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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혼자만의 수수께끼 (44/92)

44화. 혼자만의 수수께끼2021.10.01.

  집 안으로 들어온 에델라는 곧장 침실로 향했다. 문을 닫고, 혼자 침실을 몇 번 서성이던 에델라는 귀를 쫑긋 세웠다.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 옷을 갈아입고 있었어야 했는데!”

그제야 에델라는 자신이 아직 옷을 갈아입지도 않았고, 씻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 테라비스가 돌아올지 몰라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돌아오면, 함께 저녁을 먹고 예로니아 저택에 많은 물품을 보낸 것에 대하여 고맙다고 말하려 했었다. 더불어서 부모님이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 저녁 식사 초대를 하셨는데, 언제 시간이 괜찮냐고도 물어보려 했었다.

“식사하러 먼저 갔나?”

에델라는 다시 귀를 쫑긋 세워 바깥의 동정을 살피려 했다. 조금 전에 분명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면 씻으러 갔을까?”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는 에델라였지만, 확실한 것은 테라비스가 곧장 침실로 올 것 같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문 앞에서 서성대던 에델라는 자신이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곤, 가까운 침대에 일단 앉았다. 엉덩이가 푹신한 곳에 닿자 조금 진정이 되는 느낌이었다.

“침착해, 에델라.”

에델라는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곤, 머릿속으로 그가 침실로 들어오면 무슨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지 고민했다. 샤를리안의 이야기를 미리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를 먼저 해야 할지, 아니면 예로니아 저택에 여러 가지 물품을 보내준 것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아니면,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의 대화를 먼저 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아직 테라비스의 화가 풀리지 않았다면, 그런 잡담들로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

“어렵네.”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던 에델라는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어젯밤 테라비스가 신경 쓰여 잠을 잘 이루지 못한 탓일 수도 있었고, 생각을 너무 많이 한 탓일 수도 있었다. * * * 에델라가 침실에서 서성이고 있던 시간에 테라비스는 식당에 있었다. 그 역시 아직 저녁 식사 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 늦게 올 생각은 없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 늦게 올 만큼 일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안다비아 거래 건은 번역을 제외하고는 엔젤로테 상단의 사람들이 루젠타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완벽하게 준비를 끝낸 상태였고, 그 외의 일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업무였기 때문에 테라비스가 그렇게 신경 쓸 일은 없었다. 테라비스가 집에 늦게 들어온 이유는 에델라였다. 그녀와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정확하게는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샌드위치?”

배고픈 테라비스가 식탁 위에 놓인 덮개를 열자 그곳에는 샌드위치가 있었다.

“녹스 할멈이 만들어 둔 것인가 보군.”

저녁 식사가 아직이라는 테라비스에게 자신은 차를 끓여 갈 테니, 먼저 식당에 가 있으라고 한 녹스 할멈이었다. 배가 무척 고팠던 테라비스는 차를 기다릴 새도 없이 샌드위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덥석 한입 깨물었다. 부드러운 감자샐러드가 든 샌드위치는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스르륵 넘어가 버렸다.

‘맛있는데?’

감자 말고는 별로 든 것도 없는 것 같았는데, 샌드위치는 희한하게 맛있었다. 테라비스가 생감자라도 먹어 치울 만큼 배가 고파서만은 아니었다. 포슬포슬하게 잘 삶긴 감자와 적당한 간, 그리고 뭐가 더 들어갔는지도 몰라도 부드럽고 고소한 것이 담백하면서도 물리지 않는 맛이었다. 딱 세 입 만에 삼각형의 샌드위치는 테라비스의 뱃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두 번째 샌드위치도 그렇게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녹스가 차를 들고 식당으로 들어왔을 때는, 이미 테라비스가 마지막 샌드위치를 입속으로 집어넣은 뒤였다.

“아이고, 제가 너무 늦게 왔나요?”

“아니, 내가 너무 빨리 먹은 걸 거야. 순식간에 먹었거든.”

“그럼 차는 그냥 물릴까요?”

“아니. 줘.”

오히려 배가 어느 정도 차자, 느긋하게 차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녹스가 빨리 왔다고 해도 아마 샌드위치를 먹느라 차를 마실 수 없었던 것은 똑같았으리라.

“역시 솜씨가 좋아, 녹스 할멈. 맛있더라고.”

테라비스는 싱긋 웃으면서 녹스의 솜씨를 칭찬했다.

“부드러워서 야식으로 먹기에 딱 좋군. 다음에도 부탁해.”

“제가 만든 게 아닌데요.”

“아, 그래? 그럼 주방장이 만든 건가?”

그렇게 말하면서도 테라비스는 의아했다. 이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테라비스가 높은 몸값을 주고 고용한 그는 값비싼 식자재와 그에 걸맞은 화려한 요리가 특기였다. 흔한 감자로 만든 소박한 샌드위치가 아니라. 그래서 당연히 녹스가 만든 것이리라고 짐작한 것이기도 했다.

“아뇨.”

“그럼 누가 만든 거지?”

“에델라 아가씨께서요.”

“에델라가?”

의외의 답에 테라비스는 눈을 깜박였다. 귀족 영애가 요리도 하던가? 물론 보통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로니아 백작 가가 보통의 가문은 아니었지 않은가? 요리사를 쓸 형편이 안되니, 요리는 당연히 예로니아 백작 부인이나 에델라가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형편을 잘 아는 테라비스는 쉽게 그 결론에 다다랐다.

“에델라가 왜?”

다만, 이제는 그리 가난하지도, 요리사가 없는 집에 살지도 않으면서 왜 에델라가 손수 샌드위치를 만든 것인지에 대한 결론은 바로 내리지 못했다.

“에그! 먹을 건 그렇게 순식간에 먹어 치우신 분이 왜 만들었냐고 역정을 내시면 어쩐대요?”

“역정을 낸 것이 아니라, 왜 에델라가 샌드위치를 만든 건지를 물어본 거지.”

“당연히 바넬레오 님 드시라고 만들었죠.”

“나 먹으라고?”

“네. 연락도 없이 늦으셨잖아요. 준비한 저녁 식사는 싸늘히 식었지, 시간이 늦어 고용인들은 다 퇴근을 해버렸지, 식사하셨는지 어쨌는지는 알 길이 없지. 거기다 언제 들어오실 건지는 더 알 길이 없고 말이죠.”

“…….”

“그래서 발만 동동 구르다가…….”

“에델라가 발을 동동 굴렀다고?”

“진짜로 발을 구르신 건 아니지만, 마음만은 그러셨겠죠. 식사도 하지 않고 기다리셨는걸요.”

“식사도 안 했다고?”

녹스가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테라비스는 그녀의 말꼬리를 잡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목이 앞으로 점점 기울여져, 흡사 거북이가 인류의 조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까지 목을 쭉 빼게 되었다.

“아니, 왜 밥을 안 먹어!”

그러다 버럭, 거북이가 제 목을 거둬들이며 화를 냈다. 일을 하다 보면 사람이 늦을 수도 있는데, 기다리긴 왜 기다린단 말인가? 아니, 기다릴 거면 밥이라도 먹고 기다리든가 하면 될 일을! 왜 저녁까지 굶으면서 기다린단 말인가? 연락도 없이 늦은 것은 자신이면서 테라비스는 그건 생각도 안 하고 에델라가 밥도 안 먹었다는 사실만으로 인상을 팍 찌푸렸다.

“에델라는 어딨지?”

“시간이 늦었으니 침실에 계시겠죠?”

에델라가 침실에 있다는 사실을 식당에 오기 전에 확인해서 이미 알고 있으면서 녹스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알았어.”

테라비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차는 안 드세요?”

“난 됐어. 할멈 마셔.”

녹스의 질문에 테라비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을 하곤, 식당을 나가버렸다. 녹스는 사양하지 않고 테라비스가 앉았던 자리에 궁둥이를 붙였다. 돈 많은 테라비스가 즐겨 마시는 차이니만큼, 비싸고 귀한 차였다. 찻잔 역시 녹스의 한 달 치 월급과 맞먹을 만큼 비싼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이 한 김 식어서 마시기에 딱 좋은 온도였다.

“바넬레오 님을 기다렸다고는 말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샌드위치를 만든 게 자신이라고 말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잖아요, 에델라 아가씨?”

빙긋이 웃으며 차를 마시는 녹스의 모습은, 꼭 가난하지만 예쁘고 마음씨 착한 아가씨를 도와주는 착한 요정 같았다. 그녀는 누더기를 드레스로 만들고, 호박을 마차로 만들고, 생쥐를 마부로 만들 재주는 없었지만, 할멈만의 작은 센스와 요령은 있었다. 예를 들면……. * * *

“이런…….”

테라비스는 침실의 문을 열고 본 광경에 낭패감을 느꼈다. 식당에서 침실까지 짧은 거리를 걸어오면서 복잡하게 머릿속을 맴돌고 있던 말들이 그것을 보자 순식간에 쏙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에델라에게 물어보려고 했던 말들도, 어제는 자신이 너무 심하게 몰아붙였다고 사과하려는 것도, 전부 사라져버렸다. 침대에 누워 잠이 든 에델라를 보고서는.

“에델라?”

혹시나 해 테라비스는 작은 목소리로 에델라의 이름을 불렀다. 만약 그냥 눈만 감은 거라면 들을 수 있겠지만, 진짜로 잠이 든 것이라면 계속 잘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였다.

“…….”

그리고 에델라는 대답이 없었다. 테라비스는 조금 주저하다가 에델라의 곁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그러자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잠이 든 에델라의 모습이 더 잘 보였다. 저녁을 굶었다더니, 어쩐지 평소보다 더 말라보이고 얼굴이 핼쑥한 것같이 보였다.

‘지금도 비쩍 말랐는데, 저녁을 굶긴 왜 굶어?’

그 생각을 하자 또 울컥 화가 솟구쳤다. 제 손가락 세 개쯤밖에 되지 않을 손목은 물론이고, 두 손으로 잡으면 다 잡힐 것만 같은 얇은 허리를 보자 더 그랬다. 한 걸음 더 다가서자 에델라의 금빛 머리카락이 흰 얼굴의 일부를 가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가려놓은 것 같은 그 모습을 보자 테라비스는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건 마치 본능과 같은 것이었다. 잠이 든 사람은 답답한 것을 모를 테지만,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는 것을 보면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서 그것을 걷어내 주고 싶은.

‘밥도 못 먹었으면서, 예쁘긴 또 왜 이렇게 예뻐?’

머리카락을 걷어내어 에델라의 얼굴이 완연히 드러나자, 테라비스는 또 벌컥 화가 치솟았다.

‘손은 또 왜 이렇게 가녀리고 예쁘고?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칼은 왜 쥐어?’

누가 올려놓은 것처럼, 얌전히 배 위에 올려진 에델라의 손을 보며 테라비스는 또 괜한 역정을 냈다. 그러다 문득, 테라비스의 눈에 들어온 것인 에델라의 손에 남겨진 상처였다. 마침 그 손이 위에 놓여 있었고, 또 마침 상처가 잘 보이게 살짝 기울어져 있기도 했다. 고운 손에 생겨난 상처는 이제 딱지가 생겨 있었다. 어쩌면 에델라의 손에 흉터가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괜히 울컥 화가 났다.

“하아…….”

테라비스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에델라가 깰까 봐 저도 모르게 작게 쉰 한숨이었지만, 그의 뱃속 깊은 곳에서 나온 무거운 한숨이기도 했다.

“이상해.”

테라비스는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왜 자꾸 화가 날까?”

이제는 얼굴을 가리는 머리카락도 없는데, 테라비스는 에델라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왜 가끔 나도 모를 행동을 할까?”

닿지는 않았다. 마치 에델라가 깰까 두려운 사람처럼 테라비스의 손은 그녀에게 닿지 못한 채, 에델라의 눈가와 뺨, 그리고 턱선을 허공에서 덧그렸다.

“내가 당신에게 정말 원하는 건 뭘까?”

수수께끼였다. 오직 테라비스가 혼자서 풀어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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