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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며느리 에델라 (49/92)

49화. 며느리 에델라2021.10.18.

“어머니, 손을 좀 더 드세요. 팔꿈치와 몸통과 손의 각도에 유의하면서요. 그래야 품위 있어 보이거든요. 고개도 그렇게 너무 앞으로 숙이지 마시고요.”

“어머나! 그걸 수저로 드시면 어떻게 해요, 어머니? 포크를 쓰셔야지요.”

“어머니, 손을 좀 더 드시라니까요? 팔꿈치를 그렇게 늘어뜨리면 힘이 없어 보이는 데다가, 전혀 우아해 보이지 않아요. 허리를 똑바로 펴세요. 아뇨. 더요.”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레베카는 ‘어머니’라는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함께 식사를 시작한 지 30초도 되지 않아서 에델라는 레베카를 지적하기 시작했다. 팔은 이렇게 드세요. 그 음식은 포크를 사용하셔야 해요. 잔을 그렇게 잡지 마세요. 허리는 더 펴세요.

“얘! 너는 뭐가 그렇게 완벽해서 그렇게 또박또박 지적질…….”

발끈해서 에델라를 향해 소리를 치려던 레베카는 그녀의 자세를 보고는 하려던 말이 쑥 들어가고 말았다. 곧은 자세로 우아하게 잔을 들고 있는 에델라는 그야말로 귀부인의 초상화에서 막 튀어나온 것처럼 완벽했다.

“어머니.”

에델라는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레베카를 불렀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레베카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 마치 그녀가 아주 어릴 때, 학교 선생님이 그녀를 조용히 불렀을 때와 똑같은 느낌이었다.

“음식이 입안에 있을 때는 말씀을 하시면 안 돼요. 그건 아주 예의 없는 일이랍니다.”

“아니, 얘!”

“어머니. 입요.”

한소리를 하려던 레베카는 에델라의 조용한 지적에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머리로는 들었지만, 레베카의 입은 저도 모르게 에델라의 말대로 부지런히 음식을 씹고 있었다.

“얘!”

입안에 음식을 꿀꺽 삼키고 나서 레베카는 입을 열었다. 그제야 에델라는 말하는 것을 허락해준다는 듯한 시선으로 레베카를 쳐다보았다.

“너 지금 네 시어미를 가르치려고 드는 거니? 아주 건방지구나!”

레베카는 이번에는 말려들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며 아주 노한 목소리로 에델라에게 따지고 들었다.

“네, 어머니. 저는 지금 어머니를 가르쳐드리고 있는 거예요.”

“뭐라고?”

“어머님께서 품위 있는 귀부인이 되도록요. 어제 어머님께서 말씀하셨죠? 전통 있는 바넬레오 가문이라고요. 이 훌륭한 가문의 며느리가 되었으니, 영광인 줄 알라고 하셨죠.”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이니?”

“전통 있는 가문의 귀부인이라면 마땅히 그에 걸맞은 예의와 범절을 익혀야죠. 어제 어머님이 말씀하셨듯,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요. 다행히 제가 그 분야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으니, 어머니께 그것을 가르쳐드리려는 거예요.”

말끝마다 ‘어제 어머님이 말씀하셨듯’을 붙이자, 레베카는 뭐라 더 말할 수 없었다. 그게 아니라고 말하면, 어제 자신이 한 말을 뒤집는 셈이 될 테니까.

“어머니, 식사 중에는 테이블에 손을 올려놓으시면 안 돼요. 그건 아주 예의 없는 행동이에요.”

그 와중에도 에델라는 조용히 레베카를 지적했다. 더는 도저히 에델라의 잔소리를 참을 수 없었던 레베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머니.”

그 행동에도 뭔가 잘못된 것이 있었던 것인지, 에델라는 조용히 레베카를 불렀다. 어린 레베카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엄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던 선생님처럼.

“나, 밥 다 먹었다.”

에델라가 더 뭐라고 하기 전에 레베카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정말이지 ‘어머니’ 소리도, ‘이렇게 하세요.’도,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도 지긋지긋했다.

“어머니.”

하지만 레베카가 발을 움직이기도 전에 에델라는 엄한 목소리로 다시 그녀를 불렀다.

“의자는 그렇게 소리가 나게 끄시면 안 돼요. 다른 사람이 아직 식탁에 있는데 자리에서 그렇게 벌떡 일어나시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니 그러시면 안 돼요. 먼저 양해를 구하고 일어나셔야죠. 그리고,”

에델라는 옆에 있던 냅킨을 레베카에 내밀었다.

“식사를 마치시면 입가를 닦으셔야죠. 저희는 청결함을 중요시하는 바넬레오 가문의 사람이잖아요?”

레베카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부들거리는 손으로 에델라가 내민 냅킨을 받았다. 보란 듯이 입가를 벅벅 닦은 레베카는 냅킨을 집어던지려다 그렇게 하면 에델라가 또 지적할 것 같아 그저 얌전히 냅킨을 내려놓았다.

“내가 먼저 일어나도 되겠니?”

“네, 어머니.”

에델라는 방긋이 웃으며 레베카가 식당을 떠나는 것을 양해해주었다. * * *

“흐음…….”

테라비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델라에게 등 떠밀려서 출근하긴 했지만, 그가 앉은 자리는 그야말로 가시방석이었다.

“또 이상한 청소를 시키고 있는 것 아니야?”

테라비스는 인상을 구기며 레베카가 에델라에게 뭘 시키고 있을까를 걱정했다. 초여름의 땡볕에 정원에서 풀이라도 뽑으라고 시켰을 수도 있었다. 새하얀 에델라의 피부가 빨갛게 화상을 입을 때까지. 그게 아니라면 그녀가 일사병으로 쓰러질 때까지. 어쩌면 위험한 일을 시켰을 수도 있었다. 예컨대, 지붕 청소 같은.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고, 지난번에 침실에서 춤을 췄을 때를 생각해보면, 에델라는 그다지 균형감각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높은 지붕 위에서 에델라가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제기랄!”

이런저런 생각들이 점점 더 나쁜 상상으로 번져가자 테라비스의 입에서는 저절로 욕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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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다 레베카의 술수라는 것을 잘 알았다. 테라비스는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당하기도 했다. 레베카의 거짓말에도 당했고, 거짓 눈물에도 당했고, 거짓 단식에도 당했다. 그게 전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테라비스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가 자신의 어머니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레인의 어머니였기 때문이었다. 아주 어쩌면, 자신뿐이라면 테라비스는 독하게 마음을 먹고 그녀를 끊어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있긴 했다. 하지만 아직 어린 그레인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테라비스의 이부동생은 아직 어렸고, 그래도 레베카가 두 번째 아이인 그레인에게는 그럭저럭 어미로서 할 도리를 어느 정도 해서인지, 그레인은 레베카에 대해서 입으로는 불평불만을 해도 실은 제 어머니를 좋아했다.

“제길!”

결국 테라비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집에서 레베카에게 시달리고 있을 에델라를 생각하면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게 바로 레베카가 노린 것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에도 자신은 레베카에게 진 것이다.

“마틴.”

테라비스는 부단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네, 단장님.”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테라비스는 문을 열었다. 언제나처럼 단정하고 차분한 부단장실이 보이고, 그것보다 더 단정하고 차분한 붉은바람 상단의 부단장이 보였다.

“지금 바쁜가?”

“네. 바쁩니다.”

“생각 좀 해보고 말하지?”

“……. 네. 바쁩니다.”

마틴은 아주 잠시 생각하는 척을 하고는 아까와 똑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뭔지 몰라도 지금부터 테라비스가 시키려는 일이 무조건 귀찮은 일이고, 회사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회사 일이었으면 테라비스는 바쁘냐는 질문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틴이 바쁘든지 말든지 필요한 일이라면 그에게 맡겼을 테니까.

“그럼 바빠도 시간 좀 내봐.”

바쁘냐고 물어본 것은 그저 인사치레였다. 테라비스는 고개를 까닥여 지금 당장 나와보라는 시늉을 했다.

“아니, 바쁘다니까요?”

“별로 안 바쁘잖아. 지금 보고 있는 것, 지난달 회계 보고서 아니야? 지난달에 안다비아 건 준비로 별로 큰일이 없어서 회계도 별것 없을 것 아니야.”

테라비스는 마틴이 펼쳐놓고 있는 서류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귀신같은 놈. 눈도 좋지.’

테라비스가 마틴의 상황을 정확하게 맞추자 별수 없었다.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마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십니까?”

“나랑 같이 어디 좀 갈 곳이 있어서.”

“어딜요? 지금이 근무시간인 건 아시죠?”

“알아.”

밖으로 나와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테라비스는 뭔가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어이! 에몬테 님!”

테라비스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마틴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에몬테 님은 왜요?”

“호위가 좀 필요해서.”

“위험한 일입니까?”

“아니. 위험하지는 않은데, 혹시나 해서.”

“무슨 일인데 이러시는 겁니까? 회사와 관련된 일 맞습니까?”

“크게 보면 관련 있는 일이지.”

테라비스는 마틴의 질문에 대충 대답하며 로즈를 기다렸다. 이쪽으로 다가오던 로즈가 마틴을 보고는 살짝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고개를 한번 꾸벅 숙이곤 다시 두 사람을 향해서 걸어왔다.

“일단 가면서 설명해줄게.”

테라비스는 자신의 블루다이아몬드 원정대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 * *

“아무래도 내가 저 요망한 것에게 당한 것 같은데?”

방에 돌아온 레베카는 그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봤자 이미 늦은 뒤였지만. 순진한 귀족 아가씨라고만 생각했는데, 에델라의 목소리에는 뭔가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그것은 태생적 고귀함의 발현일 수도 있었고, 에델라의 완벽함에 레베카가 짓눌린 것일 수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백기를 든 것은 레베카였다.

“여기서 내가 물러날 수야 없지.”

하지만 이대로 순순히 물러날 레베카가 아니었다. 그녀는 아직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했다.

“일단 내 방 청소를 좀 하라고 해야겠어. 욕실도 다시 청소하라고 하고. 그리고 지하실에 내려가서 아직 더럽다고 말해야겠어. 아니지. 가만?”

레베카는 눈을 번뜩이며 에델라를 괴롭힐 작전을 짜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뭔가가 생각이 났는지 하던 행동을 멈췄다.

“마차가 있으니 말이 있을 거고, 말이 있으니 분명 마구간이 이 집에 있을 텐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레베카는 히죽 하고 비열한 미소를 띠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잘난 귀족 아가씨는 더러운 말똥을 치우면서도 그렇게 완벽한지 내 눈으로 봐주겠어.”

레베카는 드디어 생각해낸 못된 계획을 당장 실행에 옮길 생각에 들떠서 밖으로 나갔다.

“음?”

당장 에델라를 찾아내 청결을 중요시하는 바넬레오의 가풍에 따라 마구간을 깨끗하게 치우라고 말을 하려고 했던 레베카는 입구 쪽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움에 귀를 기울였다. 자세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단호한 에델라의 목소리와 당황해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레베카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인지도 궁금했지만, 자신의 목적인 에델라도 그쪽에 있었으니까.

“당장, 전부, 반품해주세요.”

그리하여 레베카가 맞이한 광경은 산더미같이 쌓인 상자들과 그 앞에서 서서 단호한 목소리로 당장 반품해달라고 말하고 있는 에델라의 뒷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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