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두 번째 첫날밤2022.01.03.
에델라는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초조해서 손이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눈을 한번 감았다가 뜨자, 이제는 익숙해진 침실의 풍경이 다시 보였다. 처음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인테리어라고 생각했는데, 그럭저럭 적응한 자신을 보면 정말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그래. 그것도 적응할 수 있을 거야.”
에델라는 한 달 전에 보았던 테라비스의 전신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사슴은 떼어달라고 하는 게 좋았을까?”
아직도 저게 왜 여기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수사슴 헌팅 트로피를 에델라는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래. 이 집 인테리어가 끔찍하다는 것을 이제 테라비스도 알고 있으니, 저건 떼자고 말해봐야겠어.’
에델라는 속으로 내일의 할 일을 생각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마지막 주정뱅이들까지 다 돌아갔어.”
침실의 문이 열리고, 테라비스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 그래?”
에델라는 태연하게 대답하려 했지만, 약간 더듬듯이 말이 나와버렸다.
“응. 치워둔 손님방은 쓸 일이 없었네.”
테라비스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별말 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오늘 악단은 어땠어?”
“좋았던 것 같은데? 왜? 당신은 별로였어?”
“뭐, 내가 그런 걸 평가할 만큼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니라서 당신에게 물어본 거야. 난 그냥 음악이 끊기지 않았으니 괜찮았다고 생각해.”
“나도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몰라. 실제 연주를 들어볼 일이 별로 없었는걸.”
“그래?”
에델라와 이야기를 하면서 테라비스는 자켓을 벗어 침대 옆 의자에 걸쳤다. 소매를 감싸고 있던 단추 역시 툭툭 풀어버렸다. 무도회 내내 그의 목에 걸려 있던 타이는 이미 침실에 들어오기 전부터 없었다.
“춤은 그렇게 잘 추면서 연주는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니, 의외인걸?”
“음악에 맞춰서 춤은 춘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
“그럼 그전에는 어떻게 췄는데?”
자연스럽게 에델라의 옆자리에 앉으며, 테라비스가 물었다.
“아버지가 박자를 세어주시거나, 어머니가 허밍으로 노래를 불러주셨지.”.
에델라의 대답을 들으며 테라비스는 목의 단추도 툭툭 풀었다. 그제야 에델라는 테라비스가 가까이 다가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너무 자연스럽게 다가와서 그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다.
“노래는 어떤 노래를 불러주셨는데?”
슬쩍, 에델라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며 테라비스가 물었다.
“그냥 여러 가지…….”
테라비스가 더 가까이 다가오자 에델라의 말꼬리가 저절로 흐려졌다. 그는 아주 느리게 다가왔다. 마치 에델라가 피할 기회를 주려는 것처럼.
“…….”
에델라는 피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눈을 감고,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렸을 뿐이었다. 처음은 아주 짧았다. 부드러운 에델라의 입술을 살짝 짓누르듯, 테라비스의 입술이 닿았다. 두 번째는 조금 더 대담했다. 다가온 입술이 에델라의 아랫입술을 살짝 머금었다. 그리고 그 감촉을 기억하려는 것처럼, 잠시 그렇게 멈춰 있었다. 세 번째 입술이 닿았을 때는, 입술과 함께 테라비스의 한쪽 손이 에델라의 뺨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첫 번째와 두 번째보다 훨씬 길게 에델라의 입술에 그의 입술이 머물렀다. 말캉한 에델라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어 신호를 보내자 그녀의 입술이 부드럽게 열렸다. 테라비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다음은 테라비스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었다. 입술이 달았기에 핥았다. 숨결이 달았기에 마셨다. 고인 샘이 달았기에 그마저도 남김없이 삼켰다. 그래도 부족한 것은 아마도 테라비스의 탐욕이 그것보다 더 컸기 때문이리라.
“에델라.”
에델라의 이름을 부르는 테라비스의 목소리에서 부족한 욕구에 대한 갈증이 묻어나왔다. 많은 것을 가졌고, 또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는 그였지만, 지금 원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에델라.”
테라비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의 이름을 불렀다. 부름을 받은 에델라는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그를 바라보았다. 테라비스의 눈빛에서 에델라는 그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테라비스.”
에델라는 테라비스가 조금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한쪽 뺨은 감싸 쥐었다. 그리고 그가 그랬던 것처럼, 천천히 다가가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다른 점을 꼽자면, 긴장으로 말라 있던 에델라의 입술과는 달리 테라비스의 입술은 이미 젖어 있었다는 것이다. 에델라의 것인지 테라비스의 것인지 모를 타액으로. 에델라의 입술에서 승낙의 의미를 읽은 테라비스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는 그대로 에델라의 입술을 삼켜냈다. 테라비스는 온전히 자신의 탐욕을 드러내며 에델라를 소유해갔다. 그녀의 입술, 그녀의 턱, 그녀의 뺨, 언제나 궁금했던 복숭앗빛의 탐스러운 귓불까지.
“아!”
테라비스의 탐욕이 에델라에게는 너무 버거웠던 것인지,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검은 어둠이 에델라의 시야를 꽉 메웠다. 그리고 빙글. 그리고 털썩. 에델라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시야에 보인 것은 그녀가 매일 잠들기 전에 보았던 천장과 테라비스였다.
“괜찮겠어?”
마지막으로 테라비스는 물었다. 이대로 멈추면 자신이 괜찮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에델라에게 정말로 괜찮을지를 물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는 신중하게 에델라를 배려하고 있었다.
“응.”
에델라는 괜찮았다. 예전 그때처럼 두렵지 않았고, 테라비스가 무섭지도 않았다. 에델라의 시선이 자신의 얼굴 옆에서 테라비스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 손을 향했다. 에델라의 손을 잡고 기다려준 손이었다. 그리고 에델라는 자신의 위에서 적당한 무게감을 주고 있는 테라비스의 몸을 느꼈다. 에델라가 힘들었을 때, 그녀를 안아주었던 그 몸이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있다고, 이 품에서라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던 그 몸이 새삼스럽게 무서울 리 없었다. 그리고 저 입술. 에델라에게 자신을 믿고, 의지하라고 말했던 입술이었다. 어젯밤 에델라에게 부드럽게 키스해준 입술이었다. 무섭지 않았다.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날의 스킨십들이 전부 오늘을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자, 이제껏 에델라는 이 순간을 기다려온 것 같기도 했다.
“괜찮아.”
그래서 에델라는 대답했다. 괜찮다고. 그러니 계속하라고. 테라비스는 그녀의 말에 기꺼이 따랐다. 시작하는 부부에게 밤은 길고도 짧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