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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첫날밤 (5/92)

5화. 첫날밤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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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혼집은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테라비스는 이미 도시에서 손꼽히는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에델라가 그대로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신혼여행도 없었기 때문에, 결혼식을 마친 두 사람은 곧장 집으로 들어왔다. 현관 앞에 모인 고용인들에게 대충 에델라를 소개하고, 그야말로 대충대충 집 안을 구경시켜주었다. 미친 듯이 비싸 보이지만, 미적 감각이라고는 없는. 정신이 쏙 빠진 에델라는 테라비스가 자신을 침대에 눕힐 때까지, 그야말로 얼떨떨해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근사한 남자의 상반신 누드에는 그야말로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어쩌면 이대로 첫날밤을 보내는 것이 그저 순리대로, 물 흐르듯이 이어질 것 같았다.

16559926649979.jpg“아무래도 좋은 거라면, 나랑 취향이 똑같군.”

그 근사한 남자가 웃으면서 저렇게 낯부끄러운 말을 늘어놓기 전까지는.

16559926649984.jpg“그, 그만 해요!”

에델라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16559926649979.jpg“뭐?”

재빠르게 후퇴를 하는 에델라를 보며, 테라비스는 기가 막혔다.

16559926649979.jpg“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지. 우리는 확실한 계약관계가 아니던가?”

비딱하게 에델라를 쳐다보며, 코웃음을 치는 테라비스는 확실히 살짝 열을 받은 것 같았다.

16559926649979.jpg“이리 와, 에델라 드 바넬레오.”

16559926649984.jpg“그래요. 우리가 계약관계긴 하죠. 하지만!”

16559926649979.jpg“하지만?”

16559926649984.jpg“하지만…….”

이건 너무 급작스럽지 않냐고, 에델라는 말할 수 없었다. 테라비스의 말대로 그들은 계약관계였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도,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도 에델라는 말할 수 없었다. 이런 계약을 제의한 것은 바로 에델라였으니까.

16559926649979.jpg“에델라.”

조금, 아주 조금 테라비스가 에델라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에델라의 쪽으로 손을 뻗어 왔다. 너무나 느려서 에델라는 그를 쳐다보고 있으면서도 손이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16559926649979.jpg“에델라.”

이상스럽게도 달콤했다. 조금 전에 차마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은 말을 한 남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달콤한 사랑의 밀어만 속삭일 것 같다고 착각할 만큼 달콤한 목소리였다. 그래서 에델라의 뺨에 테라비스의 손이 닿았을 때, 에델라는 거부하지 않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테라비스가 에델라의 뺨을 쓸었다. 커다란 테라비스의 손에 조그만 에델라의 얼굴이 가득 들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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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9926649979.jpg“오늘은 우리의 첫날밤이잖아.”

오랜 연애 끝에 마침내 결혼에 성공한 커플처럼 테라비스는 말을 했다. 싫다고 저항하는 여자를 어떻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거부하는 여자에게 억지로 뭘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그런 악취미는 없었다. 아무리 계약관계라고 해도 말이다. 테라비스는 에델라에게 허락을 구하고 싶었고, 그녀가 허락하는 만큼만 할 생각이었다. 테라비스의 한 손이 에델라의 한쪽을 짚으며 그녀의 위로 자신의 몸을 기울였다. 첫날밤. 그 단어가 에델라의 머릿속에 가득 박혔다. 첫날밤이었다. 자신의 의무였다. 해야만 했다.

16559926649984.jpg“알았어요.”

결국, 에델라는 허락의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테라비스는 에델라의 허락을 말을 들었다. 에델라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테라비스의 시선을 느끼며, 천천히 침대에 누웠다. 바스락거리는 이불의 촉감과 푹신한 베개를 베고 눕자 아름다운 레이스의 캐노피가 보였다.

16559926649984.jpg‘괜찮아.’

에델라는 자신을 도닥이며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테라비스는 가만히 그런 에델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첫날밤의 신부가 엄청난 괴물을 기다리는 듯이 달달 떨며,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몸에 달라붙는 피로연 드레스를 입은 몸은 가녀렸다. 맨살이 드러난 어깨나 쇄골은 더욱 가녀려 보였다. 거기다가 그 앙상한 어깨가 덜덜 떨리는 것이, 조그만 손이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것이, 어찌나 눈을 꼭 감았던지 눈꺼풀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이 테라비스의 신경을 자극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자란, 경험이 없는 순진한 아가씨라면 정말 괴물을 맞이하는 심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들끓어 오르던 테라비스의 욕망이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그 자리에 대신 들어차는 것은 저 순진한 아가씨에게 시간을 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에델라는 이제 자신의 아내였고, 시간은 많았다.

16559926649984.jpg“읏…….”

자신의 눈 주변으로 검은색 그림자가 다가오자, 에델라는 움찔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각오는 했지만, 무서웠다. 두려웠다. 테라비스의 손이 허리춤에 닿자, 에델라의 몸이 더욱 굳어졌다.

16559926649979.jpg“젠장!”

그녀를 덮친 것은 테라비스의 몸이 아니라, 말이었다. 갑작스러운 테라비스의 거친 욕설에 에델라는 눈을 떴다. 에델라의 눈에 보인 것은 뭔가 잔뜩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드레스의 리본을 붙들고 있는 테라비스였다.

16559926649979.jpg“뭐 이런 복잡한 매듭이 있어? 게다가 이건 대체 어디에다가 연결이 된 건데?”

16559926649984.jpg“……?”

16559926649979.jpg“빌어먹을! 여자 옷이라는 건 알 수가 없네.”

테라비스는 과장되게 제 머리를 헝클어뜨리더니 침대에서 일어섰다.

16559926649979.jpg“다음부터는 가위라도 준비해야지, 원.”

16559926649984.jpg“다음……부터요?”

16559926649979.jpg“그래. 오늘은 그 빌어먹을 옷 때문에 산통이 다 깨졌으니까. 하녀를 불러서 그 철통 보안의 드레스를 갈아입고, 씻고, 다시 분위기를 잡으면 내일 아침일 것 같으니까. 밤을 새우기엔 오늘은 너무 피곤하지 않겠어?”

잔뜩 짜증을 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테라비스의 이야기는 오늘은 첫날밤을 치르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바뀐 테라비스의 태도에 에델라는 눈을 똥그랗게 떴다. 그리고 그런 에델라를 보며 테라비스는 속으로 웃었다. 적어도 껍질이 홀랑 까진 채 토끼처럼 오돌오돌 떨고 있는 것보다는 놀란 토끼같은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 * * 밤새도록 테라비스는 침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에델라가 그의 얼굴을 다시 본 것은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할 때였다.

16559926649979.jpg“오늘은 뭘 할거지?”

이미 식사를 하고 있던 테라비스는 에델라가 자신의 앞자리에 앉자 매일 아침 그 자리에서 에델라를 봐왔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질문을 했다.

16559926649984.jpg“글쎄요.”

에델라는 접시에 빵을 한 조각 덜고, 잼을 손톱만큼 덜어서 아주 얇게 발랐다. 마실 것으로 뭘 드릴지 묻는 하녀의 대답에 에델라는 홍차를 주문하곤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16559926649984.jpg“녹스 할멈이 만든 잼이군요.”

에델라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감돌았다.

16559926649979.jpg“그래. 그러고 보니 녹스 할멈이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지?”

16559926649984.jpg“예전에 제 유모셨어요.”

16559926649979.jpg“아~ 가문이 망하면서 유모를 내보낸 건가?”

두툼한 베이컨을 입에 넣고 씹으며, 테라비스는 물었다. 에델라는 대답 대신 테라비스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테라비스는 ‘내가 못 할 말이라도 했어? 너희 집이 망한 것은 사실이잖아?’라는 듯이 어깨를 한번 으쓱이곤 자신의 앞에 놓인 오렌지 주스를 집어 들었다. 썩어 문드러져 가는 녹조 색의 벽지는 단 한 번도 테라비스의 식욕을 떨어뜨린 적이 없었다.

16559926649984.jpg“아니. 망하기 전에 내보낸 건데.”

막 주스를 마시려던 테라비스의 손이 멈칫했다. 방금 자신이 뭔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16559926649979.jpg“그래. 아까 오늘 뭘 할 거라고 했지?”

테라비스는 분명 어젯밤에 너무 참고 자서 자신이 피곤해서 그러리라 생각하며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피곤할 때는 이런 새콤한 것이 몸을 깨운다고 녹스 할멈이 분명 이야기를 했었다.

16559926649984.jpg“별 계획 없다니까?”

16559926649979.jpg“큿!”

순간 테라비스의 입 안에 있던 오렌지 주스가 역류했다. 일부는 그의 입술에서 흘러넘쳤고, 또 일부는 그의 코까지 들어가서 상큼했던 오렌지 주스가 그의 코를 따끔거리게 했다.

16559926649984.jpg“괜찮아?”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에델라는 분명히 자신에게 반말했다. 지금 자신을 걱정하는 것 같은 말까지도 분명한 반말이었다.

16559926649979.jpg“지,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한 거지?”

16559926649984.jpg“뭘?”

16559926649979.jpg“나한테 반말을 한 건가?”

16559926649984.jpg“응.”

에델라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며 다시 빵 한 조각을 베어 물었다.

16559926649979.jpg“미쳤어? 감히 나에게 반말을 해?”

16559926649984.jpg“…….”

테라비스가 흥분해서 화를 내는데도, 에델라는 그저 그를 빤히 쳐다보며 오물오물 씹고 있었다.

16559926649979.jpg“왜 대답을 안 해!”

16559926649984.jpg“…….”

올바른 예의를 갖춘 귀족 출신의 숙녀인 에델라는 결코 입 안에 음식물이 있을 때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입 안의 것을 다 삼키고 나서야 비로소 에델라는 입을 뗐다.

16559926649984.jpg“미치지 않았어.”

16559926649979.jpg“근데 왜 반말이야?”

16559926649984.jpg“당신이 먼저 했잖아.”

16559926649979.jpg“난 네 남편이잖아! 당연히 반말을 할 수도 있지.”

16559926649984.jpg“난 네 부인이잖아. 당연히 반말을 할 수도 있지.”

에델라는 태연히 말하며 찻잔을 쥐었다. 오랜만에 마시는 고급 홍차는 향긋했고, 감미로웠다.

16559926649979.jpg“난 너보다 세 살이나 많아!”

테라비스는 에델라에게 손가락을 하며 나이의 우위를 내세웠다. 자신보다 세 살이나 적은, 키는 가슴팍에 겨우 오는, 몸무게는 제 반절이나 나갈까 싶은, 심지어 자신의 아내인 여자에게 반말하는 것은 테라비스의 상식에서는 당연하였다.

16559926649984.jpg“난 백작 영애야.”

에델라는 자신의 신분을 내세웠다. 아닌 게 아니라 에델라는 존댓말보다는 반말이 편했다. 뒤뚱뒤뚱 걸어 다닐 때부터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집안의 모든 사람에게 반말을 했다. 조금 더 자라서도 마찬가지였다. 교류하는 귀족들이나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반말을 했었다. 예로니아 백작 가가 몰락하고, 집안의 가구들을 팔아 치울 때조차 그것을 가지러 온 상인에게도 반말을 하던 그녀였다. 대부호이기는 하나 어쨌든 신분은 평민인 테라비스에게 에델라가 반말하는 것은 온당했다. 바로 그것 때문에 테라비스도 작위를 가지고 싶어 하는 것 아니던가? 신분상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16559926649979.jpg“도대체 내가 집에 뭘 데려온 거야.”

테라비스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에델라를 노려보았다. 건장한 남자도 테라비스의 사나운 눈빛을 보면 기가 죽을 만도 한데, 에델라는 꿈적도 없이 그저 조용히 빵을 베어 물뿐이었다.

16559926649979.jpg“그러니까, 계속 나에게 반말을 하시겠다?”

16559926649984.jpg“…….”

16559926649979.jpg“왜 또 말이 없어!”

16559926649984.jpg“…….”

이번에도 에델라는 테라비스가 화를 내거나 말거나 입 안에 있던 빵을 모두 씹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16559926649984.jpg“당신이 계속 나에게 반말을 하는 한은.”

16559926649979.jpg“찾아온 그 날은! 일주일 전의 그날에는 존댓말을 해놓고선?”

16559926649984.jpg“기억이 안 나나 본데, 그때는 당신도 나에게 존댓말을 했어.”

테라비스는 기가 막히다 못해서 자신의 귀가 막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저 여자가 자신에게 반말하는 것을 안 들어도 될 텐데!

16559926649984.jpg“우리는 서로 대등한 계약관계라고 당신이 말한 것 잊었어? 그러니까 당신이 반말하면, 나도 반말이야. 물론 당신이 나에게 존대해준다면, 나도 당신을 존대해줄 용의가 있어.”

16559926649979.jpg“하아……. 내가 대체 내 집에 뭘 들고 들어온 거야.”

테라비스는 골치가 아픈 듯, 커다란 손으로 제 이마를 짚으면서 중얼거렸다. 어젯밤에 자신이 보았던 그 귀여운 토끼는 대체 어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자기 눈앞에 있는 것은 사람의 혈압을 최고치까지 오르게 만들어서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살인마였다.

16559926649979.jpg‘아니면 식인토끼인가?’

오물오물 빵을 씹어 먹는 에델라를 보며, 테라비스는 제법 심각하게 고민했다. 자기 부인의 정체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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