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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친애하는 과거에게 (25/92)

25화. 친애하는 과거에게2021.07.26.

  엔젤로테 백작 부인은 문을 열려고 손잡이에 손을 대었다가 그대로 멈췄다. 대신 그녀는 그 손으로 방에 노크했다.

“네.”

안에서 들린 목소리는 그녀의 아들, 샤를리안이었다, 이제 아들이 제법 컸으니, 샤를리안이 어린아이일 때처럼 벌컥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존중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노크한 것이었다.

“샤를.”

“아! 어머니.”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던 샤를리안은 자신의 방에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방긋 웃었다.

“네 앞으로 온 편지가 있다.”

“혹시?”

“그래. 루젠타에서 온 편지란다.”

샤를리안은 스프링처럼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 앞에 있던 엔젤로테 백작 부인의 앞으로 달려왔다.

“자, 여기.”

엔젤로테 백작 부인은 아들을 존중해주기로 만든 그 편지를 샤를리안에게 건네주었다. 먼 페이넬 제국에서 온 편지였고, 삐뚤빼뚤한 안다비아어가 적힌 편지이기도 했다. 나이로 치자면 아직 어린 아들이었지만, 연서를 주고받은 정도면 마땅히 사생활을 보호받아야 했다.

“에델라가 쓴 편지예요!”

샤를리안은 기쁜 목소리로 소리쳤다. 조심스럽게 편지를 뜯는 아들을 보며 엔젤로테 백작 부인은 싱긋 웃었다.

‘저렇게 좋을까?’

아장아장 걸음마를 뗀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여자친구를 만들 나이가 되었다니! 쑥쑥 크는 아이들을 보며 엔젤로테 백작 부인은 정말 세월이 빠른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와! 지난번보다 편지가 훨씬 길어요!”

봉투를 뜯고, 편지지를 확인한 샤를리안이 소리쳤다.

“그렇구나. 지난번에 네가 안다비아어 사전을 보내줘서, 그걸로 아주 열심히 공부한 모양이야.”

그녀가 편지를 슬쩍 훑어보자, 글자는 삐뚤빼뚤했고 틀린 글자가 가득했다. 그래도 샤를리안은 마냥 기쁘기만 한 모양이었다.

“나는 나가볼 테니, 편지를 읽으려무나.”

엔젤로테 백작 부인이 그렇게 말할 필요도 없었다. 샤를리안은 이미 에델라의 편지를 읽고 있었다. 자리에 앉을 시간도 없는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얼굴 가득 미소를 띤 채. 친애하는 샤를에게. 안녕, 샤를? 오늘은 날씨가 좋았어. 그래서 엄마랑 아빠랑 정환에서 티타임을 소유했어. 엄마와 아빠는 커피를 마시고, 나는 레몬에이드를 마시었어. 커피는 아주 써. 너무 맛가 없어. 그런데 엄마랑 아빠는 맛있다고 했어. 나는 이해를 하지 못핬어. 그리고 정환에는 장미가 피었어. 장미는 예뻐. 예전에 샤를가 만들어준 화관이 생각났어. 화관은 염소가 먹어버렸어. 그래서 없어. 하지만 반지는 있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에 있어. 납작해졌지만, 여전히 예뻐다. 샤를이 또 반지를 만들어주면 좋겠어. 나는 욕심쟁이다. 샤를이 만든 반지 열 개가 원해. 언제 또 에델라를 보러 올 거야? 빨리 오면 조겠어. 보고 싶어, 샤를. PS. 나의 안다비아어가 서툴러서 미안해. 하지만 나 공부하고 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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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운 에델라에게. 나에게는 한가지 비밀이 있어, 에델라. 오늘은 용기를 내어 그 비밀을 너에게 털어놓을까 해. 사실은 에델라……. 나는 매일 네 꿈을 꿔. 매일 밤 네가 나오는 꿈을 꾸고 있어. 어제도, 그제도. 그리고 아마도 내일도. 나는 그만큼 네가 보고 싶어, 에델라. 오늘 아버지 상단에 갔는데, 루젠타로 가는 배에 몰래 탈까도 진심으로 생각했어. 원두가 가득한 상자에 몰래 숨으면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해, 에델라? PS. 아니. 생각하지 마, 에델라. 내 바보 같은 생각은 그냥 잊어줘.  

“푸훗!”

추신 부분은 보며 에델라는 참았던 웃음이 결국 터지고 말았다. 샤를이 진지하게 이 편지를 썼을 것을 생각하니, 더 우스웠다.

“샤를, 네가 원두에 숨을 수는 없어. 아마 숨이 막혀서 죽고 말걸?”

옆에 있지도 않은 샤를에게 대답해주며 에델라는 다시 편지의 맨 위로 눈을 향했다. 처음에는 반가운 마음에 급하게, 두 번째는 천천히 꼼꼼하게. 샤를리안이 에델라를 위해서 페이넬 제국어로 쓴 편지를 읽는, 에델라만의 방식이었다. 물론, 결국에는 열 번이 넘게 읽어볼 편지였지만, 어쨌든 받은 즉시는 항상 그렇게 읽었다. 아직 서툰 에델라의 안다비아어 편지와는 다르게 샤를리안의 편지는 제법 유려했다. 은유나 비유를 쓸 줄도 알았고, 재미있게 작성할 줄도 알았다. 에델라도 얼른 안다비아어를 그렇게 쓰고 싶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편지에 쓰고 싶었다. 그래서 에델라는 예로니아 백작 부인에게 다른 공부도 안다비아어 공부만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안다비아어 공부에 열심이었다.

“어디, 다음 장도!”

한 번 더 꼼꼼하게 편지를 다 읽은 에델라는 다음 장을 넘겼다. 다음 편지는 다른 날 쓴 편지 같았다. 안다비아에서 루젠타로 오가는 배편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없었다. 루젠타가 페이넬 제국의 작은 항구도시였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그 배편도 엔젤로테 상단이 루젠타와 교역을 하고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엔젤로테 가문은 현재 비에라 가문과 거래를 하고 있었는데, 먼 거리를 오가는 것에 비해서 큰 이문이 남지 않았다. 비에라 상단이 독점을 무기 삼아 점점 과한 요구를 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엔젤로테 가문의 가주이자, 엔젤로테 상단의 단장인 백작은 새로운 거래처를 확보하려는 중이었고, 예로니아 가문을 그 후보에 올려놓은 상태였다. 예로니아 가문은 상단을 운영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루젠타에서 명망 있는 가문이었고, 영지에서 나오는 수확물을 판매하기 위한 도매상들과의 거래는 꾸준하게 하고 있었다. 엔젤로테 백작은 루젠타에서의 주거래품목이 원두이니, 농산물 도매 루트로 원두의 판매가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예로니아 백작을 설득 중이었다. 그런 이유로 두 가문이 지난번에 만남을 가진 것이었고, 에델라와 샤를리안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나만 더 보고 싶다…….”

두 번째 편지도 재빨리 읽어버린 에델라는 아직 더 남은 편지지를 만지작거렸다. 한 달에 한 번 밖에 배가 오가지 않으니, 처음에는 편지를 보내고 한참을 기다려 답장을 받는 수밖에 없었다. 매일 매일 기다린 것에 대한 보상이 너무도 적자, 샤를리안과 에델라는 꾀를 내었다. 매일 매일 편지를 쓰고, 또 매일 매일 답장을 써서, 한꺼번에 편지를 부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한 번에 많은 편지를 받게 되었지만, 에델라는 조금씩 아껴가며 샤를리안의 편지를 읽었다. 편지를 받은 첫날은 오래 기다렸으니 두 장을, 그다음 날부터는 딱 하나씩 아껴서 읽었다. 하지만 언제나 ‘딱 하나만 더 읽을까?’ 하는 유혹에 시달리는 에델라였다.

“으으……! 못 참겠다. 딱 하나만 더 읽어야지.”

달콤한 케이크의 유혹도, 어서 자신을 사 가달라고 말하는 귀여운 인형의 유혹도 잘 물리치는 어린 에델라였지만, 번번이 샤를리안의 편지 유혹에는 지고 말았다.

“어?”

몇 줄을 읽어내려가던 에델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내용이 믿기지 않아서 에델라는 그 부분을 몇 번이나 읽었다. 하지만 자신이 옳게 읽은 것이 맞았다.

“엄마!!”

에델라는 편지를 한 손에 쥔 채, 문을 박차고 나와서 복도를 내달렸다.

“어머나, 에델라 아가……”

“안녕, 티티! 그런데 내가 지금 좀 바빠서!”

티티는 복도에서 뛰면 마님이 혼내실 거라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이미 에델라는 달려가 버린 뒤였다.

“어머, 아가…….”

“안녕, 캐시! 나 지금 바빠!”

창문을 닦고 있던 캐시도 마찬가지였다.

“에델…….”

“꺅! 녹스 할멈! 나 바빠!!”

녹스 할멈까지 따돌린 에델라가 서재에 당도했을 때는 숨이 턱까지 차 있었다. 제 방에서 여기까지 단숨에 달려왔으니, 작은 폐가 힘들 만도 했다.

“엄마! 아빠!”

서재의 문을 활짝 열자, 예로니아 백작과 예로니아 백작 부인이 보였다. 우체부가 다녀간 다음에는 항상 두 분 모두 서재에서 자신의 앞으로 온 서신들을 확인한다는 것을 에델라는 알고 있었다.

“샤를이! 샤를이 온대요!”

숨을 헉헉거리면서도 에델라는 자신이 여기까지 달려온 용건을 말했다.

“그래. 우리도 방금 알았단다.”

방긋 웃으며 예로니아 백작 부인이 말했다. 그녀와 남편의 앞에 온 편지에는 방문 외의 다른 내용도 적혀 있었다.

“에델라, 내일은 상점가에 갈 거란다.”

“상점가에요? 뭘 사러 가나요?”

“네 드레스.”

“와! 신난다!”

예쁜 옷을 산다는 생각에 에델라는 기뻐했다.

“샤를이 올 때, 새 드레스를 입어도 되나요?”

“물론이지. 그러려고 드레스를 사러 가는 건데. 아주 예쁜 드레스를 골라보자꾸나.”

“와아!”

“그리고, 반지도 맞출 거야.”

“반지요?”

반지라는 말에 에델라는 눈을 깜박였다. 아직 보석을 선물로 받은 적은 없었다. 엄마의 예쁜 귀걸이나, 반지가 반짝반짝해서 탐이 났지만, 아직 어린 에델라에게 보석은 너무 과하다며 아직 한 번도 선물 받은 적이 없었다. 아주 어렸을 때, 에델라의 이름이 새겨진 목걸이가 다였다.

“저는 아직 어려서 반지는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이제 그렇게 어리지는 않거든. 그렇죠, 여보?”

예로니아 백작 부인은 남편을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래요. 우리 에델라가 벌써 약혼할 만큼 컸지요.”

“약혼이요?”

에델라는 처음 듣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약혼이 뭐예요, 아빠?”

뭐든지 다 아는, 에델라가 아는 한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아빠에게 물었다.

“결혼의 전 단계 같은 거지. 반지를 나눠 끼고, 나중에 결혼하겠습니다~ 하고 약속을 하는 거야.”

결혼은 뭔지 알았다. 예전에 샤를리안이 알려준 것이었다.

“그럼…….”

“그래, 에델라. 샤를리안과 네가 약혼하게 될 거야.”

에델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랑 샤를이랑 결혼하기로 한 것을 엄마 아빠가 어떻게 알았지?

“왜? 싫으니, 에델라?”

에델라가 놀란 표정으로 있자, 예로니아 백작 부인이 얼른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분명 좋아할 줄 알았다. 두 아이는 더없이 다정해 보였으니까.

“아뇨. 좋아요!”

그저 부모님이 어떻게 알았는지 때문에 놀랐을 뿐인, 에델라는 얼른 대답했다. 좋았다. 당연히 좋았다. 다정하고 멋진 샤를과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결혼을 에델라가 싫어할 리 없었다. * * * 약혼식은 성대했다. 루젠타에 사는 모든 귀족은 물론이고, 권위 있는 젠트리 계층까지 어린 에델라와 샤를리안의 약혼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예로니아 저택에 모였다. 먼 거리이니만큼, 엔젤로테 가문 측의 손님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약혼식은 루젠타의 예로니아 저택에서, 결혼식은 안다비아의 엔젤로테 저택에서 거행하기로 이미 합의를 본 상태여서 상관없었다. 몇몇 사람들은 너무 어린아이들이 정략 약혼을 하는 것 아니냐고 수군거렸지만, 정작 약혼식에서 서로 눈만 마주쳐도 까르르 웃는 에델라와 샤를리안을 보고는 그 말은 쑥 들어갔다. 특히나 샤를리안이 데이지꽃 모양의 약혼반지를 에델라에게 끼워주고, 에델라가 활짝 웃으며 반지를 쳐다보는 것을 본 하객들은 전부 숨을 멈췄다가 몰아 내쉬어야만 했다. 여덟 살과 아홉 살, 꼬마 피앙세들의 너무도 귀여운 모습 때문이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어린 커플의 앞날을 축복했다. 지금처럼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행복하기를. 하지만 잔혹한 신은 모두의 바람을 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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