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3)시간
“…….”
공간이 적막에 휩싸였다.
그 어떤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전신이 긴장으로 뭉쳐졌다.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지금껏 죽인 마왕은 총 다섯.
금과 회색, 녹색, 청과 남색.
아셰라를 제외하면, 남는 마왕은 총 여섯이었다.
여섯이 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제도 상공에 그 모습을 드러낸 마왕은 몇 명이었던가.
다섯이었다.
한 명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크게 기시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어째서 눈치채지 못했나.
어째서 진작에 깨닫지 못한 걸까.
약간의 위화감 정도라면 충분히 느낄 수 있었을 텐데도.
끝끝내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
“처음 만난다, 라고 해야 하는 걸까.”
“…….”
“반갑군. 아셰라, 그리고 화이트 클리포트.”
눈앞의 사내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자의 정체를 듣게 되었다.
“백의 마왕, 화이트라고 한다.”
“──.”
……전신이 축축하게 젖어간다.
긴장감일까.
그도 아니면, 다른 무언가의 탓일까.
이유는 모른다.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알 수는 없었으나.
왜인지 모르게, 몸이 점차적으로 무거워지는 감각을 느껴야만 했다.
“……헉, 허억.”
그리고 그건 즉각적으로 외부에도 드러났다.
“……큭.”
깊은 숨을 몰아쉬며, 화이트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제자님?”
명백하게 괴로워하는 듯한 그 모습에, 아셰라가 황급히 시선을 돌렸으나.
“이상할 것 없는 일이지.”
“……!”
그마저도, 눈앞의 사내에 의해 제지되었다.
허공을 거닐며, 백의 마왕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반응이야. 같은 시간대에 존재해서는 안 될 존재가, 같은 위치에서 맞닥뜨리게 된 상황이니까.”
“……그게, 무슨.”
아셰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에 대답하듯, 백의 마왕이 힐끔 시선을 옮겨 그녀를 마주했다.
“간단한 이치라고 할 수 있겠지, 아셰라.”
이어서, 그가 손가락을 들어 올려 여전하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화이트를 가리켰다.
“저 녀석과.”
그다음으로, 화이트를 가리켰던 손가락을 그에게로 되돌아간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실로 태연스럽게.
그는 한마디만을 내뱉는다.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다.”
“…….”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분위기 그 자체가 무게를 가지고 사방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이변은, 이내 제도의 모든 인물이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확대되었으니.
[……저건?]
에르샤의 심장을 꿰뚫고, 실버의 목을 베어낸 루시펠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안광이 흐릿하게 일렁였다.
그리고, 그쯤이었다.
“대화를 나누기에는, 적합한 장소라고 하기가 힘들구나.”
스윽-
그리 가볍게 내뱉으며, 백의 마왕은 살며시 손을 내저었다.
그저 한 차례, 내리그을 따름이었다.
그뿐인 움직임이었으며.
그렇게, 별다른 전조조차 없이.
후욱!
“……!”
세계가 반전되었다.
황궁이 있고, 도시가 있었던 제도.
그곳은 어느새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아셰라의 눈가가 가늘게 좁혀졌다.
‘……아니. 사라진 건 오히려 이쪽인가요.’
상황이 일변했다.
그야말로 갑작스러운 현상이었으며, 당황할 법도 하였으나.
‘공간 이동, 혹은…….’
아셰라는 어떻게든 차분함을 유지하고는,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보이는 것은 두 갈래의 세계였다.
한쪽은 찬란한 푸른빛으로 뒤덮인 바다였다.
또 다른 한쪽은, 그저 새하얗기만 한 무채색의 공간이었다.
최대한 상세히 살피며, 아셰라가 무엇이든 좋으니 정보를 수집하려 하는 순간이었다.
“……여긴.”
“제자님?”
어느새 정신을 차린 건지, 화이트가 고개를 들어 올린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내, 심상 세계?”
“……!”
아셰라로서도 흘려넘기기 어려운 한마디를.
“그렇지.”
그에 대한 대답은, 다름 아닌 정면에서 들려 왔다.
화이트와 아셰라가 다급히 표정을 굳히며 소리가 들려 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자신을 백의 마왕이자, 동시에 ‘화이트’라고 소개한 사내가 서 있었다.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그의 눈동자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넌.”
그리고 그쯤에서, 화이트는 지금껏 눈치채지 못한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얼굴을 살핀다.
그 머리카락의 색을, 눈동자에 담겨 있는 빛무리를 살펴본다.
이어서, 결론이 내려졌다.
화이트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회귀 이전의 나구나.”
“…….”
화이트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에, 백의 마왕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대답은 없었다.
그저 침묵을 유지하는 그의 모습에, 화이트가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 눈빛은 아득할 정도의 깊이를 가지고 있었으며, 속내를 읽어내기에는 지나치게 어려운 종류의 것이었다.
목이 탄다.
마른침을 삼키며, 화이트가 재차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글쎄.”
백의 마왕의 입술이 떼어졌다.
그가 천천히, 느긋한 어조로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무슨 말을.”
“이해하기 어려울 거다. 너와 나는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라고도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이미 틀어진 위치에 서 있기도 했으니까.”
그 이해할 수 없는 말에, 화이트는 물론이고 아셰라의 표정마저도 일그러졌다.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약간의 이해조차도 할 수 없었다.
“간단하게 얘기해볼까, 내 정체에 대해서.”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의문을 곧 해소될 수 있었다.
“과거로 돌아가 보도록 하지. 화이트 클리포트, 그리고 아셰라.”
다름 아닌 백의 마왕이 내뱉기 시작하는 말들에 의해서.
*****
회귀 이전.
정확히는, 화이트 클리포트라는 존재가 시간에 간섭하는 마법을 시전하기 직전의 순간이었을 거다.
화이트 클리포트는 과거로 돌아갔다.
그가 바랐던 대로, 회귀한 것이다.
……그러나.
그 버려진 시간대, 버려진 세계에 남은 게 없는 것은 아니었다.
화이트 클리포트.
다르게 말하면, 인간의 몸으로 시간에 간섭한 유일한 존재.
그 자신은 몰랐을 수도 있겠지만, 화이트 클리포트는 당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마법의 극의, 9서클.
……그마저도 아득히 뛰어넘은 수준에 도달했다.
마법이라는 하나의 개념에 있어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그리고.
그쯤 되는 경지에 이른 마법사라면, 그 마나마저도 의지를 가지게 되고 만다.
세계는 멸망의 길로 들어섰으며.
화이트 클리포트는 과거로 되돌아갔다.
다만.
그렇게 되돌아간 화이트 클리포트가 남기고 간 게 있었다.
화이트 클리포트라는 개체가 이룩한 마법의 경지.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찬란한 마나 그 자체였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화이트 클리포트가 그 시간대에서 모습을 감춘 뒤, 세계는 차근차근 종말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모든 게 무너져 내렸다.
세계 그 자체가 형태를 감추어갔다.
……그런 도중에도, ‘마나’는 남아 있었다.
화이트 클리포트가 남기고 간, 지고의 경지에 이른 마나가.
본디 마나에는 자아가 없다.
그래야만 할 것이었다.
그게 세계의 규칙이었으니까.
그렇지만, 화이트 클리포트가 떠나고 남겨진 그의 마나는.
진정한 마법의 한계에 도달하여, 경지에 이른 그의 마나는.
아득할 정도의, 억겁의 세월이 흐른 뒤.
점차적으로 의지를 가지며, 자아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그 존재’는 만들어진 직후 그 자신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다르게 말하면,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시간’이라는 건 무엇인지.
인간의 힘으로 그것에 억지로 간섭한다는 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자연스레.
“소개하지.”
─그것을.
백의 마왕은 차분한 어조로 입에 담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는 가능성으로만 남게 된 시간대에서 네가 남기고 간 마나 그 자체이자.”
그의 푸른빛 눈동자가 섬뜩하리만치 서슬 퍼렇게 번뜩였다.
“‘시간’의 깨달음을 얻어, 신의 경지에 오른 백의 마왕이다.”
*****
“…….”
백색과 푸른색으로 물든 세계.
달리 말해, 화이트 클리포트의 심상 세계.
그 공간에, 아득한 적막이 감돌기 시작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 정적을 먼저 깨뜨린 것은, 다름 아닌 화이트였다.
“시간 마법에 대해서는 내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
동공을 파르르 떨어대며, 화이트가 입술을 짓씹듯 깨물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내가 창조한 마법일진대. 모르는 게 이상하겠지.”
말을 이어가지만, 그의 목소리는 이미 감출 수 없을 정도로 떨려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알 수 있다. 너 같은 존재가 만들어질 수 있을 리가 없어. 시간에 개입하여, 나는 모든 걸 과거로 되돌렸을 텐데.”
그런 이상, 남는 게 생길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잔존한 마나가 시간이 흘러서 자아를 가지게 된다는,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고.
……그렇게 덧붙이면서도, 무척이나 요동치는 눈동자로.
화이트가 백의 마왕을 바라봤다.
“……그렇게 생각하나?”
그리고.
그런 화이트와 마찬가지로, 시선을 마주하며.
백의 마왕은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던 차분하면서도 무기질적인 태도를 처음으로 버렸다.
콰앙─!
“……커헉!”
일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갑작스레 공간이 일그러지며, 백의 마왕의 신형이 사라지더니.
한순간에 화이트의 코앞까지 도달해, 그대로 화이트를 지면에 내리꽂았다.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나? 네가, 정말로 시간에 대해 모든 걸 깨달았다고?”
“……큭!”
꽈악-
화이트의 표정이 고통으로 점철되었다.
……움직일 수 없다.
목을 움켜쥔 손아귀에서부터 아득할 정도의 완력이 느껴졌다.
“……제자님!”
아셰라의 반응은 재빨랐다.
다급하게 마나를 움직여, 마법을 전개한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의 정체에 대해서도,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분명한 건, 저 사내가 지금의 화이트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
판단을 내리는 것에 필요한 요소는 그뿐이었다.
이를 악물며, 아셰라가 마법진을 그려 섬광을 날렸다.
“─멈춰라.”
“……!”
……아니.
날리고자 했다.
날리고자 했으나, 제지되었다.
“……이게 무슨.”
몸이 굳는다.
긴장감이나, 혹은 두려움에 의한 게 아니었다.
반쯤 강제적으로.
무언가, 거대한 압력이 몸을 짓누르는 감각이었다.
움직일 수 없다.
아셰라는 그 부분에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다른 누구도 아니다.
그녀가 어떤 존재인가.
마법에 있어서는, 샤사르와 함께 고금을 통틀어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존재가 바로 그녀가 아니었던가.
……분명 그럴 텐데.
‘……어, 떻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석화 마법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셰라의 떨리는 시선이 백의 마왕에게로 향한다.
“얌전히 있어라. 아직 대화가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내며, 백의 마왕은 나직하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아셰라의 경악스러운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가 다시금 화이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전하게, 거친 손아귀로 그의 목을 붙잡은 채로.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화이트 클리포트.”
……천천히, 말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샤사르가 바랐던 지고의 경지. 다르게 말해서, 신의 자리.”
무기질적인 그의 표정에 차츰 변화가 일었다.
분노하듯이.
마치 격한 감정을 내리누르는 것처럼, 손아귀에 더욱 힘을 준다.
“신격을 손에 넣고도, 나라는 힘을 손에 넣고도. 고작해야 시간을 한 차례 되돌리는 것으로 모든 걸 버릴 생각을 한 너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
화이트는 대답할 수 없었다.
무어라 말을 하고자 입술을 달싹여 보았으나, 나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목을 붙잡힌 상태로 어떻게든 힘을 써보지만, 역부족이었다.
마나를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서클이 회전하지 않았다.
마치 겁을 먹은 것처럼.
두려움에 떠는 것처럼, 마나가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중요했나? 아셰라라는 존재가, 네게 있어서? 신의 자리를 저버릴 만큼?”
그런 화이트를 지그시 내려다보며, 백의 마왕이 이를 갈았다.
“웃기지 마라.”
콰득!
“……!”
목을 비튼다.
그야말로 전력을 다해, 상대를 죽이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화이트의 표정이 고통으로 물들었다.
신음조차 낼 수 없었다.
저항은 불가능했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다. 여전하게, 아직까지도.”
그러니까.
한마디를 덧붙이며, 백의 마왕이 서늘한 눈동자를 번뜩였다.
“나는 너를 죽이겠다. 너의 목숨을 취해, 나의 존재 의의를 증명하겠다.”
그 말이 끝이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다는 듯.
더는 할 말조차 없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이.
손아귀에 힘을 집중시키며, 백의 마왕이 일순간에 화이트의 목을 내리찍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