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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두 번째 밤 (7/92)

7화. 두 번째 밤2021.05.24.

  제4항이 극적 타결된 뒤에는 좀 더 부드러운 식사 자리가 이루어졌다. 몇 잔의 포도주도 더 함께했고, 에델라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고, 테라비스 역시 기분 좋을 정도로 취기가 감돌았다. 오자마자 바로 저녁 식사를 했던 테라비스가 욕실에서 씻고 나오자, 침대에는 이미 에델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드레스를 벗고 간단한 잠옷을 입은 채로.

‘오늘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더라니.’

테라비스는 그녀를 보자마자 저절로 입술에 미소가 감돌았다. 아마도 오늘 쇼핑을 했다는 것 중의 하나인 듯, 에델라가 입고 있는 잠옷은 첫날밤에 보았던 낡은 잠옷과는 다른 것이었다. 새것의 흰 잠옷만큼이나 흰 에델라의 피부에서 두 뺨만이 살짝 발그스름했다. 그것이 술기운 때문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 테라비스는 알 수 없었다.

“쇼핑했군.”

“당신이 하라고 했잖아.”

포도주를 마셔서 그런 것인지, 테라비스가 시키는 대로 한 것이 분해서 그런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방금 테라비스가 자신을 보고 빙긋이 웃은 것이 기분 나빠서인지, 에델라는 저도 모르게 발끈해서 소리쳤다. 솔직히 말해서, 새 잠옷을 사고 싶지 않았다. 그 돈으로 차라리 집에 돈을 더 보태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이미 선지급으로 받은 돈을 예로니아 백작 가에 보내긴 했지만, 그동안 밀린 병원비와 약값이 있다 보니 돈이 모자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테라비스와 계약을 한 이상, 그에게 말한 대로 자신도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드레스를 벗기지 못하는 그를 위해서 스스로 드레스를 벗고 있고, 자신의 잠옷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테라비스를 위해서 이렇게 새 잠옷 정도는 입어주는 노력을 말이다. 참으로 성실한 에델라였다.

“그래. 그래.”

테라비스는 대충 대답하며 에델라의 옆에 앉았다. 그의 무게감에 침대가 출렁이자 에델라의 몸이 기울어지며 테라비스의 팔에 그녀의 팔이 맞닿았다. 화장품인지 약간의 꽃향기, 포도주의 과일 향,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좋은 향기가 테라비스의 코에서 살짝 머물다 사라졌다. 흩어져버린 안개를 휘어잡는 듯, 테라비스는 향기를 쫓아 코를 벌름거렸다. 분명 맡아본 적이 있는 향기였다. 오른쪽, 좀 더 오른쪽, 좀 더 오른쪽. 향기를 따라가던 테라비스의 코가 매끈한 살결에 맞닿았다. 기분 좋은 온기가 있는 말랑한 살결이었다. 그제야 테라비스는 이 향기의 정체를 알아냈다. 에델라의 살냄새였다.

“흐읍…….”

달짝지근하면서도, 산뜻한 향이었다. 농밀하게 자신을 유혹하는 것 같으면서도, 마음껏 들이마시려고 하면 어느새 잔향만을 남기고 저 멀리 달아나버리는 얄미움이 있었다. 테라비스는 한 손을 들어 천장을 꼿꼿이 바라보고 있는 에델라의 고개를 자신의 쪽으로 돌렸다. 어제처럼 긴장한 표정이지만, 결코 어제만큼 긴장한 표정은 아닌 에델라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봤을 때와 꼭 같은 물빛의 눈동자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안쪽에 살짝 포도주색 물이든 입술이 보였다. 테라비스는 단숨에 그것을 삼켰다.

“읏…….”

갑작스러운 키스에 에델라의 입술에서 미약한 신음이 나왔지만, 그를 밀어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테라비스는 향기와는 달리 달아나지 않는 입술에 감사해하며 마음껏 그것을 탐했다. 말랑한 입술을 핥고, 빨아 당기고, 기꺼이 자신을 그곳으로 집어넣었다. 그것은 자신의 성격만큼이나 무례하게 에델라의 입 안으로 침범했다. 그녀의 고른 치열의 사이로 제 몸을 들이밀고, 붉은 살점에 자신을 부볐다. 입천장에 꼼짝 많고 웅크리고 있던 그녀의 욕망도, 어금니 뒤편에서 살그머니 숨어 있던 그녀의 욕구도 테라비스는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왔노라고, 그러니 이리로 나오라고, 에델라의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쾌락을 소리쳐 불렀다.

“흐읏…….”

마침내 에델라의 깊은 곳에서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한 신음까지 흘러나왔지만 테라비스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의 점막 모든 곳에 자신의 타액을 묻혔고, 에델라가 아릴 때까지 깊게 그녀를 삼켰다. 그중에서도 가장 괴롭힘을 당한 것은 그녀의 입술이었다. 말캉한 그것을 테라비스는 그야말로 미친놈처럼 씹어댔다. 아랫입술을 물어뜯고, 윗입술을 빨아 당기고, 그녀가 조금이라도 고개를 뺄라치면 에델라의 목덜미를 자신의 손으로 꽉 잡고 더욱 그녀의 입술을 짓이겨댔다.

“으읏…….”

그러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에델라가 조그만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려 대자, 그제야 입술을 떼어냈다. 그것도 아주 아쉬운 듯이 말이다.

“푸하! 하아……. 하아……. 하아…….”

에델라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한참이나 숨을 쉬지 못한 사람처럼.

“죽을 뻔했잖아!”

“너무 좋아서 죽을 뻔했다는 거야?”

“아니! 질식사로!”

에델라는 진심이라는 듯, 테라비스를 노려보았다.

“사람을 무슨 변태로 만들려는 거야? 질식사? 내가 네 목이라고 졸랐다는 거야? ”

“사람을 숨도 못 쉬게 만들어 놓고선!”

“내가 언제?”

“방금! 지금! 아까!”

“대체 무슨 소리를…….”

에델라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어 하던 테라비스의 머릿속에 한가지 가능성이 고개를 들었다.

“설마?”

테라비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에델라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설마?”

이 여자는 키스도 한 번 안 해봤다는 건가?

“에이, 설마…….”

요즘에 키스는 어린애들도 다 했다. 어두운 뒷골목에서 입을 맞추고 있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을 얼마나 많이 봤던가?

“설마……?”

하지만 다시 테라비스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여자가 고고하고 우아한 귀족 영애라는 것이었다. 꼿꼿한 자세의 반말이 익숙한, 음식물을 먹고 있을 때는 결코 입을 열지 않는.

“뭐가 자꾸 설마라는 거야?”

조금 전까지 뜨거운 키스를 해놓고선, 금세 저렇게 인상을 찌푸리는 분위기 없는 여자는 아직 첫 키스를 안 해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진짜 그렇다면……. 테라비스가 에델라의 첫 키스 상대였다.

“미쳤군.”

순간 가슴이 뿌듯해 오는 것을 느끼며 테라비스는 중얼거렸다. 별것 아닌 이 사실이, 아니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이 사실이, 왜 기분이 좋은 것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완전히 미쳤어.”

다만 확실한 것은 그 사실이 미치게 좋았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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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쳤다고 생각한 건 에델라도 마찬가지였다. 숨을 쉴 수도 없을 만큼 격한 키스에 이어서, 테라비스는 무슨 짐승처럼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들었다. 방금 송곳니가 자라난 새끼 들짐승처럼 그는 에델라의 몸을 깨물어 댔다. 뜨거운 그의 입술이 그녀의 목덜미에 와서 닿고, 아프다 싶을 정도로 피부를 괴롭혔을 때, 에델라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 들었다. 발바닥이 저릿저릿하고, 손끝에 힘이 들어가 자신도 모르게 새로 산 잠옷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몸의 어딘가에서는 전기가 흐르듯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아…….”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삼켜지는 듯한 느낌에 에델라는 나지막한 신음을 내뱉었다. 그 신음에 대한 답신이라도 되는 양,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목덜미를 따라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윽!”

그리고 와그작! 그녀의 귓불을 깨물었다. 이번 것은 정말 아팠다. 정신이 번쩍 들고, 나른하게 아래로 푹푹 꺼져가던 에델라를 단숨에 위로 끌어올릴 만큼의 감각이었다. 그 덕분에 지금 테라비스가 그녀의 귓불에서 귓바퀴로 옮겨가고 있는 감각은 선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뜨거운 숨결이 테라비스의 입 안에서 그녀의 귓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것은 에델라의 몸속으로 들어가 잠자고 있는 그녀의 세포를 모조리 깨우려는 듯 누비고 다녔다. 에델라의 보드라운 잔털은 오스스 돋아나고, 손끝은 찌릿하고, 발끝은 간지러우며, 입술은 바르르 떨렸다. 그녀의 몸 어느 것도 자신의 것 같지 않았다.

“에델라.”

에델라의 귓바퀴에 자신의 입술을 짓누른 채, 테라비스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에델라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테라비스가 에델라의 잠옷에 제 손을 가져다 대자 그의 뜨거운 체온이 얇은 천 너머로 느껴졌다. 그 뜨거운 손이 에델라의 어깨를 감싸고 체중을 싣자, 에델라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흰 침대 위에 흐트러진 금발의 머릿결이, 가녀린 흰 몸이, 그리고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한 상기된 작은 얼굴이, 테라비스의 본능을 건드렸다.

“아…….”

천천히 테라비스가 에델라의 허벅지에 손을 올리자, 매끄러운 살결이 착 하고 그의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천천히 손을 쓸어올리자 에델라가 움찔거리며 얕은 신음을 토해냈다.

“제길.”

도저히 더 참을 수가 없었다. 테라비스는 자신의 몸에 걸치고 있던 가운을 그대로 벗어 던졌다. 에델라는 두 번째로 보는 그의 벗은 몸에 다시금 감탄했다. 잘 모르긴 해도 저렇게 딱 벌어진 어깨와 넓은 가슴은 모든 남자가 가진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단해 보이는 복근도 마찬가지였고, 군살 하나 없는 허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일순간,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것을 먼저 느낀 것은 테라비스였다. 단 3초였다. 자신이 가운을 벗는 데 걸린 시간은. 그런데 그 3초 동안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제법 그럴싸하게 로맨틱했던 방 안의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가운을 벗기 전엔 장르가 분명 로맨스였는데, 지금은 스릴러였다. 아니, 스릴러는 차라리 나았다. 이 긴박한 장면을 넘기고 나면, 이해할만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안 돼.”

단호하게 부정과 거절의 말을 내뱉는 에델라의 표정은 단연코, 공포물이었다. 이유도 목적도 없는 연쇄살인마와 마주친 여주인공과 같은 표정이었다.

“뭐가 안 된다는 거지?”

눈을 굴리며 테라비스가 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안 될 일이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절대로 무리야.”

“잠깐만, 에델라. 무리라는 게…….”

“꺅!!”

테라비스가 에델라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다가간 순간, 에델라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옆에 있던 베개를 테라비스에게 집어던졌다. -퍽. 베개는 테라비스의 얼굴에 명중했다. 그의 눈앞이 그야말로 깜깜해졌다. 푹신한 베개는 아프지는 않았다. 다만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베개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나서의 광경이었다. 테라비스의 앞에는 그저 텅 빈 침대만이 보일 뿐이었다.

“미안해!”

에델라에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저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울상을 한 에델라가 문가에 서 있었다.

“에델…….”

테라비스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기 전에, 문이 열렸다. 그리고 에델라는 밖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첫날밤에는 신부 혼자, 둘째 날에는 신랑 혼자 침실에 남아 있었다.

“……미치겠군.”

오늘 여러 번 미쳐버릴 것 같은 테라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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