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4)그래도 넌
“컥……!”
죽는다.
본능에 가까운 직감이었다.
죽음에 다가가고 있었다.
저항다운 저항조차 해보지 못한 채로.
압도적인 힘의 차이.
마나를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무슨 작용이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눈앞의 사내가 무슨 짓을 했다는 것만큼은 알 것만 같았다.
‘……숨이.’
호흡이 막혀온다.
목이 붙잡힌 상태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마법을 사용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마나를 일으킬 수 없고, 술식을 그릴 수 없는데 어떻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까.
“…….”
백의 마왕은 그저 오롯이 화이트를 내려다봤다.
실로 무기질적인 기색으로.
아무렇지 않게, 너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라는 듯이.
“……!”
화이트의 표정이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보고 있기 힘들었다.
당장이라도 주먹을 내지르고 싶은 참이었으나.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마나를 일으킬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으니까.
다만, 단순히 근력에 의지한 주먹질조차 불가능할 줄은 몰랐다.
백의 마왕은 그저 손아귀의 힘으로 목만을 내리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신체의 다른 부위에 압력을 가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움직일 수가 없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몸을 짓누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
곧 죽는다.
확신에 가까웠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할 줄은, 예상조차 못 했는데.’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헛웃음이라도 흘리고 싶었으나, 그조차도 불가능했다.
화이트가 두 눈을 지그시 감는 순간이었다.
콰직-
“……?”
나직하게, 무언가가 부서지는 듯한 소음이 들려왔다.
*****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아셰라는 계속해서 그렇게 되뇌었다.
‘뭘……. 하고 있는 건가요.’
지금 눈앞에서 화이트가 죽어가고 있는데.
저렇게 갑작스럽게, 불합리한 폭력에 당하고 있는 상황인데.
가만히 묶여서.
아무것도 못 하는 채로.
─지켜보고만 있을 셈인 거냐고.
“──.”
그래서는 안 된다.
그건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화이트의 죽음 따위, 생각지도 않았다.
생각할 가치조차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위협이 닥쳐오더라도, 그라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것조차 안 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라면, 자신이 어떻게든 지켜내면 될 문제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움직여……!’
으득!
거칠게 입술을 짓씹었다.
핏물이 새어 나왔으나, 신경 쓰지 않는다.
눈에 핏발이 서도, 양손이 으스러질 듯 옥죄어 와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그저 화이트를 향해 시선을 옮긴다.
다른 생각은 지운다.
필요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생각해야 할 건 오직 하나.
화이트를 구해내는 것뿐이었다.
‘──아.’
그리고.
그 직후였다.
콰직-
무언가가 깨뜨려지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서 나직하게 울려 퍼진 듯한 감각이 들었다.
이어서, 몸을 속박하고 있던 무형의 기운이 사라짐을 느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으나.
“……제, 자님!”
상관없었다.
어찌 되든 좋지 않나.
중요한 건, 결론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아셰라는 손을 뻗었다.
여전하게, 마나를 움직이기는 힘들었으나.
아주 미세하게나마, 기운을 끌어올리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무언가를 초월한 듯한 감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셰라가 이를 악물며 백의 마왕을 배제하고자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쯧.”
한 차례, 혀를 차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백의 마왕이 고개를 돌렸다.
“……?”
그리고, 아셰라는 볼 수 있었다.
‘……왜?’
무척이나 다양하고, 복합적이며, 괴로움으로 점철된 감정들로 뒤덮인 표정을 짓고 있는 백의 마왕의 모습을.
의아함이 들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걸까.
왜 그렇게 괴로워하는 듯이,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걸까.
“…….”
그래, 의아하긴 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지금 중요한 건 아니었다.
아셰라는 의도적으로 그에 관한 고민을 지워냈다.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날려버리며, 그저 화이트를 붙잡고 있는 백의 마왕의 손아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쩌어어어엉!
“……!”
직후, 재차 시간이 멈췄다.
*****
화이트는 흐릿하던 정신이 되돌아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몸에 힘이 돌아온다.
동시에 시야 역시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
한 사내가 보였다.
익숙하다면 익숙한 얼굴을 가진.
백금발과, 싸늘할 정도로 무기질적인 푸른빛 눈동자를 가진.
……과거, 혹은 미래의 자신.
백의 마왕, 화이트.
“기회를 주지.”
그가 입을 열었다.
“장소를 바꾸도록 하겠다.”
그리고 내뱉는 말은,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시간에 간섭할 수 있는 권한을 돌려주고, 제대로 된 공간에서 다시금 우열을 가르도록 하지.”
화이트의 표정 위로 의구심이 떠오르는 것도 당연한 일일 터였다.
미간을 좁히며, 명백하게 의심하는 기색으로 화이트가 백의 마왕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택은 네가 내리는 거다.”
그저 태연하게, 처음과 다를 바 없는 태도로 말을 이을 뿐이었다.
“다만, 그 대가 역시 네가 치르게 되겠지.”
“…….”
그리고 그쯤에서, 화이트는 볼 수 있었다.
사내의 뒤편에 서 있는 한 소녀의 모습을.
‘……스승님.’
결연한 빛을 띠고, 일그러진 표정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이상한 점은, 그런 그녀의 움직임이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정되어 있다는 부분일 것이다.
‘아니, 진짜로 시간이 멈춘 게 맞겠지.’
다시금 시선을 백의 마왕에게로 돌린다.
그는 여전하게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신이 되었다고 했던가, 분명.
그래, 그렇다면 시간을 멈추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겠지.
그럴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의문은 생기지만, 지금 당장 입에 담지는 않는다.
그저 지그시 백의 마왕을 직시할 뿐이었다.
“결정해라.”
그리고 그쯤에서, 그가 재차 입술을 떼어냈다.
이어서 그가 뒤편의 아셰라를 힐끔 흘겨보았다.
“아셰라마저 위험에 처하게 만들 것인지, 아니면 내 제안을 수락할 것인지.”
“…….”
그 말에, 화이트는 침묵했다.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게 곧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고민할 가치조차 없었기에.
결정을 내리는 것에 시간을 들일 이유가 없었던 탓에.
그랬기에, 화이트는 침묵했으며.
“……그래, 그런가.”
그게 곧 대답이 되었다.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백의 마왕이 손을 내리그었고.
화아아악!
그것으로 공간은 반전되었다.
*****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뭐지?”
아셰라가 사라지고.
둘만이 남은 공간에서.
“왜 그랬지?”
화이트는 백의 마왕을 향해 나직이 질문을 던졌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을 텐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인상을 찡그리며,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는 백의 마왕.
다만, 화이트는 그런 그의 행동에서 미세한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지금 거짓을 입에 담고 있었다.
“부정할 생각하지 마라. 나를 죽이고자 했다면, 그냥 끝내 내 목을 꺾었으면 될 문제였을 텐데.”
“…….”
“구태여 이런 공간으로 끌고 와, 나와 스승님을 분리할 이유가 없지 않았냐는 말이다.”
백의 마왕은 침묵을 지켰다.
그저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문 채, 우묵한 눈빛으로 화이트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게 곧 답이 되었다.
“……본질적으로, 너와 나는 같은 존재라고 했던가.”
고개를 살짝 떨구며, 화이트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아니, 그냥 안심했다.”
“…….”
사납게 인상을 일그러뜨리는 백의 마왕.
그 반응에, 화이트는 처음으로 안도가 섞인 웃음을 흘릴 수 있었다.
그래도 표정에 완전히 변화가 없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품으며.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너와 내가 같은 존재라는 게.”
“…….”
“동시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네가 나를 끝끝내 죽여도, 그녀는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옅은 미소를 입가에 걸치며, 화이트가 손을 앞으로 뻗었다.
우웅-
공간이 일그러진다.
동시에, 무채색의 기운이 화이트의 손끝에 맺히기 시작했다.
시간의 힘이었다.
“너는 나를 죽이고자 하면서도, 그녀만큼은 여전히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구나.”
“헛소리.”
거칠게 이를 갈며, 백의 마왕이 즉각적으로 부정을 표시했다.
“……하하.”
그렇지만, 그마저도 속내를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기에.
처음으로 그 의중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화이트는 웃었다.
실로 초연한 태도로.
“그래도 쉽게 죽어줄 생각은 없어. 네가 나이고, 동시에 아셰라를 소중하게 여긴다고 해도 말이지.”
가볍게 발을 구르며, 유려한 궤적과 함께 손을 휘젓는다.
“……오랜만이네. 이 감각도. 시간을 다루는 기분이라는 건 참 신기해.”
화이트의 입꼬리가 끌어올려졌다.
“내가 죽으면 아셰라는 슬퍼하겠지.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거나, 혹은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내릴지도 몰라.”
그러니까.
“……죽을 생각은 없어. 너는 나를 여기로 끌고 와, 시간의 힘을 되돌려 준 걸 후회하게 될 거다.”
쿠웅!
지면을 거칠게 내리밟으며, 화이트가 일순간에 표정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샤사르만 죽이면 모든 게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문제가 튀어나올 줄은.”
“…….”
“그래. 어쨌든 간에, 끝을 보자.”
─그 말이 끝이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화이트도, 백의 마왕도.
서로 대화를 더 이어나갈 생각 따위는 없다는 듯이.
그저 지면을 박차며, 서로를 향해 살벌한 눈빛을 번뜩일 따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