람을 보낸 건가 싶었다. 붉은바람 상단에 줄을 대기 위해서 테라비스의 장인, 장모인 예로니아 백작과 백작 부인을 찾아간 것인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에델라의 어두운 표정을 보면 그런 손님은 아닌 듯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 사람은 손님이 아니라 불청객인 것이 틀림없었다.
“어떤 손님인데?”
이번에도 테라비스는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다그쳐 캐물으면 에델라가 겁을 먹거나, 입을 다물어버릴까 봐서였다.
“친척이야.”
에델라 역시 지나가는 말처럼 두리뭉실한 대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다음 에델라의 말과 행동은 절대 두리뭉실하지 않았다.
“테라비스.”
테라비스의 앞에 바싹 붙어선 에델라는 진지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에델라의 한 손이 테라비스의 단단한 가슴팍에 닿았다.
“키스해도 될까?”
“……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제껏 스킨십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던 에델라였다. 언제나 상황은 테라비스가 주도했고, 에델라는 따라오는 편이었다. 그런 에델라가 테라비스에게 먼저 키스를 해도 되겠냐고 물은 것이었다.
“그야 물론이지.”
거절할 이유가 없는 테라비스는 당연히 긍정의 의사를 표했다. 자신이 한 말에 행동으로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에델라의 허리에 제 손을 두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에델라가 더 빨랐다. 테라비스의 손이 에델라의 허리에 닿는 것보다, 에델라의 입술이 테라비스의 입술에 먼저 닿았다. 너무나 적극적인 에델라의 태도에 테라비스의 손은 놀라 허공에 그대로 멈춘 채였다. 눈은 아직 상황이 판단되지 않아 끔벅이고 있었고, 입은 놀라서 살짝 벌어진 그대로 굳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딱 2초간이었다. 테라비스는 이내 정신을 차렸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손으로는 에델라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에델라가 가져다 댄 입술을 재빨리 머금었다. 에델라는 눈을 감고, 테라비스가 주는 감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 에델라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이었다. 순간적인 감각과 온몸을 지배하는 쾌락이었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생각이 아니라.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테라비스의 가슴에 대고 있던 손을 떼어내 그의 목에 두르며 에델라는 조급하게 그에게 매달렸다. 이전에 테라비스가 자신에게 어떻게 했었던지를 기억해내며 그와 비슷하게 하려고 했다. 그의 입술을 머금고, 틈 사이로 제 숨결을 밀어 넣었다. 서로 얽히는 숨과 호흡에서 피어나는 열기가 에델라의 몸에 스며들고 있었다. 차츰 에델라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던 생각들은 사라지고, 그저 현재 상황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조금 더 그의 입술을 원했다. 어느덧 거칠어진 테라비스의 호흡을 더 원했다. 삼켜도 삼켜도 그저 부족한 것만 같은 숨결을 더 원했다.
“아……!”
에델라는 어느덧 침대에 앉은 테라비스의 허벅지에 올라앉아, 그에게 키스하고 있었다. 그녀가 테라비스를 너무 급하게 몰아붙이며 매달린 탓에 테라비스가 뒤로 밀리며 침대에 주저앉게 되었고, 그러고 나서도 에델라가 밀어붙이는 것을 멈추지 않은 탓에 아예 그의 허벅지 위에 올라앉게 된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에델라의 입술에서 약간의 부끄러움이 섞인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테라비스가 좋아하는 복숭앗빛이 에델라의 뺨에, 귓불에 스며들었다.
“끝이야?”
한 손은 그대로 에델라의 허리에 얹은 채, 테라비스는 남은 한 손으로 에델라의 통통한 귓불을 쓰다듬었다. 에델라의 입술처럼 그것은 열기를 띠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달콤한지, 테라비스는 이제 알고 있었다. 그의 상상보다 훨씬 달콤했고, 복숭아보다 부드러웠다. 테라비스는 허리에 힘을 줘서 그대로 몸을 뒤틀었다. 그의 허벅지에 앉아 있던 에델라는 이제 침대에 누워 있었고, 테라비스의 허벅지 위가 아닌 허벅지 사이에 단단히 갇혀 있었다. 지금의 에델라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테라비스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에델라가 지금 자신을 원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난 이제 시작인데?”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테라비스는 에델라가 필요하다면 필요한 것을 줄 생각이었다. 입술도, 키스도, 제 몸도, 아주 기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