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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장사꾼의 아내 (50/92)

50화. 장사꾼의 아내2021.10.22.

“아니, 얘! 며느리야!!!”

레베카는 다급한 목소리로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거 내가 산 거다. 잘못 배송 온 것이 아니야. 그러니 되돌려 보낼 것 없다.”

황급히 에델라의 앞에 서서 레베카는 말했다. 어제 에델라에게 자신도 다시 발음하지 못할 이상한 차를 사 오라고 시킨 다음, 레베카는 느긋하게 쇼핑을 했었다. 굳이 발 아프게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루젠타에 만들어둔 단골집들에 연락해 자신이 좋아할 만한 것으로 여러 개 가져다 달라고 했다. 그중에 몇 개는 레베카의 마음에 들 테고, 들지 않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선심을 쓰면 될 일이었다. 물론, 지급방식은 외상이었고 그 외상을 달아둔 이름은 ‘테라비스 바넬레오’였다.

“네. 알아요, 어머니.”

“뭐?”

“어머님께서 구매하신 거라는 걸 알고 있어요.”

인상을 찌푸린 레베카와는 달리 에델라의 얼굴은 표정 변화 없이 담담했다.

“그럼, 내가 샀다는 걸 알고도 이걸 돌려보낸다고 한 거니?”

“네.”

“어디 건방지게! 네가 뭔데!”

레베카는 이제 품위고 나발이고 필요 없었다. 이 저택의 고용인들과 배달을 온 가게 직원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가 뭔데 내가 산 물건을 돌려보내라 마라야? 귀족 출신이라고 오냐오냐해줬더니,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모양이네! 어디서 건방지게 시어머니가 산 물건을 반품해?”

레베카가 눈을 부릅뜨고 삿대질까지 했지만, 에델라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제가 이 집의 안주인이니까요.”

에델라는 그저 조용히,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레베카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뭐?”

험상궂게 레베카가 인상을 찌푸려도 에델라는 무섭지 않았다. 당신은 내 아내고, 나는 당신 남편이니까. 그저 조용히 어제 테라비스가 한 말을 머릿속에서 되뇄을 뿐이었다.

“여긴 테라비스와 저의 집이고, 아내인 저는 남편이 힘들게 번 돈이 헛되게 사용되는 것을 용인할 수 없어요.”

“용인? 네가 뭔데……!!”

“방금 말씀드렸듯, 저는 테라비스의 아내이고 이 집의 안주인이에요.”

레베카의 말에 에델라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똑같이 대답해주었다.

“그래서? 네 남편이기도 하겠지만, 내 아들이기도 해!”

“네, 알아요.”

“그런데 네가 감히 결혼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내가 낳고, 기른 아들의 재산을 가지고 나에게 간섭을 해?”

“그 말은 틀렸네요.”

“뭐?”

“낳은 것 맞고, 테라비스가 어머님의 아들인 것도 맞지만, 기르시진 않으셨잖아요?”

“무슨 헛소리야? 네가 봤니? 내가 그 아이를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을…….”

“거짓말하시지 마세요.”

에델라는 레베카의 말을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끊으며, 제 할 말을 했다.

“그이를 키우지 않으셨잖아요. 방치도 일종의 학대라는 것 모르세요?”

“이 앙큼한 것이 누굴 모함하려고 드는 거야? 내가 테라비스를 키우는 걸 네가 보기라도 했니? 어디서 말도 안 되는…….”

“들었어요.”

이번에도 에델라는 레베카가 말하는 도중에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

“무슨 헛소문을 듣고…….”

“본인에게 직접 들었어요.”

어김없이 레베카의 말을 끊고 에델라는 말했다.

“그이가 매달 용돈을 어머님께 드린다고 들었어요. 용돈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큰 금액을요. 제 생각에는 그 돈이면 낳아주신 값으로는 충분한 것 같은데요. 앞서 말씀드렸듯, 그이를 기르시지는 않으셨으니 길러준 값은 드릴 것이 없고요.”

“네가 감히…….”

“저는 장사꾼의 아내예요. 셈을 정확하게 해야 한답니다.”

에델라의 말에 레베카는 부들부들 떨면서 중얼거렸다. 애석하게도 에델라의 말이 옳았다. 자신은 테라비스를 기르지 않았다. 레베카는 순간 울까 생각했다. 테라비스에게는 그것이 언제나 통했다. 서럽게 울며 그때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토로하면, 테라비스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알겠으니 그만하시라고 말했다. 당연히 그 이야기를 들으면 레베카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아예 통곡하기도 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테라비스는 자신이 앞서 했던 말들을 취소하고, 레베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곤 했다.

“말씀하세요, 어머니.”

하지만 눈앞에 에델라는 그런 것이 통할 것 같지 않았다. 레베카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레베카가 아무리 서럽게 울어도, 바닥을 치며 통곡을 해도, 에델라의 저 꼿꼿한 자세는 전혀 풀리지 않을 것임을.

“네가 이러고도 괜찮을 것 같니? 테라비스가 알면…….”

“알면 어떻게 될까요, 어머니?”

에델라는 더 해보라는 듯이 처음으로 레베카를 거들어주었다.

“저랑 이혼하게 될까요, 아니면 어머님과 의절을 하게 될까요?”

그리고 레베카가 할 말을 대신해주기까지 했다. 그 말을 들은 레베카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없었다. 테라비스가 자신을 선택할 것이라는. 에델라의 말대로 어린 테라비스를 돌보지 않았었고, 이제까지 테라비스의 재산을 야금야금 갉아먹은 자신이었다. 그에 비해 눈앞에 며느리는 아주 자신만만해 보였다. 테라비스가 당연히 자신을 택할 것이라는 확신이 그녀에게는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될까요, 어머니?”

에델라는 다시 한번, 레베카에게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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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고했어.”

테라비스는 무사히 블루다이아몬드를 사 온 마틴과 로즈를 보며 일단은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마틴은 영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었다.

“이게 왜 업무인 겁니까? 게다가 왜 하필 저 루젠타 보석상인 겁니까? 분명 지난번에 입찰에 실패하고서는 이쪽으로는 오줌도 안 누신다고…….”

신랄하게 테라비스에게 따지려던 마틴은 하려던 말을 멈췄다. 로즈가 옆에 있는 것을 깜박하고, 그녀 앞에서 자신이 너무 저렴한 단어 선택을 한 것 같아서였다.

“오해입니다.”

“네? 뭐가요?”

마틴은 말을 멈추고 신속하게 옆에 있는 로즈에게 변명했다. 하지만 마틴의 단어 선택에 아무런 유감이 없었던 로즈는 그의 오해라는 발언이 뭘 가리키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줌도 누지 않겠다는 말은 제가 아니라 단장님께서 말씀하신 겁니다. 그저 인용한 것뿐이고, 저는 평소에는 그런 말을 쓰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로즈의 어미가 살짝 올라갔다. 뭐가 이상한 것인지 전혀 몰랐던 로즈가 이렇게 대답하면 되겠지? 라는 느낌으로 대답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로즈는 누가 오줌을 어떤 방향으로 누던지 전혀 관심 없었다. 그녀의 관심은 오직 이제 곧 퇴근 시간인데 자신이 언제 어디서 퇴근하게 될 지였다. 아무래도 저 보석의 안전이 걱정돼서 테라비스는 자신을 부른 것 같았다. 저것을 어디까지 자신이 호위해야 하는지가 제일 관건이었다. 만약 붉은바람 상단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면, 퇴근 시간을 조금 넘기는 데다가 집까지의 거리도 멀었다. 테라비스의 자택까지라면, 퇴근 시간은 아슬아슬했지만 그나마 집에서 조금 가까웠다.

‘아……. 지금 당장 퇴근하고 싶다.’

지금 로즈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뭐, 정찰 비슷한 거지. 저기 운영은 잘되고 있는지, 매물은 어떤 게 있는지 하는 것.”

테라비스는 구차한 변명을 마틴에게 했다. 하지만 마틴에게 이런 변명이 먹히지 않으리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운영은 아주 잘 되고 있고, 매물은 단장님께서 들고 계신 그 블루다이아몬드가 제일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이미 아시겠지만요.”

“그렇군.”

테라비스는 잘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장님께서 이걸 구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저희 상단의 체면이 깎이게 될 겁니다. 아니, 얼마 뒤면 다들 사실을 알게 되겠죠. 제가 이런 것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부자가 아니라는 것은 루젠타 사람들이 다 알 테니까요.”

“알아, 마틴.”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레베카의 이번 요구는 들어주지 않으려고 한 것이었다. 하지만 에델라가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다. 양팔 저울에 ‘에델라의 고생’과 ‘자신의 체면’을 신중하게 달아본 결과, 시간이 지날수록 에델라의 고생이 점점 기울었다.

“단장님께서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한숨이 살짝 섞인 마틴의 말에 테라비스는 속으로 대답했다. 그도 자신이 지금 무슨 생각으로 이러고 있는지 몰랐다.

“그리고 블루다이아몬드를 구매한 사람에게 이걸 준다고 하더군요.”

마틴은 품속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이게 뭐지? 보증서를 따로 보관한 건가?”

테라비스는 마틴에게서 봉투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겉면에 쓰여 있는 이름을 보고는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피온드 드 비에라 자작 테라비스는 조심성 없이 봉투를 찢었다. 얼마나 세게 힘을 줘서 찢었는지, 안에 있던 두꺼운 종이가 일부 찢어지기까지 했다. 안의 내용은 별것 없었다. 쓸데없는 꾸밈말과 문장에서도 배어 나오는 비에라 자작의 허세와 잘난 척을 빼고 나면, 결론은 이 초대장을 받은 사람을 비에라 자작이 주체하는 무도회에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

“무슨 내용입니까? 직원 말로는 운이 좋았다며, 날짜가 지났으면 그것을 못 받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던데요.”

“운이 좋기는 무슨. 그냥 비에라 자작의 무도회에 초대한……다는…….”

그 순간, 번뜩이는 생각이 테라비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이것 때문에 블루다이아몬드를 사들인 거였어.”

순식간에 테라비스는 세상에서 가장 당당한 상급자가 되어 마틴을 쳐다보았다. 물론 마틴은 그런 테라비스를 존경의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또 무슨 헛소리야?’라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봐 주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초대장의 존재도 몰랐던 것처럼 굴었으면서, 저 비싼 블루다이아몬드를 산 이유가 이 초대장이라니?

“비에라 자작이 주체한 무도회잖아. 당연히 루젠타의 유명인사들은 다 오겠지. 아주 훌륭한 비즈니스의 장 아니겠어?”

테라비스는 지난번 포웨이스 남작의 무도회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는지, 거기다가 어떤 성과를 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비에라 자작의 무도회에 초대될 사람들이라면 다들 비에라 자작과 친분이 있거나, 비에라 상단의 거래처일 텐데요. 붉은바람 상단과 거래하려고 하겠습니까?”

“그야 모르지.”

테라비스는 마틴을 보며 빙긋 웃었다. 어떻게 만날 기회만 된다면, 그리고 대화를 나눌 기회만 있다면 테라비스는 자신이 있었다. 에델라와 계약 결혼까지 해서 작위를 얻으려고 한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 아니겠는가? 기회를 얻기 위해서.

“좋아. 그럼 난 이틀 후에 있을 무도회를 준비하러 가봐야겠으니, 두 사람은 이대로 퇴근하도록 해.”

테라비스의 말에 옆에서 조용히 있던 로즈의 얼굴에 갑자기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여기까지 외근을 와줬으니, 둘이 이걸로 저녁이라도 먹고.”

테라비스는 블루다이아몬드를 구매하기 위해서 가져왔던 자신의 개인 수표책에서 한 장을 찢어 마틴에게 건넸다.

“네? 아니, 이러지 않으셔도…….”

마틴은 테라비스가 준 수표를 사양하려고 했다. 옆에 있던 로즈가 눈을 부릅뜨고 세차게 그러지 말라고 고개를 내젓는 것을 보기 전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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