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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바넬레오 가문의 전통 (46/92)

46화. 바넬레오 가문의 전통2021.10.08.

“얘! 귀족 며느님아!”

테라비스가 식당에서 나가자마자 레베카는 소리를 빽 질렀다. 레베카의 오물이 튄 접시 위 음식을 차마 먹지 못하고, 오렌지 주스를 홀짝이고 있던 에델라의 어깨가 놀라서 솟아올랐다.

“너! 우리 아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니?”

“네? 제가요?”

“그래. 우리 테라비스가 원래는 저런 애가 아니라 얼마나 순한 애인데, 결혼한 지 겨우 며칠 만에 사람을 저렇게 만들다니! 대체 우리 아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레베카의 말은 모두 틀려 있었다. 일단 테라비스는 한 번도 ‘순한 애’인 적이 없었고, 에델라와 테라비스는 결혼한 지 겨우 며칠이 아니라 이제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에델라가 테라비스에게 무슨 짓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었고, 테라비스는 전혀 변하지도 않았다. 그는 원래 저렇게 무뚝뚝했고, 원래 저렇게 싸가지가 없었고, 원래 저렇게 제 어머니를 무시했었다.

“전 아무 짓도…….”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왜 우리 아들이 저렇게 되었어? 어? 아주 못 쓰게 변했잖니!”

당연히 에델라는 억울했다. 그녀가 한 짓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눈앞에 사람이 그녀의 시어머니였기 때문이었다. 테라비스의 어머니였고, 귀여운 그레인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에델라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낳아준 그녀에게 에델라는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그러니 화를 내는 레베카에게 에델라는 사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귀족인 에델라가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자, 그제야 레베카는 분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내가 그 블루다이아몬드를 내 목에 안 걸고는 절대로 못 돌아가지!’

레베카는 가지고 싶은 것은 꼭 가지고야 마는 성미였다. 그리고 그녀는 블루다이아몬드 보석 세트가 가지고 싶었다. 자신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리젤란드 부인이 커다란 사파이어 목걸이를 하고 왔을 때, 그리고 제 앞에서 새 남자친구가 사준 것이라고 자랑을 했을 때, 그녀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어서 끙끙 앓아누운 레베카를 벌떡 일으켜 세운 것이 바로 블루다이아몬드였다. 거기다가 그것이 루젠타에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되자, 이건 분명히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블루다이아몬드가 레베카의 것이 될 운명!

‘아까 분명히 얘를 쳐다봤단 말이지?’

레베카는 제 앞에서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에델라를 표독스럽게 노려보았다. 자신이 윈터 씨의 장점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테라비스가 에델라의 눈치를 보는 것을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 원래도 그는 레베카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걸 알기 때문에 아까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빨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쥐여주지 않으면, 듣기 싫은 이런 이야기를 매일매일 들어야 할 것이라는 경고였다. 그리고 테라비스는 평소보다 더욱 예민하게 반응했다. 에델라의 눈치를 보면서.

‘그래. 그렇단 말이지?’

레베카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테라비스는 제 속으로 낳은 제 자식이었다. 그의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빤히 알 수 있는 레베카였다. 테라비스는 인정하기 싫을 테지만, 자신의 성공에 한 축을 담당한 재빠른 눈치는 레베카를 닮은 것이었다.

“이봐, 귀족 며느님?”

그녀는 테라비스의 약점을 눈치채고 말았다.

“네?”

게다가 새로 생긴 테라비스의 약점은 연약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레베카 자신이 늙은 여우라면, 에델라는 순한 토끼였다. 토끼가 순하게 눈을 깜박이는 것을 보며, 늙은 여우는 저것을 어떻게 홀라당 벗겨 먹어야 건방진 늑대가 납작 엎드릴지 고민했다.

“바넬레오 가에 시집을 왔으면, 바넬레오 가의 전통을 배워야 하지 않겠니?”

“바넬레오 가문의 전통이요?”

“그래.”

물론 그 전통은 지금부터 만들어낼 참이었다. 아주 힘들고, 고된 것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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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촥! 촥! 촥! 거친 손길로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이 붉은바람 상단 단장실에 커다랗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누군가가 봤다면 저러다가 종이가 찢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거친 손길이었다.

“블루다이아몬드?”

그 소리가 멈춘 것은 기가 막힌다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테라비스가 콧방귀를 낀 순간이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었다. 레베카가 원했던 그 블루다이아몬드가 어떤 상품인지 당연히 테라비스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루젠타의 유통망은 그가 훤히 꿰뚫고 있었고, 고가의 물건이라면 그게 어디서 얼마에 팔고 있는지도 다 알았다. 그녀가 원한 블루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보석 세트는 루젠타의 가장 큰 보석상이며, 그 규모에 걸맞게 이름도 루젠타 보석상인 곳에서 전시 및 판매하는 물건이었다. 바로, 붉은바람 상단에 퇴짜를 놓고, 비에라 상단과 거래를 선택하여 테라비스에게 패배감을 주었던 그 루젠타 보석상이었다.

“나더러 그 가게에 들어가라는 거야?”

더군다나 그 블루다이아몬드는 비에라 상단이 루젠타 보석상과의 재계약에 성공한 것에 대한 답례로 먼 곳에서 비에라 자작이 특별히 구해 온 것이었다. 루젠타 보석상은 상급의 다이아몬드를 보며 크게 기뻐하며 그것을 세공하여 전시 중이었다.

“나더러 그걸 사 오라고?”

즉, 레베카의 요구는 테라비스가 비에라 자작에게 패배한 사실을 알려주는 상징물을 사 오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레베카는 그런 사정을 몰랐을 것이다. 그녀는 테라비스의 사업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니까. 그의 라이벌 상단이 누군지, 최근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 아들이 일하면서 힘든 상황은 없는지 등은 레베카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돈이었다. 테라비스가 버는 돈, 그리고 자신이 쓸 수 있는 돈.

“미친 할망구가!”

상황을 되짚어보던 테라비스는 더 울분이 치솟아서 쾅! 하고 책상을 내려치고 말았다. 손이 얼얼해졌지만,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레베카는 집에서 편안히 누워 비싼 와인을 축내고 있을 것이 뻔했다. 그게 아니면 제 마음에 드는 집안의 그림이나 오브제를 몰래 빼돌릴 궁리를 하고 있거나. 레베카는 예전에도 제 마음대로 테라비스의 집에 찾아오곤 했다. 그의 신경을 있는 대로 긁어서 그가 도저히 못 견딜 지경이 되었을 때, 제가 사고 싶어 하는 것을 슬며시 이야기했다. 빨리 그녀를 제 눈앞에서 치우고 싶은 테라비스가 그것을 사주면, 레베카는 이제 볼일은 끝났다는 듯이 되돌아갔다. 빼돌려 두었던 테라비스의 소유물도 함께 가지고서 말이다. 그녀가 이렇게 찾아올 때마다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는 테라비스였다. 아니면 결혼식 때처럼 대놓고 원하는 것을 먼저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면 더 빨리 그녀를 집으로 보내버릴 수 있으니까. 다만 지금의 테라비스가 못내 마음에 걸리는 것은 에델라였다.

“차라리 돈을 좀 쥐여주면…….”

돈이라면 이미 충분히 매달 부쳐주고 있었다. 돈 몇 푼에 레베카가 돌아갈 리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만족할 만큼 많은 돈을 주면? 그 길로 신나서 루젠타 보석상에 가서 블루다이아몬드 세트를 사겠지. 다음날이면 이 작은 소도시에 사는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테라비스 바넬레오의 모친이 그가 퇴짜맞은 보석상에 가서 큰돈을 주고 비싼 물건을 샀다는 사실을. 그리고 테라비스는 배알도 없는 놈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최악이군.”

테라비스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이를 갈았다. -똑똑. 방안에 가볍게 울리는 노크 소리에 테라비스는 억지로 그 분노를 감췄다. 직원들에게 굳이 사생활을 다 알릴 필요는 없었다.

“들어와.”

짧은 대답 뒤에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마틴이었다.

“안다비아 건으로 보고드릴 일이 있어서요.”

“아, 그래.”

안다비아라는 말을 듣는 순간, 샤를리안의 얼굴이 그리고 에델라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테라비스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대답했다.

“공식적으로는 저희 쪽 서류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비밀리에 다른 상단들과도 접촉하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그건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잖아.”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비에라 상단과도 접촉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예전에 그쪽과 사이가 틀어져서 루젠타와의 교역을 멈춘 것 아니었나? 내가 조사한 바로는 비에라 측이 과도한 수수료를 요구해서 사이가 틀어진 것으로 아는데 다시 비에라와 거래를 하려고 한단 말이야?”

“저도 그렇게 알고 있긴 합니다만, 그건 어쨌든 15년 전의 일 아니겠습니까? 더군다나 엔젤로테 측에서는 상단의 단장도 바뀐 상황이고요. 그게 변수라면 변수겠죠.”

테라비스의 변수도 바로 그것이긴 했다. 엔젤로테 측의 단장. 샤를리안 르 엔젤로테 백작. 세상의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산 듯한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의 잘생기고 예의 바른 백금발의 미남자.

“흐음…….”

그를 생각하자 머리가 아파진 테라비스가 앓은 소리를 내자, 마틴이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의외였다. 자신이 아는 테라비스는 보통 이렇게 거래가 어려워지면 더 불타오르는 성미의 사람이었다. 자신이 안 될 거 같다고 말을 하면,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며,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며 의지를 불태우는 것이 붉은바람 상단의 단장이었다. 뭐, 그러다가 정말로 전부 불태우고 새하얗게 재가 되어 바람에 날려가는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렇게 끙끙거리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매우 의외였다.

“아무래도 저희보다 엔젤로테 상단 사정에 대해서 비에라 쪽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그쪽에서 우리보다 더 유리한 제안을 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약간의 불이익을 감수하는 형태로 최종 제안서를 조금 더 수정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겠지.”

“그리고 그전에 중간미팅이 한 번 더 있을 예정입니다. 그쪽에서 지금의 서류를 다 확인하고 나면 만나서 세부 내용을 다시 조정해보고, 최종 제안서를 작성하려고 합니다.”

“중간미팅은 언제인데?”

“3일 후입니다.”

“3일 후?”

“네. 왜요? 그날 다른 선약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선약이랄 것까지는 없고.”

다급히 고개를 내젓는 테라비스를 보며 마틴은 오늘 그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엔젤로테 사람들은 어디서 묵고 있지?”

“칸테야 호텔에서 묵고 있습니다. 첫날에 저희가 거기까지 호위해드렸습니다. 루젠타에서는 거기가 가장 좋은 호텔이기도 하고요.”

“칸테야 호텔이라…….”

거긴 예로니아 저택과 가까운 곳이었다. 아무 의미 없는 사실일 수도 있었지만, 테라비스는 그것이 못내 신경 쓰였다. 에델라의 근처에, 혹은 에델라와 연관된 곳 근처에 엔젤로테 백작이 있다는 사실이 영 꺼림직하고 싫었다. 교역이고 뭐고 안다비아로 그냥 꺼져버리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되는 것을 누구보다도 테라비스가 더 잘 알았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지.’

테라비스는 몇 번째인지 모를 다짐을 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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