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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다음 날 아침 (72/92)

72화. 다음 날 아침2022.01.07. 

16590715889046.jpg“저 사슴 말이야.”

아침에 눈을 뜬 에델라는 가만히 침대 위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래에서 쳐다보았기 때문에 보이는 것은 사슴의 턱 정도였지만, 매일 본 에델라는 그게 어떤 모습인지 보지 않고도 잘 알고 있었다.

16590715889052.jpg“오! 저것!”

먼저 일어나서 옷을 입고 있던 테라비스는 에델라가 사슴 이야기를 꺼내자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

16590715889046.jpg‘비싼 거로군.’

눈을 빛내는 테라비스를 보며 에델라는 짐작했다.

16590715889052.jpg“굉장히 비싼 사연이 있는 헌팅 트로피지.”

16590715889046.jpg“당신이 잡은 거야?”

16590715889052.jpg“아니. 난 개인적으로 사냥을 즐기지 않아서.”

16590715889046.jpg“그럼 무슨 사연이 있는 건데?”

16590715889052.jpg“잡은 사람이 바로 대문호 파비오사 스렌초거든.”

16590715889046.jpg“뭐? 저게 ‘붕괴하는 자아’를 쓴 파비오사 스렌초가 잡은 사슴이라는 거야?”

16590715889052.jpg“그렇다니깐!”

에델라는 평소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이 나오자 벌떡 침대에서 일어섰다. 앞쪽은 이불로 감싸고 있었지만, 등은 가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서늘한 공기가 닿았다. 앞쪽의 이불을 단단히 붙든 에델라는 고개를 돌려 침대 위를 장식하고 있던 수사슴 헌팅 트로피를 쳐다보았다. 매일 보던 그 수사슴이 그에 대한 사연을 듣는다고 해서 갑자기 뭐가 달라질 리 없었다. 여전히 맞지 않는 자리에 흉물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리 잡은 사람이 파비오사 스렌초라고 한들, 저 수사슴 헌팅 트로피는 침실에 어울리지 않았다. 차라리 파비오사 스렌초의 친필본 같은 것이라면 나았을 것이다. 하다못해 그가 사용했던 잉크나, 깃털 펜 같은 것이라면 훨씬 괜찮을 것이다. 그것도 침실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지만, 적어도 침대를 내려다보는 웅장한 수사슴보다는 나았다.

16590715889046.jpg“하지만…….”

에델라는 뒷말을 삼켰다. 파비오사 스렌초가 직접 잡은 수사슴 헌팅 트로피를 자신의 침실에 두어 너무도 자랑스럽다는 표정을 한 테라비스에게 차마 저것이 침실을 끔찍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16590715889046.jpg“저게 진짜 마음에 들어?”

16590715889052.jpg“당연하지! 파비오사 스렌초라니깐?”

16590715889046.jpg“그 사람 책을 좋아하는 줄은 몰랐네.”

16590715889052.jpg“책은 읽어본 적 없는데?”

조금 전까지 파비오사 스렌초라고 열변을 토하던 테라비스는 너무도 당당하게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16590715889046.jpg“서재에 그의 책이 몇 권이나 있던데, 읽어본 적이 없다고?”

16590715889052.jpg“서재의 책이야 그냥 장식이지.”

16590715889046.jpg“그 사람 책은 읽은 적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 저걸 애지중지하는데?”

16590715889052.jpg“유명한 사람이잖아. 게다가 내가 저걸 얼마나 비싸게 주고 샀는지 알아?”

역시나 테라비스의 최종 대답은 그것으로 귀결되었다. 비싼 것.

16590715889046.jpg“저것, 다른 곳에 걸어 두는 게 어때?”

에델라는 침착하게 제안했다.

16590715889052.jpg“왜?”

16590715889046.jpg“그래야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잖아?”

16590715889052.jpg“그런 생각도 안 해본 것은 아닌데, 너무 대놓고 자랑이다 싶어서 침실에 둔 거였어. 저런 비싼 물건을 응접실에 두는 건, 너무 졸부 같잖아?”

의외의 대답이었다. 동시에 어이가 없는 대답이기도 했다. 대놓고 자랑하는 것을 좋아하는 졸부면서, 그걸 꺼리는 척하는 저 가증스러움은 뭐란 말인가?

16590715889046.jpg“아니야, 테라비스. 저런 건 자랑하는 게 맞아. 다른 사람도 아닌 파비오사 스렌초가 직접 사냥한 헌팅 트로피잖아?”

16590715889052.jpg“그런가?”

16590715889046.jpg“그렇지!”

16590715889052.jpg“흐음……. 하지만 이미 단단히 고정한 뒤라서, 저걸 떼어내면 벽지가 뜯어져서 보기 싫을 텐데?”

16590715889046.jpg“괜찮아. 적당한 크기의 그림을 가지고 와서 가리면 돼. 집에 당신이 모아놓은 유명한 작가의 그림들이 많이 있잖아.”

에델라는 최선을 다해서 테라비스를 설득했다. 저 수사슴을 침실에서 내보내기 위해서!

16590715889052.jpg“당신 말이 옳은 것 같아. 월요일에 업자에게 연락해보도록 하지. 응접실로 저걸 옮길 수 있는지.”

16590715889046.jpg“정말?”

에델라는 기뻤다. 진심으로.

16590715889052.jpg“딱히 농담할 필요가 없는 말이지 않나?”

테라비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16590715889052.jpg“그런데 계속 누워 있을 거야?”

16590715889046.jpg“응?”

16590715889052.jpg“잠은 다 깬 거 같은데, 계속 이불 속에 있는 것 같아서. 일어나서 아침도 먹고 그래야 하지 않아?”

16590715889046.jpg“아! 그렇지.”

에델라는 테라비스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사실, 이미 평소보다 늦은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16590715889052.jpg“…….”

16590715889046.jpg“…….”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하고 나서도 에델라는 이불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이불 속에서 고개만 내민 상태로 테라비스를 보고 있었다.

16590715889046.jpg“당신이 방에서 나가야 내가 침대에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미묘한 대치 상태를 깬 것은 에델라였다.

16590715889052.jpg“왜?”

16590715889046.jpg“당신 뒤편에 내 옷이 있거든.”

왜 그게 거기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에델라가 아는 사실은 이불 아래의 자신은 태어날 때의 모습 그대로였고, 어젯밤 자신이 입고 있었던 잠옷과 평소에 가볍게 걸치는 가운이 둘 다 테라비스의 뒤편에 있다는 것이었다.

16590715889052.jpg“가져다줘?”

16590715889046.jpg“아니. 그냥 당신이 나가면 내가 가서 입을게.”

16590715889052.jpg“그냥 입고, 같이 나가지 그래?”

16590715889046.jpg“싫어!”

테라비스의 제안을 에델라는 단칼에 거절했다.

16590715889052.jpg“새삼스럽게 왜 그래? 어제 볼 건 다 보지 않았나?”

16590715889046.jpg“보, 보긴 뭘 봤다고 그래?”

16590715889052.jpg“뭘 봤냐고? 내가 뭘 봤는지 말해줘?”

테라비스는 능글맞은 미소를 띤 채, 금방이라도 제가 어젯밤 무엇을 봤는지 에델라에게 읊어줄 기세로 되물었다.

16590715889046.jpg“안 돼! 말하지 마! 절대로 말하지 마!”

당연히 에델라는 기겁하며 테라비스에게 소리쳤다.

16590715889052.jpg“알았어. 알았어.”

테라비스는 양손을 들며 에델라에게 진정하라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뒤편에 있던 옷을 집어다가 침대까지 배달해주었다.

16590715889052.jpg“입고 식당으로 와. 아침치고는 좀 늦었고, 점심이라고 하기에는 좀 이르지만, 어쨌든 뭐든 먹자고.”

테라비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제법 자연스러운 대화였다고 생각하며. 사실, 아침 일찍 잠에서 깬 테라비스였다. 그는 일어나자마자 옆자리를 보았다. 늦게 잠들어서인지 세상모르고 자는 천사 같은 에델라의 모습을 테라비스는 꽤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참 이상한 노릇이었다. 이전부터 에델라가 예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더 예뻐 보였다. 아니, 그냥 예쁜 것이 아니라 미치게 예뻤다. 당장 자는 에델라에게 키스를 퍼붓고 싶을 정도로.

16590715889052.jpg‘안 되지, 안 돼. 피곤해서 자고 있는데, 깨우면 안 되지.’

테라비스는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붙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에델라의 잠옷을 챙겨 대충 의자에 걸고, 역시나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던 자신의 바지를 입었다. 그리고 테라비스가 웃옷을 걸치려는 순간, 에델라가 잠에서 깨어났다. 테라비스는 벗은 등에서 느껴지는 시선으로 그것을 알아차렸다.

16590715889052.jpg‘잘 잤냐고 해야 하나? 아니면, 어젯밤의 감상을 먼저 말하는 게 좋은 건가? 그러니까…… 좋았다고? 아니, 그건 좀 변태 같은데?’

테라비스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생각이 끝나지 않아, 테라비스는 뒤를 돌 수 없었다. 그리고 에델라 역시 눈을 뜨자 바로 보이는 풍경이 테라비스의 그을린 넓은 등이자 황급히 시선을 위로 향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수사슴의 아래턱이었다.

16590715889046.jpg“저 사슴 말이야.”

에델라는 일단 아무 말이나 꺼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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