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5)공존
별다른 마법의 전개는 없었다.
화려한 폭격도.
강력한 일격도.
모든 걸 섬멸하는 궁극의 대마법 따위도 없었다.
그저 서로 노려보는 채로.
“…….”
“…….”
화이트와 백의 마왕은, 그야말로 동시에 시간의 힘을 끌어올렸다.
째깍, 째깍-
고요한 공간 속.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채색의 세계.
보고 있자면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은 그런 공간 속에서.
그저 시계태엽이 돌아가는 소리만이 나직하게 울려 퍼졌다.
파동이 인다.
고요하게.
소리는 없었다.
거듭 고요하게.
파동은 그저 서로를 향해 잔잔히 흘러갈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두 존재는 격심한 고통을 전신으로 감당해야만 했다.
“…….”
입을 열지는 않는다.
다만 입술을 비집고 핏물이 새어 나왔다.
내부가 뒤흔들리며 모든 게 역류하는 듯한 감각.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 그 자체를 요동치게 만드는 기분.
그 감각은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 설명하기가 요원했다.
끔찍한 격통.
단지 그렇게 표현할 수 있으리라.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것만으로 시간은 움직였다.
시간의 힘으로 상대를 압박하며, 되돌리고자 하고, 그걸 막아내기 위해 견제한다.
‘시간’은 다루는 자의 의지에 따라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지우고자 했다.
그렇지만, 동일한 힘을 다루는 두 인물이 동시에 존재한다면.
두 존재가 한순간에 같은 시간의 힘으로 상대를 압박한다면.
─────!
결판은 나지 않는다.
끝을 볼 수 없다.
끝나지 않을 싸움은 말 그대로 끝없이 이어질 것이었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진실로, 얼마나 되는 세월이 흘렀을까.
억겁의 세월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만한 시간이 흘렀다.
체감할 수 있었다.
느낄 수 있었다.
“…….”
화이트의 전신은 이미 상처투성이였다.
단순한 잔상처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안색은 창백했으며, 흘러내린 핏물은 바다를 이루었고, 신체 그 자체가 어그러져 가기 시작했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아니, 죽는 게 당연한 상태였으나.
그럼에도 화이트는 살아 있었다.
죽을 수 없었기에.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죽을 수 없다.
표현 그대로의 말이었다.
피를 얼마나 흘려도.
신체의 부위가 얼마만큼이나 손상되어도.
죽지 않는다.
시간을 다루는 이상, 얼마든지 되돌리고, 또다시 싸워나갈 수 있었으니까.
화이트의 두 눈동자가 흐릿하게 번뜩이는 순간이었다.
화아아악!
빛무리가 번쩍였다.
한순간에, 화이트의 전신이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시간이 돌려지듯이.
아무런 상처조차 입지 않았던 그 시간대로 되돌아가듯이.
“…….”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찰나의 시간이 흐른 직후.
화이트는 다시금 정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
“자, 다시 해보자.”
입가에는 미소를 걸친다.
어딘가 공허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웃음을 흘렸다.
바라보는 건 당연히 백의 마왕이었다.
“…….”
그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싸움이 시작된 직후부터,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것도 지금까지의 얘기였다.
“어째서지?”
그가 입술을 떼어냈다.
말문을 연 것이다.
“…….”
화이트의 눈이 순간 살며시 크게 뜨였다.
그러나 이내 원래대로 되돌아가며, 다시금 평정을 되찾는다.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대신하여 역으로 되묻는다.
어째서, 라고 묻는다 한들 대답하기는 곤란했기에.
무엇을 얘기하는 건지, 무엇을 의미하고자 하는 건지.
화이트는 그렇게 반문했고, 백의 마왕은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그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왜 포기하지 않느냐, 고 물었다.”
“……?”
그 말에 화이트의 고개가 모로 기울어졌다.
이해하지 못한 듯.
혹은 납득하지 못한 듯이.
그런 그를 바라보며, 백의 마왕이 계속해서 말해 나갔다.
“너는 정확한 세월을 모르겠지만, 나는 알 수 있다. 너와 내가 이 공간에 들어선 이후로 얼마나 되는 시간이 흘렀는지.”
“…….”
“바깥의 세계는 채 일 초도 흐르지 않았겠지만, 애초에 이 공간은 바깥과 분리된 곳이니. 시간이 얼마나 흐르더라도, 외부와 연결될 일은 없다.”
그렇게 말하며, 백의 마왕은 한 차례 말을 끊었다.
그런 백의 마왕을 화이트는 지그시 바라봤다.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정확히는,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
알 수 없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알고 싶지도 않았다.
화이트의 눈동자가 착 가라앉는 순간, 백의 마왕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동안 네 신체와 정신에 가해진 부담이, 그 압박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짐작은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본체의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서, 그 고통이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그래서?”
느긋하게 반문하는 화이트.
그런 그를 향해, 백의 마왕이 눈가를 가늘게 좁히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미 아득한 시간이 흘렀어. 억겁이라 표현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지. 그동안 네가 받아낸 부담은 이미 과거의 기억 따위는 지워버릴 정도다.”
달리 말하자면, 모든 걸 잊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 덧붙이면서, 백의 마왕이 한쪽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나는 버틸 수 있다. 애초에 네가 버리고 간 시간대에서, 이만한 세월을 이미 버틴 적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너는 아니지. 고작해야 인간, 시간의 힘을 다룰 수 있다고는 하나, 나와 같은 신격을 얻은 것은 아니다.”
백의 마왕이 눈동자가 더더욱 깊게 침체되어 갔다.
“왜 버티는 거지? 아셰라, 그녀 때문인가?”
“…….”
아셰라.
그 한 단어, 그 이름에.
잠시지만, 화이트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백의 마왕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집념만큼은 인정하지. 아득할 정도의 세월을 버텨내는 이유가 그녀 하나 때문이라면.”
“…….”
화이트는 침묵했다.
길게, 아주 길게.
백의 마왕 역시 무어라 더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얌전히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또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아니.”
화이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의 눈동자가 다시금 생기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백의 마왕의 두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아니라고?”
“그래.”
“무엇이 아니라는 말이지?”
“네 말이 틀렸다는 얘기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잠시 말을 끊었다가, 화이트가 백의 마왕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그 너머를 바라봤다.
“고통스러웠고, 지금도 충분히 고통스럽다.”
“…….”
“네 말대로, 진실되게 아득한 세월이 흘렀겠지. 나는 상상도 못 할 수준일지도 몰라.”
“그 말이 맞다.”
백의 마왕이 긍정, 그에 화이트가 한 차례 실소를 흘렸다.
백의 마왕의 눈썹이 불쾌함에 까딱거릴 즈음, 화이트가 재차 말을 이었다.
“……스승님, 아셰라를 떠올렸어.”
“…….”
“버텨내기에는 그만한 존재가 달리 없으니까. 나에게 있어서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존재가 그녀다.”
“알고 있다.”
“그렇겠지.”
다시금, 피식 웃는다.
입꼬리를 미세하게 끌어올리며, 화이트가 아련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처음에는 아셰라뿐이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마냥 그렇지만은 않아.”
백의 마왕의 눈가가 가늘게 좁혀졌다.
의아함의 표시였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보라는 뜻이었다.
한 차례 미소를 지으며, 화이트가 툭 하고 내뱉었다.
“나는 돌아갈 거다.”
“…….”
“너를 끝내 소멸시키고, 돌아가서, 아셰라를 마주할 거야.”
화이트는 백의 마왕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바라보는 건 더 이상 그가 아니었다.
“마침 샤사르도 죽었지. 아셰라를 제외하면, 12마왕은 이제 너밖에 남지 않았어. 그러니, 너만 해결한다면 나는 아셰라와의 행복한 일상을 보낼 수 있다.”
그렇지만.
덧붙이면서, 화이트가 이마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그뿐인 것만은 아니야.”
다만 별달리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입가에는 여전하게 미소가 맺혀 있었다.
“이제는 알 수 있어. 이 공간에 들어온 직후에는 고통뿐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여러 가지가 떠오르고 있다는 얘기지.”
후우-
얕게 숨을 고르고는, 다시금 입을 연다.
“돌아가서 모든 게 평화로워진 세상을 즐길 거다.”
눈동자를 흐릿하게 빛내며, 화이트는 천천히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입에 담았다.
“예를 들어 볼까.”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화이트가 생각에 잠겼다.
돌아가면 무엇을 할까.
이 공간을 빠져나가고 난 다음, 모든 게 깔끔하게 해결된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오히려 지극히 짧다고도 할 수 있었다.
“우선은 아셰라와 만나겠지.”
그녀와 함께하는 일상, 여생은 행복할 것이다.
그야말로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없을 정도로.
다만 그뿐이냐면, 그건 또 아니었기에.
“클리포트 공작의 자리도 이어받을 테고.”
피식 웃음을 흘리며, 화이트는 그 자신이 클리포트 공작이 되어 공작령을 통치하는 삶을 상상해 보았다.
일선에서 물러난 테이칸 클리포트는 느긋한 생활을 즐기겠지.
그리고 자신은 그와 같은 저택에서 지내며, 자주 실없는 대화를 나눌 것이다.
“제도, 황궁에도 자주 갈 거다.”
그곳은 이제 클리포트 공작령 못지않은 고향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친우라고 할 만한 존재들 역시, 모두 그곳에 모일 터.
“에드발트 경과 차를 마시며 국가의 일에 대해 논의도 하겠지. 황실의 대마도사와, 클리포트 공작으로서.”
그게 끝나면 황제와 마주할지도 모른다.
상관없을 것이다.
“황제와의 알현이 끝나면 크리스와도 마주할 테고, 간식을 사줄지도 몰라.”
이어서 황궁에 모인 다른 가문의 후계자들과도 만날 것이다.
세레나, 에이단, 율리안, 조슈아, 페르시아.
친우라고 표현할 수 있을 존재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오르카였다.
가장 많은 친분을 쌓은 소녀였으니까.
“뭐, 그 이후에는 루시펠을 갈구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태연하게 중얼거리며, 화이트는 말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그 모든 일상에는 나와 아셰라가 있겠지. 그녀와 함께하는 삶은 실로 행복할 거야.”
“…….”
그리고 그 말에, 백의 마왕의 표정이 굳어졌다.
흔치 않은 표정의 변화였다.
미세한 차이였으나, 화이트는 그 미묘한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처음에는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이제 그것밖에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어. 그러니까 돌아갈 거다. 그뿐인 문제야.”
입매를 비틀며, 화이트가 말을 끝맺었다.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듯이 백의 마왕을 직시한다.
오롯이, 올곧은 시선으로.
눈빛을 선명하게 빛내며.
“…….”
그리고 그 시선에 백의 마왕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더없이 험악할 정도로.
그 변화에 화이트가 당황하여 눈을 큼지막하게 뜰 정도였다.
“……너는.”
이를 갈며, 그가 싸늘한 시선을 화이트에게로 던졌다.
“여전하군. 실로 바뀐 게 없어. 희망으로 가득 차 있지.”
“무슨 소리를─”
“회귀 이전에도 그랬을 터다.”
화이트의 말을 끊어내며, 백의 마왕이 입술을 짓씹었다.
“아셰라를 구원하겠다는 일념만으로, 너는 시간을 다루게 되었고, 끝내 되돌렸지.”
그렇기에.
바뀐 게 없다.
여전하다.
그도, 자신도.
“그러니, 너와 나는 역시나 공존할 수 없다.”
“…….”
“같은 하늘을 두고 살아갈 수 없어.”
어느새 다시금 무기질적으로 바뀐 표정으로, 그가 나직하게 내뱉었다.
“……도플갱어에 대한 얘기를 알고 있겠지. 조금 다르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무방하다.”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는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어느 한쪽은 반드시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비극이다.
그렇기에.
“나는 너를 소멸시키고자 할 거다. 그리고.”
한 차례 간격을 두었다가, 그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너 역시 그렇게 하도록 해라. 너와 나는 공존할 수 없는 존재이니까.”
“…….”
화이트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살짝 흐릿한 안광을 빛내며.
그저 상대를 올곧게 바라보고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일 뿐이었다.
긍정의 의미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