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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돈 터치, 노 터치 (17/92)

17화. 돈 터치, 노 터치2021.06.28.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화를 내는 마틴을 보며 로즈는 당연하게도 당황했다. 마틴을 몇 번 보지는 않았지만, 그간 마틴에 대한 로즈의 인상은 그리 나쁘지 않았었다. ‘뭐가 저렇게 매사에 심각할까?’라는 의문은 있을지언정, 이상하다거나 성격이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계약할 때, 그저 금액만 맞으면 됐다는 자신에게 계약서를 꼼꼼하게 보라며, 자신들은 그러지 않지만 대충 액수만 보고 계약을 했다가는 독소 조항 때문에 큰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조언을 해주는 것을 보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아, 그, 그게…….”

어찌나 당황했던지, 천하의 쌍검 로즈가 말을 더듬었다.

“…….”

그리고 그런 로즈를 보며, 마틴 역시 당황했다. 결벽증을 가지고 있는 마틴이었지만, 동시에 사회성이라는 것도 가지고 있는 마틴이었다. 아직 붉은바람 상단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데다가, 외근직이나 다름없는 로즈는 자신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러니 당연히 이런 실수를 할 수도 있었다. 아니, 사실 실수라고 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보통 사람에게는 살짝 닿는 것 정도는 그저 당연한 일상이었다. 화날 것도, 화낼 것도, 화풀이를 당할 일도 없는.

“에몬테 님께서 사무실에는 무슨 일이시죠?”

“아, 그냥 물 좀 마시려고 잠깐 들어왔다가, 그, 뭐냐, 손님, 아니, 사모님이 오셨다기에, 그냥, 뭐, 그, 저도 궁금해서요.”

로즈는 여전히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그렇군요.”

마틴은 제 눈에는 더러워 보이는 로즈의 손을 못 본 척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며, 억지로 입꼬리를 위로 끌어 올렸다.

“물은 저쪽에 있습니다. 컵은 그 옆에 있을 겁니다.”

또 변해버린 마틴의 태도에 로즈는 눈을 껌벅였다. 아까는 갑자기 화를 내더니, 이번에는 안 어울리게 친절하게 구는 마틴을 보며 이건 또 뭔가 싶었다.

“그럼, 저는 이만.”

로즈가 당황해서 눈만 껌벅거리는 사이, 마틴은 기름칠이 덜 된 삐꺽거리는 기계 같은 걸음으로 사무실을 나갔다.

“아니, 저, 으응?”

영문 모를 로즈가 뒤를 돌아 다른 사람들에게 자문하려 했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야기꽃을 피웠던 사람들은 책상에 코를 박고 조금도 고개를 들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어쩔 수 있나? 그녀가 직접 마틴을 쫓아가서 왜 그러는지 물어보는 수밖에는. * * * 마틴은 급한 손놀림으로 비누를 손에 비볐다. 하얀 거품을 보자 그나마 마음이 좀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한번 물을 헹구어 내자 뽀얀 비누 거품이 씻겨나가고, 매끈한 마틴의 손가락이 드러났다. 지금에야 물에 젖어서 그렇게 보일 뿐이고, 물기가 마르고 나면 너무 자주 씻어서 거칠어진 손이 고스란히 보일 테지만. 아직 젖은 손으로 마틴은 입고 있던 조끼를 벗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조끼를 접었다. 분명 로즈의 손이 닿았던 그 부분에는 제 손이 닿지 않도록 조심해서 접은 것이었는데도, 뭔가 찝찝했다.

“쳇!”

마틴을 혀를 차며, 다시 비누를 집어 들었다. 자신도 이런 자신이 싫었다. 귀찮고, 피곤했다. 놀란 눈의 로즈를 떠올리자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더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더러운 것 같았다. 이렇게 씻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이런 자신을 견디기 힘들었지만,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을 더욱 견딜 수 없었다.

“제길!”

마틴은 아까보다 더욱 거칠게 손을 비볐다. 보통 사람들과 비슷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자신이 싫었다.

“저기…….”

조심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마틴은 손을 멈췄다.

“부단장님?”

뒤를 돌자, 로즈가 서 있었다. 처음에는 그가 손 씻는 것을 마치면 왜 그랬는지 물어보려고 기다렸다. 하지만 마틴이 제 손이 닿았던 옷을 벗어버리고, 두 번이나 손을 박박 씻느라 나올 생각을 하지 않자 말을 건 것이었다. 로즈는 제가 본 것들과 지금 보고 있는 마틴의 살짝 당황한 표정을 고려해서 현재 상황을 추측해보려고 애썼다.

“혹시 제가 부단장님을 만져서, 지금 그러시고 계신 건가요?”

몸으로 먹고사는 용병들이 그리 똑똑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통 사람들의 추측과는 달리 그들은 눈치가 빨랐고, 상황판단은 더 빨랐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이 날아가는 세계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결벽증이세요?”

그리고 로즈 역시 그러했다.

“…….”

마틴은 말없이 눈앞의 로즈를 바라보았다. 아니, 노려보았다. 단박에 자신의 성향이 파악 당한 것이 그리 기분 좋지 않았다. 오늘처럼 스스로가 싫어진 날에는 더욱 그랬다.

“네! 저 결벽증입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마틴은 그런 마음을 담아서 버럭 소리쳤다. 틀림없이 인상을 찌푸리겠지. 자기가 뭐가 더러워서 닿았던 옷을 벗고, 그렇게 손을 씻어대냐고 말하겠지. 그리고 너는 뭐가 그렇게 잘났냐며 말하겠지. 이제껏 마틴이 당했던 일관적인 레퍼토리였다. 그래서 이번에 이직을 하면서는 아예 제가 먼저 사람들에게 선언한 것이었다. 숨기다가 들키는 것이 아니라, 제가 먼저 방어막을 친 것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로즈에게는 들켜버렸다. 게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에게 먼저 화를 낸 것은 자신이었다. 틀림없이 이전에 사람들이 그랬듯, 로즈도 자신에게 화를 낼 것이다.

“오~ 그렇구나.”

그래. 바로 저렇……게? 마틴은 뭔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로즈의 목소리에 살짝 당황했다.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로즈는 전혀 화가 난 것 같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앞으로는 주의할게요.”

그것도 웃으면서.

“주의……요?”

“네. 결벽증이라서 뭔가 닿으면 기분 나쁘신 거잖아요? 안 닿도록 주의할게요. 돈 터치, 노 터치.”

로즈는 활짝 웃으면서 제 손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듯,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그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저는 이제 엄청 비싼 포목을 운반하는 짐마차를 호위하러 가야 해서요. 그럼, 수고하세요!”

로즈는 다시 한번 활짝 웃는 미소를 보여주곤, 밖으로 나갔다.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마틴만 남겨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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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퇴근은 함께였다. 부담스러운 테라비스의 행동 탓에 남은 번역은 집에서 혼자 하겠다며 에델라는 서류를 챙겨 들고 마차에 올랐다.

“해가 점점 길어지네.”

아직 환한 마차의 바깥을 쳐다보며 테라비스가 말했다. 그의 말에 에델라도 바깥을 바라보자 아직 환한 거리가 보였다.

“그러네.”

테라비스의 말에 동의해주다, 창문 너머로 어제 옷을 샀던 그 가게가 보이자 에델라는 저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에델라의 몸에 맞춰 수선해 집으로 배송해준다는 옷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살짝, 설렜다. 새로 맞춘 드레스를 입는 것도, 무도회를 간다는 것도. 에델라에게는 모두 처음인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남자와 함께한다는 것도. 힐끗 고개를 들어 테라비스를 쳐다보다가, 그만 그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왜?”

“뭐가?”

“쳐다봤잖아?”

“아닌데?”

“눈 마주치지 않았어?”

“기분 탓이야.”

테라비스의 말에 에델라는 아니라고 말하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괜히 쑥스러운 느낌이었다.

“아!”

갑자기 마차가 어디 돌부리에라도 걸린 것인지 덜컹거렸다. 에델라는 급히 손으로 마차의 벽을 짚었다. 그래도 의자에서 엉덩이가 뜨자 몸이 앞으로 쏠렸다. 그것을 본 테라비스는 저도 모르게 양손을 에델라의 앞으로 뻗었다. 그런데 그야말로 저도 모르게 뻗은 손이다 보니, 손의 위치가 미묘했다. 심지어 마차는 그렇게 한번 덜컹거리고는 끝이었다.

“뭐야?”

“응?”

“그 손.”

에델라는 슬그머니 제 몸을 더욱 마차의 안쪽으로 끌어당기며 물었다. 그 미묘한 위치에 손이 있는 이유를.

“어……. 이건…….”

테라비스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는 것은 이상했다. 너를 잡아주려고 그랬다고 하기에는 손 위치가 미묘했다. 그렇다고 진짜로 그가 엉큼한 마음을 먹고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러니 다른 변명이 필요했다.

“이 손은, 지금 손을 잡을까 해서.”

“지금 손을 잡자고?”

테라비스의 뜬금없는 말에 에델라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그래. 딱히 할 것도 없잖아?”

“하지만 집에 금방 도착할 텐데? 가깝잖아.”

“그래도 시간이 아까우니까 말이야. 지금 5분을 잡으면, 집에 가서 자유시간이 5분이 더 생기는 거야.”

테라비스의 말에 에델라는 살짝 고민했다. 사실, 녹스 할멈이 바느질감 하나를 받아다 준 것이 있었다. 어느 귀부인이 응접실에 걸어놓을 자수가 필요하다고 했다는데, 아무에게도 자신에게 일감을 받았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단다. 아무래도 자기 솜씨인 양 뽐내기 위한 것인 것 같다고, 그러면 에델라가 결혼하고도 여전히 바느질감을 받는 걸 비밀로 할 수 있을 테니 더 좋지 않냐고 말을 했었다. 부자인 남편과 결혼을 하고 나서도, 에델라가 계속 그런 일을 한다면 남편의 체면이 떨어질 테니 말이다.

“그래.”

갑자기 번역 일을 맡는 바람에 잠자는 시간을 아껴서 그 일을 할 생각이었던 에델라는 흔쾌히 테라비스의 제안을 승낙했다.

“자, 그럼.”

에델라가 순순히 동의하자 테라비스는 얼른 손을 내밀었다. 에델라 역시 손을 뻗었다.

“…….”

“…….”

다만 둘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마차가 생각보다 넓었다는 것이었다. 테라비스는 물론이고, 에델라도 구부정하고 불편한 자세로 몸을 앞으로 기울여야 두 사람은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저기.”

참다 못해서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에델라였다. 오랜만에 책상에 오래 앉아 있었던 터라 허리가 좀 아팠는데, 이런 구부정한 자세로 집까지 가기에는 너무 불편했다.

“응?”

그리고 그건 테라비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손님용 테이블이 편했다. 소파도 더 푹신하고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했다. 서류는 계속 손에 들고 봐야 했으며, 사인이라도 하나 할라치면 허리를 한껏 굽혀야 했다. 그건 사무용 가구가 아니었으니 당연했다. 덕분에 테라비스도 그다지 쾌적한 몸 상태는 아니었다.

“불편해.”

“맞아. 자세가 좀 불편하지?”

에델라가 먼저 말을 꺼내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테라비스는 얼른 손을 놓으려고 했다.

“옆으로 올래?”

“응?”

“내 옆자리에 오라고.”

뜻밖의 제안에 테라비스는 눈을 깜박였다. 옆으로 오라고? 마주 보고 앉는 게 아니라, 옆자리에 앉으라고? 연인처럼? 그렇게 말인가?

“왜?”

“아, 아니.”

순진한 에델라의 물음에 테라비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에델라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에델라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빨리 손을 잡고, 집에 가서 남는 시간에 수를 놓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럼, 잠시 실례,”

테라비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에델라의 옆자리에 앉았다. 에델라의 치맛자락이 살짝 테라비스의 엉덩이에 깔릴 만큼 자리는 좁았다. 그러니까, 에델라의 어깨와 테라비스의 어깨가 맞닿고, 에델라의 허벅지가 테라비스의 허벅지에 맞닿을 만큼. 딱 그렇게 적당히 비좁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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