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1)끝
쾅! 콰앙!
콰가가가각!
제도의 상공 반절이 살벌한 마법진들로 물든다.
오가는 마법들은 서로 상충하기도 하며, 어느 한쪽이 역으로 꿰뚫기도 하고, 서로를 빗겨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중요한 건, 그러한 마법들이 결론적으로 상대방에게 일말의 피해조차 입히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샤사르.
그리고 아셰라.
두 명의 마왕은 그저 공중에 오연히 떠 있는 상태로, 수십 수백의 마법을 손짓 하나만으로 전개할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제도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
이미 프리드리히의 대결계로 보호받는 황궁을 제외하면, 제도의 대부분은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그야말로 흔적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그럼에도 두 마왕은 신경 쓰지 않는다.
샤사르는 애초부터 그따위 것에 상관하지 않았으며, 아셰라는 그곳에 이미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파괴되어도 재건하면 된다.
모든 전투가 끝난 이후에, 모든 걸 되돌리면 될 일이었다.
그렇기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더욱 살벌하고, 더욱 방대한 마법진을 전개한다.
오직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 살의를 잔뜩 담아서.
그렇지만.
끝내 결판이 나지는 않는다.
단지 결판이 나지 않을 뿐인 것도 아니었다.
상처조차 입지 않는다.
아셰라와 샤사르, 두 마왕 모두.
일절 피해를 입지 않은 채, 그저 멀리서 마법만을 난사할 따름이었다.
“…….”
샤사르의 미간이 미묘하게 좁혀졌다.
불쾌함의 표시였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이러한 교착 상태가 계속 이어진다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그 자신이 아셰라를 제압하지 못하는 것과 동일하게, 아셰라 역시 자신을 죽이지 못한다는 걸 샤사르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초조했다.
어울리지 않게 이를 악물며, 샤사르가 재차 술식을 그렸다.
이번에는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강렬하게.
확실하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최소한 유의미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마법을.
전개한다.
“……!”
아셰라의 두 눈이 살며시 크게 뜨였다.
그녀도 눈치챈 것이다.
샤사르가 무슨 마법을 준비하고 있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한때 그와 목숨을 걸고 전투를 이어나간 적도 있었으니까.
그의 고유 마법을 꿰뚫어보고 있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술식이 그려진다.
그 무엇보다도 복잡하고, 섬세하며, 동시에 파멸적인 마나를 담아내고 있는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후욱!
아셰라가 다급히 완드를 휘저었다.
우웅!
마나가 움직이며, 이어서 그녀의 정면에 수백 개의 배리어가 중첩되며 겹친다.
설령 8서클 급의 마법사가 시전하는 대마법이라 해도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의 방어막.
그럼에도 아셰라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눈을 날카롭게 뜨며, 새로운 마법을 전개한다.
방어막, 배리어만으로는 안 된다.
막아낼 수 없다.
막아내더라도,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었다.
그런 탓에, 역으로 공격을 가할 필요성이 있었다.
충돌하여, 마법이 공멸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
쿠궁, 쿠구궁……!
공간이 뒤틀리며 무언가가 일그러지는 듯한 소음이 생성된다.
샤사르의 마법과, 아셰라의 마법이 전개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심지어 완벽하게 펼쳐진 상태도 아니었을진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시전의 준비 과정에서 그 강렬한 마나들은 공간을 과격하게 뒤흔들었다.
그리고 끝내는.
마법이 전개된다.
번쩍!
샤사르의 안광이 선명하면서도 섬뜩한 붉은색으로 빛을 발했다.
동시에, 그의 앞에 거대한 마법진이 떠오른다.
붉은빛의 스파크를 사방으로 흩뿌리는 그 마법진은, 정확하게 아셰라를 겨냥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상대에게 타격을 입히지 못하는 그저 그런 수준의 마법이 아니었다.
고유마법.
명백하게, 절기라고 할 만한 종류의 것이었다.
“─격화.”
짤막한 중얼거림.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시전된다.
마법진이 불을 뿜어낸다.
화르르르르륵!
단순한 불꽃이 아니었다.
공간 그 자체를 뜨겁게 달구는, 그야말로 지옥의 불꽃.
샤사르의 수많은 고유 마법 중에서도, 파괴력으로만 따지면 최상위권에 속하는 마법이었다.
“…….”
아셰라의 눈이 오히려 차갑게 가라앉은 것은 그 순간이었다.
불꽃.
다가오는 그 지옥의 불길은, 모든 것을 잡아먹을 것처럼 그 아가리를 사납게 벌리고 있었다.
그런 불꽃을 바라보며.
스윽-
아셰라는 천천히 완드를 앞으로 뻗었다.
일자로 기울이고는, 마나를 흘려 넣는다.
이미 술식은 완성되었다.
샤사르의 마법에 대항할 수단, 그 준비는 끝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마찬가지로 전개하는 것뿐.
사아아아아-
주변이 냉랭한 한기로 뒤덮인다.
공간 그 자체가 얼어붙는 듯한 감각.
그리고, 그런 부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
콰아아아아아아!
아셰라의 완드는 폭풍을 만들어냈다.
그 전신이 냉기로 물들어 있는, 눈앞에서 다가오는 불길에 비교해도 절대 밀리지 않을 혹한의 폭풍을.
그렇게 만들어진 폭풍과.
점차 다가오는 지옥의 불길.
이윽고, 두 가지의 마법은 정면에서 격돌하듯이 맞부딪혔다.
냉기는 화염을 억누르고자 했고, 불꽃은 그런 혹한의 폭풍마저도 잡아먹겠다는 듯이 섬뜩하게 번쩍였다.
그리고 이내.
콰아아아아아아앙!
“……!”
귓가를 파고들어 고막을 찢어발길 것만 같은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폭풍과 불꽃은, 결국 그 어느 한쪽도 승리를 거머쥐지 못한 채 상충하여 소멸되었다.
고오오오-
“…….”
이어서, 고요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서로를 그저 노려보며, 아셰라와 샤사르는 침묵을 지켰다.
“……여전히, 너는 위협적이군.”
먼저 입을 떼어낸 것은 샤사르였다.
무엇이 그리도 불쾌한 것인지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그가 짓씹듯이 내뱉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왜 계획에서 스스로 벗어난 거지? 왜 나의 원대한 목표에 함께하지 않는 거냐.”
“……무슨 말을 하는가 했더니.”
그 말에 마찬가지로 표정을 구기며, 아셰라가 싸늘한 눈빛을 빛냈다.
바라보는 건, 당연하게도 샤사르였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계획? 원대한 목표? 고작해야 세계를 뒤집어엎어, 신적인 존재가 되겠다는 게 그토록 중요한 일인가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매를 날카롭게 만들며, 아셰라가 재차 완드를 움직였다.
“결국 당신과 저는 끝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겠죠. 잘 알고 있을 텐데요. 우리 사이에, 대화 따위는 필요치 않다는 걸.”
“…….”
샤사르의 입이 일자로 꾹 다물렸다.
그러나 눈빛은 더욱 살벌하게 번뜩이고 있는 도중이었다.
상관하지 않은 채, 아셰라가 다시금 마나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서 결국 무언가를 느꼈을까.
“……그런가.”
끝내 체념한 듯 한숨을 내뱉으며, 샤사르가 고개를 떨구었다.
이어서, 이윽고.
콰아아아아아!
그가 고개를 들어 올릴 즈음에는, 그의 전신에 붉은빛의 광휘가 내려앉았으니.
“……그건.”
아셰라의 눈이 가늘게 좁아졌다.
어울리지 않게 긴장한 기색으로, 그녀가 자세를 잡았다.
아까와 같다.
알고 있었기에.
샤사르의 육체가 붉은빛의 광휘에 휩싸인다는 게, 어떠한 현상을 의미하는지.
어떤 마법이 전개되기 시작할지, 모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네가 끝까지 그렇게 나오겠다면, 나도 더는 할 말이 없겠지.”
중얼거리며, 샤사르가 목을 한 차례 꺾었다.
콰득!
사람의 육체에서 나서는 안 될, 무언가가 비틀리는 것 같은 불쾌한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콰득! 콰드득!
이어진다.
점차적으로 커지며, 샤사르의 육체에 내려앉은 광휘 역시 더욱 환하게 번쩍이기 시작한다.
“끝을 보자.”
“…….”
“이 질긴 악연에 종지부를 찍자는 말이다.”
음울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였다.
더해, 더없이 싸늘한 음성이기도 했다.
아셰라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대답은 없었다.
구태여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때로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 곧 답이 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후욱!
마나를 일으킨다.
선명하며 찬란한 푸른빛의 마나가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른다.
그것을 바라보는 샤사르의 두 눈동자에 이채가 내려앉았다.
그가 그 무엇보다도 원하고, 또 바랐던 마나이기에.
그렇기에, 그는 표정을 광기로 물들였다.
─저것만 있으면.
저것만을 손아귀에 쥘 수 있다면.
다른 모든 게 필요없다.
저것을 이용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으니까.
세계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이 가능하게 되겠지.
자신의 압도적인 힘과, 저 특별한 마나가 합쳐진다면 싫더라도 그렇게 될 것이었다.
아셰라의 의지 따위는 어찌 되더라도 좋았다.
애초에 그런 것을 신경 쓸 것이었다면,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테지.
……그녀의 생각, 그녀의 반대는 무시한다.
철저하게 자신만을 위해 이용할 것이다.
그러니까.
“내놔라, 그 마나를.”
비틀린 미소를 그려내며, 샤사르가 허공을 박찼다.
콰앙!
“……!”
마치 지면을 딛고 달려 나가듯이, 말 그대로 허공을 차냈다.
그리고 날아든다.
가공할 만한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일순간에 아셰라의 지근 거리까지 접근한다.
콰아아아아!
그 패도적인 마나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샤사르가 손아귀를 내리그었다.
아셰라의 전신을 난도하기 위해.
그녀가 상처를 입든 말든, 그 따위 것은 그에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아셰라가 어떻게 되어도, 그녀의 마나만 무사하다면 좋았다.
샤사르가 목표로 하는 것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가 보유한 마나 그 자체였으니까.
그렇기에, 궁극적으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사지를 다 찢어발겨도 문제가 없었다.
목숨만 붙어있다면.
아니, 그녀가 죽게 되더라도 마나만 살아있다면.
“……!”
쇄애애애액!
공기를 가르면서, 붉은 광휘로 물든 샤사르의 손날이 아셰라의 위에서부터 떨어져 내렸다.
아셰라의 눈가가 가늘게 좁아졌다.
피하지 않는다.
오롯이 바라보며, 오히려 그를 막기 위해 마나를 이끌어낸다.
애초부터 피할 수 있는 종류의 공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샤사르 역시 이 공격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의 말대로, 끝을 보기 위해.
이 질긴 악연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것은 그로서 바라는 게 아닐 터.
그렇기에 이리도 과격하게 나오는 것이다.
그런 이상, 아셰라로서도 더는 가볍게 대할 수 없었다.
확실하게 대응한다.
살의를 담아.
샤사르를 죽이기 위해.
더 이상 수십 수백의 마법을 전개해 시간을 질질 끄는 건 필요 없었다.
그저 단 한 합으로 결착이 맺어질 것이다.
그건 샤사르가 바라는 것임과 동시에, 아셰라가 바라는 것이기도 했다.
그녀도 이제는 끝을 보길 원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악연을.
누구 한 명이 죽음을 맞이하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을 이 빌어먹은 인연을.
그러니까.
전력을 다한다.
마찬가지로, 방어는 도외시한 채.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
정확하게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더라도 어떻게든 상대의 목숨을 취한다.
샤사르도, 아셰라도.
두 마왕 모두가 같은 것을 생각했다.
이 한 번의 부딪힘으로 모든 걸 끝맺자.
그것만큼은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콰아아아아아아!
마나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며, 상공 전체를 아득하게 물들였다.
붉은빛으로, 푸른빛으로.
서로가 영역을 장악하기 위해 맞부딪히면서, 굉음을 연신 터뜨려댔다.
그리고 끝내는.
샤사르의 손아귀와, 아셰라의 마나가 맺힌 완드가 부딪히고자 한다.
‘끝이다.’
둘 모두 직감할 수 있었다.
어느 쪽이 승리하든, 어느 쪽의 마나가 상대방을 압도하든 간에.
어떤 형태로든, 한쪽은 패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누가 승리를 거머쥐게 되더라도, 그조차도 성치는 못 하리라.
필시 상당한 상처를 입게 될 터.
그럼에도, 둘 모두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만 있다면.
샤사르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곧 아셰라의 마나였으며.
아셰라에게 있어서는, 샤사르의 죽음이었다.
어떤 치명적인 피해를 입더라도.
어떤 영구적인 장애가 남게 되더라도.
이곳에서 끝을 본다.
그 생각만을 품었다.
─그러나.
“그 꼴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
푸욱!
……그렇게 어느 한쪽이 패배하고, 승자 역시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되는 상황을.
바라지 않는 존재가 한 명 있었으니.
“……무, 슨.”
샤사르의 입술을 비집고 경악이 서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천천히, 고개를 아래로 내린다.
보이는 것은 청백색의 창.
그 자신의 가슴을 꿰뚫고 있는, 언젠가 본 적이 있었던 마나의 창이었다.
“──.”
고개를 뒤로 돌린다.
보이는 인물이, 한 명.
보여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드러날 정도로, 빠르게 나타나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화이트, 클리포트.”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무척이나 요동치고 있었다.
불시의 일격에, 가슴을 꿰뚫렸기에.
반응하지 못했다.
그저 모든 신경을 눈앞의 아셰라에게만 쏟아붓고 있었던 탓에.
눈치채지 못했다.
기척조차 감지할 수 없었다.
이토록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그렇기에 당했다.
심장을 꿰뚫렸다.
샤사르의 붉은 눈동자가 사정없이 뒤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며.
그런 그를 시야에 온전히 담아내며.
“바이올렛이 나를 완벽하게 묶어둘 수 있을 거라고 믿었나?”
화이트는 조소를 머금고는 입매를 비틀었다.
“나는 스승님이 너와 공멸하는 결과 따위는 원치 않아.”
그렇기에.
그랬기 때문에.
“이런 형태로 끼어드는 건 바라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샤사르의 목숨을 끊어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이런저런 것들을 신경 쓰면서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자, 그럼.”
콰득!
“……!”
화이트가 쥐고 있던 창을 으스러질 듯이 비트는 것과 동시에, 샤사르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우우우웅!
마나가 공명한다.
청백색의 창에 푸른빛의 마나가 맺히기 시작했다.
샤사르의 낯빛이 창백하게 질리는 것과 동시에.
“조금 허무하더라도. 아니, 상당히 하찮은 결말이더라도.”
화이트가 표정을 싸늘하게 굳히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만 끝을 내자. 샤사르.”
***