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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그의 취향, 그녀의 취향 (14/92)

14화. 그의 취향, 그녀의 취향2021.06.18.

  총체적 난국이라는 단어가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딱 지금의 테라비스였다. 처음에 점원이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옷걸이를 한가득 가지고 왔을 때부터 에델라는 제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얼른 고개를 돌려 테라비스를 쳐다보았다. 오랜 단골인 자신을 이런 취급하는 걸 보고 당연히 화를 내리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이게 웬걸? 테라비스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오! 역시 내 취향을 잘 아는군요!”

테라비스의 말에 그제야 에델라는 저택의 상태를 떠올렸다. 말도 안 되는 색상들의 조합과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집합체를.

“크흐~ 황제 폐하께서 선택하신 고귀한 원단을 감히 제가 입어도 될는지!”

광택 있는 검은색 실크 셔츠를 고르며 테라비스는 말했다.

“오! 이건 저 멀리 게멘에서 수입한 최고급 가죽을 사용한 것이군요.”

새빨간 구두를 집어 들며 테라비스가 말했다.

“음~ 이건 우리가 수입한 게 아닌 것 같은데?”

“정확하십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보시겠어요?”

“아! 염료가 우리가 수입한 것이로군요.”

“맞습니다.”

대화 끝에 그가 고른 것은 초록색의 바지였다. 물품이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에델라의 안색은 점점 창백해졌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테라비스의 손이 여러 개의 옷걸이 위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아!”

‘제발, 제발, 제발. 그것만은 안돼.’

마침내 찾던 것을 발견한 것처럼 테라비스의 입에서 작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걸 보고 있던 에델라는 입술을 꽉 깨물며 저것만은 아니기를 속으로 빌었다.

“이게 좋겠군. 우리가 수입한 금사를 사용한 거로. 이걸 수입할 때 귀금속으로 분류해서 세금을 매기겠다고 해서 재분류 요청을 몇 번이나 넣었던지!”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테라비스가 집어 든 것은, 에델라가 제발 고르지 말기를 바랐던 보라색 벨벳에 금색 실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재킷이었다.

“입어보시겠어요?”

“물론이죠.”

그리고 잠시 후.

“이건…….”

에델라는 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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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빨간 구두에 통 넓은 초록색의 바지를 입고, 광택이 반짝이는 검은색 실크 셔츠에 황금색 수가 놓인 보라색 벨벳의 재킷을 걸친 테라비스의 모습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그걸 보고 있는 에델라는 자신의 눈이 썩어가는 것 같아서 고개를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오~ 괜찮은데?”

순간, 에델라는 제 귀를 의심했다.

“잘 어울리시네요.”

맞장구를 쳐주는 점원의 말에 에델라는 입을 떡 벌렸다.

“좋아. 그럼 이걸로 하도록 하지요.”

“언제나처럼 훌륭한 선택이십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에델라의 이맛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훌륭한 선택이라니? 지금 테라비스가 고른 옷들을 보고는 절대로 그런 소리가 나올 수가 없었다.

‘단골이라더니, 양심도 없지!’

에델라는 도저히 그 꼴을 볼 수 없어서 분연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보.”

“아, 부인. 조금만 기다려줘요. 내 것을 고르고 난 뒤에, 당신 옷을 보기로 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에델라가 기다리는 것이 지루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오해를 한 테라비스에게 그게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다.

“어머, 그럼 제가 사모님을 위해서 조금 골라올까요?”

점원이 활짝 웃으면서 그 말을 하기 전에는.

“아니요!”

에델라는 황급히 대답했다. 그녀가 테라비스에게 건네준 끔찍한 옷과 비슷한 것들을 또 골라오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리고 테라비스를 저 끔찍한 옷들 속에서 구해내야 했다.

“여보.”

에델라는 아까보다 조금 더 단호한 어조로 테라비스를 불렀다.

“다른 옷을 좀 더 보는 게 어때요?”

“왜요? 괜찮지 않아요?”

팔을 벌려 보이며 테라비스가 말했다.

‘전혀 안 괜찮아!’

라고 에델라는 소리치고 싶었다.

“여기에 이렇게 많은 옷이 있잖아요. 좀 더 골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 더 좋은, 당신에게 더 잘 어울리는 옷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내가 한번 골라볼게요.”

하지만 차마 그렇게 말할 수 없었던 에델라는 살짝 돌려서 말을 했다.

“음…….”

지금 입은 옷이 진심으로 마음에 드는 듯, 테라비스는 살짝 주저했다.

“여보?”

에델라는 다시 테라비스를 불렀다.

“당신이 정 그렇다면, 골라봐요.”

솔직히 말해서, 테라비스는 지금 입은 옷들이 마음에 들었다. 이것들이 얼마나 비싼지 잘 알고 있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지금 입은 것을 더한다면 작은 집 한 채를 살 수 있으리라. 이 정도 가격의 옷을 입고 간다면, 제아무리 귀족들이라고 해도 테라비스의 재력을 무시하지는 못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에델라의 간곡해 보이는 목소리를 듣자, 한발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다.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라고 했더니, 적극적으로 내조를 하겠다는 건가?’

자신의 모습이 너무 끔찍해서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테라비스는 에델라가 자신을 위해서 가게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것을 보며 그렇게 오해하고 있었다.

“바지는 이게 괜찮을 것 같은데?”

테라비스가 오해를 하거나 말거나, 에델라는 열심히 가게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다 무난한 검은 바지를 하나 고르고, 저쪽에 서 있는 테라비스를 힐끗 보았다. 아무래도 전부 갈아입으라고 하면, 자기 취향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셔츠는 그대로 입으라고 해야겠어.’

그리고 조금 전에 살짝 만져보았던, 테라비스가 자랑했던 그 금사의 감촉과 색상을 떠올리며 죽 걸려 있는 재킷들을 샅샅이 뒤졌다.

“아!”

그리고 그것과 똑같은 것을 찾아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게 똑같은 것인지 아닌지 알기 어려웠을 테지만, 에델라는 귀부인들의 수예품을 만들어주느라 많은 원단과 고급 실들을 사용해보았기에 찾을 수 있었다.

“흠…….”

에델라가 골라온 것들을 본 테라비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가 고른 것들보다는 옷이 덜 비싸 보였기 때문이었다.

“한번 입어보세요. 셔츠는 그걸 그대로 입으면 돼요.”

하지만 에델라가 손수 골라온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요.”

테라비스는 순순히 그것을 받아들었다. 입어보고 별로라고 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머!”

에델라가 골라 준 것들로 갈아입고 나온 테라비스를 본 점원은 저도 모르게 입을 가리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녀의 반응을 보며 테라비스는 눈을 끔벅였다.

‘왜 저래?’

테라비스는 거울 속의 자신을 쳐다보았다. 제가 보기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역시나 아까 그게 더 비싸 보이고 좋았다. 타고난 장사꾼이었던 테라비스는 금전 감각이 너무나 탁월한 나머지, 미적 감각은 그의 뇌에서 퇴화해버렸는지도 몰랐다.

“여보.”

역시 아까 그것이 더 좋다고 말하려는 찰나, 테라비스는 제가 입고 있는 빨간색 재킷에 있는 금사를 그제야 알아보았다.

“이건 우리가 수입한 금사인가?”

“맞아요.”

테라비스의 혼잣말에 에델라는 얼른 대답했다. 같은 금사지만 보라색 재킷과는 전혀 달랐다. 아니, 사실 그 옷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셔츠나 바지를 색상에 맞춰 입었다면 고급스러워 보일 수 있는 옷이었다. 테라비스가 골랐던 빨간 구두나 초록색 바지도 마찬가지였다. 각각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코디로 각각 입었다면 괜찮은 포인트 아이템이 되었을 것이다. 그걸 전부 한꺼번에 입지 않았다면 말이다.

“사모님께서 안목이 높으시네요.”

자신의 보너스와 가게의 매출을 생각해서, 또한 고객의 취향을 아주 충분히 고려해서 가게에서 가장 비싼 것들만 가지고 왔었던 점원도 테라비스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보았던 테라비스 중에서 지금이 제일 나았다. 분명 조금 전에는 촌스러워 보였던 검은색 셔츠는 전혀 다른 옷인 양 살짝 그을린 테라비스의 피부를 섹시하게 만들어주고 있었고, 검은 바지는 그의 긴 다리를 돋보이게 해주고 있었다. 붉은 재킷은 그의 머리카락 색과 잘 어울렸으며, 화려한 금사가 포인트가 되어 시선을 집중하게 했다. 지금의 테라비스를 전체적으로 평하자면, 끝내주게 섹시했다.

“그래요?”

점원의 말에 테라비스는 다시 한번 거울을 보았다.

‘이게 더 괜찮은 건가?’

솔직히, 그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잘 어울려요, 여보.”

옷을 골라 준 에델라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미소를 보자, 가장 비싼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테라비스의 가치관이 살짝 흔들렸다.

“그럼, 당신이 골라 준 것으로 할게요.”

한 번쯤은 제일 비싼 것이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점원의 반응도 썩 나쁘지 않았다. 결국, 테라비스는 에델라가 골라 준 것으로 사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이제 당신 옷을 골라보도록 하죠.”

이제 제법 사람 같은 테라비스를 보며 흐뭇해하던 에델라는 그의 말에 그대로 굳어졌다.

“아……!”

그랬다. 오늘은 테라비스만 옷을 사는 것이 아니었다.

“같이 골라볼까요?”

“아, 아뇨! 괜찮아요!”

테라비스가 금방이라도 녹조 같은 색상의 드레스나 커다란 왕 리본이 달린 드레스를 골라올 것만 같아서 에델라는 황급히 사양했다. 그리고 서둘러서 조금 전에 제가 누비고 다녔던 남성복이 아니라, 여성복 코너로 걸어갔다.

‘어떤 걸 사야 할까?’

에델라는 자신이 가야 하는 장소를 떠올렸다. 무도회였다. 사실, 에델라는 무도회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어렸을 때 집안이 망했기 때문이었다. 귀족 자제들과의 다과회 정도라면 어렸을 때 가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무도회가 어떤 것인지는 어머니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평상복보다는 조금 화려한 것으로 해야겠지? 테라비스의 말대로 외출복을 입고가는 것은 결례일 테니까.’

에델라는 눈앞에 보이는 것을 하나 골라 들었다. 옅은 분홍색의 드레스였다.

‘비쌀 것 같아.’

슬쩍 보았던 것과는 달리 아랫단에 화려한 큐빅이 박혀 있는 것을 보고 에델라는 그것을 도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드레스를 고르기 시작했다.

‘무도회에서 입고 갈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하면서, 가격은 비싸지 않을 것 같은 것으로.’

에델라는 되도록 장식이 적고, 비싸 보이는 장식은 아예 없으며, 손이 많이 가지 않았을 것 같은 드레스로 두 벌을 골랐다.

“흠……. 그게 마음에 들어요?”

어느새 에델라의 곁에 다가온 테라비스가 그녀에게 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별로였다. 너무 저렴해 보였다. 아마 이 가게에서 가장 싼 드레스를 두 벌 고르라고 하면, 바로 이 두벌일 것 같은 드레스였다.

“왜 이 드레스가 마음에 들어요?”

“네?”

“내가 맞춰볼까요?”

테라비스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에델라는 당황했다.

“이게 제일 싸서.”

그리고 그가 정말 답을 맞히자 더욱 당황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테라비스는 혀를 끌끌 차며, 에델라가 골랐던 두 벌의 드레스를 다시 제자리로 집어 넣어버렸다.

“당신 건, 내가 골라 줄게요.”

“아, 아니. 난 괜찮아요.”

“사양하지 마요. 당신도 내걸 골라줬잖아요.”

테라비스는 에델라의 손을 끌고 점원이 서 있는 곳으로 갔다.

“여기서 제일 비싼 것으로 세 벌, 부탁드릴게요.”

조금 전에는 에델라의 말에 따랐지만, 테라비스의 취향은 변하지 않았다. 가장 비싼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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