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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나의 신부님 (24/92)

24화. 나의 신부님2021.07.23.

  에델라와 샤를리안은 금방 친해졌다. 원래 천진한 어린아이들은 쉽게 마음의 문을 열어서 빨리 친해진다지만, 샤를리안이 어린 에델라를 귀여워하고 잘 놀아줘서라는 이유가 더 컸다. 에델라에게 생전 처음 보는 안다비아의 장난감을 선물해주고, 상냥하게 배려해주고, 눈이 마주치면 환한 미소를 보여주는 샤를리안을 에델라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번의 만남 후에는, 예로니아 백작 부인에게 에델라가 스스로 내일 또 샤를리안과 놀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건 샤를리안도 마찬가지였다.

“와아!”

예로니아 저택의 정원에 앉은 에델라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예쁘다!”

“선물이야.”

“정말? 나 줄 거야, 샤를?”

에델라는 샤를리안의 애칭을 부르며 거듭 그에게 확인했다.

“그럼~. 너 주려고 만든 건데.”

샤를리안은 에델라가 예쁘다고 했던 그 화관을 그녀의 머리 위에 살포시 얹어 주었다. 아주 잘 어울렸다. 당연했다. 처음부터 에델라에게 씌워주려고 만들었던 것이니까. 샤를리안이 만든 화관은 에델라의 뽀얀 피부를 닮은 하얀 꽃과 어여쁜 눈을 닮은 파란 꽃과 햇살같이 반짝이는 금발을 닮은 노란 꽃을 골라서 만든 것이었다. 머리 위를 제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했지만, 어린 에델라는 그걸 아직 몰랐다. 한껏 눈을 위로 치켜떠, 화관을 쓴 제 모습을 보려고 애를 쓰는 에델라를 보며 샤를리안은 작게 웃었다.

“예뻐.”

에델라의 눈을 대신해 샤를리안이 대신 말해주었다.

“예뻐?”

“응. 아주 예뻐.”

그 말에 에델라는 비로소 눈을 바로 뜨며, 환하게 웃었다. 샤를리안이 예쁘다고 하면 된 것이었다. 그는 아주 착하고, 점잖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샤를은 굉장해. 아는 것도 엄청 많고, 할 줄 아는 것도 엄청 많잖아.”

에델라는 어느 때보다도 또박또박 발음하며 샤를리안을 칭찬했다. 그를 만날 때만 생기는 에델라의 습관 아닌 습관이었다. 페이넬 제국어를 배우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서툰 샤를리안을 위해서였다. 에델라는 자신보다 훨씬 키가 큰 샤를리안이 자기보다 한 살밖에 많지 않다고 했을 때 한번 놀랐고, 그가 외국인이라고 말을 했을 때 또 한 번 놀랐었다. 조금 억양이 독특하긴 했지만, 샤를리안이 하는 말을 에델라는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고, 에델라가 하는 말 역시 샤를리안이 전부 알아듣고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동생에게 만들어줬었거든.”

“동생? 동생이 있어?”

“응.”

“남자? 여자?”

“여자애.”

“그렇구나.”

에델라는 볼이 통통한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동생은 지금 어디에 있어?”

“안다비아에. 우리 집에.”

“왜 같이 안 왔어?”

“동생은 너무 어려서 배를 탈 수가 없어. 안다비아에서 여기에 오려면 배를 타고 와야 하거든.”

“안다비아는 엄청 멀다고 했지?”

“응. 멀어.”

“그렇구나.”

에델라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다르게 이내 시무룩한 얼굴로 땅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다.

“왜?”

샤를리안은 그런 에델라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기울여 고개 숙인 에델라와 눈을 맞추려고 했다.

“샤를의 동생이 안다비아에서 샤를을 기다리겠지?”

“아마도 그럴 거야.”

“그럼, 샤를은 안다비아로 돌아가는 거야? 동생이 기다리는 곳으로?”

에델라는 또박또박 말하고 싶었다. 샤를리안이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게. 하지만 그게 잘되지 않았다. 샤를리안이 안다비아로 다시 돌아가 버린다고 생각하자, 눈물이 날 것 같았고, 그래서 목소리는 어느새 울먹거리고 있었다. 다정하고 상냥한 샤를이 사라지는 것은 싫었다. 매일매일 에델라랑 놀아주고, 에델라를 귀여워해 주고, 에델라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었으면 했다.

“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거의 바닥에 납작 엎드린 샤를리안이 에델라에게 물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에델라의 눈을 쳐다볼 수가 없어서였다. 에델라가 샤를리안을 좋아했듯, 샤를리안 역시 에델라를 좋아했다. 귀엽고 예쁜 에델라. 샤를리안이 무엇을 하든 멋지다고 해주고, 눈이 마주치면 방싯 예쁜 미소를 짓는 에델라.

“응!”

조그만 입술을 야무지게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는 에델라가 너무 귀여워서 샤를리안은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나랑 헤어지기 싫은 거야?”

“응!”

“그럼 방법이 하나 있어.”

“뭔데?”

고개를 번쩍 뜬 에델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샤를리안에게 물었다. 그런 모습도 너무 귀여워 샤를리안은 끝내 배시시 웃고 말았다. 작고, 귀여운 나의 에델라.

“나랑 결혼하는 거야.”

샤를리안의 말에 에델라는 아무 말 없이 눈만 깜박였다. 너무 급작스러웠던 걸까? 그게 아니면, 너무 이른 고백이었을까? 샤를리안이 아무 말이 없는 에델라 때문에 조금 초조해지려고 할 때였다.

“결혼이 뭔데?”

에델라의 질문에 샤를리안은 긴장이 탁 풀렸다. 엔젤로테 가문의 장남이자 미래의 가주가 될 샤를리안은 또래에 비해 조숙한 편이었다. 그에 비해 예로니아 백작 가문의 외동딸로, 그야말로 백작 내외가 애지중지하며 사랑을 듬뿍 주고 키운 에델라는 늦된 편이었다.

“결혼은 말이야, 남편이랑 아내랑 평생 행복하게 사는 거야.”

샤를리안은 에델라를 위해서 조곤조곤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에델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설명을 들었다.

“음……. 엄마랑 아빠처럼?”

“응. 맞아.”

그런 방면으로 늦되었을 뿐이지, 똑똑한 에델라는 금세 샤를리안의 설명을 알아들었다. 응용해서 예까지 들 만큼.

“나랑 결혼할래, 에델라?”

샤를리안의 질문에 에델라는 잠시 망설였다. 샤를리안과 평생 행복하게 사는 것은 좋았다. 그럼 엄마, 아빠랑은 같이 못사는 걸까? 또 샤를의 엄마와 아빠는 어디서 살지? 아직 해결하지 못한 질문이 에델라의 머릿속에 빙글빙글 떠돌았다.

“에델라?”

간절한 눈빛으로 샤를리안이 에델라를 바라보았다. ‘제발’이라고 샤를리안의 얼굴이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다정하고 상냥한 샤를리안. 그와 매일 매일 재밌게 놀면, 정말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에델라의 머릿속에 있던 물음표들이 스르륵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에델라의 머릿속에 남은 건은,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샤를리안이었다.

“응. 좋아.”

에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샤를리안의 표정이 금세 환해졌다.

“응!”

에델라가 고개를 한 번 더 끄덕이자, 이번에는 아주 환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내가 반지를 끼워줄게.”

“반지?”

“응. 약속의 반지.”

샤를리안은 싱글벙글 웃으며 금세 꽃반지를 뚝딱 만들었다.

“손 이리 줘.”

에델라가 작고 통통한 손을 샤를리안의 앞에 내밀자, 그는 자신이 만든 꽃반지를 에델라의 약지에 끼워주었다.

“예쁘다!”

에델라는 자신의 손에 끼워진 꽃반지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에델라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의 샤를리안만큼이나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런 에델라를 보며 샤를리안도 환하게 웃었다, 햇살같이 다정하고, 환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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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짭조름한 냄새가 사방에 가득했다. 그것이 바다의 냄새인지, 눈물의 냄새인지, 에델라는 알 수 없었다. 어린 에델라가 알고 있는 건, 오늘 샤를리안이 떠난다는 것이었다.

“울지 마, 나의 꼬마 숙녀님.”

루젠타에 2주간 머문 샤를리안의 제국어는 이전보다 훨씬 나아져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어휘력이 큰 발전을 이룬 것은 아니었으나, 발음이나 억양이 훨씬 자연스러워져 있었다. 2주간 거의 매일 에델라와 이야기하고 함께 시간을 보낸 덕분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샤를이 가잖아.”

비쭉이는 입술로 에델라는 말했다. 샤를리안이 알아듣기 어려울까 봐 또박또박 말하고 싶었는데, 발음 가득히 눈물이 달라붙는 바람에 잘되지 않았다.

“또 올게.”

“언제?”

에델라의 물음에 샤를리안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안다비아로 돌아가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대답이 없자, 에델라의 입술이 또 봄의 새순처럼 삐죽삐죽 솟아올랐다. 금방이라도 와앙~ 하고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에델라를 보자 샤를리안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울지 않으려고 했다. 에델라를 두고 가는 것이 자신도 마음이 아프고, 한 시간도 안 돼서 에델라가 보고 싶을 것 같아도, 샤를리안은 울지 않으려고 했었다. 자신은 남자고, 에델라보다 나이도 많고, 또 에델라를 지켜줘야 하는 남편이니까. 하지만 울고 있는 에델라를 보자 어쩔 수 없이 샤를리안의 눈에도 눈물이 점점 맺히고 있었다. 아무리 조숙하고, 아무리 어른스럽다 한들, 그도 고작 여덟 살의 어린애일 뿐이었다.

“편지할게!”

샤를리안은 눈물보다 먼저 그 말을 터트렸다.

“편지?”

다행히 그 말에 에델라가 반응했다. 비쭉거리던 입술이 오물거리며 되물었다.

“응. 전에 내가 너에게 편지를 보냈었잖아.”

샤를리안의 말에 에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고 있었다. 에델라보다 서툰 글자에 단순한 단어들로 된 샤를리안의 첫 편지. 샤를리안이 자신보다 어린 동생일 것이라고 오해하게 만든, 먼 나라에서 동생이 놀러 오면 잘해줘야지 하고 에델라를 설레게 했던, 그 편지를 에델라는 기억하고 있었다.

“안다비아는 너무 멀어서 내가 금방 올 수는 없겠지만, 대신 편지를 할게.”

“정말?”

“응.”

“매일, 에델라에게 편지를 써줄 거야?”

“매일 쓸게. 너도 써줄 거지?”

“나도?”

“응. 편지를 보내면 답장을 써야지.”

그러고 보니, 에델라는 샤를리안에게 답장을 쓰지 않았었다. 그가 며칠 뒤에 바로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응. 나도 편지를 쓸게.”

에델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얼마나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던지, 그녀의 눈에 맺혀 있던 눈물이 한꺼번에 후두둑 떨어져 버릴 정도였다.

“나, 나도 샤를네 나라의 말을 배워서, 샤를에게 편지를 쓸래.”

“정말?”

“응! 왜냐하면, 안다비아에 내 편지가 도착했는데, 아무도 제국어를 몰라서 샤를에게 전해주지 못하면 어떻게 해.”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상대적으로 페이넬 제국보다 약소국인 안다비아에는 제국어를 하는 사람이 아주 많았으니까. 하지만 어린아이인 에델라의 생각에는 자신이 쓴 편지가 샤를에게 무사히 도착하지 못 할까 봐 더럭 겁이 나서 한 말이었다.

“네가 안다비아어로 편지를 써준다면 나는 아주 기쁠 거야.”

샤를리안은 에델라의 말에 진심으로 기뻤다.

“꼭 다시 올게. 나를 기다려 줘, 에델라.”

샤를리안의 말에 다시 이별을 실감한 에델라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에델라.”

샤를리안의 손이 에델라의 눈물을 훔쳐냈다. 그러면서 샤를리안은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지고, 에델라의 곁을 떠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어여쁜 나의 신부님. 너를 데리러 꼭 다시 올게.”

마지막 말은 안다비아어였다. 그 뜻을 에델라가 온전히 알게 된 것은, 좀 더 나중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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